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진료가 당분간 허용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약 배달에 무게를 두고 약국을 차린 거죠."
20일 오후 서울 강북의 비대면 약 배송을 전문으로 하는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A씨는 '조제약 배달 약국'을 개업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그는 "비대면 진료로 연세가 많은 어르신 환자들이 가장 많은 혜택을 봤다"며 "이런 형태의 약국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경기도에서 운영하던 약국을 접고 서울로 왔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비대면 진료가 앞으로 허용되리란 기대가 커진 가운데, 병원에서 처방전만 받아 약을 배달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약국이 생기고 있다. 이날 찾은 이 약국은 4차선 대로변 중소형 빌딩 3층에 있었다. 빌딩 밖에 약국 간판은 없었다.
그 대신 3층 사무실 앞에 '약국'이라는 작은 명패가 있었다. 약사 A씨는 "원격진료 처방전을 받아 조제한 약을 배달하는 일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건물 외벽에 굳이 간판을 달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요즘엔 방문 고객도 스마트폰으로 지도 앱(애플리케이션)을 보고 찾아온다"고도 했다.
이 약국 인근에는 대형 제약 유통사 물류센터가 있다. 유통센터가 근처에 있어 필요할 때 약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약국 한쪽에는 배송을 기다리는 조제약 포장 봉투가 10개 정도 쌓여있었다. 약사는 "최근 확진자가 줄면서 처방전도 줄었다"며 "비대면 진료 허용이 끝나면 다른 곳으로 옮겨서 개국할 생각이다"라고 했다.
약국에 있는 길이 4m, 높이 2m 정도의 선반은 약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약사는 일반약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95% 이상 조제약이고 일반약은 거의 없다"며 "조제약 배달을 주력으로 하는 약국이란 사실이 알려지자 대형 제약 유통사가 공급을 끊었다"고 말했다. 그는 "약사회가 압력을 넣은 것 아니겠느냐"라며 "불법도 아닌데 너무 힘들다"고 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가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체를 직접 방문하는 등 관련 규제 완화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이런 형태의 약국과 병원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서울시약사회에 따르면 서울 안에 이런 형태의 약국 몇 곳이 영업 중이다. 서울 영등포구 아산케이의원은 닥터나우 등 비대면 진료 플랫폼과 제휴를 맺고 비대면 진료 환자만 받는다.
하지만 대한약사회 등 약사업계가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전날 대한약사회는 비대면 진료 대응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한시적 허용방안 고시 폐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지역 약사회 관계자는 조제약 배달 약국에 대해 "기회주의"라며 "환자들에게 미칠 부작용이 크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