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현 아스트라제네카 전무가 지난 5월 24일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 제공

아스트라제네카 ‘타그리소’는 비소세포폐암 치료의 ‘게임 체인저’로 불린다.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 치료에 쓰이는 약인데, 수술 후 보조요법부터 1차, 2차 치료 등에 모두 쓸 수 있는 것은 타그리소가 유일하다.

타그리소는 아스트라제네카의 한국 임상팀에도 의미가 깊다. 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은 한국인을 포함한 동양인에게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아시아 임상이 중요했는데, 한국 임상팀이 가장 발 빠르게 대규모 임상을 진행했던 것이다. 임상 첫 번째 환자도 한국에서 나왔다. 결과가 좋았던 것은 물론이다. 이를 통해 국내 비소세포폐암 환자들의 생존 기간을 늘린 것은 물론, 한국 임상팀도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된 계기가 됐다.

아스트라제네카의 한국 임상팀은 ‘SMM(Site Management and Monitoring)코리아’로 불린다. 한국법인이 아닌 아스트라제네카 본사 소속으로 나라별 임상팀 중 한국팀이다.

현재 SMM코리아는 김소현 전무가 4년째 이끌고 있다. 김 전무는 서울아산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가 국내 제약회사 임상팀을 거쳐 지난 2008년 아스트라제네카 임상팀에 입사했다. 아스트라제네카에서만 14년, 총 20년 넘게 임상만 해온 베테랑이다. 지난 5월 24일 서울 삼성동 아스트라제네카 사무실에서 김 전무를 만났다.

김 전무는 “임상을 하는 사람에게는 회사의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이 얼마나 기대되는 것이냐에 따라 동기부여가 된다”며 “아스트라제네카는 훌륭한 신약 파이프라인을 갖고 있는 데다 연구개발(R&D) 수준이 높아 자부심을 갖고 오래 재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전무는 전무 취임 후 연구원들을 위해 개인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훌륭한 인재들이 회사를 떠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김 전무는 앞으로 “임상시험의 디지털화를 이끌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코로나19 이후 미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비대면 임상이 확산되고 있는데, 이 변화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디지털화를 통해 R&D의 패러다임이 바뀔 것으로 예상한다”며 “한국의 훌륭한 IT 플랫폼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김 전무는 “임상시험을 수행하는 방법이 점차 환자 중심으로 환자의 입장에서 편안하도록 변화하고 있는데 한국 임상팀도 이러한 방향에 발맞춰 가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김 전무에게 오랫동안 한 분야에 열정적으로 몸담을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여전히 이 일이 재미있다. 개인이나 회사의 성과를 떠나 사회와 환자에 기여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갈수록 깨닫게 됐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다음은 김 전무와의 인터뷰 전문.

ㅡSMM코리아는 어떤 조직인가.

“아스트라제네카의 신약 개발을 위한 다국가 임상에서 한국 임상을 책임지는 조직이다. 신약을 개발할 때 많게는 전 세계 40여개국, 적게는 3~4개국에서 임상을 진행하는데 각 국가에서 직접 운영하는 임상팀을 아스트라제네카에서는 SMM이라고 부른다.”

ㅡ한국에서의 허가만을 위한 조직은 아니라는 뜻인가.

“그렇다. 한국 환자에게 신약에 대한 접근성을 좋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신약 개발과 허가에 기여한다. 한국 사장이 아닌 글로벌 R&D 조직에 직접 보고를 하게 돼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ㅡ병원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는데, 어떤 계기로 임상 분야를 하게 됐나.

“막연하게 제약회사에서 근무하는 분들이 멋있어 보였는데, 우연히 국내 제약회사에 자리가 나서 이직을 하게 됐다. 입사할 때만 해도 임상시험이 뭔지 잘 몰랐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부터 국내에서 임상시험 관련 제도가 국제 규격에 맞춰 정비되기 시작했고, 관련 산업도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다 보니 재미가 있더라. R&D나 임상시험을 더 많이 하는 회사를 찾아서 몇 번을 옮겼고, 아스트라제네카에는 2008년에 대리로 입사했다.”

