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의주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맨 앞줄 남성)와 실험실 연구진 모습./고려대학교 제공

“우리가 아는 대다수 질병은 세포의 노화, 사멸과 관련된 거라 봐도 무방하죠.”

지난달 23일 서울 안암동에 있는 고려대학교 하나과학관에서 만난 최의주 고려대 생명과학부 교수의 말이다. 그는 지난 1990년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세포생물학 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1993년 한국에 돌아와 고려대 생명과학부 교수로 임용됐다. 그때부터 3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 세포 노화·사멸을 연구하며 국가석학에 선정되는 등 업적을 쌓아 세포생물학 최고 권위자에 올랐다.

세포생물학은 생명체의 탄생, 성장, 노화, 사망까지 모든 현상을 세포 수준에서 이해하는 학문이다. 최 교수는 이 중 세포의 노화와 사망에 대해 연구해왔다. 최 교수에 따르면 세포는 단순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늙어간 끝에 생명을 잃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다.

세포의 죽음은 오히려 능동적으로 이뤄진다. 인간 등 동물의 몸을 이루는 수많은 세포는 서로 의사소통을 주고받는 상태에 있다. 그런데 바이러스 감염 등 다양한 이유로 특정 세포를 없애야 한다는 신호가 발생할 때가 있다. 이러면 없앨 필요가 생긴 표적 세포의 활동을 총괄하는 상위 세포에서 나온 호르몬이 표적 세포 표면에 있는 수용체에 달라붙는다. 이 호르몬이 세포 사멸과 연관된 유전자·단백질을 활성화시키면, 표적세포가 죽어 없어진다.

이 때문에 최 교수는 건강한 몸을 “죽어야 할 세포가 죽고, 살아야 할 세포가 살아있는 균형 상태다”라고 정의한다. 그 균형이 깨졌을 때 질병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암은 죽어야 할 암세포가 죽지 않고 계속 늘어나면서 생기는 병이다. 반대로 치매는 살아야 할 뇌세포들이 계속해서 죽으면 발병한다.

세포 노화 또한 주변 세포에 악영향을 줘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다. 세포 노화·사멸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정신적 스트레스, 흡연, 과음, 과식 등으로 발생하는 ‘산화 스트레스’다. 산화 스트레스에 지속적으로 시달린 세포는 ‘노화 세포’로 성질이 바뀌면서 정상 세포에선 볼 수 없는 특수한 물질을 내뿜는다. 이 물질은 주변 정상 세포를 노화시키고 염증을 일으킨다.

세포 하나에서 시작된 노화는 몸속 조직을 늙게 하고, 그 결과 생명체까지 늙게 한다. 우리 몸과 세포는 항상 외부 자극에 노출돼 있다. 정상 세포는 자극으로 발생한 상처를 치료할 때 필요한 유전자·단백질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노화한 세포는 그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상처를 회복하지 못한 세포는 결국 죽는다. 이런 과정이 쌓이고 반복되면 몸속 조직들이 하나씩 제 기능을 못 하게 되고, 결국 생명체가 죽을 수 있다.

세포가 늙고 죽는 과정을 연구하는 데에 인생의 절반가량을 쏟아온 이유를 묻자, 최 교수는 “세포가 노화, 사멸하는 원리를 알면, 이를 막을 방법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최 교수 바람은 점점 이뤄지고 있다. 정상 세포를 건드리지 않고 암세포만을 찾아 없애는 ‘표적 항암제’는 세포생물학이 발견한 세포 사멸 원리를 잘 활용한 사례다.

안티에이징을 필두로 한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시장도 마찬가지다. 산화 스트레스를 중화시키는 항산화제 물질 ‘세놀리틱’이 여러 종류 발견되면서 이를 활용해 만든 각종 스킨·로션과 자외선차단제 등이 주목받고 있다. 헬스케어 기업인 로킷 헬스케어, 프로헬스 등은 세놀리틱이 함유된 건강기능식품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

산업적 전망도 매우 좋기 때문에 더 많은 국내외 학자들이 세포 노화·사멸 연구에 뛰어들 필요가 있다고 최 교수는 강조했다. 다음은 최 교수와의 일문일답.

정상 세포와 사멸한 세포를 비교한 그림. 왼쪽이 정상 세포, 오른쪽이 사멸한 세포./게티이미지

–‘세포 사멸’이란 개념에 대해 알려달라.

