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만난 신은호 비바시스템즈 전무. /최정석 기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가 있는 비바시스템즈는 지난 2007년 설립됐다. 설립한 지 15년 남짓인데, 고객사만 1000곳이 넘고, 임직원이 5000여명에 이른다. 지난해 매출은 1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비바시스템즈는 생명과학, 제약사의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 시험의 전반적인 과정을 디지털화하는 데 집중하는 인더스트리 클라우드(Industry Cloud) 서비스 업체다. 특정 산업에 특화된 클라우드 서비스를 만든 것은 비바시스템즈가 최초였다. IT업계는 대부분 인수합병을 통해서 성장하는 것과 달리 비바는 플랫폼과 애플리케이션(앱) 모두 자체 개발하는 것도 특징이다.

비바시스템즈의 임상 데이터 관리(Vault CDMS) 시스템은 전 세계 250개 이상의 임상 시험을 운영하고 있다. 품질 제조 분야인 볼트 퀄러티(Vault Quality)에서는 400여곳, 허가 분야(Vault RIM) 고객사도 300개가량 된다. 릴리를 포함한 글로벌 빅파마들이 이 회사의 주된 고객사다.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으로 기존의 대면 임상 시험이 불가능해진 상태에서 비바시스템즈는 자신들의 디지털 임상 플랫폼을 통해 임상 시험의 주체인 제약·바이오 기업, 병원, 환자가 비대면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줬다고 평가받는다. 이러한 성과 덕에 얼마 전 10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덴마크 제약사 레오파마와 전략적 제휴를 맺기도 했다. 현재 레오파마는 신약 개발 전 과정에 비바시스템즈의 디지털 임상 플랫폼을 적용하고 있다.

비바시스템즈는 여전히 제약사 중심으로 진행되는 임상 플랫폼을 적극 개선, 향후 제약사는 물론 피실험자인 환자, 임상을 진행하는 병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디지털 임상 플랫폼을 구축해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1월 26일 비바시스템즈의 신은호 전무를 강남 삼성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서강대에서 생명공학, 전자공학을 복수전공한 신 전무는 올해 43살 나이에 비바시스템즈의 아시아 전체를 총괄하는 전략 파트로 승진했다. 비바시스템즈에서 일본과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관련 사업은 신 전무의 손을 거친다는 뜻이다. 그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디지털 플랫폼 등 새로운 영역에 대한 시장 수요를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一 2016년 비바시스템즈가 한국에 진출한 것으로 안다. 계기가 있나.

“IT업계에서 한국이 아시아의 허브 역할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다. 그래서 IT업계에서는 큰 시장으로 미국, 유럽 그리고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태평양(APAC)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비바시스템즈는 아시아 전체 비즈니스를 총괄하는 지사장이 한국에 있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한국이 기술에 대한 도입 그리고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부분, 활발한 투자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 특히 서울에 있는 병원들이 엄청나게 많은 임상시험을 하는 것도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一 디지털 임상 분야에 어떻게 뛰어들게 됐나.

“국내 제약사를 거쳐 글로벌 제약사와 글로벌 임상수탁기관(CRO)에서 10년 정도를 근무했다. 임상 운영 등에 주로 관여했는데, 그 과정에서 임상에 IT를 접목할 수 있는 부분이 많겠다는 것을 체감했다. 이후 메디데이터를 거쳐 비바시스템즈의 전략 파트로 이직을 했다. 지난해까지는 일본과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태평양 사업을 총괄했고, 올해부터는 아시아 전체 총괄로 비즈니스를 확장하고 있다.”

一 디지털 임상은 기존 임상시험과 어떻게 다른가.

“임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영역마다 요구하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환자는 좀 더 편하게 임상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혈압약을 복용하는 고혈압 환자는 석달에 한 번 약을 받는데, 임상에 참여한다고 2주에 한 번씩 병원에 와야 한다. 여기에 일주일에 한 번씩 채혈해야 하는데 이것도 힘들다. 의사 간호사와도 수시로 소통하고 싶다.

하지만 병원의 의사나 간호사들에게 임상은 주 업무가 아니다. 그러니 의료진 입장에서는 이런 환자 요구를 들어주기 어렵다. 이들은 임상 운영과 단계가 좀 더 단순해지기를 바란다. 예를 들어 임상을 의뢰하는 기업에 따라 문서 양식까지 다 다른데, 이런 것들이 불만이다. 의뢰를 하는 제약사와 CRO는 최대한 짧은 시간에 적은 비용으로 임상을 끝내고 승인을 받기를 바란다. 옛날 제약사들은 약 하나 개발하면 ‘대박’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약을 내놓을지 고민을 많이 한다.

임상 시스템을 설계할 때 직접 환자를 대면할 일은 없고, 병원은 제약사가 원하는대로 수행을 하게 되니 개발에 대한 니즈도 별로 없다. 그러니 환자가 사용하는 시스템, 병원에서 쓰는 시스템, 제약사가 쓰는 시스템이 전부 따로인 경우가 많다. 이렇게 시스템이 따로 놀면, 관련 정보를 다 취합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등 다양한 문제가 나온다.”

지난 1월 2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만난 신은호 비바시스템즈 전무가 자사 디지털 임상 플랫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정석 기자

一 임상 시스템은 임상을 의뢰하는 제약사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제약사는 임상시험으로 신약의 안전성, 유효성을 입증해야 한다. 항암제를 개발할 때는 암세포 수와 크기를 줄이는 것이 중요했지만, 그 과정에서 환자가 겪는 고통이나 경험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같이 살고 싶다’는 삶의 질에 관심을 기울이는 방향으로 치료도 변하고 있다. 결국에 어디에 집중하느냐에 따라서 (과정과 결과가) 달라지게 된다.”

