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중앙대학교 광명병원장이 신축 병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중앙대 광명병원 제공

경기 광명시 일직동 KTX 광명역에서 내리면 높은 빌딩과 쇼핑몰 이케아와 롯데몰 사이로 지상 14층, 연면적 9만6987㎡(약 2만9338평)의 대형 병원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 3월 700여 병상 규모로 개원한 중앙대 광명병원이다. 이 병원은 수도권 서남부 유일한 대학병원이자,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방식으로 건설한 국내 최초 대학병원이다.

부동산 PF는 시행사가 사업계획을 짜고, 금융권에서 자금을 조달해 설계, 공사까지 하는 개발 방식이다. 병원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개발 단계에서 대형 병원을 유치하려는 곳이 많은데, 대학병원이 아예 사업자로 참여해 분원을 지은 것이다.

중앙대 광명병원이 성공하면서, PF방식의 대학병원 분원 개원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인천 청라신도시에 짓는 청라 아산병원(KT&G 하나은행 컨소시엄), 위례신도시 길병원(미래에셋 호반건설 컨소시엄)이 대표적이다.

개원 한 달여만인 지난 4월 28일. 평일 목요일인데도 1층 원무과는 내원 환자로 북적였다. 병원 1층에 암병원과 심혈관질환센터를 따로 뒀고, 중앙 엘리베이터 22기가 움직이고 있었다. 진료실은 과별로 구분된 것이 아니라, 가정의학과와 이비인후과 성형학과 등 여려 진료과가 8개 진료실을 필요에 따라 쓸 수 있도록 했다. 14층에는 신약 임상시험을 할 수 있는 임상시험센터도 마련했다.

이철희 중앙대 광명병원장은 분당서울대병원장으로 재직하던 때를 언급하며 “중환자들을 수술, 검사실로 빠르게 이동시키려면 엘리베이터가 필수다”라며 “설계 단계부터 이 부분을 강조했고, 전문가 조언을 구해 최적의 동선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진료실을 공유하도록 바꾼 것에 대해선 “미국, 일본의 신축 대형 병원의 설계를 벤치마크했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18년째 의료 전문경영인(CEO)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해 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였던 이 원장은 2004년 서울대병원 자회사인 이지케어텍 대표를 거쳐 서울대 보라매병원 원장, 분당서울대병원장을 지냈다. 이후 중앙대의료원 새병원건립추진단장으로 합류해 광명병원을 개원했다.

그는 “분당병원에 있을 때만 해도 일주일에 한 번은 환자를 진료했는데, 지금은 하지 않는다”며 “경영에 집중하기 위해서다”라고 했다. 병원은 환자를 돌보는 곳인 동시에 수천명 병원 직원의 밥벌이가 달린 곳이기도 하다.

병원 개원 한 달을 맞아 중앙대 광명병원을 책임지는 이철희 초대 병원장을 만났다. 이 원장은 광명병원이 지역의 중증환자를 전담하는 거점병원이자, KTX역과 맞닿은 역세권을 활용해 전국 종합병원과 협진하는 병원의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一 광명병원을 개원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성과는 어떤가.

“예상보다 환자 수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음식점과 비교하면 100인분 정도 준비했는데, 150명 정도 손님이 오고 있는 상황이다. 광명지역 대학병원은 이 지역 주민들의 숙원사업이기도 했다.”

一 병실이 모자란 상황인가.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병원은 병실만 있다고 운영이 되는 게 아니다. 숙련된 의료진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교육에만 6~8주 정도 걸리다 보니 막판에 직원들이 고생을 했다. 지난 3월 1일부터 교직원을 대상으로 시범 진료를 했다. 3주 정도 테스트를 한 다음 일반에 공개한 것이다. 개원 둘째 주까지만 해도 환자 불편 접수가 있었는데, 빠른 시간에 정착되고 있다.”

一 추진단이 출범하고 개원까지 3년 이상 걸렸다. 에피소드는 없었나.

“분당서울대병원을 개원한 경험이 있지만, 건축 단계부터 참여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정말 많이 배웠다. 항상 배운다는 자세로 공부하지만, 늘 새롭다. 건축비 단가를 낮추려고 많은 전문가들을 만나 조언을 구했다. 병원 로비에 보이는 화강석도 건축비를 낮추려고 따로 주문한 것이다. 건설사에서 처음에 대리석을 제안해 왔는데, 가격이 너무 비쌌다. 그런데 인천공항 제2터미널을 벤치마킹하러 방문했을 때 화강석을 발견했다. ‘저거다’라고 생각했다.”

