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전 세계에 유행하기 직전인 지난 2019년 1월 영국에서는 쇼핑몰의 ‘건강지수’와 관련한 연구가 발표됐다. 런던 주요 쇼핑몰마다 건강 검진소를 두고 방문객들의 혈압 등을 측정했더니, 런던 근교의 대형 할인점 방문객은 소규모 상점이 늘어선 런던 도심 번화가(하이스트리트) 방문객과 비교해 혈압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쇼핑몰 특성에 따라 방문객들의 건강 상태가 확연히 달랐다는 것이다. 이 연구를 계기로 영국에서는 쇼핑몰 순위를 매길 때 ‘건강’도 척도에 넣는다고 한다.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 ‘로디(ROTHY)’를 개발한 지아이비타 이길연 대표는 이런 영국 사례를 언급하며 “앞으로 쇼핑몰과 디지털 헬스케어의 결합이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디지털 헬스케어가 ‘병원’과 ‘환자’ 중심으로만 논의됐다면, 앞으로는 일반 건강 관리 분야로 빠르게 확장될 것이란 뜻이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암병원 진료센터장인 이 대표는 3년 전 벤처 회사를 창업해 ‘로디’를 개발해 냈다. ‘로디’는 스마트워치와 연결해 사용하는 개인 맞춤형 헬스케어 애플리케이션(앱)이다. 스마트워치를 통해 수집된 개인 정보를 인공지능(AI)이 분석해 사용자가 고쳐야 할 생활 습관을 알려준다. 로디는 지난해 삼성전자 한국총괄에서 우수 비즈니스 모델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대표는 “디지털 헬스케어를 치료의 개념이 아니라 ‘관리’의 개념으로 접근하면 시장이 훨씬 넓어진다”고 말했다. 지아이비타는 삼성전자 외에도 보험, 통신, 대형 유통업체와의 협업도 추진 중이다. 사업 범위가 넓어지면서 투자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SK증권이 주관기관으로 참여한 시리즈A 투자에서 45억원을 유치한 자아이비타는 올해 추가 후속 투자 유치도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지아이비타를 통해 지난달 경희의료원에 연구기금 1억원을 쾌척하기도 했다.
이 대표를 지난달 14일 서울 강남역 인근 지아이비타 본사 회의실에서 만났다. 올해 사업 계획을 묻는 질문에 이 대표는 익숙한 자세로 백팩에서 노트북을 꺼내더니, 회의실에 있는 TV 화면과 연결했다. 노트북에는 오렌지색 ‘지아이비타(GIVITA)회사 로고 스티커가 여럿 붙어 있었다.
一 삼성전자과 협업한 ‘로디’에 대해 설명해달라.
“스마트워치로 건강 개선에 필요한 사용자 정보를 얻어내서 생활 습관을 고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수면관리인데, 수면 패턴 정보를 통해 수면무호흡증을 바로 잡아낸다. 갤럭시워치(갤워치) 인바디 기능으로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근육 감소를 잡아낼 수 있다. 내 몸에 문제가 생겼을 때 갤워치가 디지털 진단을 통해 병원 내원을 권고하는 식이다. 여기에 ‘리워드 프로그램’을 두고 있다. 소비자들이 앱을 이용해서 좋은 생활습관을 갖게 되고, 삼성전자는 반대급부로 좋은 유저 경험을 얻게 된다.”
一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받게 되나. 어떤 기능이 인기가 있나.
“국내 39세 이상 성인 4명 중에 1명은 당뇨 전 단계(경계성 당뇨)라고 한다. 이런 경계성 환자는 살부터 빼야 한다. 앱에 5㎏ 감량을 목표로 설정하면, 첫 1~2주는 별다른 지시 없이 생활습관을 관찰하게 된다. 그 후에 ‘아침마다 걷네요. 거기서 10분씩 더 걸으세요. 당신이 똑같이 먹는다고 가정할 때, 아침 10분 걷기만 해도 한 달에 0.8㎏씩 6개월 안에 5㎏ 감량할 수 있어요’라고 제안하는 식이다.”
一 그렇게 한다고 진짜 살이 빠지나.
“내가 경험자다. 이걸 하고 3년 동안 10㎏을 감량했다. 한달에 0.5㎏씩 특별히 한 것 없이 앱이 제안한 대로 조금씩 더 움직였더니 빠졌다. 40~50대는 이런 생활습관 관리가 필요하다.”
一 기계가 제안한다고 다 따르는 건 아니지 않나.
“물론 말을 듣고 안 듣고는 개인 책임이다. 그래도 현재 상황을 알려주는 데 의의가 있다. 지인들에게 로디를 나눠줬더니 두 가지 반응이 오더라. ‘내가 이렇게 뚱뚱해?’와 ‘이렇게 하면 진짜 살 뺄 수 있니?’였다”
一 그래도 ‘건강 관리’라는 건 귀찮은 일이다.
