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제약사 화이자의 '시빈코(성분명 아브로시티닙)', 애브비 '림버크(성분명 유파다시티닙)' 등 아토피 표적치료제가 국내에 출시되고 있다. 표적 치료제는 병의 원인이 되는 일부 세포만 표적해서 없애는 치료제다. 정상세포의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설계돼 부작용이 적고 치료효과가 높은 '차세대 의약품'으로 통한다.
그러나 국내 아토피 환자 중 절반을 차지하는 소아·청소년 환자에게 이 치료제들은 '그림의 떡'에 가깝다. 소아·청소년 환자는 해당 약물을 쓸 때 건강보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해, 한 달에 수십에서 수백만원씩 하는 약값을 전부 내야 하기 때문이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품목허가를 받고 국내에 출시한 아토피 표적치료제 중, 소아·청소년 환자 대상으로 건보 혜택이 적용되는 제품은 하나도 없다. 시빈코, 림버크에 더해 사노피 '듀피젠트(성분명 두필루맙)', 릴리 '올루미언트(성분명 바리시티닙)' 등 국내에 들어온 4개 제품 모두 성인 환자에게만 건보 혜택이 주어진다.
환자가 건보 혜택이 적용된 약품을 처방받으면, 정부가 건보 재정을 써서 약값 대부분을 대신 내준다. 반대로 건보 혜택이 적용되지 않은 약을 사용하려면 환자가 약값을 모두 부담해야 한다. 아토피 표적치료제의 경우 성인 환자는 적은 돈만 내고 쓸 수 있지만 소아·청소년 환자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아토피 환자 중 절반가량이 미성년자라는 점이다. 국민관심질병통계에 따르면 2021년 국내 아토피 환자 수는 96만명인데, 이중 절반인 48만명이 0~19세 미성년자다. 아토피 환자군은 미성년자 쪽에 몰려있는데, 정작 건보 혜택은 성인 쪽에 치우쳐 있다.
약값이 싼 것도 아니다. 국내에 출시된 아토피 표적치료제 4개의 연간 비용은 각각 ▲시빈코 415만원 ▲올루미언트 530만원 ▲린버크 800만원 ▲듀피젠트 2500만원 수준이다. 써야 하는 약에 따라 매달 적게는 30만원, 많게는 300만원씩 부담해야 한다.
정부가 건보 재정 등을 이유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건보 적용을 결정한다는 건 결국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만든 재정을 쓰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라며 "그만큼 부담감이 큰 결정이기 때문에 웬만해선 건보 적용을 해주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강한 편이다"라고 말했다.
환자들은 정부 결정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아토피 환우회인 중증아토피연합회 관계자는 "비싼 약값을 감당할 수 없는 대부분의 소아·청소년 환자 부모에게 아토피 표적치료제는 '그림의 떡'과 같은 존재다"라며 "환우회 차원에서 심평원(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소관 부처에 건보 적용 기준을 늘려 달라는 민원도 넣어봤지만 아직 실질적인 움직임은 없다"고 말했다. 심평원 관계자는 "국내에서 허가된 아토피 표적치료제 중 일부에 대해 소아·청소년 환자도 건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이라고 말했다.
의학계에선 건보 적용 이전에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아토피의 경우 증상이 경증인지, 중등도인지, 중증인지에 따라 건보 적용 수준이 달라진다. 일례로 린버크는 중증 아토피 환자만 건보 적용을 받아 싼값에 약을 쓸 수 있다. 그런데 증상 수준을 나누는 기준이 너무 엄격하다는 게 문제다.
정부는 'EASI 점수' 척도를 기준으로, 아토피가 발생한 부위·면적과 아토피 심각도에 따라 점수를 계산한다. 이 점수가 16점 이상 23점 미만이면 중등도, 23점 이상이면 중증 아토피로 판정한다. 아토피 면적이 넓으면 가중치가 붙기 때문에, 몸이 성장기에 있는 미성년 아토피 환자보다 성인 환자가 대체로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 그럼에도 의료 현장에서는 "기준이 너무 높아 웬만한 성인 환자도 중증 판정을 받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서성준 중앙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소아·청소년 환자에게 건보 적용을 해줘봤자 지금과 같은 점수 계산 시스템에서 실제 혜택을 받는 건 극소수일 수밖에 없다"며 "연령대 등을 고려해 기준을 전반적으로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