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형 아이쿱 대표가 지난달 15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자신이 개발한 의료기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김명지 기자

호랑이를 잡을 것이냐, 아니면 먹힐 것이냐. 지난해 3월 만성질환 플랫폼 개발 벤처 회사 ‘아이쿱(ikoob)’ 조재형 대표는 서울 여의도 파크원 31층을 찾았다. GC녹십자홀딩스 자회사인 유비케어 사장실 앞. 조 대표는 이날 이 회사 이상경 대표와 투자 설명회가 약속돼 있었다.

직원들은 조 대표를 마지막까지 붙잡아 세웠다. 대기업인 녹십자에 ‘기술 베끼기’를 당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직원들은 녹십자가 회사에 투자할 것처럼 불러서 기술 설명을 듣고 관계를 끊어 나중에 비슷한 플랫폼을 ‘독자 개발했다’고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

아이쿱은 의사에게 환자 진료 정보를, 환자에게 의사의 건강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인 ‘닥터바이스’를 갖고 있다. 녹십자는 의원급 병원용 전자의무기록(EMR) 서비스 1위 업체인 유비케어를 인수하며 본격적인 헬스케어 산업 진출을 선언한 터였다.

닥터바이스는 젊은 의사들 사이에선 입소문이 쌓여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 플랫폼을 널리 퍼뜨리려면 의사와 환자를 연결하는 전자의무기록(EMR) 서비스 업체의 도움이 필요했다.

유비케어는 종합병원이 자체 EMR을 쓰고 동네 병원들은 종이차트를 쓰던 시절, 동네 병원 EMR 시장을 개척했다. 현재 전국 3만여개 동네 병‧의원이 있다면 이 중 절반인 1만1500곳이 유비케어 EMR을 쓴다.

조 대표는 유비케어의 동네 병원 네트워크를 발판 삼아 승부를 걸겠다고 결심했다. 대기업의 ‘기술 베끼기’에 당할 것인가, 대기업의 등에 올라탈 것인가. 회사 통장의 잔액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어쨌든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그로부터 6개월 후인 지난해 9월 유비케어는 아이쿱에 82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아이쿱 지분 33%를 가져가는 조건이었다. 이 소식에 국내 주요 대학병원 산학협력단이 술렁였다.

조 대표는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다. 신약 후보물질도 아니고, 대기업이 임상 교수가 창업한 IT벤처에 투자를 한 것은 이례적이다. 녹십자로 끝이 아니었다. 아이쿱은 같은 해 11월 체외진단기기 업체인 아이센스(099190)로부터 20억원을 추가로 투자받았다. 조 대표는 “이 회사를 설립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지난해 설립 이후 가장 역동적 한 해였다”고 말했다.

아이쿱은 의사를 상대로 하는 진료 상담 애플리케이션(앱)인 ‘닥터바이스 클리닉’과 환자를 대상으로 한 ‘닥터바이스 케어’ 앱을 갖고 있다. 환자가 ‘케어’ 앱에 자신의 건강 상태와 생활 습관 등을 기재하면, 클리닉 앱을 쓰는 의사에게 전달되고, 클리닉 앱을 쓰는 의사는 맞춤형 진료 상담을 업로드하게 된다. 이 모든 정보는 공개된다.

아이쿱이 개발하는 닥터바이스 플랫폼 화면. /아이쿱 제공

조 대표는 “닥터바이스를 유튜브나 넷플릭스처럼 전 세계 의사와 환자, 제약사들이 건강 관련 콘텐츠를 올리는 플랫폼으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했다. 조 교수는 “한국에 의사가 1만명, 전 세계 몇백만명의 의사가 있을 것이고, 이런 의사들을 고리로 몇천만명의 환자를 우리 플랫폼에 끌어올 수 있다”고 했다. 조 대표는 내년 1월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인 CES에도 참석하기로 했다. 조 대표를 최근 서울 강남구 본사에서 만났다.

一 녹십자로부터 82억원을 투자받은 것이 화제였다. 창업하는 의사들 사이에서는 ‘대박’이라는 표현도 나왔다. 어떻게 성사된 건가.

“녹십자 자회사인 유비케어의 투자를 받았다. 지난해 3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의료기기·병원설비 전시회 ‘키메스(KIMES) 2021′에서 유비케어 이상경 대표를 만났다. 이 대표가 우리 플랫폼에 관심을 보여 약속을 잡았다. 처음에 ‘사업 설명회’라고 생각하고, 찾아갔는데 이 대표가 ‘차 한잔하자’고 해서 처음엔 낙담했다. 서류가방에 이것저것 얼마나 챙겨 넣었는데.

이 대표가 내 설명을 듣더니 갑자기 부서 실장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투자가 결정됐다. 우리 플랫폼에 유비케어 EMR을 연동하고 싶어서 찾아갔는데, 곧바로 투자 얘기가 나왔다. 일주일 만에 회계실장이 우리 사무실로 찾아왔다. 이후에 몇 번의 프로세스를 거쳐 투자가 발표됐다.”

