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영준 휴이노 대표가 지난 27일 서울 청담동 본사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 하고 있다. 길 대표가 손에 쥔 것은 이 회사가 개발한 원격 심전도 기기 '메모패치'다. /김명지 기자

지난 11일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글로벌 의료기기 1위 업체인 존슨앤드존슨(J&J)메디칼의 ‘메드테크(MedTech)’ 행사가 열렸다. J&J메디칼이 기존의 의료기기를 넘어 디지털 헬스케어 기반 종합 치료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는 비전 선포식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오진용 J&J메디칼(존슨앤드존슨메디칼) 북아시아 총괄사장은 “한국 바이오벤처와 오픈이노베이션을 언제나 환영한다”며 디지털 헬스케어 업체 휴이노를 언급했다. 휴이노는 심전도 데이터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의료진의 진단을 보조하는 심전도 기기 ‘메모패치’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J&J 공식 행사에서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이 언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자 업계에서는 휴이노가 J&J메디칼 심전도 기기 유통 계약을 체결

할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휴이노는 사업 초기에는 심전도기기를 시계처럼 손목에 차는 형태로 개발했는데, 가슴에 붙이는 ‘패치’형태로 허가를 받았다.

길영준 휴이노 대표는 “심전도는 피부에 부착돼 있어야 측정이 되는데, 아무래도 손목에 차는 시계 형태로는 100% 정확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다”라며 “의료기기로 허가를 받으려면 ‘패치’ 형태가 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휴이노는 지난 4월 유한양행과 메모패치에 대한 국내 판권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유한양행은 휴이노의 투자자이기도 하다. J&J메디칼은 의료기기 분야에서 명실상부한 글로벌 1위 기업이다. 시가총액은 600조원에 이른다.

길 대표는 “J&J메디칼의 전 세계 네트워크를 타고 휴이노 제품이 팔릴 기회가 곧 열리는 것”이라고 했고 “삼성, 구글, 애플도 휴이노가 보유한 환자 심전도 데이터에 관심을 보였다”라고 했다. 삼성전자와 애플이 판매하는 스마트워치에는 심전도 측정 기능이 탑재돼 있다. 하지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데이터이기 때문에 ‘환자용’ 데이터는 없는 셈이다.

부산대 컴퓨터 공학과 교수 출신인 길 대표는 같은 대학교 컴퓨터 공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마쳤다. 이후 컴퓨터 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돌연 미국으로 가서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미국 보스턴의 위워크가 길 대표의 첫 사무실이다.

길 대표는 “부산에 있는 병원에 가서 협업을 제안했더니 ‘서울대병원에 가 보라’고 해서, 서울대병원에 갔고, 서울대병원에 갔더니 ‘하버드의대에서 쓰느냐’라고 묻더라”라며 “그래서 아예 하버드대와 부딪혀 보자”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부산에서 보스턴까지 가는 데만 4년 정도 걸렸다”라고 했다.

휴이노는 최근 분당서울대병원 김주영 교수를 최고의료책임자(CMO)로 영입했다. 김주영 교수는 임상예방의학 권위자로 2017년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의료정책 사업 복지부 장관 표창장을 받았다. 길 대표를 지난 27일 서울 청담동 본사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一 J&J메디칼 최근 미팅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긍정적이니까 J&J메디칼에서 이달 초 비전 선포식에서 휴이노를 발표하지 않았겠나. 회사의 비전 선포식은 이 회사가 앞으로 가야 할 방향성이고, J&J가 그 방향성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휴이노가 들어있다는 것은 단순히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이 가는 회사로 못 박은 것이라고 본다.”

一 J&J메디칼과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

“J&J는 메드텍이라는 글로벌 챌린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발굴 육성하는 진행하는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인데, 휴이노는 지난 2020년 글로벌 톱20에 선발됐다. 한국 회사 중에서는 휴이노가 유일하다. 시장성이나 기술력으로 순위를 가린다.”

一 어떤 회사들이 결선에 올랐나.

