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진자가 주말을 끼고 나흘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지만, 약국의 감기약·해열제 등 공급난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미 제약사에 감기약 생산라인 추가를 요청하고, 24시간 공장 가동을 독려한 상태다. 그러나 제약 산업 특성상 생산량을 단기간에 큰 폭으로 늘리기 어려운 상태인데다, 감염을 우려한 일부 소비자들의 감기약 사재기로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 식약처장 차장, 감기약 공장 현장 방문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따르면 김강립 처장은 21일 오후 충북 진천에서 해열진통제 등 감기약을 생산 중인 대원제약 공장을 방문했다. 대원제약은 어린이 감기약 '콜대원' 등을 갖고 있다. 김진석 식약처 차장은 오는 22일 삼일제약 안산 공장을 방문한다. 해당 공장에선 어린이 해열진통제 '부루펜'을 제조한다. 콜대원과 부루펜은 대표적인 어린이 감기약 브랜드다.
김강립 처장과 김진석 차장이 현장 방문에 나선 것은 일선 약국에서 어린이 감기약이 장기간 품귀 현상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식약처는 제약사에 코로나19 증상 완화 의약품 생산을 늘려달라고 요청하고, 고용노동부를 통해 관련 공장의 주 52시간 근무 의무를 일시 해제하도록 했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서울 종로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 약사는 "약이 들어와도 하루 이틀이면 전부 팔려서 감기약 진열대가 텅 빈다"고 말했다. 약사들은 도매상에 감기약을 최대치로 주문하지만 나오는 물량 자체가 적다고 한다. 약을 찾는 사람도 너무 많아 물건은 들어오는 족족 품절되는 상황이다.
감기약, 해열제와 같은 의약품은 자가검사키트, 마스크처럼 생산량을 단기간에 늘리기 어렵다. 생산량을 늘리려면 GMP(의료기기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원료, 제조 공정, 생산을 다 점검해야 한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지난 2년간 마스크 쓰기 생활화 등으로 감기 환자가 급감하면서 감기약 수요가 크게 줄었고, 제약사들은 생산 설비를 대거 축소했다.
◇ '공급'보다는 공포심에 따른 '사재기'가 문제
제약사들은 정부의 요청에 생산 설비 재조정으로 공급량을 늘리고, 주·야간 철야 근무와 주말 특별 근무를 동원해 제조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대원제약은 경기 화성 향남에 있는 옛 공장 설비 일부를 콜대원 생산으로 전환했다. 동아제약은 생산 설비 재조정으로 어린이 해열제 '챔프' 생산량을 1.5배 늘렸다.
하지만 제약사들은 생산 설비 확충은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제약사 관계자는 "오미크론 확산세가 정점을 지나며 코로나19가 엔데믹(풍토병) 단계에 들어설 것을 고려하면 현시점에 생산 설비를 늘리기는 부담스럽다"며 "당장에 수요가 늘었다고 공장을 지은 게 나중에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애물단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당장의 공급난은 '공급' 자체보다는 공포심에 따른 '사재기'가 문제인 만큼 수요를 줄여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서울 송파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김모 약사는 "최근 감기약 등을 사러 온 손님을 보면 당장 아파서 필요하다는 사람이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의약품 공급을 늘리는 속도보다 사재기 수요 속도가 훨씬 더 빠르다"며 "약에 대한 가(假)수요가 있는 한 공급난은 계속될 것이란 내부 분석 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당장 약이 필요한 사람이 약을 구하지 못한다"며 "시민의식을 발휘해 필요한 만큼만 약을 구매하길 당부한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국내 제약사의 감기약 판매량은 급증세다. 올해 1~2월 삼일제약 부루펜(시럽형, 알약형)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0% 넘게 늘었고, 대원제약의 콜대원도 같은 기간 판매량이 200% 이상 증가했다. 한국얀센 '타이레놀', 동아제약 '판피린' 먼디파마 '베타딘' 등의 판매량도 크게 느는 추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