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피 백신사업부 한국법인 대표로 부임한 파스칼 로빈(Pascal Robin) 대표. /김명지 기자

글로벌 빅파마(대형 제약사)인 사노피는 백신 분야에서 11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전통적 백신 명가로 통한다. 사노피가 진출한 국가만 100여개국에 이른다. 브라질에 뇌수막염이 창궐했던 지난 1974년 백신을 개발해 문제를 해결한 것이 사노피였다. 한국의 영유아 10명 중 약 9명이 사노피의 5가 DTaP 혼합백신을 접종한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사노피는 큰 성과를 내놓지 못했다. 미국 기업인 화이자와 모더나가 먼저 메신저리보핵산(mRNA)방식의 백신을 개발했다. 글로벌 제약·바이오 산업계에서는 '백신 명가도 옛날'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런 사노피가 절치부심하고 있다. 얼마 전 유럽에서 유전자 재조합 기술 기반의 코로나19 백신을 부스터샷으로 품목허가를 신청했고, 지난해 약 4억유로(약 5400억원)를 들여 미국과 프랑스에 mRNA 백신 전용 연구기관인 'mRNA 센터'를 설립했다. 이곳에 연구개발(R&D) 전문인력 약 400여명을 투입하고, 오는 2025년까지 최소 6개 임상 후보군을 성공시킨다는 목표를 세웠다.

사노피는 싱가포르와 프랑스에는 4억여유로를 투자해 디지털 백신 공장을 짓고 있다. 이 공장은 다품종 소량 생산이 가능해 코로나19와 같은 신종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K-글로벌 백신 허브 구축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국내 기업이 백신을 개발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과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사노피는 SK바이오사이언스, 보령, 한독 등 국내 제약사 및 보건복지부, 질병관리청 등 당국과도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세계적인 기업과의 협력은 K-바이오 산업의 성공을 위한 주요 전략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지난 2020년 사노피 백신사업부 한국법인 대표로 부임한 파스칼 로빈(Pascal Robin) 대표는 한국적 효율성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한국은 기술적 인프라가 뛰어난데, 이런 기술혁신이 헬스케어 영역에 매우 빠르게 적용된다"며 "한국이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효율적이고 신속한 의사결정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제약 기업이 백신 사업에서 성공하려면 구체적인 청사진을 잘 그리고 핵심 거점 국가라는 목표에 맞는 도전의식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라고도 말했다.

로빈 대표는 글로벌 백신 산업의 살아있는 증인으로 통한다. 2002년 사노피 백신 사업부에 입사한 로빈 대표는 글로벌 유통책임자, 동유럽 중앙아시아 운영 책임자 등을 거쳤다. 그 후 한국 법인에 합류하기 직전까지 루마니아와 몰도바에서 의약품 총괄 대표(Country Chair)를 맡았다. 사노피 루마니아 법인은 로빈 대표의 재임 기간 매출이 급증하면서 유럽 제약 시장의 마켓 리더로 도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로빈 대표를 서울 반포의 사무실에서 지난 2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ㅡ 2년 전 한국 법인 대표로 부임했다. 자원한 건가.

"자원해서 왔다. 한국은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이고, 나아가 강력한 문화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한국에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고, 이 시장에서 일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ㅡ 한국은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백신으로 보면 유망하지 않은데.

"한국의 고령화 속도가 빠르고 출산율이 감소하고 있어 그렇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유행하는 원숭이 두창처럼 새로운 감염 질환이나 변이는 계속해서 등장하고, 백신에 대한 수요는 영유아뿐만 아니라 성인과 고령자에게도 존재한다. 한국에는 사노피가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ㅡ 2년 동안 한국 시장에 대한 경험은 어떤가.