“한국은 휴이노가 유일했고, 미국이나 이스라엘 스타트업이 몇 군데 있었다. 휴이노가 결선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기술력이라고 본다. 휴이노는 지난해 구글이 후원하는 글로벌 AI 대회에서도 전 세계 1등을 차지했다.”

길영준 휴이노 대표가 지난 27일 서울 청담동 본사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 하고 있다. 길 대표가 손에 쥔 것은 이 회사가 개발한 원격 심전도 기기 '메모패치'다. /김명지 기자

一 AI와 헬스케어를 접목할 생각을 한 계기가 있나.

“박사 학위 논문이 생체신호와 관련돼 있었다. 의료는 다뤄야 할 정보가 많다 보니 의료진의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야 한다. (진단 과정에서) 환자가 아닌 사람의 신호를 보는데 에너지를 쓰게 된다. 환자가 아닌 사람을 걸러내면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이 인공지능이라고 생각했다. 컴퓨터로 글을 쓰다 보면 오탈자만 잡아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오탈자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글 쓰는 사람의 생산력이 훨씬 커지지 않겠나.”

一 불필요한 생체신호를 걸러준다는 건가.

“심장이 1분에 몇 번 뛰는지 알고 있나. 통상 1초에 한 번씩 뛴다고 본다. 그렇다면 심장은 1시간에 3600번, 하루 종일은 8만6400번 뛴다. 환자를 잡아내려면 이렇게 8만6400번 뛰는 심장의 신호 중에서 단 한 번의 잘못된 신호를 잡아내야 한다. 메모패치는 그 하나의 잘못된 신호를 잡아내려고 의료진이 기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一 그렇다면 메모패치의 엔드유저는 환자가 아닌 의료진이라고 봐야 하나.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 등 전 세계 의료진을 대상으로 우리 제품이 어떻게 생산성을 높여주는지, 우리 제품이 왜 필요한지 충분히 탐색하고 연구해서 현재까지 왔다. 창업 초기에는 하버드대 의대 교수가 최고의료책임자(CMO)로 근무했다. 초반에는 자문(어드바이저)으로 참여했고, 회사의 기술력을 확인한 후 1년여 후 CMO로 합류했다. 의료진의 생각과 의료진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직접 대변해서 기술에 녹이는 역할을 했다. 지금은 퇴사했다.”

一 최근 삼성전자와 애플 등에서는 환자 데이터와 관련한 문의가 있다고 들었다.

“지난 2014년 미국 보스턴에서 창업을 했다. 미국에 있을 때부터 애플, 삼성, 구글 관계자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이 회사들도 심전도 데이터를 갖고 있지만, 대부분이 일반인의 데이터다. 애플 워치나 갤럭시 워치를 쓰는 일반인 데이터라는 뜻이다. 반대로 우리는 환자들의 데이터를 분석해 왔다. 그러니 관심을 갖지 않았겠나 싶다.”

一 휴이노의 기술력은 어디에 있나.

“전체 직원 80여명 중에서 40여명이 개발자다. 박사급은 15명, 석박사를 포함하면 30명 정도가 된다. 최근에는 수리과학연구소에서 수학을 연구해 온 교수가 합류하기도 했다. 이 밖에 의료 전문가로 분당서울대병원 김주영 교수를 포함해서 임상병리사, 간호사, 응급구조사 등 12~13명 가량이 휴이노에서 일하고 있다. ”

一 응급구조사는 어떤 일을 하는 건가.

“환자의 심장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직군이다. 심장의 위험 신호를 AI에 학습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병원에서 받은 환자의 응급 데이터를 찾아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휴이노는 지난 2021년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윤성로 교수팀과 함께 피지오넷(PhysioNet)이 주관하는 글로벌 인공지능 대회에서 1위 성적을 거뒀다. 피지오넷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운영하는 오픈소스 의료 정보 제공 기관이다. 휴이노-서울대 연구팀의 논문은 심전도(ECG) 분야에서 권위 있는 학회인 CINC(Computing in Cardiology) 저널에도 게재됐다.

一 지금까지 누적 기준 800억원가량 투자를 받은 것으로 안다. 미국 등 해외에서도 투자를 받았는데, 어렵지는 않았나.

