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준(38) 뷰노 경영기획본부장은 4년 전인 지난 2018년 말까지만 해도 김앤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회사가 보내주기로 한 미국 유학 날짜가 다가오던 시점이었다. 그 당시 외국계 제약·바이오 기업과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법률 자문 업무를 하다가 의료 인공지능(AI) 솔루션 기업 뷰노를 만났다.
김 본부장은 "정부 고위관료는 물론 재계 인사도 'AI'와 '헬스케어'를 미래 먹거리로 지목하던 시기였다"라고 기억했다. 그런 시기에 AI를 활용해 의료 솔루션을 만드는 뷰노에 법률 자문을 하게 된 것이 자신에게 기회였다고 말했다.
임 본부장은 뷰노 법률자문을 맡은 지 6개월 만인 지난 2019년 5월 김앤장을 떠나 뷰노의 법무이사가 됐다. 김앤장 입사 5년 차였다. 그는 의료와 같은 규제 산업계야말로 자신이 활약할 수 있는 무대라고 생각했다.
경찰대 출신인 그는 제50회 사법시험을 통과해 변호사가 됐다. 사법연수원 41기로 지난 2015년 김앤장 변호사가 됐다. 경찰대 출신의 젊은 변호사는 국내 로펌에서 몸값이 높다. 그렇게 촉망받는 인재가 스타트업에 합류했다.
그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이 뷰노의 AI심정지 솔루션 의료코드를 만들도록 끌어낸 것이 자신의 최대 성과라고 했다. 혁신 의료기기를 개발해도 의료코드가 없으면 병원에 팔 수 없다. 의료코드가 없으면 병원이 환자에 비용을 청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뷰노의 AI 솔루션 '뷰노메드 딥카스'는 입원 환자의 전자의무기록(EMR)에 저장된 혈압, 맥박, 호흡, 체온 등 데이터를 분석해 환자가 심정지를 일으킬지 예측한다. 서울아산병원으로부터 받은 6만7000명의 환자 데이터를 AI가 학습해 만든 심층학습(딥러닝) 솔루션이다.
국내에서 의료 AI 솔루션이 신규 의료코드를 발급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임 본부장은 NECA,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와 소통하면서 각종 요구 자료를 제출했다. 규제를 뚫는 데 3년이 걸렸다.
변호사 출신인 그는 규제는 없앨 대상이 아니라 '공략 대상'이라고 했다. 무분별한 규제 개선·개혁으로 검증 안 된 제품이 시장에 쏟아지면 역으로 의료기기 업계 인식이 나빠져 산업 생태계가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뷰노는 현재 미국에서 딥카스 임상을 진행하며 해외 진출을 위한 기반을 닦고 있다. 임 본부장을 지난 6월 15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뷰노 본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一 3년 전 국내 1위 로펌 김앤장에서 뷰노로 이직했다. 굉장히 보기 드문 경우 아닌가.
"보기 드문 경우인 건 맞다. 근데 일단 김앤장에서도 외국계 대형 제약·바이오 기업이나 한미약품 같은 국내 대기업을 많이 상대했다. 국내 규제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곳들로부터 의뢰가 들어오면 규제 관련 컨설팅을 해주는 게 주요 업무였다.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상대로 법률 자문을 해주는 경우도 많았다. 내가 원해서 그쪽 업무를 맡게 된 건 아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즐기고 있더라. 의료 업계가 대표적인 규제 산업인데, 그런 점 때문에 법률가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많다고 느꼈다. 그런 점이 이직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
一 이직 당시 업력이 짧은 스타트업이었던 뷰노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사실 드라마틱한 계기가 있는 건 아니다. 의료 업계의 여러 기업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업계 자체가 크게 성장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한국 정부 고위인사들부터 세계적인 기업가들까지 AI와 헬스케어 산업을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자 미래 먹거리라고 강조하던 때였다. 그러던 와중에 2018년 말 뷰노 측과 처음 만나게 됐다. 당시 목적은 법률 자문이었지만, 여기구나 싶은 느낌을 받았다. AI 기술을 헬스케어에 접목한 솔루션을 만드는 기업 아닌가. 위치를 아주 잘 잡고 있는 회사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몇 달 뒤 이직 제의가 왔고, 그렇게 자리를 옮기게 됐다."