"인상적인 경험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 특유의 효율성이다. 한국은 기술적 인프라가 발전한 국가다. 그런데 이렇게 발전한 기술적 인프라가 또 헬스케어 영역에 매우 빠르게 적용되고 있다. 유럽 사람의 시각으로 봤을 때 이런 효율성은 한국인이 자랑스러워할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ㅡ 보건 정책 측면에서는 어땠나. 코로나19 팬데믹을 한국에서 겪었다.

"정책 측면에서도 한국 방역당국의 효율성이 돋보였다. 질병관리청은 16가지 전염성 질환 예방에 대한 목표와 관련 지침이 모두 명확하다. 이런 위기 대응 방식과 신속한 의사결정 과정이 한국이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라 생각한다."

ㅡ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나.

"예를 들어 약 2년 전 국내 독감 백신 콜드체인(저온유통체계)에 문제가 생겨 대량 폐기되는 사고가 있었다. 당시 독감 예방 접종 필요성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언론 보도가 있었지만, 한국 보건당국은 명확하고 일관된 메시지로 상황을 풀어나갔다."

ㅡ 그런데 사노피는 코로나19 백신은 아예 개발하지 않는 건가.

"사노피도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추진했고, 곧 결과가 나온다.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기반으로 한 첫 번째 후보 물질은 임상 연구에서 부스터샷으로 상당한 임상적 유효성이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유럽에서는 품목허가 신청이 접수됐다."

ㅡ mRNA 방식의 백신은 개발하지 않는 건가. 코로나19를 계기로 백신 개발 패러다임이 'mRNA' 방식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mRNA 방식의 코로나19 백신도 연구했다. 연구 개발에 착수해 임상 2상 연구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보였지만, 상업화 성공 가능성 등 내부 검토를 거쳐 개발을 중단했다. 하지만 사노피 mRNA센터를 설립해 새로운 기술에 대한 투자 및 개발은 현재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ㅡ 이번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사노피가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사노피는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시달리고 있는 와중에도 다수의 필수 예방백신 공급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필수 예방백신의 안정적인 공급은 다른 감염병의 확산을 막아 세계적인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컨트롤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 요소 중 하나다."

ㅡ 새로운 백신 개발 및 공급, 시장 개척과 관련해서 사노피만의 노하우가 있는가.

"사노피의 노하우는 대규모의 기술 플랫폼이다. 특정 감염 질환이 발생했을 때 무작정 가장 최신 기술을 먼저 적용하는 방식의 접근은 적합하지 않다. 당장 최근 주목받는 mRNA 기술만 해도 한계가 나타나지 않나. 감염성 질환은 해당 바이러스에 가장 적합한 해결책이 무엇인지를 고려해 접근해야 한다. 질환과 병원체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바이러스의 성격에 따라 어떤 솔루션을 적용할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얼마나 많은 '도구(Tool)'를 갖추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사노피는 불활성화 백신, 약독화 생백신, 최근의 mRNA 백신 및 리피드 나노파티클 백신 기술 등에 대한 다양한 '풀'을 이미 갖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사노피는 '도구의 보물상자(Treasure box)'를 갖고 있다고 자부한다."

ㅡ 시장 개척 노하우도 궁금하다.

"백신 개발만큼이나 백신의 접근성을 지원할 수 있는 역량도 중요하다. 사노피는 매일 250만도즈 이상의 백신을 생산, 공급하는 양산 시스템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공급 역량을 갖췄다. 백신 분야는 일관되고 안정적인 공급이 상당히 중요하다. 사노피는 필수 예방백신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세계에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했다."

ㅡ 사노피가 싱가포르에 4억3400만달러 규모의 디지털 백신 공장을 짓는다고 들었다. 이곳은 어떤 일을 하게 되는가.

