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분당21세기의원 김한수 대표원장이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명지 기자

지난 2017년 경기 분당의 동네병원에서 진료를 기다리던 58세 남성 한 명이 소파에서 쓰러졌다. 진료실에서 뛰쳐나온 의사는 남성의 심장이 뛰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 심폐소생술과 자동심장충격기(AED)를 여러 차례 시도한 끝에 심박을 되돌렸다. 이 환자는 앰뷸런스를 통해 가까운 종합병원으로 이송됐고, 그곳에서 혈관조영술을 받고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분당구 우체국 소속 집배원이었던 이 남성은 관상동맥이 막혀 실신한 상태였다고 한다. 10분만 늦었어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 병원에서 심장을 다루는 순환기내과 전문의가 있었던 덕분에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다. 그는 아침 출근길에 가슴이 답답하고, 식은땀이 흘러 ‘심장 보는 병원’을 찾아 이 병원에 왔다고 한다. 이 환자는 매월 이 병원에서 정기 진료를 받는다.

이 환자가 찾은 병원은 분당신도시에 있는 ‘분당21세기의원’이다. 지상 4층 건물의 3~4층에 순환기내과, 소화기내과, 산부인과, 방사선과, 영상의학과 등 5개 진료과가 있고, 아래층에 신경정신과, 정형외과 등 개별 개원 병원이 입주해 있다. 대단지 아파트를 앞에 둔 전형적인 동네병원인데, 전문의들이 각자의 전공과를 협업하는 게 특징이다. 입원실 없이 대면 진료만 보는 ‘멀티클리닉’ 개념의 종합 의원이다.

분당 주민이 사이에서 몸에 이상이 생겼다고 생각되면 가장 먼저 찾는 ‘주치의 병원’으로 통한다. 가슴이 답답한 증상의 환자가 병원을 찾으면, 진단을 거쳐 환자 상황에 적절한 전문의에게 보내는 식이다. 예를 들어 가슴이 답답한 증상도 원인은 다를 수 있다. 심혈관이 막혀도, 폐질환으로 숨을 못 쉬어도, 역류성 식도염이 생겨도 가슴에 통증이 느껴진다.

이 병원의 대표 원장인 김한수 원장은 “1차 의료기관(동네병원)은 환자들의 증상을 보고 빠르게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넓은 스펙트럼에서 환자의 건강 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며 “나는 심장을 주로 보지만 다른 문제를 확인하면 다른 진료과로 보내 협진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이 지난 2002년 동료 의사들과 함께 개원한 이 병원은 분과별 전문의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덕분에 분당 안에서는 ‘심장도 보는 병원’ ‘X(엑스)레이 판독 잘하는 병원’으로 소문이 났다. 김 원장은 미국 연수 때 개원의와 종합병원이 협력하는 ‘어탠딩 시스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연세대 의대에서 순환기내과로 의학 박사까지 마친 김 원장은 아주대 의대 교수를 지냈으며, 개원한 이후에도 삼성의료원, 연세대 의대 등에서 외래 교수로 활동했다. 그는 1988년 국내 최초로 관상동맥성형술 후 재협착된 환자에게 방사선 치료 시술을 시도해서 주목을 받았다. 김 원장은 1차 의료기관, 동네병원 의사들로 구성된 순환기학회인 대한임상순환기학회를 창립해 지난 2018년부터 회장을 맡아 이끌고 있다. 김 원장을 지난 3일 분당21세기의원 4층 진료실에서 만났다.

ㅡ ’의원’이라고 해서 동네병원이라고 생각했는데, 규모가 꽤 크다.

“1차 의료기관이지만, 전문의가 9명이나 있다. 나는 심장을 주로 보지만, 다른 이상이 있으면 소화기내과로 내분비내과로 연결하는 식으로 운영한다. ‘멀티클리닉’의 개념이다.”

ㅡ 이런 시스템이 어떻게 가능한가.

“분당이라서 통했다고 본다. 미국에서 2년 정도 연수를 받았다. 미국은 개원의와 종합병원, 대학병원이 서로 연계하는 시스템이 잘 돼 있었다. ‘어탠딩 시스템(attending sytem)’이라고 하는데, 개원의들이 대학병원에 가서 시술이나 강의를 하고, 종합병원은 입원실이 없는 개인 병원이 의뢰하면 입원을 시키기도 한다. 동네병원에서는 간호사 인력 등의 문제로 입원실을 두기가 사실상 어려운데, 대학병원 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분당21세기의원 4층 진료실 전경. 이 병원의 접수 마감 시간인 오후 5시가 되니, 환자가 없이 한산하다. /김명지 기자

ㅡ 그 시스템을 적용한 병원인가.