“세포는 탄생부터 사망까지 크게 3가지 과정을 거친다. 생성, 분화, 사멸. 아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 하나의 세포가 ‘생성’되고 팔, 다리, 폐, 심장 등 기능에 따라 세포가 ‘분화’한다. 이후 자라나서 살다가 결국 ‘사멸’한다. 내가 중점적으로 연구한 분야가 ‘사멸’이다. 말 그대로 세포가 죽는 원인과 과정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인간이나 다른 동물이 그렇듯, 세포도 살다 보면 자연스레 늙어서 죽는 것 아닌가.

“엄연히 따지면 틀린 말이다. 세포가 죽는 과정은 그렇게 수동적이지 않다. 오히려 능동적인 과정이다. 모든 세포 안에는 그 세포를 죽게 만드는 유전자, 단백질이 있다. 그들이 활성화되면 세포가 죽는다. 세포가 죽어야 할 상황이 오면 필요에 따라 의지를 갖고 죽는 것이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등 주변 세포들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우려되면 그 세포가 죽어야 한다고 몸속 세포들끼리 신호를 보낸다.”

–신호를 받으면 죽어야 하는 세포가 스스로 사멸하는 것인가.

“아니다. 모든 세포는 역할과 지위가 다르다. 여러 세포들을 통솔하는 상위 세포가 있다. 상위 세포가 A,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가 B라 하자. B세포가 없어져야 한다는 신호가 발생하면 A세포가 호르몬을 만들고, 그 호르몬이 B세포 표면에 달라붙는다. 단순히 세포 껍질에 붙는 게 아니라 세포 껍질에 있는 수용체와 호르몬이 결합한다. 여기서 호르몬이 B세포 안에 있으면서 B세포의 사멸을 촉진하는 유전자 혹은 단백질을 활성화시킨다. 이러면 B세포가 죽게 된다.”

–그럼 지금도 내 몸속에서 어떤 세포는 죽고 있는 건가.

“그렇다. 세포가 죽는 건 정상적인 생리현상이다. 간단히 말해 죽을 세포가 죽고, 살 세포가 사는 게 건강한 상태다. 반대로 건강이 안 좋다는 건 그 균형이 깨진 상태다. 불필요하게 세포가 많이 죽거나, 죽어야 할 세포가 죽지 않으면 질병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설명해달라.

“불필요하게 세포가 많이 죽는 건 치매와 같은 퇴행성 질환을 생각하면 된다. 치매는 간단히 말해서 뇌세포가 불필요하게 많이 죽어 기억력을 비롯한 인지능력이 퇴화하는 병이다. 뇌세포에 피해를 주는 자극이 세포 사멸을 과하게 활성화시키면서 뉴런들이 죽어 나가는 것이다. 또 루게릭병을 예로 들 수 있다. 루게릭병은 뇌와 척수 등 중추신경에 있는 운동 신경세포가 죽으면서 몸이 마비되는 병이다. 특히 ‘MST-1′이란 단백질이 있는데, 이것이 운동 신경세포의 사멸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내가 이끄는 실험실에서 발견한 단백질이다.”

–죽어야 할 세포가 안 죽어서 생기는 질병으론 뭐가 있나.

“암이 대표적이다. 암세포가 끊임없이 생겨나 암 덩어리가 온몸에 전이되면 환자가 죽는다. 생존을 위해선 죽어야 하는 암세포가 죽지 않거나, 죽어도 수가 너무 많아 소용이 없으면 상태가 악화되는 것이다.”

–그럼 항암제는 암세포 사멸을 촉진하는 방법을 활용해 만들었다고 볼 수 있는 건가.

“바로 그거다. 세포 수준에서 어떤 병의 원인을 알면 그 병을 치료할 약을 만들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암 치료제라는 것은 결국 암세포를 죽이는 방법론을 갖고 만든 거다. 요즘 나오는 표적항암제도 마찬가지다. 암세포 표면에는 정상세포에서 발견할 수 없는 특정 단백질이 있다. 그 단백질에만 달라붙어 세포 사멸을 촉진하는 호르몬을 만들면 치료제가 나오는 것이다. 같은 논리로 뇌세포 사멸을 억제하는 물질을 만들면 치매를 막을 수 있고, MST-1 단백질을 없애거나 작동하지 못하게 하는 물질을 개발하면 루게릭병을 치료할 수 있다. 세포 사멸을 연구하는 게 중요한 이유다.”

