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양지병원의 이상환(42) 영상의학과 과장은 얼마 전 글로벌 의료기기 업체인 메리트메디칼(Merit Medical) 홍콩 지부장으로부터 줌 회의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1987년 설립한 메리트메디칼은 심장, 방사선, 종양 수술과 내시경 검사 등에 쓰이는 일회용 의료기기를 제조 판매하는 회사다.
전 세계 웬만한 대형 병원은 이 회사 제품을 쓰고, 미국 본사는 물론 네덜란드, 호주, 일본, 싱가포르 등 전 세계 6300명이 넘는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글로벌 대기업에서 이 과장에게 먼저 회의를 요청한 것이다. 줌 회의 내용은 '색전(塞栓∙막는)물질' 개발에 대한 문의였다고 한다.
이 과장은 만성 관절염 등 염증성 통증 환자를 치료하는 '미세동맥색전술(TAME: 타미)'의 국내 권위자다. 색전술은 몸에 작은 구멍을 낸 후 가느다란 관을 혈관에 암세포나 염증을 없애는 시술 기법이다. 암세포나 염증은 혈관으로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받는데, 그 혈관을 막아서 암세포를 죽이는 방법이다.
'타미'는 색전술 중에서도 새로운 기법으로 통한다. 지금까지 색전술은 암이나 심혈관 치료에 집중됐다면, 타미는 통증을 겨냥한다. 몸 속 통증은 염증에서 온다. 진통 소염제, 스테로이드 등 주사 치료는 염증을 줄이는 효과가 일시적이라면, 타미는 문제가 되는 염증을 없애 버리니 3~4년은 통증이 줄어든다.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만성 통증을 앓았던 이지훈 근대 5종 국가대표 선수가 2019년 세계 선수권 대회 출전을 앞두고 받은 시술이 바로 '타미'다. 이 선수는 시술 한 달 만에 출전한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렇게 새로운 수술 기법들이 생겨나면서 글로벌 바이오 업계에서도 새로운 색전물질을 개발하려는 경쟁이 치열한 것이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이 과장은 서울대병원에서 영상의학과 전문의를 땄다. 군의관을 마친 후 양지병원에 합류한 2016년 '관절통증 색전술 클리닉'을 개설해 타미 시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 과장을 지난 11일 서울 관악구 양지병원에서 만났다. 이 과장이 만성 무릎 관절염 타미 시술 효과에 대해 작성한 논문은 지난 2019년 유럽중재적방사선학회지(CVIR)에 실렸다.
ㅡ '미세동맥색전술(타미)'에 대한 설명 먼저 부탁드린다. 로봇으로 혈관 수술을 하는 것인가.
"로봇은 아니다. 혈관을 볼 수 있는 X선 조영 장비로, 염증이 있는 부위를 확인한 후, 혈관을 막는 약물(색전물질)을 집어넣어 염증을 제거하게 된다. 조이스틱으로 미사일을 쏴서 혈관을 막는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ㅡ 스테로이드나 진통소염제를 통증 부위에 주사해, 염증을 잡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나.
"몸 속 염증은 암과 비슷한 성질을 갖고 있다. 외부에서 약을 넣는다고 해서 잘 죽지 않는다. 진통소염제나 스테로이드 주사는 하루에서 이틀 일시적으로 염증을 가라앉히는 데 그친다. 그러니 통증 환자들은 여러 병원을 전전하게 된다. 반면 타미는 염증을 먹여 살리는 혈관을 차단해, 염증을 한 방에 없앤다."
ㅡ 시술은 어떻게 이뤄지나. 통증 있는 부분에 절개를 하게 되나.
"바늘로 국소 마취를 한 후, 목표하는 혈관 부위에 바늘을 넣고, 그 안으로 또 조영제를 투입할 관(카데터)을 삽입하고, 좀 더 넓은 관을 넣어서 혈관을 넓힌 후 염증을 제거할 물질을 넣는 식이다. 실시간으로 X선 영상을 보면서 시술하게 된다."
ㅡ 몸에 작은 구멍을 뚫어 암을 제거하는 복강경 수술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그보다도 훨씬 작다고 봐야 한다. 집어넣는 관의 두께가 1~2㎜ 정도로 사람 머리카락보다 더 얇다. 시술을 다 마치고 나면 피부에 작은 빨간 구멍 하나만 남는다. 그것도 반창고만 하루 붙이고 있으면 사라진다. 대부분의 시술은 전신 마취 없이 부분 마취로 충분할 정도다."
ㅡ 류마티스 관절염도 치료할 수 있나.
"시술로 염증을 잡으니 그래도 2년 정도는 통증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류마티스 관절염은) 퇴행성이 아니라 자가 면역으로 생기는 질환이기 때문에 계속 재발을 한다. "
류마티스는 자가 면역 질환이다. 내 몸을 지켜야 할 면역 세포가 도리어 내 몸을 공격해서 생기는 병이다. 피부 신장 혈액을 공격하면 루푸스가 되고, 관절을 공격하면 류마티스 관절염이 된다.