“그렇다. 그래서 개원을 한 후에도 아주대 의대, 삼성의료원과 연세대 의대 등에서 시술도 하고 강의도 했다. 예를 들어 매주 수요일은 대학병원에 가서 심장 조형술을 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국내 의료법에서 병원 개설자가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이중으로 하지 못하도록 개정하면서 교류는 중단됐고, 멀티클리닉만 남았다.”

ㅡ 심장을 보는 순환기내과 전문의가 있는 동네병원은 처음 봤다.

“심장내과가 있는 의원급 의료기관은 사실 많지 않다. 내가 아마 처음인 것으로 안다. 그래서 (분당) 주민들은 ‘심장 보는 의사가 있는 병원’이라고 떠올려서 이곳을 찾아오기도 한다. 대학병원보다 동네병원이 환자들이 왕래하기 편하기 때문에 진료도 용이하다.”

ㅡ 심장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생사가 위험한 것 아닌가. 동네병원에서 볼 수 있나.

“심장병은 상태가 아주 심각해지기 전까지는 증세가 드러나지 않는다. 부정맥이 굉장히 심한 사람도 단순히 ‘가슴이 답답하다’고만 느낀다. 그래서 이렇게 숨겨진 문제가 있는 환자들을 빠르게 진단해 내는 것이 동네병원의 역할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가슴이 답답한 환자를 내가 치료할지, (역류성 식도염을 의심해서) 소화기내과에 보낼지, 약을 처방해야 할지, 더 큰 병원으로 보낼지 이런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ㅡ 순환기내과를 둔 1차 의료기관을 주축으로 학회도 만들었다. 계기가 있나.

“심혈관질환을 보는 국내 주요 학회는 3차 의료기관 중심이다. 그러다 보니, 직접 환자를 마주하는 1차 의료기관의 연구와는 괴리가 있었다.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은 동네병원을 한 번씩 거친 환자를 본다. 동네병원이 환자 증상만으로 1차 진단을 한다면,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은 수치를 갖고 환자를 본다.

그러니 동네병원과는 연구의 목적이나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종합병원에서 심장 쪽은 새로운 시술도 많이 개발되고, 새로운 장비도 개발이 된다. 주요 학회에서는 새로운 시술법에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하려는 시도를 많이 한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심장 건강을 측정하는 필수 검사에 대한 중요성이 잊히게 된다.”

김한수 분당21세기의원 대표원장. /분당21세기의원 제공

ㅡ 필수 검사의 중요성이 잊힌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심장 질환이 의심되는 환자는 ‘심전도 검사’를 해서 심장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 심전도검사는 심장이 얼마나 잘 뛰는지 측정하는 필수 검사인데, 급여가 6100원에서 고정돼 있다. 의사들 사이에서는 ‘심전도검사를 스타벅스 커피 한 잔 값도 못 하다’는 자조도 나온다. 수가가 낮으면 검사를 잘 안 하게 되고, 이런 필수 검사가 외면당하면, 심장에 문제가 생긴 환자를 알아낼 수 없게 된다.”

ㅡ 증상이 있는 환자만 검사를 하면 되지 않나.

“고혈압을 ‘병’이라고 부르지만, 혈압은 웬만큼 높지 않으면 증상이 없다. 아주 많이 올라야 뒷골이 당기는 그런 증세가 나타나는데, 그때는 이미 위험한 상태다. 콜레스테롤도 마찬가지다. 웬만큼 수치가 높지 않으면 10~20년 동안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니 심혈관 질환은 대부분 50대 이후에 문제가 터진다. 심혈관에 문제가 생기면 되돌리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증세가 나타나기 전에 확인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ㅡ 그렇다면 동네병원은 예방의학의 관점에서 운영해야 한다는 건가.

“그건 아니다. 동네병원에도 아픈 사람이 온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이 병원에 오지 않는다. 가슴이 답답하다거나 하는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데, 이런 증상을 보인 환자를 어떻게 조치할 것인지 빠르게 판단하는 것이 동네병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ㅡ 가슴 통증으로 병원에 오는 환자들은 주로 어떤 진단을 받나.

“사실 역류성 식도염이 가장 많다. 심장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드물다. 다만 만에 하나라도 가슴 통증이 심장에 문제가 생겨서 나타난 증세라면 아주 위급한 상황이기 때문에 빠른 진단이 필요하다. 그래서 협진 시스템이 중요하다.”

ㅡ 진단과 건강 관리를 치료라고 볼 수 있나.

“치료가 맞다. 증세가 나타난 사람은 치료가 쉽다. 내 몸이 불편하니까 치료하려는 의지가 있다. 반대로 병이 있는데, 증세가 없는 사람은 치료의 중요성을 못 느낀다. 그래서 증세가 없는 사람에게 훨씬 시간을 많이 들여서 치료를 설득해야 한다. 내 몸을 위해서 관리를 해야겠다는 동기를 유발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ㅡ 예를 좀 들어 달라. 어떤 방식이 있나.