ㅡ아스트라제네카에서 꽤 오랜 기간 근무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R&D 수준이 높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기대되지 않는 신약을 개발하게 되면 스스로 동기부여가 약해질 수도 있는데 아스트라제네카의 R&D 수준이 굉장히 높고 파이프라인이 우수해 열정과 자부심을 가지고 한 회사에 오래 재직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 다양한 기회를 주기도 했다. 항암제 1상 시험의 글로벌리더도 했었고, 한국의 매니저로 있으면서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원격으로 관리하는 일도 했다.”

ㅡR&D 수준이 높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뜻인지 궁금하다. 단순히 투자 규모만 의미하는 것은 아닐 텐데.

“국내 제약 회사에서도 좋은 경험을 했지만 2007~2008년 당시 다국가 임상시험을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수준 높은 프로토콜이나 전자화된 시스템, 다국가 임상시험이 전 세계 사람을 어떻게 연결하는지 등을 경험하고 싶었다. 국내 제약 회사들의 신약 개발 역량이 올라가고 있었지만 다국가 임상시험 노하우에 대해선 아쉽게 느껴졌다. 그때는 아스트라제네카에 대한 정보가 지금만큼 많지는 않았는데, 과학적인 역량이 뛰어나고 임상팀이 탄탄하다고 해서 회사를 옮기게 됐다.”

ㅡ아스트라제네카로 이직하고 만족스러웠나.

“솔직히 부족한 면도 있었다. 2008년 당시에는 조직 규모가 30명 남짓이었고 임상시험을 20~30개 정도 수행하고 있었는데 그 중 상당 부분이 국내에서 이뤄지는 단일 국가 4상 임상시험이었다. 정량적으로만 평가하긴 어렵지만 한국의 경제적 위상을 고려해도 아시아 주변국보다 글로벌 임상시험을 수행하는 개수가 적어 입사 직후에는 약간 고민이 있기는 했다.”

김소현 아스트라제네카 전무가 지난 5월 24일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 제공

ㅡSMM코리아 규모가 지금은 많이 커졌다.

“2008년에 30명이었던 조직이 2018년에는 60명까지 성장했다. 현재 약 100명까지 늘었다. 다국가 임상시험만 100개 정도 할 만큼 급성장했다. 2008년에는 전혀 하지 않았던 초기 임상시험도 많이 하는 등 양적, 질적 성장을 했다.”

ㅡ이유가 뭐라고 보나.

“우선 한국에서 임상시험 관련 제도 등을 정비하면서 환경이 좋아졌다. 아울러 2012년에 부임한 파스칼 소리오 최고경영자(CEO)가 아스트라제네카의 R&D에 엄청난 혁신과 변화를 강조하면서 막대한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당시 대리에 불과했던 나도 회사가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SMM코리아 보고 라인을 한국 대표에게서 떼어내서 글로벌 R&D 직속으로 옮긴 것도 그때부터다. 조직 구조가 완전히 바뀌어버린 것이다.”

ㅡSMM코리아 내부적인 계기도 있었나.

“2012~2013년쯤 중요한 항암제 개발이 있었는데 여기에 SMM코리아가 큰 성과를 냈다. 암 환자에게는 하루 이틀도 중요할 수 있는데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고 생명 연장에 기여를 했다는 부분에서 팀원들에게 실제로 큰 동기부여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 연구진들이 한국 연구진들과 함께 일해 보니 열정적이고 책임감도 높고 헌신적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지금은 특히 항암제 임상시험에 있어서는 글로벌에서도 한국을 반드시 포함해야 하는 국가로 보고 있다. 앞서 말했던 임상 관련 환경, 회사의 투자 등과 맞물려 조직이 성장할 수 있었다. 한국 연구진들은 어떤 글로벌 리더십도 실망하지 않도록 수년간 좋은 결과를 지속적으로 내 왔다고 자부한다.”

ㅡ성과를 내고 좋은 데이터를 축적했다는 게 무슨 뜻인가. 임상시험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는 건가.

“당연히 그것도 맞다. 이와 더불어 좋은 임상 계획서와 과학적인 설계 디자인을 가지고 한국의 규정과 국제 기준 모두 부합하게, 빨리 잘하는 것도 포함된다.”