“투자 받는 과정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다 똑같다. 투자자들을 찾아가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투자설명회(IR)를 한다. 사업성을 평가받고, 가능성을 보여주는 과정이 있다. 투자자의 이메일이나 연락처를 찾아내서 ‘저는 이런 사람이고, 이런 회사를 하고, 이런 제품을 갖고 있는데, 투자 문의를 드려도 될까요’라고 묻는 데서 시작한다. 하지만 첫 투자는 한국 정부를 통해서 받았다. 투자자들이 우리가 가진 기술력과 업적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

一 창업자들은 사업 초기에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 우여곡절은 없었나.

“창업을 하면서 10억 원 가까운 개인 돈이 들어갔다. 살던 집을 줄여서 이사를 가고, 그 집을 팔고 전세를 가고, 전세금을 빼서 월세로 옮겼다. 2014년 창업해서, 2017년쯤 시드투자로 받은 투자금을 모두 소진했다. 모두가 봐도 그만둬야 할 상황이었는데, 무턱대고 버텼다. 하루에 이자로만 600만~700만원의 현금이 나갔다. 직원들도 모두 떠나고 혼자 회사에 남은 시절도 있었다.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친구들에게는 이렇게 무식하게 사업하지 말라고 한다.”

一 회사가 반전할 기회는 어떻게 찾았나.

“2016년 12월 종무식 때 직원들에게 회사 사정을 설명하고 퇴사를 권유했다. 그러면서도 희망을 끈을 놓지 못했다. 한국이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부흥기 초입에 있고, 그 흐름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 상황에서 마침 서울시에서 창업 대회가 열렸다. 16강 안에 들면 1억원을 상금으로 주는 대회였다. ‘1억원만 있으면 재기할 수 있겠다’ 싶어서 서울대병원과 협력해 도전했는데, 바로 그 대회에서 1등을 했다. 상금이 5억원이었다. 그때부터 여러 병원들로부터 협력 제안을 받기 시작했다.”

一 요즘 자본 시장 상황이 녹록지 않은데, 내년 8월 상장 계획은 변함없나.

“변함없다. 실력 있는 회사에 시장 상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회사 근처 잘 되는 식당은 경기가 안 좋아도, 코로나가 와도 늘 붐비지 않나.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잘되는 식당은 늘 줄 서 있고 사람이 늘 몰려 있고 하듯이 기업도 똑같다고 생각한다.”

一 정부가 디지털 헬스케어를 육성하려고 한다. 어떤 점이 필요하다고 보시나.

“최근 복지부 관계자를 만났을 때 충분히 설명했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이 수익을 내려면 건강보험 수가와 육성 정책이 이어져 있어야 하는데, 수가에 대한 정책을 조금 더 유연하게 만들 수 있는 내용을 제안했다. 예를 들어 새로운 기술에 대한 수가가 좀 더 높이 측정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一 원격 모니터링에 보험 수가를 높여야 할 근거가 있나.

“수가를 높여야 의사들이 쓰고, 기술 개발을 하려는 회사들이 생기지 않겠나. 한국은 원격 모니터링 원격 의료에 대해서는 건보 수가가 없다. 미국에는 똑같은 의료행위라도 보험 적용이 된다. 보험 적용이 되고, 안 되고는 하늘과 땅 차이다. 이런 부분을 제도적으로 어떻게 풀고, 법안을 만들어야 할지 제안했다.”

一 원격 모니터링은 비대면 진료와도 연결되나.

“한국에서 원격 모니터링을 비대면 진료로 통칭하고 있다. 하지만 진료와 모니터링은 별개다. 진료에는 진단과 처방이 포함돼 있다. 우리 회사의 기술은 모니터링일 뿐 진단과 처방은 빠져 있다. 문제가 포착되면, 신속히 병원에 갈 수 있게 내원안내를 하는 것이고, 여기에 수가를 요청한 것이다.”

一 앞으로 목표가 있나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아는 의료기기 기업이 되는 게 목표다. 미국에서 창업한 이유도 한국의 의료기기 산업을 저평가하는 국가들이 많아서였다. 한국 의료기기 기술이 전 세계적으로 선도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은 것이 포부고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