–세포가 죽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나.

“두 가지 경우가 있다. 하나는 ‘아포토시스’란 현상으로, 죽은 세포가 그 자리에서 여러 파편으로 쪼개진다. 우리 몸속에는 죽은 세포 파편을 먹는 ‘대식 세포’라는 게 있다. 세포가 평화롭게 작은 파편들로 부서지고 이를 대식 세포가 먹어서 청소하는 게 이상적인 상황이다. 반면 ‘네크로시스’가 발생하면 죽은 세포가 조용히 쪼개지는 게 아니라 폭발한다. 이 경우 세포 파편은 물론 세포 속 물질이 사방에 튀는데, 그 자리에 염증이 생길 수도 있다. 정확히 언제 아포토시스가 발생하고 언제 네크로시스가 발생하는지는 완벽히 규명되지 않았다.”

지난달 23일 서울 안암 고려대학교 하나과학관에서 만난 최의주 고려대 생명과학부 교수./최정석 기자

–세포 노화도 연구하는 걸로 안다. 세포 노화와 사멸이 인간 노화로 직결되는 건가.

“연관성이 깊다는 게 학계 중론이다. 세포 하나하나가 노화되면, 그 세포가 위치한 조직이 늙고, 결과적으로 생명체가 늙는다. 세포 노화가 곳곳에서 축적되면 생명체 노화로 유력하게 이어진다는 것이다. 다만 이 또한 인과관계가 100% 명확하진 않다. 세포 노화와 사멸에 대한 연구 자체가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다. 내가 30년 연구했는데, 전 세계적 과학자들이 이 분야 연구를 시작한 건 기껏해야 40~50년밖에 안 됐다.”

–세포가 노화하는 이유는 뭔가.

“대표적인 원인은 ‘산화 스트레스’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거나 흡연, 과식, 과음 등 행위가 몸속 세포에 산화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산화 스트레스에 공격받은 세포엔 활성산소가 쌓이는데, 이 활성산소가 각종 만성 질환과 노화를 부르는 주범이다. 세포가 노화하면 세포 속 유전자가 단백질을 만들지 못하게 된다. 단백질은 유전자가 발현하기 위한 일꾼 역할을 한다. 일꾼이 없으니 유전자가 발현하지 못하고, 세포가 본래 기능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러면 정상 세포가 기존 성질을 잃고 노화한다. 노화한 세포에선 정상 세포에서 볼 수 없는 특수한 물질이 나온다. 이 물질은 주변 세포의 노화까지 촉진시키고 염증을 일으킨다.”

–세포 노화를 막을 방법이 없나.

“산화 스트레스를 중화시키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항산화 물질을 몸에 흡수시키는 형태로 산화 스트레스를 중화할 수 있다. 최근 주목받는 항산화 물질로 ‘피세틴’이 있다. 피세틴은 노화한 세포를 죽이는 데 특화된 물질이다. 다만 노화 세포만을 선택적으로 죽이는 게 아니라 정상 세포에도 다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농도를 잘 조절해서 써야 한다. 최근엔 피세틴의 적정 농도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뤄져 여러 품목에 피세틴 성분이 쓰이고 있다. 스킨·로션 등 화장품은 물론이고 각종 건강기능식품에도 들어간다. 세포 노화와 사멸 연구에 따른 성과라 할 수 있다.”

–제약·바이오와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등 헬스케어 전반에 세포 노화·사멸 연구가 활용될 수 있을 것 같다.

“더 많은 연구자들이 이 분야에 뛰어들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거다. 전 세계적으로 이 분야를 연구한 역사 자체가 반 백년 남짓밖에 안 된다. 세포 생성과 분화는 이미 많은 연구가 이뤄졌다. 노화와 사멸은 그야말로 블루오션이다. 학문적으로도, 사업적으로도 전망이 굉장히 좋다고 할 수 있다. 이공계 쪽, 특히 기초과학 연구 쪽으로 더 많은 지원이 들어와야 한다. 나는 곧 정년이다. 30년 전 세포 사멸 연구를 시작했을 때 이쪽 분야는 척박했다. 그래도 지금껏 땀 흘린 덕에 적어도 밭갈이는 어느 정도 끝났다고 생각한다. 누구든 와서 씨를 뿌려달라. 땅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