一 타이밍 좋게 뷰노로부터 법률 자문 요청이 온 건가.
"사실 처음엔 법률 자문 겸 비즈니스 미팅과 같은 만남이었다. 김앤장은 기업 고객을 주로 받기 때문에 신규 고객이 많이 나올 수 있는 유망한 산업계 쪽 스타트업과도 자주 만난다. 그들과 만나면 그쪽 산업 흐름과 지식을 쌓을 수 있고, 그들은 비즈니스에 도움이 될 법률 자문을 받을 수 있으니 서로 득을 본다. 그런 식으로 고객층을 넓히는 만남의 자리였다."
一 헬스케어 업계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근거는 뭔가.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주요 선진국은 전반적으로 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다. 의약품은 물론 건강을 위한 의료기기 등의 수요가 점점 높아지는 건 정해진 미래다. 이렇게 헬스케어 산업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선 해당 산업이 발전할 여지가 정말 많이 있다. 요컨대 '챔피언 기업'이 하나도 없는 춘추전국시대 같았다. 앞으로 투자가 몰릴 곳은 이쪽 업계라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어떤 회사는 잘 되고, 어떤 회사는 아니겠지만 분명한 건 산업의 파이는 계속 커질 거라 봤다."
一 그렇다고 해도 김앤장에 입사한 지 4년 만에 나오는 건 힘든 결정이었을 것 같다.
"쉬운 결정은 당연히 아니었다. 가족은 내 선택을 지지해줬지만 나름대로 걱정이 컸다. 그런데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엔 헬스케어 산업을 몸으로 겪어본 변호사가 거의 없었다. 경영 쪽에도 법률 전문가보다는 엔지니어, 프로그래머 출신이 많았다. 하지만 성장 가능성이 충분한 이곳에서 직접 부딪히고 구르면 적어도 내 경력에 마이너스가 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잘한 결정인 것 같다. 산업 성장세 또한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빠르다."
一 서울대 정치학 석사 이후 김앤장 입사까지 5년 공백이 있는데, 이때 사시를 패스했나.
"아니다. 사법고시는 석사를 따기 전에 통과했다. 2008년에 50회 사법고시에서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에는 2010년에 41기로 들어갔다. 석사는 따고 연수원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결정했다. 5년 공백 중 3년은 군 법무관으로 복무한 시기고, 나머지는 연수원 수료에 걸린 기간이다. 이후 김앤장에 들어가서 일하기 시작했다."
一 학사 졸업은 경찰대에서 했는데.
"처음엔 경찰을 할 생각이었다. 경찰대 법학과에서 공부했는데, 도중에 생각이 바뀌었다. 법 자체를 공부하는 게 재밌어서 진로를 변호사로 틀었다. 이후 다행히 사시를 패스해서 변호사가 될 수 있었다."
一 큰 방향전환을 여러 번 했는데 전부 빠르게 성공한 것 아닌가.
"굵직한 방향전환이 많은 삶이긴 했다. 하하하.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사법연수원에 가면 나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 수두룩하다."
一 얼마 전 의료코드를 새로 받아 화제가 된 '뷰노메드 딥카스'에 대해 설명해달라.
"의료진이 매일 회진을 돌며 입원 환자들 혈압, 체온, 맥박, 호흡수를 잰다. 그 4가지 수치를 '활력징후'라고 하는데, 딥카스는 환자의 장기간 활력징후 추이를 분석해 심정지 가능성을 도출해낸다. 이 환자는 심정지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걸 미리 알려줘서 의료진들이 사전에 대비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러면 심정지가 발생한 순간부터 응급처치가 들어갈 때까지 시간이 크게 단축된다. 당연히 그만큼 환자를 살릴 가능성도 커진다."
