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세계적 게임 강국으로 만든 넥슨 창업주 김정주 NXC(넥슨 지주사) 이사가 2월 말 향년 54세에 미국에서 숨졌다. NXC는 1일 “고인은 이전부터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으며, 최근 들어 악화된 것으로 보여 안타깝다”고 밝혔다.
고인을 잘 아는 사람은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최근까지 밝은 모습이었다”라고 전했다. 우울증은 현대인 10명 중 1~2명은 일생에 한 번쯤 걸린다고 할 정도로 흔한 병이다. 세계에서 판매되는 약 순위에서 10위 안에 우울증 치료제가 들어있다.
◇ 우울증 환자 15%는 극단적 선택 시도
‘마음의 감기’라고 불릴 정도로 흔한 병이지만,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병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2015년까지 극단적 선택을 한 121명의 유가족 151명을 조사했더니, 사망자 10명 중 9명이 우울증 같은 정신 건강 문제를 겪었다고 한다. 우울증 환자의 15% 가량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다는 통계도 있다.
우울증이 있으면 심근경색, 뇌졸중, 당뇨병이 걸릴 위험이 1.5~2배 높고, 사망률도 일반인에 비해 약 1.7배 높다고 한다. 우울증이 기존에 있는 신체 질환을 현저히 악화시키기도 한다. 우울증이 동반될 경우 당뇨병에서는 2.3배, 울혈성 심장병에서는 8배 사망률을 높이고, 관상동맥질환 환자는 2년 후 사망률이 2.6배 높다.
우울증은 실직이나 이혼, 사별 등과 같은 상실과 좌절을 경험한 사람이 겪는 ‘심리적 후유증’이다. 선 후 관계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런 정신적 충격과 함께 인체에서 정서와 감정을 조절하는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 등 신경전달물질 체계에 문제가 생긴 것을 우울증이라고 한다.
겨울철 일조량이 감소하면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데, 이는 항우울 효과가 있는 세로토닌 분비는 줄어들고, 정신을 차분하게 하는 멜라토닌 등의 신경전달물질 분비는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우울증의 주된 증상은 매사에 흥미가 없어지고, 무기력해지는 것이다. 사는 낙이 없어지면서 삶의 의미가 사라져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상당수의 환자들은 이런 정서적 증상보다는 소화불량, 두통, 과호흡, 흉부의 압박감, 피로 등 신체 증상을 먼저 호소한다. 그래서 내과나 신경과 등을 찾아가 여러 가지 검사를 받고는 ‘신경성’이란 말을 듣고 정신과에 방문하는 경우가 흔하다. 진료 과정에서도 우울증 환자들은 병 자체를 부정하는 경우가 잦다.
◇ 성급한 일상회복하면 재발... 끈기 있게 보살펴야
사람이 살다 보면 기분이 가라앉거나 우울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심하게 우울한 감정이 2주 이상 계속되고, 가정이나 학교 직장 등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친다면 우울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우울증은 초기에 잘 대처하면 감기처럼 치료하기 쉽다. 새로운 치료법과 약물들이 속속 개발되면서 오늘날 우울증은 치료 가능한 질환으로 분류된다. 약물치료, 정신치료, 집단치료, 인지행동치료, 광선치료 등 다양한 치료법이 있는데, 시간과 효율 측면에서 약물치료가 가장 보편적으로 이뤄진다.
문제는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로 정신 질환에 대한 편견으로 조기에 발견하지 못하거나, 발견하더라도 적극적인 치료를 하지 않아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 사회에서는 우울증을 질병으로 보지 않고, 의지 부족 때문이라고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우울증은 치료를 하더라도 재발이 잦다. 우울증을 조기에 발견해서, 곧바로 치료에 들어가면 재발 가능성도 현저히 떨어지지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여러 번 재발해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기도 한다.
환자가 우울증에서 충분히 회복되기 전에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은 재발을 부추기는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의료계에서는 약물 치료로 우울 증상이 사라지더라도 6개월~1년 정도는 상태를 지켜보고 치료를 유지할 것을 권고한다.
우울증 치료는 환자의 가족들의 자세도 중요하다. 장기적으로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한 병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보살피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섣불리 공감을 표하거나, ‘별 일 아니다’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비난하는 태도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