“그런 ‘귀찮은 일’을 덜어주는 게 로디가 하는 일이다. 수면장애가 있는 경우 수면일지를 써야 하는데, 갤워치를 차고만 있으면 데이터가 자동으로 축적된다. 움직이는 것 먹는 것도 여러 솔루션이 있다. 앞으로 혈당 같은 것도 스마트워치로 측정 가능한 시대가 올 것이다. 지금도 채혈하지 않고도 혈당을 가늠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돼 있다. 갤워치는 의료기기가 돼 가고 있다.”
一서울시에서 스마트밴드 5만개를 보급하는 ‘건강 사업’과 어떤 차별점이 있나.
“기계 자체가 다르다. 서울안심워치는 보급형 스마트밴드다. 염가의 보급형 모델은 6개월 이상 착용하는 사용자가 10명 중 2명도 되지 않는다. 반대로 고가의 스마트워치를 착용한 경우 2년 착용률이 92%에 이른다. 사람들에게 ‘건강을 위해서 스마트 워치를 사라’고 하면 안 산다. ‘예쁘고, 멋있어 보여서 스마트워치를 구입했는데, 부수적으로 건강도 좋아지더라’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래서 ‘갤워치’가 필요하다. 삼성전자와 협력도 이런 접근이 주효했다.”
一 삼성전자와 협업한 계기가 궁금하다. 누가 먼저 협업을 제안했나.
“우리가 먼저 찾아갔다. 이 회사에는 삼성 출신이 많다. 전진욱 부사장(CSO, 최고전략책임자)는 삼성전자 출신이다. 전 부사장은 해외영업만 20년 했다. 삼성전자를 찾아가서 취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우리가 단순히 앱 유통으로 돈 벌고 나갈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설득했다.”
一 디지털 헬스케어로 수익 창출이 되나. 의료는 매우 보수적인 분야다.
“많은 의사가 디지털 헬스케어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 맞다. 지금 당장은 의사, 병원, 보험 환자 위주로 디지털 헬스케어가 돌아간다. 이렇게 보면 새로운 사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 하지만 큰 그림을 그리고 접근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一 어떤 기회가 있단 건가.
“환자가 아니라, 잠재위험군을 타깃으로 잡아야 한다. 우리나라 성인 4명의 1명은 당뇨전단계라고 했다. 삼성생명을 예로 들면, 이 회사 보험 가입고객 800만명 가운데 200만명은 당뇨전단계로 관리가 필요한 잠재적 위험군이 된다. 이런 사람을 디지털 헬스케어로 관리하면 보험사는 손해율이 떨어져 이득이 되고, 나아가 이런 단계의 고객을 관리하는 보험도 만들 수 있다.”
一 어떤 보험 상품이 있을 수 있나.
“보험 상품에 건강 관리 인덱스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험 가입자에게 갤워치를 주고, 생활습관을 개선한 것이 수치로 확인되면, 보험료를 깎아주는 식이다. 자동차보험의 경우에 안전운전을 하면 보험료를 깎아주지 않나.
이 밖에 통신사 요금제에 헬스케어 서비스를 녹일 수 있다. 헬스케어 서비스를 사용자에게 유료로 직접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통신사 프리미엄 요금제에 끼워 파는 식이다.”
一 국내 대형 유통업체와도 협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들었다.
“영국에서 공간의 ‘워커빌리티(walk+ability)’ 연구를 많이 한다. 걸을 수 있는 쇼핑가가 있는 지역의 주민은 만성질환이 적다는 연구가 있다. 그러니 걷기 좋은 공간을 둔 백화점은 건강(healthy) 쇼핑센터라는 식이다. 국내의 모든 대형 유통업체들이 비슷한 포트폴리오를 짜고 있는 것 같다.”
一 ‘헬시(건강)한 백화점’이라니 새로운 개념이다.
“아주 신개념은 아니다. 작년 국내에도 ‘도심 속 힐링’을 콘셉트로 개장한 대형 백화점이 있다. 이것도 크게는 헬스케어가 결합된 개념이다. 이렇게 걷기 좋은 쇼핑 공간에 디지털 헬스케어 개념을 도입해 구매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우리 구상이다. 예를 들어 갤워치 사용자가 최근 6개월 동안 조깅을 했다면, 사용자가 백화점에 들어섰을 때 나이키 매장을 알려주면서 ‘새 운동화가 필요해’라고 알려줄 수 있다. 국내에서 백화점은 ‘오프라인’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해외에는 이렇게 온라인과 접점을 가져가는 하이브리드 매장이 많다.”
