당뇨병 환자가 인슐린 주사를 투여 중이다.

"인슐린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원래 오늘 배송 예정인 약품을 언제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부가 '생물학적제제 등의 제조·판매관리 규칙'과 '의약품 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을 개정, 지난달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개정 규칙은 냉장·냉동 의약품 배송을 뜻하는 '콜드체인'의 강화를 골자로 한다.

새 규칙은 의약품 온도 관리 소홀로 약이 배송 중에 변질되는 일 없게 한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지난 2020년 보관 및 유통 온도에 민감한 코로나19 백신이 잘 관리되지 않아 '물백신' 논란이 빚어지자 규칙 개정 논의가 빠르게 이뤄졌다. 그런데 콜드체인 요건 강화로 일선 약국에서는 약이 제때 오지 않는다는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의약품 유통업체들이 강화된 규칙을 만족하기 위해 배송 횟수를 줄이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9일 약국가에 따르면 최근 당뇨병 환자들이 약국에서 인슐린을 구하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의약품 유통사에서 인슐린 배송 횟수를 크게 줄인 탓이다.

인슐린은 본래 췌장의 베타세포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우리 몸속 혈당을 일정하게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혈당이 높아지면 몸 안에서 인슐린이 분비되는데, 인슐린은 혈액 내 포도당을 세포로 유입시켜 혈당을 낮춘다. 이 인슐린 분비와 합성에 문제가 생긴 질병이 바로 당뇨병이다. 당뇨병 환자들은 인슐린을 몸 안에서 제대로 분비할 수 없기 때문에 수시로 혈당을 체크하고 필요 시 인슐린을 외부에서 공급해 혈당을 조절한다.

최근 의약품 유통사들이 일선 약국으로 보내는 인슐린의 배송 횟수를 주 10~15회에서 주 1~2회로 줄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콜드체인 요건을 강화하는 규칙이 시행되면서 기존 배송량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는 게 유통업체들의 항변이다. 개정 규칙에 따르면 유통사는 의약품을 배송하기 위해 특수 제작된 아이스박스를 써야 하고, 자동 온도기록장치도 붙여야 한다. 새 규칙이 정한 최적 의약품 배송 온도는 냉장 약품이 2~8℃, 냉동 제품이 영하 20℃다. 배송용 차량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적합성 검증을 통과해야 한다.

배송과정에서는 약국에서 약사와 배송시간, 아이스박스 온도를 확인하는 절차를 갖는다. 이 때 자동온도기록장치에 찍힌 온도가 규정을 벗어하면 약을 전달할 수 없다. 이 규정을 무시하면 업무정지, 허가 취소 등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기존에는 아이스박스 온도를 기록하고, 저장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었다. 배송차가 냉동·냉장 기능을 갖추고 있다면 전용 아이스박스를 쓰지 않아도 됐다. 때문에 의약품 배송에 드는 시간과 인력이 적어 하루 최대 3번의 배송의 이뤄졌다는 게 의약품 유통업계 설명이다.

개정 규칙이 시행되고 나서는 배송에 드는 비용과 시간이 늘어 결국 배송 횟수가 줄었다. 연매출 기준 국내 1위 의약품 유통업체인 지오영은 콜드체인 강화에 따른 추가 설비 투자액이 매년 3억원 이상이라고 추산했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배송 규정 강화로 약 포장에도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한 가운데 자동온도기록장치, 특수 아이스박스 등 장비를 사들이는 데도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며 "현 시점에서 주 10~15회씩 배송을 했다간 1년도 못 가 파산할 것"이라고 했다. 일부 유통업체들은 인슐린 배송을 비용 문제로 당분간 중단하기도 했다.

문제는 약국 배송 시 콜드체인 규정을 지켜야 하는 의약품들 중 80% 이상이 인슐린이라는 점이다. 그만큼 인슐린을 찾는 당뇨병 환자가 많다는 뜻이다. 당뇨병 환자가 제때 인슐린을 공급받지 못해 고혈당 상태가 하루 이상 지속되면 쇼크나 합병증 등으로 사망에 이르게 될 수 있다.

유통업체로서는 규정 준수를 위해 불가피하게 배송 횟수를 줄였다지만, 환자에겐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한 약사는 "벌써 며칠째 인슐린이 들어오고 있지 않다"라며 "인슐린을 구하러 왔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간 환자가 있었다"라고 했다. 인슐린 뿐 아니라 안약과 유산균 등도 이번 규칙 개정안의 영향을 받는다.

약국가에선 정부가 규칙을 하루 아침에 시행한 것이 아니라 6개월간의 계도기간을 줬는데도 유통사들이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한 지역 약사회 관계자는 "정부가 유통업체들이 콜드체인 규정에 미리 준비하고 적응할 수 있는 기간을 6개월이나 줬는데, 업체들은 마치 정부가 기습적으로 개정안을 시행한 것처럼 굴고 있다"며 "약국이 제때 약을 구하지 못하면 그 피해는 환자가 본다"고 했다.

주무부처인 식약처는 콜드체인 적용 의약품의 출고 및 재고량을 면밀히 모니터링 하겠다는 방침이나, 딱히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이에 오는 10일에는 대한당뇨병연합과 만나 인슐린 공급에 대한 해결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인슐린 주사제 등 배송 시 콜드체인 적용을 받는 의약품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제약사 출고·재고량을 모니터링할 것"이라며 "현재 유통업계, 약사회, 환자단체 등과 소통하며 원활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