一 직원들 반응은 어땠나.

“직원들은 처음에 반대했다. 지난해 3월 말 직원들에게 ‘유비케어에 가겠다’고 했더니 ‘우리 플랫폼을 빼앗길 거다’라는 반응이 나왔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기술 베끼기’를 당하지 않나. 아이쿱 같은 작은 회사의 기술은 곧장 베끼기를 당할 거라고 했다.”

一 그런데 결국 가기로 했다. 이유가 뭔가.

“그런 고민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닥터바이스’는 의사와 환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이다. 의사 진료기록이 담긴 EMR과 연동하지 않고는 확장성이 떨어진다. 어차피 한 번은 부딪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 플랫폼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다. ‘녹십자가 곧바로 우리 것을 베낄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10년 동안 구축한 콘텐츠를 다 베끼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一 투자를 받기 전에 회사 상황은 어땠나. 콘텐츠를 인정받을 정도이니 탄탄대로를 걸었을 것 같다.

“그렇지도 않다. (녹십자 투자를 받기 전에) 회사 통장 잔고가 ‘0원’일 때도 있었다. 2018년 아이쿱 클리닉(현재의 닥터바이스 클리닉)을 출시한 후 혈당, 혈압, 몸무게, 이미지 데이터가 쏟아져 들어왔다. 이런 데이터들에는 보안 시스템도 구축을 해야 했다. 정말 머리가 아팠다. ”

一 대학 병원 의사이기도 한데, IT 기업을 창업한 계기가 있나.

“나는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 환자를 다루는 의사다. 예를 들어 당뇨 환자가 오면 ‘생활습관을 고쳐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은 하면서 그 환자의 생활 습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진료라는 것이 2~3분 안에 끝나니까. 그리고 6개월 후에 그 환자를 다시 만나서 똑같은 절차를 반복한다. 모든 의사들이 이런 진료가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했다. 환자 정보를 얻는 데 시간을 쏟을 여유도 방법도 몰랐기 때문이다.”

조 대표는 ‘친절한 의사’ 쪽에 속했다. 그는 환자들이 진료실에 오면 A4 용지에 그림을 그리면서 환자 상태를 설명했다. 한번은 똑같은 사람 장기를 A4 용지에 그리다 보니, 밑그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제약사에 부탁해서 여러 인체 장기 밑그림이 있는 노트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30대 젊은 내분비내과 의사는 그 당시 “이런 장기 밑그림을 책으로 만들어 곳곳에 놔두면 좋겠다” 생각했다고 한다.

一 ‘왜 창업했나’라는 질문에 답은 되지 않는 것 같다.

“2010년 지도교수님이 ‘도대체 왜 회사를 만들려고 하니’라고 물었다. 그 당시 기초과학 교수들은 창업을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환자를 보는 의사가 IT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책 쓰는 것의 연장선 상 입니다’라고 답했다. 책과 플랫폼은 기본적으로 같다. 작은 지식과 정보를 모아서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쓰이게 하는 것이다. 새로운 지식을 잘 쌓아서 사용될 수 있게 만드는 그런 걸 하고 싶다고 말했다. 북을 거꾸로 해서 쿱이 되는 게 나의 ‘와이(why)’였다. 여기 눈 앞에 있는 명함을 마구 쌓으면 쓰레기지만, 잘 쌓으면 작품도 될 수 있다.”

아이쿱이란 회사명은 ‘책(Book)’에서 유래했다. 북을 거꾸로 하면 쿱(koob)인데, 거기에 아이(i)를 붙였다. 조 교수는 의대 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과서를 만들어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책은 영어로도 번역돼 해외에서도 팔렸다. 조 교수는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동화책을 6권 쓴 동화 작가이기도 하다. 조 교수는 자신이 쓴 토끼 동화책을 보여주며 “아내에게 유일하게 인정받은 능력이다”라고 했다.

一 그래서 첫 창업은 ‘출판업’에서 시작했다는 건가.

“하하.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아이쿱을 창업하고, 2013년 미국 스탠포드 의대로 연수를 갔다. 스탠포드를 간 것은 솔직히 실리콘밸리를 경험해 보겠다는 목적이 컸다. (스탠포드대는 실리콘밸리 중심가에 있다.) 매일같이 학교와 실리콘밸리를 왔다갔다 했다. 코트라(KOTRA) 관장의 도움으로 IT업계 지사장들을 두루 만날 수 있었다. 거기서 큰 인생의 변화가 있었다.“

一 어떤 변화인가.

“나는 원래 헬스케어는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원격진료는 그 당시 의료계에서는 ‘금기어’였다. 그런데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 같이 ‘헬스케어 해야 한다’고 했다. ‘현직 의사로 당뇨병을 연구하는 대학 교수이고, IT 업체를 갖고 있고, 국제 학회 활동으로 해외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의사가 세상에 몇 명이나 있겠냐. 당신밖에 없다’고 했다.”

