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30일 서울 서초구 웰트 사무실에서 강성지 웰트 대표가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웰트(WELT)는 지난 2016년 삼성전자에서 분사(스핀오프)한 기업이다. 이 회사는 삼성전자 사원이던 강성지 웰트 대표가 지난 2014년 제안한 '스마트벨트'가 사내벤처 프로그램(C랩)에 선정된 것이 시초였다.

강 대표는 당시 삼성전자 최초 의사 출신 사원이었다. 그는 사용자의 허리둘레와 걸음 수, 앉은 시간 등을 자동으로 측정해 기록하는 벨트를 개발하면 복부 비만, 당뇨 등 만성질환자의 생활습관을 개선해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다.

그로부터 4년 후 그가 고안한 스마트벨트가 세상에 나왔다. 강 대표는 2018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유럽 순방 때 스타트업 대표로 동행한 자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스마트 벨트를 선물로 전달했다. 이후 프랑스 명품 브랜드인 S.T.듀퐁과 협업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그는 그해 포브스코리아가 선정한 2030 파워리더 5인 중 한명으로 선정됐고, 지난 2020년 CES에서는 혁신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헬스케어 의료기기 시장은 녹록지 않았다. '마크롱 효과'는 실제 매출로 이어지지 않았다. 국내 백화점에서 팝업 매장을 열고 판매를 시작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일부 매장은 판매 부진으로 사업을 접었다.

웰트는 요즘 불면증을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기기(Dtx)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스마트 벨트가 실패했느냐'는 질문에 강 대표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는 대신 "지금은 벨트 그 자체보다, 벨트와 연동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디지털 치료기기)가 중요해지고 있다"라며 "(만성질환 관리에 적절한 디지털 소프트웨어가 개발되면) 스마트 벨트의 활용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강 대표는 "지금부터가 도전의 진짜 시작이다"라며 "사람들은 디지털 치료기기를 의료 내비게이션이라고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면 강 대표의 이력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민족사관학교 출신의 그는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후 보건복지부에 들어갔다. 이후 삼성전자에 입사했고, 2년여 만에 벤처를 세웠다. 강 대표를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웰트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강 대표와의 일문일답.

웰트가 개발 중인 불면증 디지털 치료기기 '팔로우Rx' 실행 모습. /웰트 제공

ㅡ많은 질병 중에서도 불면증 치료기기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

"디지털 치료기기는 국내에서 처음 시도하는 것이어서 정부 허가를 안전하게 받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다. 페어테라퓨틱스가 마약 중독에 대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으면서 디지털 치료기기 시장이 시작된건데, 그 회사의 두 번째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이 불면증이다. 해외에서도 사례가 많은 파이프라인을 갖고 가야 수월하겠다고 생각했다. 또 치료가 잘 되지 않았을 때의 상황을 가정해도 불면증 같은 경우는 부담이 덜할 것으로 봤다. 예를 들어 치매 같은 질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면 위험이 얼마나 크겠나."

ㅡ중독과 불면증이 상징적인 파이프라인 같은데, 중독에 대해 디지털 치료기기를 만들 계획은 없나.

"언젠가는 할 계획이다. 다만 지금은 불면증에 대한 게 먼저다. 페어테라퓨틱스가 마약 중독에 대한 허가를 먼저 받은 것은 미국에 마약 중독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마약 중독에 대한 허가를 먼저 받아야 불면증 치료기기도 수월하게 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본 거다. 웰트 입장에선 이를 똑같이 반복할 필요는 없다고 봤다."

ㅡ당시에 디지털 치료기기는 굉장히 생소한 개념이었을 텐데.

"맞다. 페어테라퓨틱스가 2013년에 설립됐는데, 삼성전자에서 이 기업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당황했었다. 상용화까지 아무리 빨라도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허가만 받는다면 소위 말하는 '대박'이 될 것이라고 봤다. 모바일 앱이 치료기기가 된다면 모바일 앱을 만드는 모든 회사들이 일종의 제약회사가 되는 것 아닌가. 식약처가 허가만 해주면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모바일 앱이기 때문에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로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런데 예상했던 시점보다 5년은 빨리 시장이 열리기는 했다."

ㅡ그래도 삼성전자에서 2년 만에 나온 것은 좀 빠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삼성전자는 너무나 좋은 회사였고 배울 것도 많았다. 다만 의사로서 평생 있을 직장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2년 만에 나오게 될 줄은 몰랐다. 삼성전자는 대기업이다 보니 큰 역량을 가진 대신 긴 결재 라인이 있었다. 뭔가 시도해보려고 하면 각 결재 라인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 이 때문에 제품을 고객한테 전달하는 과정에서 내 의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반영하기엔 어려웠다. 소비자들에게 뭔가를 보여주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독립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ㅡ창업은 스마트 벨트로 했는데, 스마트 벨트와 디지털 치료기기 중 어디에 더 집중할 계획인가.

"스마트 벨트는 웰트가 시작된 이유이자 정체성 같은 것이다. 활용도도 충분하다. 하지만 스마트 벨트로만 사업적인 승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스마트 벨트는 삼성 안에서 어떤 제품의 품목 중 하나로만 다뤄지면 그게 최선 아닐까 싶다. 전 세계 사람들한테 같은 벨트를 채우고 싶다는 욕심도 없다."

ㅡ스마트 벨트로 먼저 알려졌는데 이를 두고 새 시도를 한다는게 아까울 것도 같다.