ㅡ좀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우선 아스트라제네카는 임상시험의 여러 측면을 정량화한 수치로 기록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꾸준히 정비해왔다. 예컨대 환자 등록을 얼마나 빠르게 했는지, 프로토콜에 얼마나 잘 맞는 환자를 등록했는지 등 임상을 얼마나 잘했는지에 대해 글로벌 차원에서 객관적인 데이터를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ㅡSMM코리아의 글로벌 위상이 높아지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나.

“한국 임상팀이 다른 국가에 비해 얼마나 효율적으로, 우수하게 임상시험을 하는지 보여줄 수 있었고 한국의 입지가 더욱 강화됐다고 본다. 10년 이상 레코드가 쌓였는데 이런 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특히 항암제 임상시험 분야에서는 한국 임상팀이 세계 3위 정도의 규모를 갖고 있다.”

ㅡ아스트라제네카 임상팀만의 특징이나 장점은 무엇인가.

“보통 제약 회사들은 임상 운영팀을 직접 운영하기보다 외주를 주는 경우가 많다. 파이프라인이 늘었다 줄었다 하는 편차가 크기 때문에 임상팀을 직접 운영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투자도 많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아스트카제네카는 최대한 내부 인력으로 진행하려고 하고 있다. 여기에는 아스트라제네카의 철학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각 나라의 연구진들로부터 신약을 실제 환자에게 투여했을 때의 경험을 연구에 반영해야 연구가 성공한다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아스트라제네카 내부의 의학부도 연구진들과 협조해 올바른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데, 수탁 기관이 이런 일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또 앞서 말했듯 임상시험의 여러 측면을 수치로 보여주는 시스템을 강화했다는 것도 장점이다.”

ㅡ임상팀 개개인의 역량도 중요할 것 같은데, 인재 선발에 있어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인력을 유치하는 게 가끔은 성과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될 때가 있다. 함께 일할 직원은 곧바로 업무에 투입해도 될 만큼 우수한 업무 역량을 가장 크게 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스트라제네카의 가치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느냐다. 일을 통해 사명감을 얻고 동기 부여를 받을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인재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도 많이 기울이고 있다.”

ㅡ임상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나.

“임상시험 의뢰자인 제약회사, 병원 연구진, 식품의약품안전처나 보건복지부처럼 제도를 만드는 정부, 이렇게 세 주체의 유기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경쟁자라는 생각보다 R&D를 위한 생태계를 잘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야 한국 전체의 역량도 올라갈 수 있다.”

ㅡSMM코리아 또는 개인적인 비전과 꿈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아스트라제네카의 항암제와 항암제 이외의 분야 모든 임상에서 한국이 꼭 포함돼야 하는 국가로 인정받고 싶다. 특히 후기 임상뿐 아니라 학구적으로 높은 가치가 있는 초기 임상에도 많이 참여하는 게 목표다. SMM코리아의 비전은 아스트라제네카의 신념과도 일맥상통할 텐데, 첫째는 ‘환자 중심’이다. 모든 회사 전략 수립에 있어서 환자를 우선으로 하라는 것이다. 임상시험을 수행하는 방법이 점차 환자 중심으로, 환자의 입장에서 편안하도록 변화하고 있는데 한국 임상팀도 이러한 방향에 발맞춰 가야 한다.

둘째는 ‘임상시험의 디지털화’다.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을 지나면서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비대면 임상이 가속화된 상황이다. 현재까지 미국과 유럽의 몇 나라들이 주도하고 있다. 환자들은 병원에 덜 와도 돼서 편하고, 회사는 인공지능(AI)으로 임상을 진행하면서 더 좋은 후보 물질을 찾아내거나 성공률을 높여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한국팀은 아직 소극적이었지만, 한국의 IT 플랫폼이 좋기 때문에 앞으로 이 분야에서 선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디지털화를 통해 임상시험을 포함한 R&D의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라고 예상한다. 한국이 이 변화를 못 따라가면 임상시험 선진국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팀과 연구진의 협조, 제도적인 개선을 통해 임상시험의 디지털화, 비대면 임상시험 분야를 이끄는 게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