조 대표는 그 당시 스탠포드 앞 마당에서 ‘헬스케어를 해보자’라고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뭘 할까’라고 생각하는데, 그동안 스스로 늘 아쉬워했던 ‘환자 지도’를 디지털화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조 대표는 “변리사를 통해 특허를 알아봤더니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며 “의사가 환자들에게 책을 찢어주는 것은 특허가 안 되지만, 직접 콘텐츠를 제작해 주는 것은 지식재산권(IP)이 되더라”라고 말했다.

一 그렇다면 환자 혈압, 혈당 등 진료 정보를 연결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 냈나.

“이것도 변리사가 도움을 줬다. 의사들이 그리는 그림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변리사가 ‘환자 정보는 안 갖고 오세요?’라고 물었다. ‘환자가 혈당과 혈압을 잰 데이터를 갖고 와서 설명해 주면 안 돼요?’라고 했다. 의사는 환자 진료 데이터를 모으고 그 정보를 기반으로 진료한 내용을 환자에게 주는 것이다. 유레카.”

조재형 아이쿱 대표가 지난달 15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플랫폼 개선 관련 회의 내용들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김명지 기자

一 닥터바이스와 아이쿱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뭐라고 하면 좋을까.

“닥터바이스는 의사와 환자가 중심에 있는 일종의 도시다. 의사와 환자가 쓰는 유튜브이고, 아마존닷컴이다. 아마존도 책 장사에서 시작했다.”

一 의사들이 자기 콘텐츠를 올리는 플랫폼으로 이해하면 되나.

“한국 의사 중에 정말 똑똑한 사람이 많다. 이들은 자기만의 진료 노하우가 있다. 그런 귀한 콘텐츠를 우리 플랫폼에 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아마존닷컴이 좋은 책을 쓰겠다고 하면 안 되고, 얼마나 책을 잘 팔지 생각해야 한다. 여기에 제약사와 의료기기업체는 플랫폼에 있는 의사들에게 약을 설명할 수 있다. 해당 논문이나 자료를 보는 의사들에게 포인트도 쌓아 줄 수 있다. 의사 한 명이 있으면 진료 환자들이 함께 따라온다.”

一 하지만 그러려면 일단 의사들이 닥터바이스를 쓰게 해야 한다.

“시작은 의사가 닥터바이스를 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의사를 잡고 있는 EMR을 잡아야 한다. 그래서 내가 유비케어를 직접 찾아간 것이다. 닥터바이스는 의사와 환자를 연결하고, 유비케어는 병원과 의사를 연결한다. 유비케어를 통해 EMR로 의사와 환자가 한 번 연결되기만 하면 쉽게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고, 그대로 실현되고 있다.”

一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EMR 연동은 어떻게 되는건가.

“당뇨병 환자들은 한 달 동안 혈당 체크를 해서 의사에게 보여주게 된다. 환자들은 저마다 다른 건강 관리 앱을 쓰고, 의사들은 자체 EMR만 본다. 환자가 매일 체크한 혈당 정보는 그냥 쓸모없는 정보로 흘러가고 만다. 그래서 섬(환자)과 섬(의사)을 연결하는 것이다.”

조 대표는 “한국의 지하철이 왜 최고인 줄 아느냐”고 되물었다. 2호선 순환선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2호선은 그물 같이 얽혀 있는 9개 서울 지하철 노선을 한 바퀴 돌며 모든 노선을 연결한다. 그래서 2호선이 끊어진 서울 지하철은 감히 상상하기가 어렵다. 조 대표는 2호선이 되겠다고 했다. 의사를 중심으로 모든 헬스케어의 길목을 잡겠다는 뜻이다.

一 그나저나 닥터바이스라는 브랜드는 어떻게 나왔나.

“지식재산권 연구개발(R&D) 사업 지원을 받았는데, 거기서 닥터바이스를 추천했다. 첫 이름은 ‘위드닥’이었다. 그런데 이미 미국에서 ‘위드마이닥터’라는 앱이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닥터’에 ‘어드바이스’를 더한 ‘닥터바이스’로 하자고 했다. 우린 글로벌로 가야 하니까.”

一 해외 진출도 계획하고 있나.

“미국 시장 조사를 했는데, 아직 이런 구조의 플랫폼은 없는 것을 확인했다. 미국에서는 대학병원을 제외하면 EMR도 잘 안 쓴다고 한다. 한국은 전체 병원의 97%가 EMR을 쓴다. 우리 콘텐츠를 영어로만 바꿔서 미국 의사들이 가입할 수 있게 하면 승산이 있다고 본다. 내년 1월 미국 CES도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조 대표는 “한국 의사가 1만명이 닥터바이스를 쓰고. 이들이 쓰다 보면 전 세계 몇십만명 의사가 쓰고, 이렇게 되면 몇천만명의 환자들이 닥터바이스를 쓰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의사가 신약을 만들어 내고, 희귀 질환을 치료해 내면 주목을 끈다. 하지만 의사 진료는 환자를 만나서 설명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환자들은 ‘의사들이 좀 더 친절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조 대표는 말했다. “특이한 앱을 만들자는 게 아니에요.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의사가 뭐 그렇게 대단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