"그 당시에는 스마트 워치가 출시되면서, 그 밖에 헬스케어 쪽에서 뭘 더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스마트 벨트를 제안하게 됐다. 사업부 쪽에서는 스마트 벨트를 두고 '몇 대나 팔겠나'라고도 했었는데, 사내 벤처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디어가 선정됐다. 회사 측에서 해보고 싶은 것 다 해보라고도 했었다. 스마트 벨트는 그렇게 탄생한 것이어서 이걸 가지고 회사를 차리게 될 줄은 처음에는 생각도 못했다. 어느 날 회사측에서 분사해도 충분히 성공 가능성이 있으니 한 번 해보지 않겠느냐고 했고, 나 역시 창업의 꿈이 있었으니 나온게 된거다."

ㅡ그러면 스마트 벨트는 포기했다고 봐야 하는건가.

"성장보다는 안정 쪽을 택한 것 뿐이다. 스마트 벨트가 생명을 다한건 아니고, 벨트와 연동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들이 중심이 되면서 벨트는 디지털 바이오마커(디지털 도구로 생리학적 데이터를 측정하는 기술)로써 기능하게 된거다. 디지털 치료기기를 환자에게 먼저 전달하면 스마트 벨트의 활용도도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본다. 예컨대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기기를 개발한 뒤 환자에게 스마트 벨트를 권유할 수도 있는 것이다. 스마트 벨트에는 이를 사용하는 환자의 건강 상태가 고스란히 기록이 된다."

5월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웰트 사무실에서 강성지 웰트 대표가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고운호 기자

ㅡ판매는 어떻게 하고 있나.

"지금은 청량리에 있는 국내 유명백화점에서 판매하고 있다. 여기서 판매가 잘 돼서 매장을 백화점 다른 지점까지 확장했었는데, 거긴 결국 접었다. 사람이 너무 안 오더라. 프리미엄 전략 차원에서 고급 스피커 같은 것을 매장에서 같이 판매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앞으로는 건강과 관련된 제품들로만 재구성을 해보려고 한다. 2018년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스마트 벨트를 선물로 전달했었는데, 소비자들에게 이런 점을 강조하면서 흥미를 주는 방식은 오래 안 간다. 스마트 기기라는 말에 걸맞게 헬스케어를 스마트하게 하는 것이 본질이다."

ㅡ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그렇다. 스마트 벨트를 산 사람들이 여러 모바일앱을 쓸 수 있도록 해보자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런데 스마트 벨트를 중심으로 생각하다 보니 한계가 있다고 판단됐다. 디지털 치료기기를 만드는 회사를 따로 차려야 할지도 고민됐다. 하지만 새로 회사를 차리면 사람을 모아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또 웰트가 삼성전자에서 분사해 나오면서 스마트 벨트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쌓였는데, 이걸 잘 활용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직원들에게 스마트 벨트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 이 엔진에 불이 꺼지지 않게 유지·보수만 해달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ㅡ국내 소비자들에게 디지털 치료기기를 한 마디로 설명한다면.

"디지털 치료기기를 종종 내비게이션에 비교하고는 한다. 현재의 진료 시스템으로는 환자를 오롯이 이해하기 힘들다. 보통 3분 정도면 진료가 끝나는데 그 시간 동안 환자를 얼마나 파악할 수 있겠나. 디지털 치료기기가 있으면 그 환자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다 더 좋은 치료 방향을 알려줄 수 있게 된다."

ㅡ인재 채용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조직 규모가 크지 않은 만큼 같이 할 사람을 찾을 때 더 신중해질 것 같은데, 기준이 뭔가.

"태도, 능력, 열정 세 가지를 본다. 특히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복종적인 걸 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말에 가시가 있다거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분위기를 흐린다거나,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뽑지 않는다. 태도와 능력이 발휘되는 것은 열정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인생을 관통해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든지, 명예욕이든 돈 때문이든 어떤 이유에서건 회사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맞는다면 더할나위 없다. 이는 회사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폭발적인 성장을 하는 것보다 내공을 다지면서 소수 정예 인원으로 부가가치 높은 일들을 해내길 바라는 마음이다. 사람을 조급하게 뽑지 않고 좋은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한다."

ㅡ시리즈 B까지 누적 140억원 투자를 받았는데, 투자자들 설득하기가 어렵지는 않았나.

"꾸준히 준비를 해왔고, 투자를 받을 만한 시점이어서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업에 있어서는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어떤 특정 시점에 투자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그 시기에 맞춰서 웰트를 발전시키려고 노력해왔다. 2020년 말에 시리즈 B가 마무리됐는데, 기대 이상으로 받게 돼 감사할 따름이다. 최근 인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그간 생각한 만큼만 투자를 받았다면 중간에 한 번 더 투자를 받았어야 했을 텐데 덕분에 무난하게 지나갈 수 있을 것 같다."

ㅡ처음부터 창업이 꿈이었는지, 의사가 꿈이었는지 궁금하다.

"민사고에 입학했을 때 처음에는 카이스트 물리학과를 가는게 꿈이었다. 2학년이 되고 나서 큰 고민 없이 연대 의대에 지원했는데 정말 운 좋게도 합격하게 됐다. 의대생 때도 이것저것 많이 했다. 프로그래밍도 배우고, 컴퓨터 납땜도 해보고, 경영대·음대 수업도 들었다. 동아리는 7개를 했다. 오케스트라, 풍물패, 사진부, 학보사 등등. 에너지의 원천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진짜 재밌고 좋아서 하고 싶어서 하는 것, 다른 하나는 지금밖에 못 할 것 같아서 열심히 하는 것이다. 창업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좋아서 하는 게 맞다."

ㅡ앞으로의 포부는.

"디지털 제약회사가 되겠다는 게 목표다. 그동안은 화학 약품으로 제약 회사를 만드는 게 제약의 전부라고 생각됐지만, 사람을 치료하는 기술들이 다양해졌지 않나. 보통 해당 기술의 이름이 붙게 되고 디지털 제약회사라는 개념도 앞으로 등장할 텐데, 그런 회사가 있다면 우리 회사일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