ㅡ 그렇다면 통증을 일으키는 몸속 모든 염증은 다 잡을 수 있다고 봐도 되나.
"그건 아니다. 예를 들어 무릎 관절 통증은 체중 등과 관계가 있다. 특정 부위에 하중이 실리니, 근육에 미세한 파열이 생기고, 그러면서 그 부분에 염증이 생겨 아프게 된다. 이렇게 염증이 생겨 아프기 시작한 급성기에는 혈관이 보이지 않는다. "
ㅡ 그럼 언제부터 타미를 시술받을 수 있나.
"(근육이나 힘줄의) 미세파열이 3개월 이상 지나서 염증이 만성이 되면 주변에 미세 혈관들이 생겨난다. 그렇게 염증이 만성이 되면 파열된 조직이 회복이 되지 않는다. 손바닥 피부가 찢어져서 상처가 벌어졌는데, 거기 염증이 생기면서 아물지 않는 식이다. 그럴 때 이 염증을 없애서 그 부분이 회복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ㅡ 그 밖에 한계는 없나.
"말기 관절염으로 뼈와 뼈끼리 닿아버리면 이 뼈 안에 염증이 생긴다. 이 경우는 힘들다. 예를 들어 무릎 연골이 닳아 없어진 경우는 타미 시술이 어렵다고 봐야 한다."
ㅡ 뼛속 혈관은 타고 들어갈 수가 없어서 그런가.
"그것도 그렇고, 뼈 자체에 신경이 있다. 뼈에 있는 신경끼리 닿아서 아픈 것이기 때문에 방법이 없다. 그래서 무릎 뼈끼리 서로 닿지 않게 인공 관절을 넣는 것이다."
ㅡ 하지만 인공 관절 수술을 받고, 열심히 재활 운동을 해도 계속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도 많다.
"그렇게 아픈 것은 관절 염증이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다. 인공 관절로 뼈 끼리 닿는 것은 해결을 했는데, 관절 주변에 있는 염증이 계속 남아있는 것이다. 그 부위가 눌러서 아픈 분들이 많다. 피부 밑에 있는 이런 연한 조직에 생긴 염증 때문이다. (이 경우 타미 시술이 가능하다.)"
ㅡ '영상의학과'라고 하면 X선이나 자기공명영상(MRI) 판독을 주로 한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치료를 한다니 새롭다.
"그걸 인터벤션(중재술) 영상의학과라고 한다. (인터벤션은) 웬만한 대학병원에서 하는 혈관을 타고 들어가는 모든 수술에 들어간다. 다만 타미는 정형외과에 접목한 것이라 더 생소할 수 있다."
인터벤션은 의사들 사이에서 매우 중요한 과로 통한다. 막힌 혈관을 뚫거나 출혈을 잡고, 혈관이 아닌 다양한 부위에 약물을 집어넣는 작업을 전담하기 때문에 인터벤션 의사가 없으면 웬만한 큰 수술은 어렵다고 봐야 한다. 대동맥 질환 등 혈관 질환은 심장내과와 심혈관외과, 대장암은 소화기내과와 협업한다. 다만 막상 수술 전면에 나서지 않으니 대중적 인지도는 낮다.
ㅡ 타미 시술만 1000회 가까이 한 국내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시술 횟수만 따지면 1000회가 넘었다. 당장 예약이 한 달 넘게 밀려 있다. "
ㅡ 정형외과에서 타미를 도입하려는 시도는 없나.
"정형외과에서 강연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 타미를 알리기 위해 강연은 최대한 많이 하려고 한다. 다만 뼈와 근육을 다루는 것(정형외과)과 혈관을 다루는 것(영상 의학)은 성격 자체가 다르다. 예를 들어 혈관 시술을 하다가 동맥과 같은 주요 혈관을 건드렸다가는 환자의 생명까지 위험해질 수도 있지 않겠나."
ㅡ 운동 선수들이 치료를 많이 받는다고 들었다.
"근대 5종, 럭비, 육상 등 운동 선수들이 많이 찾아온다. 국군 체육 부대 선수들은 물론 프로 구단 소속 선수들도 시즌이 끝난 후 쉬는 시기에 찾는다. 가을, 겨울에 환자가 많다. 프로 선수들은 통증을 1~10점 스케일로 따지면 3~4점 정도는 늘 달고 산다. 그런데 7~8점 정도로 통증이 커지면 운동이 문제가 아니라 정상 생활이 힘들다. 그런 경우 병원을 오게 된다."
ㅡ 얼마 전 FC서울에 고요한 선수가 아킬레스건이 끊어져 수술을 받았다. 이 경우에는 수술밖에 방법이 없나.
"힘줄이 끊어져 버리면 수술로 붙여야 한다. 타미는 수술을 하고도 염증이 아물지 않으면 쓸 수 있다."