一 새롭게 개발하고 있는 앱이 있나.
“내 주변에 산책할 만한 곳을 추천해 주는 스마트폰 앱을 개발 중이다. 스마트폰만 있어도 얼마나 걸었는지 얼마나 빠르게 걸었는지 측정할 수 있다. 빨리 걷는 것은 깊은 수면에도 도움을 준다. 이를 스마트워치와 연동하면 ‘이 정도 걸었을 때 수면의 질이 가장 좋다’고 제안할 수도 있을 것이다.”
一 현직 대학 병원 의사인데, IT 기업을 창업한 계기가 있나.
“새로운 걸 좋아하고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환자를 보면서, 기존의 치료만 갖고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털 헬스케어로 이 문제들을 해결해보고 싶었다. 경희의료원 암병원 개원 실무 작업도 내가 했다. 이후 신촌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국립암센터등과 협업해 유방암 알고리즘도 만들어냈다. 그 때 자신감이 붙어서 ‘회사를 차려서 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그건 다 착각이었다. (기업 경영은) 정말 힘들다.”
一 어떤 점이 가장 어려운가. 차기 정부에서도 K-바이오 육성을 내걸었다.
“정부 주도 지원금을 늘리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신용보증기금과 중소기업진흥청에 지원금 프로그램이 있다. TIPS프로그램(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지원)도 있다. 물론 이런 정부 지원 프로그램은 신청만 한다고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투자금을 받으려면 이 정도 경쟁은 뚫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대신 민간 투자를 어떻게 받는지 좀 가르쳐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다.”
一 투자자를 상대하는 것이 쉽지 않았나.
“투자자들은 일단 ‘이 사업은 안돼’라는 생각을 깔고 사람을 만난다. 투자 심사역들도 백인백색이다. 한번은 건축하는 사람들이 여유자금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건축가 모임을 소개 받아 투자 설명회를 했다. 건축가 몇십명이 모인 식당에 찾아가 벽면에 걸린 TV에 USB를 연결해 프리젠테이션(PT)을 했다. 그런 PT를 100번도 넘게 했다.”
一초반에 좌충우돌했을 것 같다.
“모 증권사 투자 심사역이 ‘회사에 팀은 있어요’라고 묻는데, “투자금 주면 팀 만들게요”라고 당당하게 답했다가 거절을 당했다. 그렇게 경험을 쌓아서 여기까지 왔다. 내가 뭐 태어날 때부터 사업가는 아니었지 않나.”
一 그렇게 모든 돈으로 경희대의료원에 1억원을 쾌척했다. 이유가 있나.
“교수 신분을 유지하면서 내 사업을 하고 있다. 병원에 할애할 시간을 떼서 내 사업을 하는 것이니까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5%에 해당하는 회사 주식을 병원에 기부했고, 따로 얻는 수입의 20%를 병원에 내려고 한다. 1억원은 시작이고, 목표는 매년 두배씩 기부금을 늘릴 생각이다. 그러면 돈을 열심히 벌어야 한다.”
一 최근 시리즈A투자를 성공적으로 마친 것으로 알고 있다.
“SK증권이 주관기관으로 참여해서 45억원 투자를 받은 건 맞다. 하지만 시리즈A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달 안에 후속 투자가 예정돼 있다.”
一 투자금은 어떻게 활용할 계획인가.
“훌륭한 인재를 뽑는데 쓰려고 한다. 실력 있는 개발자가 더 있어야 한다. 올해 삼성에서 데이터가 엄청나게 들어온다. 거기에서 의미 있는 정보를 이끌어 내려면 준비를 미리 해 놔야 한다. 인재 채용을 위해서 최상의 개발 환경을 추구했다. 삼성에서 주는 데이터는 물론이고, 병원 데이터를 얻는 것도 걱정할 것 없이 충분하게 있으니 인재들이 지원을 해 줬으면 좋겠다.”
이 대표는 인재 채용을 위해 회사 사무실도 강남 한복판으로 이전했고, 개발자들이 선호하는 환경과 문화를 구축했다고 말했다. 강남대로변에 위치한 사무실에는 각 층마다 개별 전화부스를 두고 있었고, 바깥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통창의 휴게실에는 안마의자와 빈백이 널찍하게 구비돼 있었다.
一 인재 영입에 성과는 좀 있나
“성과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대기업이나 훨씬 잘나가는 스타트업에 있던 사람이 우리 회사로 속속 합류하고 있다. 최근에는 AI 관련 학계 교수님을 접촉하고 있다. 지금은 자문을 받는 수준이지만, 아예 회사에 모실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훌륭한 인재들이 점점 우리 회사의 매력에 빠지고 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