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 교수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S세포)’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국립오사카대 정형외과 수련의였던 그는 수술에 재주가 없는 것을 알고 약학으로 진로를 바꿨고, 연구 시작 20여 년 만인 50세에 노벨상을 탔다.
iPS세포는 일반 체세포에 특정 유전자를 넣어 만든 원시(原始)상태의 세포다. 이 iPS세포는 배아줄기세포처럼 손상된 세포에 주입하면 그 세포를 재생시킨다. 배아줄기세포는 난자나 수정란을 파괴해서 채취해야 하지만, iPS세포는 체세포에서 키워내기 때문에 면역 거부 반응도 적고 생명 윤리 위반 논란도 없다.
iPS세포는 발견 초기부터 난치병 치료와 재생 의료에 혁명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일본 정부는 지난 10년간 iPS세포 연구에 1000억엔(약 1조원)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올해 4월 일본에서 시각 장애 환자 4명이 iPS세포에서 얻은 각막세포 이식으로 시력을 회복한 사례가 보고됐다. iPS세포가 실생활에 쓰이는 희망이 보이는 것이다.
국내에서 iPS 세포 연구에 가장 앞선 바이오벤처로 입셀(YiPSCELL)이 꼽힌다. 서울성모병원 주지현 류마티스내과 교수가 창업한 이 회사는 iPS세포 기술을 활용한 골(骨)관절염 세포 치료제(MIUChon)를 개발하고 있다.
골관절염은 연골이 닳아 없어져 무릎뼈끼리 닿아, 신경을 건드리고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대표적인 퇴행성 질환으로 꼽히는데, 현재까지는 인공관절 수술이 유일한 치료법이다. 입셀의 치료제는 수술 대신 iPS 세포를 연골에 주입해 재생시킨다. 최근 돼지와 개를 대상으로 한 동물실험에서 찢어진 연골에 이 치료제를 주입했더니 30% 이상 재생됐다.
전 세계 퇴행성 골관절염 시장은 4조원대에 이른다. 노인들에게 인공관절은 최후의 선택으로 꼽힌다. 주 대표는 “60대 이상 고령층 2명 중 1명은 관절염을 앓는다”며 “(치료제가 성공하면) 자식들이 어르신 생일 때 한 번씩 무릎에 놔 드리는 효도상품이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주 교수는 가톨릭의대에서 류마티스내과(면역학)로 전문의를 딴 후 2012년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줄기세포를 공부했다. 그는 면역학이 아닌 줄기세포 연구를 하게 된 계기에 대해 “그 당시 재미있는 기술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주 대표는 그렇게 유도만능줄기세포연구소를 세웠고, 이를 기초로 2017년 입셀을 창업했다. 2019년 2월에 세포주 제작 서비스로 첫 매출을 내고, 이듬해인 2020년 대웅제약으로부터 시드투자를 받았다. 2021년에는 시리즈 A투자를 받았다. 인플레이션 우려와 금리 인상으로 시장 상황이 좋지 않지만, 주 대표는 올해 시리즈 B와 C 사이 브릿지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이런 이력은 신야 교수와 얼핏 닮았다. 묵묵히 버티기만 하지 않고, 자신이 빛을 발하는 자리를 찾아내 과감히 도전했다. 입셀은 올해 초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골관절염 세포치료제 임상시험계획서(IND)를 제출했다. iPS세포를 기반으로 식약처에 IND를 신청한 것은 입셀이 처음이다.
주사 한 방으로 부모님의 아픈 무릎을 낫게 하는 마법의 세포 치료제는 곧 나올 수 있을까. 주 대표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옴니버스파크에서 만났다. 입셀은 이곳에 임상허가용 제조품질관리(GMP) 세포생산시설을 구축했다. 서울 시내에 이 정도의 GMP 시설은 이곳이 유일하다. 다음은 주 대표와의 일문일답
ㅡ 의대에서 류마티스내과, 면역학을 전공했는데 교수가 된 후 줄기세포를 연구하게 된 계기가 있나.