一 응급실에서 심정지가 많이 발생하나.
"회사가 파악하기로는 1년에 국내에서 발생하는 입원 중 심정지 환자는 약 3600명 수준이다. 그런데 병원 내에 심정지 발생 직후 의료진에 이를 알리는 등 시스템이 부족해 입원 중 심정지 환자 중 75% 정도가 사망한다. 사망자들 중 약 68%의 심정지는 충분히 예방 가능한 경우였고, 전체 심정지 환자 중 60~80%는 전조증상을 보인다는 논문도 있다."
一 딥카스는 딥러닝 AI 솔루션인 걸로 아는데,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학습시켰나.
"제품 개발과 초기 임상 등은 서울아산병원과 협력해 진행됐다. 총 6만7000명의 환자 데이터를 학습시켰다. 입원 중 심정지가 발생한 환자의 활력징후 데이터를 모은 다음, 심정지 여부를 가르쳐주지 않고 AI에 학습시킨 뒤 나중에 정답지를 다시 학습시켰다. 심정지 환자의 활력징후 패턴을 익혀 AI가 심정지 여부를 맞출 수 있게 설계한 것이다."
一 의료코드를 새로 받기 위한 과정이 매우 힘들었을 것 같다.
"그렇다. 다만 회사엔 가장 합리적인 루트였다. 딥러닝 AI 솔루션으로 환자들 심정지 가능성을 예측하는 의료행위는 국내에서도 세계에서도 선례가 없었다. 당연히 그 의료행위를 규정하는 의료코드도 없었다. 의료코드에는 특정 의료행위가 이뤄졌을 때 청구할 수 있는 가격도 설정돼 있다. 결국 의료코드가 없다는 건 병원이 딥카스를 써도 환자에게 돈을 청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러면 제품을 팔 수도 없기 때문에 반드시 의료코드를 만들어야 했고, 이를 위한 제도를 이용했다. 이번에 받은 의료코드는 유효기간이 3년인 임시 코드다."
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쳤나.
"식약처 품목허가를 2021년 8월에 받았다. 이후 4개월이 지난 12월이 돼서야 심평원으로부터 신규 의료코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확답을 받았다. 이후 NECA로 가서 딥카스가 임상에서 유효성, 안전성이 충분하다는 자료를 제출했다. NECA가 5개월간 자료를 확인한 뒤, 3년간 유효한 임시 의료코드를 발급해줬다. 제품의 유효성과 안전성이 어느 정도 증명은 됐지만, 절대적인 자료 수량이 모자라 임시 의료코드만 나왔다. 앞으로 의료 현장에 딥카스를 공급해 수익을 내고 임상 자료를 추가하면서 정식 의료코드를 받기 위한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다."
一 그 정도로 복잡하고 어려울 필요가 있는 건가.
"그런 불만이 나올 수 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규제가 너무 촘촘하다며 없애달라는 이야기도 업계에서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정부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의료 분야는 국민 삶과 생명, 안전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특성상 규제 기반 산업일 수밖에 없다. 아무 제품이나 함부로 통과시켜주면 국민 안전이 위험해진다. 그러면 업계에 대한 인식도 나빠져 결과적으로 산업이 무너질 수 있다."
一 그렇다면 정부 규제를 어떤 식으로 바라봐야 할까.
"규제를 마냥 장애물로만 생각할 게 아니라 공략대상으로 봐야 한다. 그래야 심평원, 식약처, NECA와 대화를 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기술도 물론 중요하지만 규제를 이해하려는 태도와 노력도 똑같이 중요하다. 지난 3년은 허가 당국에 우리 제품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설득하는 과정이었다.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