“고혈압⋅고지혈증 환자에게 혈압약을 처방하는 것 외에도 식단 조절과 운동 처방을 한다. 하지만 이런 생활 습관 처방은 성공률이 높지 않다. 기말고사 앞두고 꾸준히 공부하는 사람이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그래서 체중과 혈압을 수시로 체크하면서 관리하도록 독려하는 것이 우리들이 주로 하는 일이다.”

ㅡ 만성질환에서 생활 습관을 교정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심혈관, 신장, 당뇨 등 만성질환은 모두 연결돼 있다. 혈압이 높은 사람은 복부 비만이 있고, 공복 혈당 장애 등을 보인다. 만성질환이 서로 연결된 것은 신약에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당뇨약으로 개발했는데, 체중 조절제로 쓰이는 약이 요즘 있지 않나. 당뇨를 치료하려고 소변으로 혈당을 배출하는 약을 개발했더니 혈당이 떨어지면서 복부 비만이 해결되고, 혈압도 떨어졌다.

당뇨약이 신장 질환에 효과를 보이고, 또 심혈관 질환에도 효과를 보는 것이다. 그런데 대학병원 내분비내과에 가게 되면, 혈당만 보고 혈당만 치료하고, 순환기내과에 가면 심장만 본다. 그러니 여러 전문 분야를 통합해서 크게 볼 수 있는 능력이 1차 진료기관에 꼭 필요하다는 뜻이다.”

ㅡ 좀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어떻게 연결되는 건가.

“비만인 사람은 ‘인슐린 저항성’이라는 게 생긴다. 우리 몸의 세포는 혈당을 에너지 삼아 움직인다. 이 혈당을 세포로 넣어주는 기능을 하는 것이 인슐린이다. 단순히 밥을 먹으면 혈당이 오르고, 그러면 췌장에서 인슐린을 분비해서 이 혈당을 세포로 저장을 시키게 된다.

‘인슐린 저항성’은 인슐린이 혈당을 세포로 넣어주는 역할을 제대로 못 해 효율성이 떨어진 상태다. 인슐린이 제 역할을 못 하니 내 몸 세포에는 혈당이 공급되지 않고, 남는 혈당은 복부 지방으로 쌓인다. 뇌(腦)는 인슐린이 부족한 게 문제라고 인식해, 췌장에 인슐린을 더 분비하게 만들지만, 이렇게 인슐린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혈압과 혈당이 다시 올라가면서 동맥경화와 대사장애가 생기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고지혈증에서 중성 지방이 올라가는 것도 여기에 맞물려 있다.”

조선DB

ㅡ 그러면 어떻게 생활 습관을 지도하나.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을 제안하고, 숙제를 낸다. 집에서 혈압을 매일 측정해서 다음 진료 때 내라고 한다. 병원이 갖고 있는 혈압계를 환자에게 일주일 동안 무상으로 빌려주기도 한다. 측정한 혈압을 기재할 문서도 한 장씩 나눠준다.”

ㅡ 집에서 혈압을 재는 게 중요한가.

“환자 자신이 스스로 혈압을 잰다는 행위 자체에 방점이 찍혀 있다. 환자가 자신의 혈압을 인지하는 것이 생활 습관 개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내 혈압이 높은 걸 알면, 아무래도 흰 쌀밥도 좀 덜 먹게 된다. 동네 한 바퀴를 걷고, 혈압을 재면 혈압이 떨어진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운동도 또 하게 된다. 또 가정혈압은 병원에서 혈압을 재면 긴장해서 평소보다 혈압이 높게 측정되는 백의고혈압 현상 등을 보정할 수 있다.”

ㅡ 그래서 실제 숙제 검사도 하나.

“받은 종이를 스캔해서 환자 차트에 기록을 한다. 그리고 복부 지방과 체성분 수치를 비교한다. 잘한 환자는 칭찬으로 독려도 한다. ‘이것 보시라. 체중을 줄였더니 혈압약 용량을 줄여도 정상 수치가 유지되지 않느냐’라는 식이다.”

ㅡ 하지만 적절한 약을 처방해서 치료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나.

“약 처방은 중요하다. 하지만 동네병원 의사들은 환자의 조력자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암과 만성질환은 전혀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암은 암 덩어리만 제거하면 해결되지만, 고혈압은 몸 전체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수술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ㅡ 만성질환 치료의 주체는 환자 본인이 되어야 한다는 건가.

“그렇다. 또 약을 먹는 것도 생활 습관 개선의 일종으로 봐야 한다. 고혈압 환자 가운데 운동을 아무리 해도 혈압이 떨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런 환자들은 매일 약을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 그렇게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환자 10명 중 5명이 약 먹기를 습관화하지 못하고 탈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