"사노피는 싱가포르 외에도 프랑스 리옹에 디지털 생산시설 'EVF(Evolutive Vaccines Facilities)'을 추진 중이다. 'EVF'의 목표는 크게 유연성과 효과성이다. 전통적인 백신 생산은 특정 질환에 대해 가능한 많은 양의 백신을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것에 집중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매년 수백만 도즈의 소아마비 백신을 생산한다. 프랑스에 있는 사노피 폴리오 백신 전용 공장은 우수한 생산 능력을 갖췄지만 코로나19와 같은 새로운 감염병이 창궐했을 때 신속 전환이 쉽지 않았다. EVF 프로젝트는 이처럼 사노피가 개발하는 새로운 백신을 위한 혁신 플랫폼을 구축해, 변화하는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고자 시작됐다.

ㅡ 한국 정부는 '글로벌 백신 허브' 육성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 바이오에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는 백신 분야의 중요성과 더불어 생명과학 기술의 잠재력을 잘 이해하고 있고, 바이오 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한국 기업의 역량도 빼놓을 수 없다. 삼성바이오로직스나 SK바이오사이언스와 같은 탄탄한 바이오 기업이 있고, 업계 구성원들의 교육 수준도 높으며, 혁신에 대한 도전 의식도 크다고 본다."

ㅡ 사노피는 한국 제약 기업과 백신 관련 파트너십을 맺고 있나.

"사노피는 30여년 전(1989년) 동아제약, GC녹십자 등 여러 국내 독감 백신 제조업체에 인플루엔자 백신 원액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 중 하나인 보령제약과는 여전히 활발하게 협력하고 있다. 한독약품과도 협력하고 있다. 한국의 백신사업부 전체 임직원만으로 한국의 모든 보건의료 전문가와 만나기 쉽지 않다. 한독약품과 한국의 의료진에게 사노피 백신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국내를 넘어 글로벌 파트너십 구축에도 힘쓰고 있다. 사노피는 지난 2014년 SK바이오사이언스와 함께 차세대 폐렴구균 결합백신(이하 PCV 백신) 개발을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ㅡ 한국 백신 기업이 성장하면 시장을 위협하는 잠재적인 경쟁자가 될 수도 있지 않나.

"협력은 사노피 DNA의 일부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환자들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한국 제약사와의 파트너십은 공동의 목표를 가진 회사를 찾아 환자의 생명을 구하고 보건의료 체계 안에서 새로운 솔루션을 개발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 위한 것이다. 서로 협력해서 새로운 백신 개발에 성공한다면 그 혜택은 한국을 넘어 전 세계로 퍼진다. 사노피에 한국 제약사와의 협업은 단순히 시장 점유율에 대한 위협이나 경쟁이 아닌, 전 인류에게 혜택을 제공하고자 하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다."

ㅡ 한국 정부가 글로벌 백신 바이오 허브로의 도약을 준비하는 데 있어 어떤 점을 개선하면 좋을지 조언한다면.

"백신 영역에서 성공하려면 보건 의료 영역에 긍정적인 영향을 만들어 가겠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백신 산업 역량을 발전시킨다는 것이 단순히 백신 제조 생산기지나 공장을 많이 짓는 것을 의미하진 않을 것이다. 어떠한 감염 질환을 대상으로, 어떠한 영향력을 발휘하겠다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잘 그리고, 핵심 거점 국가라는 목표에 맞는 도전 의식을 갖고 노력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ㅡ 한국 보건 당국이 개선해야 할 만한 점은 없나.

"한국은 의사결정 과정이 효율적이고 개방적이다. 다만, 감염성 질환의 예방 측면에서 보다 중장기적인 시각을 갖고 대비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한국은 이미 효과적인 백신을 다수 갖고 있고, 백신 접종률도 우수한 편이지만, 혁신적인 방식의 예방 접종을 도입하고 확장할 여지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본다."

ㅡ 혁신적인 방식의 예방접종이라니 어떤 의미인가.

"예방접종의 혁신성은 크게 ▲시스템의 효율성 ▲취약계층 접근성 확대 ▲의학적 미충족 수요 해결로 구분할 수 있다. 지금은 모두가 코로나19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3년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19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처럼 정부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정부가 기업의 연구와 개발을 지원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업이 빠르게 백신을 개발해 환자들에게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