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의 A병원은 지난 2018년 10월부터 2020년 3월까지 두통·어지럼증 관련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비용으로 총 16억 7700만원을 건강보험공단에 급여로 청구했다. 15억 5100만원이 요양 급여 비용이었지만, 건보 적용에 필요한 신경학적 검사에 대한 선행 청구는 없었다. 이 병원에서 실시한 뇌 MRI 3979건(요양 급여 4억 2800만원)은 건보 급여 기준 위반 사례로 적발됐다. 정부는 2020년 4월 두통·어지럼증만으로 뇌 MRI 검사를 실시할 경우 본인 부담률을 높였다.
#. 올해 64세인 L씨는 지난 2018년 8월 27일부터 2021년 3월 10일까지 7개 요양기관에서 18번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한 달 보름에 한번 꼴로 초음파 검사를 받은 셈이었다. 오른쪽 윗배 통증이 이유였다. L씨에게 들어간 요양급여비용는 총 176만 4054원이지만 건보 심사나 조정은 없었다.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시행 후 초음파ㆍMRI 건보를 급격히 확대하면서 재정 누수가 발생했다는 감사원의 지적이 나왔다. 감사원은 이런 재정 누수는 보건복지부 등 담당 부처와 기관의 관리 소홀에 따른 것이며, 정부에 건보 재정 지출을 줄이는 외부 통제 시스템을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 MRI·초음파 수익 손실 병원에 과다 보상
감사원은 28일 열린 감사위원회에서 건강보험 재정관리 실태 결과를 의결하고 주의 9건, 통보 25건 등 34건의 지적 사항을 확정했다.감사원은 지난해 11~12월 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상대로 특별 감사를 했는데, 건보 재정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를 한 것은 지난 2004년 이후 처음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첫 출범 이후, 오는 2022년까지 건보 보장률을 62.6%에서 7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하고 비급여 부문 보장을 강화해 왔다.2018년 4월 상복부 초음파 급여 개시를 시작으로 올해 MRI 근골격계 질환까지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하게 됐다.
이에 따라 2018년 1891억원이던 진료비는 2020년 1조 8476억원으로 10배 가까이 급증했다. 감사원은 초음파ㆍMRI 11개 비급여 항목에 건보가 적용되는 과정에서 복지부가 의료계 손실 보상을 과다하게 추산했다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초음파와 MRI에 건보를 적용하면 연 1907억원 정도 비급여 진료비(병원 수입)가 줄어들 것으로 추정하고, 의료계에 손실을 보상하기로 약속했다. 다만 추후 보완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부는 병원의 진료 수익이 늘었는데도 수가를 낮추지 않았다. 예를 들어 지난 2017년 4272억 원이었던 병원 진료수익은 2018년 뇌 MRI 건보 적용 이후인 지난 2019년 7648억 원으로 늘었지만, 정부는 당초 추계한 뇌 MRI 손실보상 규모(459억원)대로 지난해 12월까지 900억원 가량을 지급했다. 이 밖에 남성생식기 초음파에 대한 손실보상 규모 산정도 충분한 검증 없이 74억원 가량이 과다 보상한 것으로 추산됐다.
◇ 재정투입 안건, 건정심 의결 없이 깜깜이 결정
감사원은 건보 재정관리에 대한 외부 통제 강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정부에 통보했다. 건보는 건보공단 회계로 운영되고, 복지부 소속 심의의결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건정심)에서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한다. 하지만 복지부는 재정투입 안건의 대부분을 건정심 의결 없이 '깜깜이' 결정했다는 것이 감사원 지적이다.
복지부는 지난 2017년 이후 재정이 소요되는 안건 312건 중 280건이 내부 자문회의 만으로 결정한 것으로 감사에서 드러났다. 예컨대 복지부는 지난 2017년 12월 경도 인지 장애의 MRI 급여 기준을 신설할 때와 지난 2018년 11월 일반 전산화단층 영상진단(CT) 급여 기준을 확대할 때 건정심을 열지 않았다. MRI 급여 신설은 전문가 자문회의에서만 논의했고, CT의 경우에는 심평원에서만 다루고 의결했다.
감사원은 "(문 케어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해 수익을 늘리려는 요양기관과 많은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으려는 환자의 도덕적 해이를 막지 못했다"라며 "실손 보험 가입자의 경우 상한제 환급액과 실손보험 보험금을 이중 수령함에 따라 과잉 진료를 유발했다"라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또 "(건보공단은) 국고 지원금을 제외하면 건보의 연간 적자가 9조~10조원에 달하는데, 지출 통제는 안 받으면서 국고 지원은 더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라며 "결국 국민이 보험료를 더 많이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건강보험 지출은 지난 2010년 34조원에서 73조원으로 2.1배 가량 급증했다. 보험료 수입이 늘어나는 것은 한계가 있다보니 건강보험 당기 수지는 2018년 적자 전환 이후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감사원은 이대로라면 현재 6.99%인 건보 보험료율은 2026년 보험료율 법정 상한인 8%에 도달할 전망이고, 오는 2029년 적립금이 완전히 소진되고 누적적자가 2040년 678조원, 2060년 5765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감사원은 이날 공개된 보고서에서 '문재인 케어' 또는 '문케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