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 송파구의 한 대형병원 감염관리센터에서 의료진이 음압격리응급실 내부를 정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번호 대기표를 뽑고 (코로나19 확진을) 기다리는 심정이에요."

서울 소재 상급종합병원에 근무 중인 간호사 심나리(가명)씨는 4일 확진 직원의 격리 기간을 줄이고 '음성확인서' 없이도 업무 복귀를 할 수 있도록 한 병원 요청 공문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심 씨는 "코로나 확산세가 퍼져서 일반 병동에서도 (확진자를) 치료할 수 밖에 없게 된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코로나에 감염된 직원의 격리 기간을 줄인다는 건 아예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며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병원에 근무하면서 코로나19에 안 걸리는게 이상하다"라고 말했다.

코로나 환자가 하루 수십만명이 쏟아지고 의료진 확진자가 속출할 정도로 확산이 심해지면서, 코로나 환자를 일반 병동에 입원하도록 허용하고 확진된 의료진의 격리 기간도 줄이는 병원들이 늘고 있다.

의료진의 업무 공백을 채우기 위한 조치라고 하지만 병원 현장에서는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정부 지침은 '의료 인력의 빠른 복귀'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필수 영역, 필수 인력 범위가 다양한 병원 현실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 확진 의료진 격리기간 단축하고 음성확인 절차 없애

병원이 직원들에게 업무 복귀를 요청하는 것은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병원 내 의료진 감염 대비 의료기관 업무연속성계획(BCP)' 지침을 근거로 한다.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가 지난달 병원들에 전달한 BCP 지침에서는 전국 일일 신규 확진자가 5만명 이상이면서 의료 인력이 일정 비율 이상으로 감염돼 격리되면 각 병원이 자체 판단을 통해 '위기 단계' 대응을 시작하도록 했다.

BCP 단계는 1~3단계로 나뉜다. 백신을 3차까지 접종한 후 확진된 의료진이 무증상이나 경증을 보이면 가장 낮은 1단계(대비)에서는 7일 격리, 2단계(대응)는 5일 격리, 3단계(위기)에서는 3일간 격리 후 신속항원검사에서 음성이면 근무에 투입된다. 확진자와 접촉한 의료진도 마찬가지로 신속항원검사에서 음성이면 계속 근무한다. 병원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최근 새로 개정된 지침에서는 '음성' 확인 절차가 없어졌다. 확진자와 접촉한 의료진의 격리 기준도 완화됐다. 위기 상황인 3단계에서는 예방접종을 마치지 않은 접촉자의 경우에도 무증상이라면 매일 신속항원검사를 하지 않고 근무할 수 있다.

서울소재 대학병원인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 고대구로병원, 중앙대병원과 부산대병원 등 대형병원에서는 이미 확진 의료진에 대한 격리를 기존 7일에 5일로 단축하는 BCP를 적용 중이다. 충북대병원은 확진 의료진 격리 기간을 7일에서 3일로 단축했다.

◇ "무책임한 지침…원내 감염부터 막아야"

정부는 병원 재량에 따라 적용하라는 입장이지만 의료현장 일각에서는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의 한 감염병 전담 중소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전문의는 "코로나 최전선인 곳이라서 의료진 스스로 감염원이 되지 않기 위한 업무 피로도가 굉장히 높은 상황"이라며 "격리 일수만 단축해서 무작정 업무에 빨리 복귀하도록 할 게 아니라 의료진 사이의 감염을 막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의료진들은 코로나 확진 후 5일이 지나면 전파력은 떨어진다고 본다. 하지만 3일 격리를 두고는 우려를 표했다. 면역력이 떨어져 감염에 취약한 환자들을 돌보는 의료진이 확진 3일 만에 곧바로 환자를 보는 것은 환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라는 것이다.

의료연대본부 충북지부는 "입원 환자들은 감염에 취약하기 때문에 의료인의 격리 해제 판단은 일반인보다 더 신중해야 한다"며 "확진 의료진의 증상 확인 절차 등도 없이 격리기간을 단축하는 것은 진료공백을 빌미로 환자와 직원 안전을 외면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의 코로나 확산세를 감안하면 BCP 적용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지연 대한감염관리간호사회 회장은 "하루 신규 확진자가 25만 명을 넘어선 상황에서 개학까지 겹치면서 의료현장 수용 상황은 포화 상태를 넘어섰다"며 "의료현장에서 (코로나를) '계절독감'처럼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약사회는 약국도 사회필수시설로 분류되는 만큼 정부에 BCP를 도입해 줄 것을 요구했다. 최헌수 대한약사회 대외협력실장은 "BCP 적용은 감염 위험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비상사태에서 의약품의 안정적 공급을 전제로하기 위한 고육책"이라며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지침을 만들어줄 것을 요구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