“서울성모병원의 류마티스 내과에는 훌륭한 선배들이 너무 많았다. 김호윤, 김완욱, 박성희 교수님 모두 대가다. 이런 대가들 사이에서 면역학으로는 살아남기 어렵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공부 방향을 바꿨다. 그 당시 국내에 줄기세포 연구가 뜨던 시기여서, 줄기세포를 (면역학) 영역에서 발전시킬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ㅡ 대학병원 의사가 자기 전공과 다른 연구를 하는 게 흔한 일인가.
“쉽지 않다. 전공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딱 한 번에 있는데, 그게 해외 연수를 갔을 때다. 나는 운이 좋게도 유도만능줄기세포의 권위자인 미국 스탠포드대의 조셉 우 교수 연구실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ㅡ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줄기세포를 보고 ‘재미있는 기술 같다’라고 생각했다. 2012년만 해도 국내에서 유도만능줄기세포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앞으로 20년을 환자만 진료하기에는 내 인생이 아까웠다. 새로운 걸 도전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막상 줄기세포 연구를 해 보니 나랑 잘 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ㅡ 스탠포드대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됐나.
“조셉 우 교수도 처음에는 (나를 연구원으로 받는 것을) 되게 찜찜해 했다. 줄기세포를 한 번도 다뤄본 적이 없는 정말 초보자 중에서도 초보자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실험실에 있는 특정 바이러스를 몰래 가지고 나와서 따로 연구하기도 했다. 어떤 연구원들은 DNA벡터를 종이에 묻혀서 갖고 오기도 했는데, 아마 지금은 불가능할 거다.”
ㅡ 연구만 하지 않고, 바이오벤처를 창업해 직접 뛰어든 계기도 있나.
“한계를 느꼈다. 환자에게 사용할만하다고 생각한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어도, 대표나 창업자의 강한 의지가 없으면 추가 연구가 어려운 그런 구조가 (학계에) 있다. 나는 내가 하는 연구가 직접 환자들에게 적용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논문을 쓰는 것과 사람에게 적용하는 건 너무나 달랐다.”
ㅡ 그렇다면 왜 iPS세포로 관절염 치료제를 개발하려는 건가.
“고령화와 관련된 대부분의 만성 퇴행성 질환은 치료제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에는 세포를 재생하는 첨단 치료제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미래의 치료제로 줄기세포에 희망이 있다고 봤다.”
ㅡ 그나저나 연골은 재생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연골도 재생이 된다. 다만 그 속도가 아주 느려서 안 되는 것처럼 보인다. 연골에는 수많은 구멍들이 있는데 그 구멍 안에 연골 세포들이 묻혀 살고 있다. 굉장히 수줍은 세포들이다. iPS세포라는 건 어떤 세포든 다 얹을 수 있는 세포다. 여기에 얹은 연골세포도 관절 안에서 일주일 이상 못 살아남는 것으로 알았는데, 세포 덩어리로 넣어서 주사했더니 3개월 이상 그 성질을 유지하는 걸 확인했다.”
ㅡ 후보물질 개발 외에 매출이 나는 사업이 있는지 궁금하다.
“iPS세포주 제작 서비스를 하고 있다. 2019년 첫 매출 400만400원을 낸 것도 이 서비스다. 작지만 현재 1억5000만원에서 2억원 정도 매출이 나고 있다. 세포 치료제가 성공하려면 완벽한 재료가 있어야 한다. 연구용으로 돌아다니는 세포조각을 함부로 개발했다가는 지식재산권(IP)에 저촉될 수도 있고,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우리는 노벨상 수상자인 야마나카 신야 교수의 세포주 라이선스를 받아왔다. 그러니 국내에서 세포치료제로 개발하려면 입셀의 iPS세포주를 갖고 해야 한다는 소문이 났다.”
ㅡ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
“세포치료제 시장에서 한국콜마가 되려고 한다. 한국콜마는 자체 화장품도 있지만, 재료 공급으로 회사를 키웠다. 우리도 퇴행성 연골세포, 신경세포 치료제 등을 개발하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확보할 수 있었던 좋은 중간 물질, 즉 원재료를 바이오벤처 등에 공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NK세포치료제를 연구하는 제약사에 ‘우리 세포주로 연구하시라’라고 분양하는 식이다. 비즈니스 모델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
ㅡ 세포주를 분양한다고 했는데, 아까 말한 세포주 제작과는 다른 건가.