一 건축비를 줄이려고 그렇게 애쓴 이유가 있나.

“그 비용을 낮추면 진짜 환자 서비스에 쓸 수 있지 않겠나. (광명병원은 최신 최고 사양의 영상 의학 장비를 들였다. 이 병원에 있는 필립스 CT 장비는 저선량으로 소아 ·임산부에도 쓸 수 있는 모델이다. 국내에서 이 장비를 보유한 대학병원은 광명병원이 유일하다.) 엘리베이터도 최고의 제품을 골라, 개수를 대폭 늘리면서 가격을 깎았다. 아마 이렇게 직접 흥정한 병원장은 처음일 것이다. 그리고 질 좋은데, 가격 저렴한 거 좋아한다. 하하”

一 병원 로비에 들어와 보니 엘리베이터가 많이 보였다. 병원에 몇 대나 있나.

“정확히는 22대다. 이 보다 규모가 훨씬 큰 분당서울대병원보다 많다. 대학병원에 엘리베이터는 늘 모자라다. (분당서울대병원장으로 있을 때) 수술 예약 시간인데, 엘리베이터가 오지 않아서 늦는 경우가 많았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회의도 많이 했는데, 결국 설계 때부터 엘리베이터를 많이 설치하는 수밖에 없었다. 건물 밖에 엘리베이터를 새로 지을 순 없지 않나. 이 곳에서는 환자와 의료진 엘리베이터까지 완전히 분리해서 문도 만들었다. 광명병원 개원 후 여러 곳에서 견학을 왔다.”

一 우수한 병원은 실력 있는 의료진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병원 개원을 앞두고 영입한 의료진이 있나.

“물론이다. 광명병원 암병원장인 김이수 교수는 유방암과 갑상선암 분야에 명의로 통한다. (김이수 교수는 갑상선암과 유방암 제거 시 내시경을 이용해 상처를 최소화하는 최소 침습 수술을 적극 시행해 로봇 갑상선 수술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이 밖에 췌장암 명의인 김선회 전 서울대의대 교수, 심장뇌혈관병원의 김상욱 교수, 혈전연구의 권위자인 정영훈 교수 등이 있다. 하반기에 추가 영입이 예정돼 있다.”

一 추가 영입 대상이 누구인지 공개할 수 있나

“누가 오는지는 아직 공개할 수 없다. 우수한 인재를 영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수한 의료진 육성도 중요하다. 쥬니어급 의사들이 해외에서 경험과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는 한 달짜리 연수 프로그램도 곧 가동하려고 한다.”

一 대학병원에서는 1~2년 연수를 가지 않나. 한 달 짜리 연수는 너무 짧아 보이는데

“장기 연수와 별개로 단기 연수를 추가로 만든다는 뜻이다. 쥬니어급 의사들은 해외에 나갈 기회가 적다. 한 달이란 기간이 짧아 보이지만, (한국 의사들은) 그 정도면 수술법 정도는 거뜬히 배울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젊은 의사들이 해외의 대가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해외 네트워크를 쌓으면 한국에 돌아와서도 발전이 가능하지 않겠나. ”

一 임상시험센터도 따로 구축한 것으로 안다.

“암과 같은 중증 질환 치료는 임상 단계에 있는 신약을 쓸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신약 임상에 참여하기 원하는 환자가 많다는 뜻이다. 신약 임상은 제약사가 대학병원 교수에 직접 의뢰하거나, 임상시험수탁(CRO)업체를 통하게 된다. 신약 임상 섭외는 그동안 의대 교수의 ‘역량(개인기)’이라고 봤다. 우리는 아예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국내 CRO업체와 조인트벤처를 설립하고, 이 업체가 받은 신약 임상을 우리 병원이 전담하기로 했다. 임상센터를 보려고 유한양행 등 국내 주요 제약사들은 한번씩 다녀갔다.”

一 이지케어텍 대표로 재직하던 시절도 얘기해 줄 수 있나.

