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인수위원장이 21일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열린 제1차 코로나비상대응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마친 후 참석자들에게 박수를 받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방역당국이 코로나19 항체양성률 표본조사에 나서기로 한 것은 최근 60세 이상 고령층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4차 백신 접종을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백신에 대한 국민적 피로도가 쌓이고, 방역패스 전면 중단으로 접종 동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4차 접종을 독려하려면 그에 합당한 근거를 국민들에 제시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인수위는 전국민의 '항체양성률'을 조사하면 백신이 필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계획을 세우면 백신 접종에 반대하는 국민들도 설득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정부는 60세 이상에 대한 4차 접종 필요성은 낮다면서도, 고령층 감염자 확대 추세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고재영 질병관리청 대변인은 29일 비대면 백브리핑에서 "고령층 확진자 수가 정점기와 비교하면 줄어들긴 했지만, 전체 감염자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이 18% 가까이 될 정도로 높다"고 말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3월 4주차 하루 평균 확진자는 34만8952명으로 직전 주(3월 3주차40만2401명)와 비교해 13.2%가 줄었다. 반면 60세 이상 확진자 비중은 계속 늘고 있다. 3월 4주차 60세 이상 확진자 비중은 18.4%로 오미크론 유행 초기인 지난 1월 25일 수치인 7.1%과 비교하면 2배가 넘는다.

고 대변인은 "고령층의 3차 접종 이후 시간이 경과하면서 감염 예방 효과가 감소했고, 이 때문에 감염도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60세 이상 고령층은 작년 12월 3차 접종을 받았는데, 4개월 이상 시간이 지나면서 백신 효과가 떨어지는 것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의료계에서는 4차 접종 얘기가 나온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정부가 면역저하자, 요양병원 시설 입원·입소자 등 180만명을 대상으로 4차 접종을 진행 중인데, 고령층 감염 비중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이는 고위험군에 대한 4차 접종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감염은 개인 면역력 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에도 영향을 받는데, 최근 고령층 확진자 비중이 늘어난다는 것은 해당 연령대에 바이러스를 뿜어내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뜻"이라고도 말했다.

전파력이 강한 '스텔스 오미크론(BA.2)'이 우세종으로 자리잡으면서 감염 환경이 악화됐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앞으로 4개월간 하루 몇 십만명에 달하는 확진자가 계속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선제적으로 4차 접종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지금 당장 4차 접종을 전국민으로 확대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4차 접종이 감염 예방효과가 있다거나, 중환자, 사망자가 유의미하게 줄어든다는 연구는 아직 없다. 60세 이상 전국민 4차 접종을 실시한 이스라엘에서도 4차 접종이 오미크론 전파를 차단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정기 고려대 약학대학 교수는 "4차 접종의 효과가 탁월하면 4차 접종을 추진하는 것이 맞지만, 명확한 과학적 데이터가 적다"며 "이런 상황에서 4차 접종을 당장 추진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4차 접종을 실시 하려면) 우리 정부가 자체 실험을 통해 효과를 검증하거나 해외 데이터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백신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도 고려할 부분이다. 천은미 이대 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백신이 오미크론 감염을 막지 못한다는 것으로 나타났고, 단기간에 3차 접종까지 이뤄지면서 피로도가 쌓였다"며 "현재 확산세가 정점 구간을 지나서 감소세에 접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인수위에서는 백신에 대한 국민적 피로도는 낮추고 신뢰도는 높일 방법으로 '항체양성률' 조사를 꺼내들었다. 인수위 관계자는 "4차 접종을 실시하려면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며 "3차 접종도 국민들이 잘 따라줘서 다행이지, 기반 데이터 없이 막무가내로 추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3차 접종 이후 4차 접종을 맞기 전에 사람들의 항체가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 항체가 오미크론을 막아주고 있는지, 중증화와 사망을 막아줄 수 있는지 그런 데이터들을 뽑아서 국민들에게 공개하면 4차 접종 계획도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조건 백신 맞으라'가 아니라 국내에 축적된 연구 결과를 공개하면, 국민들이 접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율권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기 교수도 "4차 백신을 맞아도 오미크론 감염 전파 차단이 어려운 것은 맞지만, 백신 접종으로 항체가가 높아지는 것 역시 사실"이라며 "추후 어떤 변이가 등장할지 알 수 없는 만큼 희망에 따라 자율적으로 4차 접종을 할 수 있도록 기회는 열어둬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