“개인적으로는 전 국민의 유도만능줄기세포를 은행화하는 일을 하고 싶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환자가 필요할 때 우리 회사에 신청해서 자기 세포를 꺼내서 치료제를 만들어 쓸 수도 있다. 실험적으로 한국인 10만명의 iPS세포 뱅크를 만들 수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ㅡ 관절염 환자에게는 인공관절 수술이라는 옵션이 있는데, 세포치료제가 필요한가.
“병원에서 60~70대 고령층 환자를 자주 만난다. 이들에게 인공관절은 가장 최후의 선택지다. 수술은 아무래도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있다. 하지만 주사제는 진료실에서 침대만 있으면 시술받을 수 있다. 코오롱의 인보사(TG-C)가 각광을 받았던 것은 주사제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개인적으로 골관절염 치료제가 이 시장에서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본다.”
인보사는 코오롱생명과학(102940)이 개발한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다. 코오롱이 ‘티슈진’이란 후보물질을 발굴해 개발해 낸 신약이다. 연골이 자랄 수 있게 형질을 변환한 세포를 관절에 주사해 연골 세포를 자극하는 원리다. 코오롱은 티슈진으로 지난 2006년 미국식품의약국(FDA)과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임상시험 허가를 받았고, 지난 2017년 식약처에 품목허가를 받고, 판매까지 됐다. 시술비가 600여만원에 이를 정도로 고가였지만, 수술 없이 퇴행성 관절염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해서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 2019년 인보사 주성분이 식약처 허가 당시 기재됐던 연골 세포가 아닌, 신장 세포로 드러나면서 허가가 취소됐다. 신장 세포는 암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코오롱이 2020년 4월 FDA로부터 미국 임상 3상 재개를 승인 받으면서 상황이 반전되는 분위기다. 코오롱은 작년 2월부터 환자 투약을 재개했고, 올해 4월 싱가포르 바이오 기업에 인보사를 계약금 150억원, 총 7234억원 규모에 기술 수출하는 계약을 맺었다.
ㅡ 환자들도 많이 찾아오나.
“최근 언론에 소개되면서 환자 중에서 ‘줄기세포’ 때문에 병원을 찾는 분도 가끔 있다. 치료제를 주사해 달라고, 지역특산물로 방금 딴 미역을 갖고 오신 분도 있었다. 그런 환자에게 ‘식약처의 허가를 받아야 안전하게 쓸 수 있으니, 좀 기다려 달라’라고 말한다. 식약처 임상허가를 받게 되면, 내년에는 이런 환자분들을 (임상시험) 대상으로 치료제를 투여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ㅡ 입셀의 롤모델이 있는지 궁금하다.
“페이트 테라퓨틱스를 예로 들고 싶다. 페이트가 간 길을 한국에서도 한번 도전해보는 회사들도 있다고 알려지면 좋을 것 같다. 국내 바이오벤처 중에서 성공한 곳도 있지만, 사회적으로 크게 기여했다는 성공스토리는 아직 없는 것으로 안다. 그런 측면에서 성공하는 회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페이트는 NK세포 치료제 업체 가운데 가장 앞선 바이오 기업이다. 미국 나스닥 상장사인 이 회사의 시가 총액은 약 2조원(1억5000만달러)에 이른다. NK세포 치료제는 자가 조직으로만 암 치료가 되는 CAR-T치료제의 대안으로 연구되고 있다. iPS세포로 NK세포도 만들 수 있다.
ㅡ K바이오를 육성하려면 정부가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나.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을 요즘 한다. 투자나 연구 개발 문화가 좀 더 성숙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자본을 투자해서 수익을 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한 가지 분야를 깊이 연구하는 사람을 대우해주는 문화가 부족한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을 단순히 돈의 가치로 환산하지 않고 국가적으로 인정하고, 투자에 있어서도 같이 배려하는 구조가 있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장인 정신을 갖고 국가에서 투자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