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왕국’의 엘사는 한 번 시작한 일은 끝까지 해 내는 노력파 ‘아에스티제(ISTJ)’
‘인어공주’의 에리얼은 열정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꽂히면 끝까지 파고드는 ‘엔프피(ENFP).
연예인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나 영화 주인공들까지 MBTI 유형으로 분석한 콘텐츠가 인기일 정도로 성격 유형 검사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과거 혈액형(ABO)으로 성격을 분류하던 열풍의 그 이상이다.
다들 MBTI 검사를 해보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유형을 올린다. 10~20대 젊은 층에서는 무슨 타입은 답답하다느니, 의사 소통이 어색하다는 식으로 평을 내놓는다. 일부에서는 MBTI 검사 결과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현상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내향적이지만 전략적인 것으로 알려진 ‘인티제(INTJ)’는 ‘입사 지원 불가’ 유형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MBTI 검사 결과 만으로 상대방을 판단해도 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MBTI 결과를 맹신해 상대에 대한 선입견을 품거나 쉽게 판단하면 상대의 실체와 가치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다고 경고한다.
◇MBTI 성격 유형 검사란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성격 유형 검사다. 이 검사를 만든 캐서린 브릭스와 이사벨 마이어스 모녀가 각자의 이름 앞 글자를 따서 명명했다. 개발자인 브릭스 박사가 딸을 키우며 아이 고유의 재능을 잘 활용하게 이끌어 주도록 하려고 칼 융의 분석심리학을 토대로 이 검사 방식을 만들었다고 한다.
칼 융은 인간의 의식 속에 사고(T)·감정(F)·감각(S)·직관(N)이라는 4가지의 기본 심리 기능이 있다고 봤다. 브릭스 박사는 사람마다 이들 심리 기능을 갖고 있지만, 발달한 정도가 다르므로 개인별 성격 차이가 나타난다고 판단했다.
MBTI 결과는 네 범주가 상반된 두 대극(對極) 기질로 구성된 총 16가지 성격으로 나뉜다. ▲사교적이고 활발한 외향(E)-얌전하고 정적인 내향(I) ▲사실적인 것을 보는 감각(S)-관념적인 직관(N), ▲분석적이고 객관적 사고(T)-공감적인 성향의 감정(F) ▲ 체계적이고 질서정연한 판단(J)형-자유분방한 성향의 인식(P) 등이 있다.
두 대극 중 하나를 선택하고, 그 결과가 4번 조합되면 16유형으로 분류되는 식이다. 예컨대 ‘대담한 통솔자(ENTJ)’ ‘자유로운 영혼의 연예인(ESFP)’ 등이 있다. 다만 칼 융의 분석심리학에서는 개인의 의식과 무의식, 사회적 차원의 집단 무의식, 종교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인간의 성향을 단 한마디로 단정해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 MBTI의 이분법적 성격 측정 한계 있어
정신건강의학계에서는 MBTI 검사 자체의 한계점이 있다고 본다. 분류할 수 있는 성격이 16가지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다양한 성격을 제대로 구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MBTI에서 구분하는 양쪽의 성격 특성 중 한쪽으로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둘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한쪽 특성이 현저하지 않으면 이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정확성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자기가 검사하고 채점하는 경우 자신이 스스로 정확히 판단하지 못할 수도 있다.
실제로 같은 사람인데도 MBTI를 할 때마다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사람이 많다. 10명중 4명에서 8명(39~76%)은 MBTI를 다시 검사했을 때 처음과 다른 성격 유형으로 나온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안철수 후보도 의사였을 때, 사업가였을 때, 교수였을 때, 그리고 정치인일 때 MBTI 결과가 모두 달랐다고 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혼란스러워하는 E(외향)-I(내향)를 예로 들어보자. 많은 사람이 ‘나는 내성적인데’라고 생각하는데도 외향E로 나올 수 있고, 활발해 보이는 연예인 중에도 내향I인 경우가 많다. 내향형(I)이 더 강한 유형이라도 모임이 잦은 홍보인 등의 집단에 속해 있다면 결과는 외향형(E)으로 나올 수 있다.
◇ 정신과 진료에서는 MBTI 대신 ‘DSM-5·MMPI 검사’ 활용
대부분의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현장에서는 MBTI 검사를 활용하지 않는다. MBTI로 판단하는 성격 유형은 병적인 부분을 판단하는 검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치료가 필요한 성격 문제를 DSM-5(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 진단 기준에 기반해 판단하고, 문제가 있는 경우 인격 장애를 진단하게 된다. ▲A군(편집성·조현성·조현형) ▲B군(히스테리성·자기애성·반사회성·경계성) ▲C군(강박성· 회피성·의존성) 등이다.
이 밖에 환자의 전반적인 성격 특성을 파악하는 검사도 MBTI보다 나은 검사들이 있다.임상 현장에서는 ‘MMPI(미네소타 다면적 인성검사)’를 많이 활용한다. 이 밖에 ‘TCI(기질 및 성격 검사) 검사’는 타고난 기질과 후천적으로 형성된 성격에 대해서 구분해 측정한다. ‘BFI(Big 5 Inventory)’라고 해서 ▲개방성 ▲성실성 ▲외향성 ▲우호성 ▲신경성 등의 5가지 측면의 성격을 평가하는 척도도 있다.
◇ 소통하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지만 매몰되지 말아야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오주영 교수는 MBTI 테스트는 검사 자체에 여러 한계가 있으므로 성격 유형을 구분하고 상대방의 성격을 단정 지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 MBTI를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한 도구로서 가볍게 활용할 수도 있지만, 결과를 너무 맹신해 상대방에 대한 선입견을 갖거나 쉽게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오주영 교수는 “자신의 성격 역시 MBTI로 평가된 하나의 틀 안에 가두기 보다는 본인이 가진 성격적 특성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여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참고 자료로서 생각하는 것이 좋다”며 “정신과 진단 기준인 DSM-5에서도 성격 장애를 포함한 정신 질환을 병이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단순히 구분하는 범주적 접근 뿐 아니라, 정상과 장애가 하나의 연속선상에서 존재한다는 차원적 접근을 이용하는 것을 점차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