“이지케어텍은 서울대병원 전산시스템을 고도화하려고 만든 회사다. 2001년 병원 전산실에서 분사했고, 2004년 12월 분당서울대병원과 서울대병원 본원에 시스템을 구축하는 작업이 끝났다. 그런데 바로 직전인 2004년 11월 사장으로 임명됐다. 취임하고 한 달 후에 이 회사의 주요 사업은 끝나는 상황이었다. 신규 사업은 없었다. 두 병원 시스템 유지⋅보수로 연 70억원 수익이 나는 구조인데, 기존 병원 전산실과 무슨 차이가 있나 싶었다. 그래서 직원들을 한자리에 모아서 ‘이렇게 살다 끝낼까. 아니면 회사 한 번 키워볼까’라고 물었다.”

一 그래서 다들 동의했나.

“그냥 내가 먼저 치고 나갔다. ‘밖으로 나가야 되지 않겠어’ 그러니 직원들도 ‘밖으로 나가자’라고 했다. 사장 면전에다 ‘노(No)’라고 말할 수 없지 않았겠나.”

一 성과는 있었나.

“밖으로 나가자고 했으니, 나부터 직접 병원 영업을 뛰기 시작했다. 경상대병원에 가서 병원장을 만나 제품을 홍보했던 때가 기억이 난다. 그 당시 국공립대 병원장 가운데 후배가 많아서 다행이었다. 그렇다고 우리 제품을 사 준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게 사업을 확장해 연매출을 400억원까지 끌어 올렸다.”

이지케어텍의 지난 2020년 매출은 769억원이다. 서울대병원이 지분 45%인 이 회사는 지난 2019년 국립대 자회사 중에서는 처음으로 상장했다. 국내 대형병원 10곳 중 5곳은 이 회사 시스템을 쓰고 있고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에도 시스템을 수출하고 있다.

이철희 중앙대학교 광명병원장. /중앙대 광명병원 제공

EMR(전자의무기록) 시장 점유율은 2020년 글로벌 5위, 아시아에서 1위를 기록했다. 헬스케어 산업에 관심이 많은 네이버가 이 회사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지난해 이 회사 부사장으로 근무하던 황희 분당서울대병원 교수가 카카오헬스케어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이 원장은 “삼성이나 LG CNS 등 대기업이 이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판판이 깨졌다”며 “병원 원무 작업의 특수성을 몰랐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이 원장은 “(사업성과 관계없이) 전문 인력을 양성한 것이 지금 성공의 비결이다”라며 “국내 의료 정보기술(IT) 인력의 90%는 이 회사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 회사에 원무의 귀신들이 있다”며 “내가 계속 이지케어텍에 있었다면 글로벌 CEO로 나를 인터뷰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一 새 정부가 바이오·의료 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어떤 조언을 해 줄 수 있나.

“항상 규제가 문제다. 포지티브 규제를 네거티브로 바꿔야 한다. 금지된 것 이외에는 다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두 번째로는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분배 방식을 혁신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 때 국무총리실 산하 정보통신전략위원회 위원으로 있으면서 연구개발비가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一 그렇다면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이 성장하지 못한 이유는 뭐라고 보나.

“의사에 대한 접근성이 문제다. 대학 병원에 가서 교수를 한 번 만나려면 얼마나 힘든가. 병원에서 매일 일어나는 문제의 포인트를 해결하는 것이 비즈니스라고 생각한다. 의사를 몇 년 해 본 사람이 아니면, 그 포인트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기가 어렵다.”

一 그 밖에 조언은.

“한국 의료 산업이 한 단계 발전하려면 병원이 중심이 돼야 한다. 한동안 병원이 중심이 되는 의료산업을 육성하자는 얘기가 있었는데, 연구비 좀 나오더니 쑥 들어가 버렸다. 기업의 연 매출액이 1000억원이면 시장 가치는 1조~2조원으로 본다. 한국의 웬만한 대학 병원은 상장하면 20조~30조원의 가치를 가진다는 뜻이다. 한국의 10대 병원이 외부 투자를 받을 수 있게 규제를 풀어 주면, CJ CGV가 동남아에 영화관을 짓는 것처럼 세계 시장을 휩쓸 수 있다. 어느 기업이건 자체 수익만으로 재투자하는 게 아닌데, 병원은 수익으로만 투자할 수 있도록 막아서 클 수가 없다.”

一 병원이 투자를 받으면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다 보니 환자의 권리는 뒷전일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공익을 침해하는 일이 생길 것에 대비해, 페널티를 주도록 제도를 만들면 되지 않겠나. 일반 기업도 주식시장에서 자본을 조달해 기업 본질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 페널티를 준다. 병원도 그렇게 하면 된다. 예를 들어 의료사고 건수, 수술성공률, 재입원율 등 환자의 이익을 침해한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