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정다운

올 들어 경영에 손을 떼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늘었다. 오너가(家) 경영 참여에도 실적이 지지부진하자 전문경영인을 앞세워 돌파구를 찾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31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올해 주총에서 안국약품, 보령제약, 부광약품, 경동제약, 한미사이언스, 제넥신 등이 대표이사를 변경했다.

경동제약은 최근 김경훈 CFO(최고채무책임자)를 대표이사로 선임하면서 5년 만에 오너 단독경영 체제가 막을 내렸다. 김 CFO가 대표에 오르면서 경동제약은 오너 2세인 류기성 부회장 단독대표 체제에서 류기성·김경훈 각자대표 체제로 변경됐다.

앞서 경동제약은 2017년 창업주인 류덕희 회장과 류기성 부회장 공동대표를 맡으면서 오너 경영 체제로 들어섰다가, 작년 6월 류 회장이 사임하면서 류 부회장 체제를 이어왔다가 이번에 전문경영인을 들인 것이다.

안국약품은 오너 1,2세가 동시 퇴진했다. 어준선 회장과 장남인 어진 부회장이 대표이사에서 물러나고, 원덕권 사장이 대표에 올랐다.

한미약품그룹의 지주회사 한미사이언스는 창업자인 고(故) 임성기 회장의 아들인 임종윤 대표가 경영에서 물러나면서 임 회장의 부인인 송영숙 회장의 단독 대표이사 체제로 변경됐다.

그동안 한미사이언스는 모자 관계인 송 대표이사 회장과 임종윤 대표이사 사장이 각자대표 체제로 이끌어왔으나, 사내이사 임기가 만료된 임 대표의 재선임 안건이 정기 주주총회에 상정되지 않았다. 임 대표는 지주사 경영에서 손을 떼지만 한미약품 사장직은 유지한다.

제넥신은 창업주인, 성영철 회장은 이사회 의장 자리를 내놓고 다국적제약사 출신의 사외이사 닐 워머를 신규 대표이사로 선임해, 우정원 사장과 함께 각자 대표이사 체제를 꾸렸다.

창업주들이 한발 물러난 기업들의 실적은 대체적으로 지지부진하다. 경동제약의 작년 영업이익은 157억원으로 전년(245억)에서 급감했다. 매출은 지난 2019년부터 3년 동안 1700억원대으로 정체된 상태다.

안국약품의 작년 매출은 전년보다 14.1% 증가한 1635억원, 영업이익은 5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하지만 이런 경영성과는 코로나19 유행에 따른 기저효과에 가깝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최근 2년 동안 이 회사 대표 품목인 진해거담제 시네츄라의 처방 실적은 급감했다. 이 회사의 지난 2015년에만 해도 연매출이 1952억원에 달했다.

제넥신의 작년 매출은 368억원으로 설립 이래 최대 실적을 냈지만 관계사 지분법 손실로 44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면역항암제 기술이전수익(약300억원)이 80% 이상을 차지했다.

다만 한미사이언스의 실적은 나쁘지 않다. 한미사이언스의 작년 매출은 1조2061억원, 영업이익 1274억원, 순이익 811억원을 기록했다.

회사 측은 "오너가의 사내이사 비중을 줄여서 선진 경영 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송 회장이 대표이사 직위를 유지토록 해 책임경영을 구현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다만 젊은 오너가(家) 3세를 전면에 내세운 제약사들도 있다. 보령제약은 창업자 김승호 회장의 손자 김정균 대표가 새롭게 대표이사에 올랐다. 보령제약은 작년 매출액 6272억원, 영업이익 414억원으로 전년 대비 소폭 늘었다.

한독 3세인 김동한 경영조정실 상무와 대원제약 고(故) 백부현 회장의 손자 백인환 마케팅본부장은 각각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한독은 작년 매출액 5176억원, 영업이익은 280억원으로 전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편 부광약품은 이우현 OCI 부회장이 신규 대표이사로 선임되며 이우현·유희원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변경됐다. 이는 석유화학·태양광 기업 OCI가 부광약품 지분 약 773만 주를 1461억원에 취득해 최대 주주가 된 때문이다. 부광약품 창업주 김동연 회장은 2대 주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