ㅡ 타미 시술을 받고 드라마틱하게 상태가 좋아진 선수도 있었나.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은퇴를 준비하던 국내 여자축구 선수가 타미 시술 후 완전히 회복돼, 구단과 재계약을 한 사례도 있다. 타미는 시술 후 2주 정도만 휴식하면, 재활 없이 곧바로 복귀할 수 있기 때문에 선수들이 특히 선호한다."
ㅡ 타미를 시도한 계기가 궁금하다. 일본에서 개발된 시술법이라고 들었다.
"타미는 일본의 오쿠노 유지 영상의학과 교수가 개발한 기법이다. 군의관으로 있던 2016년 유지 교수가 한국에 초청돼 팔꿈치 시술 강연을 하는 것을 봤는데, 흥미를 느꼈다."
ㅡ 국내에서 시행하는 타미와 일본식 타미와 차별점은 있나.
"시술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 얼마 전 학회에서 유지 교수의 시술법을 봤다. 과거의 방법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더라. 내 경우에는 색전물질을 넣는 방식이나 혈관 접근 방식도 개선했다. 색전물질도 여러 가지를 조합해서 시도한다."
ㅡ 색전물질도 종류가 있나.
"색전물질은 혈관을 막는 약이다. 관건은 혈관을 막는 시간이다. 혈관을 영구적으로 막으면 조직이 괴사(壞死)하지 않겠나. 하지만 혈관을 막는 시간이 너무 짧으면 타깃으로 한 염증을 잡지 못한다. 그래서 타깃 부위에 따라 짧게는 2~3시간, 길게는 2주 정도 혈관을 막아서 그 부위 염증을 없앤 후, 저절로 녹아서 없어지도록 해야 한다."
ㅡ 색전물질은 주로 수입을 하나.
"국내 기업이 개발한 제품을 쓰고 있다. 올해 들어 (국내 바이오벤처인) 넥스트바이오메디컬과 피엘마이크로메드(PL Micromed) 의뢰로 이 회사들이 개발한 색전물질로 타미를 시술한 사례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쓰이는 색전물질은 항생제 용도로 쓰였던 것을 변환해 쓰는 형태인데, 이런 물질은 내성 문제 때문에 (글로벌 시장에서는) 허가가 나지 않는다. 이런 단점을 보완한 것이다."
ㅡ 미국 유럽에서도 타미 시술을 하나.
"미국, 유럽, 호주에서도 한다. 다만 이 국가들에서는 (항생제 내성 문제 때문에) 영구적으로 녹지 않는 색전물질을 주로 쓰고 있다. 그래서 환자들의 부작용이 좀 심한 것으로 안다."
ㅡ 그렇다면 항생제가 아니면서도 녹는 색전물질 개발에 관심이 클 수 있겠다.
"최근 글로벌 대형 의료기기업체인 메리트메디칼의 홍콩 지부장 요청으로 줌 회의를 했다. 국내 바이오벤처가 개발하는 물질을 눈 여겨 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ㅡ 요즘엔 어떤 환자들이 많이 오나.
"최근에는 만성 족저근막염으로 내원하는 환자가 많다. 족저근막염은 기존의 방법으로 정말 치료가 어렵다. 오죽하면 '편한 신발 신으라'가 처방전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족저근막염의 경우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미세 타격을 해야 하는데,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일본식 타미와 한국식 타미의 가장 큰 차이다."
ㅡ 그나저나 타미를 개발한 오쿠노 유지 교수는 어떤 분인가. 대학병원 의사인가.
"지금은 개원의다. 일본에 대형 클리닉 병원을 전국 각지에 두고 있다. 구글로 검색만 해도 나온다."
구글에서 오쿠노 유지(Okuno Yuji)를 검색하면 '오쿠노(奥野) 클리닉' 사이트로 연결된다. 2006년 게이오 의대를 졸업한 유지 원장은 같은 대학 영상의학과 전문의를 딴 후 2017년 요코하마에서 통증 전문 병원을 열었다. 그렇게 연 오쿠노 클리닉은 개원 5년 여 만인 현재 도쿄, 오사카, 삿포로 등에 9곳의 분점을 두고 있었다.
이 곳의 시술 비용은 내국인 외국인이 달랐다. 내국인은 통풍 주사 3만엔(약 2만 9000원)에서 아킬레스건 양쪽 시술 37만9500엔(약 367만원)까지 다양했는데, 외국인은 종류와 상관없이 무조건 1만 달러(약 1243만원)였다.
양지병원은 건강보험(건보) 적용을 받지 않는 새로운 기술이기 때문에 홍보 차원에서 낮은 가격을 책정했다고 한다. 타미 문의가 쇄도해도 하루에 한두 명의 환자만 받는다"라며 "재료비도 안 남는다"고 웃었다.
타미는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신의료기술로 등재를 신청한 상태다. 신의료기술로 등재되면, 건보 적용도 가능해진다. 이 과장은 "타미의 장점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며 "그러면 더 많은 사람이 만성 통증에서 해방될 수 있지 않겠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