一 뭐가 불편한가.

“환자들이 작성하는 동의서가 대표적이다. 신약 임상 도중에 처음에 발견되지 않았던 이상반응 등 새로운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환자들에게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 수시로 동의서가 업데이트가 된다고 보면 된다. 이런 프로세스를 수시로 지루하게 수기로 받아야 한다.”

一 임상 주체를 연결하면 업무가 훨씬 수월한데, 그동안 왜 이런 시도가 없었나.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비대면 임상과 환자 중심의 임상에 업계 관심이 커진 것은 맞다. 하지만 이런 논의가 최근에 갑자기 생긴 건 아니다. 의료 제약바이오 산업은 다른 산업과 비교해 보수적이다.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기보다 ‘하던 방식대로’를 고수한다.”

一 구체적으로 어떤 시도가 있었나.

“지난 2005년 환자들이 휴대용 장치인 개인휴대단말기(PDA)로 설문지에 직접 답변하는 시스템이 나왔다. 2009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환자들이 병원에 오지 않고, 집 안에서 복용 후 증상 등을 기록할 수 있게 했다. 환자들이 전자화를 요구하자 이후에 일주일마다 병원에 가서 제출하는 게 아니라 병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게 진화했다. 2011년 화이자는 4상 임상(약이 승인을 받고 시판된 이후 환자에 대한 안전성을 확인하는 임상)의 일환으로 앱을 개발해 광고를 통해 원하는 사람이 등록을 하고 환자가 느끼는 그대로를 적도록 했다.”

一 화이자 앱 이후 10년이 넘게 지났는데, 왜 지금에서야 주목받고 있나.

“과거에는 ‘왜 굳이 저걸 해야 될까’라는 생각이 컸다고 한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이전에 쉽게 방문하던 병원을 가려고 해도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아야 한다. 병원의 독립 심사위원회인 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에서 코로나19 관련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 어려워졌다. 코로나19 환자는 병원 내원도 힘들다. 그러자 일부 병원에서는 임상을 중단하자는 말까지 나왔다. 글로벌 설문조사에서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임상을 중지한 곳이 전체 응답자의 50%를 차지했다. 상관없이 임상을 진행한 곳은 20%에 그친다. 그러자 제약사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一 임상시험이 급한 제약사들이 스스로 방법을 찾았다는 건가.

“페이퍼 리스(paperless)로 임상을 진행하면 어디에서든 볼 수 있고, 환자는 병원에 방문하지 않아도 된다. 나아가서 코로나19로 비대면 분산형 임상이 환자 중심의 원격 의료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디지털 임상은 비대면 분산형 임상을 구현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다.”

一 분산형 임상과 디지털 임상은 뭐가 다른 건가.

“개념 자체가 다르다. 디지털화가 되지 않으면 분산형 임상을 하기가 어렵다. 분산형 임상은 환자가 병원에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려면 결국 디지털화가 되어야 한다. 플랫폼들이 점점 커지고 엮이면서 다양한 환경이 구축되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분산형 임상은 디지털 임상의 하위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一 고객사 가운데 가장 큰 회사는.

“워낙 많지만, 덴마크 제약사인 레오파마를 예로 들겠다. 레오파마는 피부 질환 및 혈전 치료제를 개발하고 생산 및 판매하고 있는데, 비바와 디지털 임상 플랫폼에 대한 전략적인 파트너십을 맺었다.”

一 허가 당국마다 프로세스가 차이가 있을 텐데 시스템도 다 다른가.

“그렇다 한국 식약처에 제출해야 되는 문서 리스트, 미국 FDA에 제출한 문서 리스트들이 다 담겨 있다. 국가마다 이미 공표가 다 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 고객들은 한국을 포함해 다양한 국가에 있어서 그것에 맞춰서 모두 준비가 된다.”

一 기업들이 디지털 임상에 넣어 달라는 사례가 있나.

“지난해 초에 국내 많은 제약사가 코로나19 백신 임상을 진행했다. 백신 개발을 하면서 가장 요구되는 것 중에 하나는 전자동의서인데, 이것은 이미 사용되고 있는 게 많다. 하지만 전자동의서는 환자와 직접 소통이 되지 않기 때문에 비대면으로 설명하고 접근하는 플랫폼을 원하는 요구가 컸다.”

一 코로나19 전후로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 자체가 어떤 식으로 바뀌었나.

“임상에 대한 투자에 인식이 좀 많이 바뀐 것 같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임상시험이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 반대였다. 그리고 국내 제약사들이 새로운 신약에 많이 도전하고 있다. 우리 시스템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컨설팅을 요구하는 제약사도 크게 늘었다. ‘비바의 시스템이 좋은 건 알겠는데, 어떻게 써야 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一 코로나 유행이 끝나도 이런 분위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시나.

“단정하긴 어렵지만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다. 최근 고객사 설문에서 코로나와 무관하게 70% 정도의 고객이 향후 1년은 분산형 임상을 유지하겠다고 답했다. 기존 대면 임상의 장점들이 있지만, 비대면이 가진 충분한 장점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 이상으로 얼마나 더 잘할 수 있을지를 고민을 하겠지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一 제도적으로 풀어내야 할 부분은 없나.

“임상이 의료의 영역에 있기 때문에 의료법을 고려해야 한다. 전자 서명 같은 경우에도 환자가 동의서에 전자 서명을 했을 때, ‘이것을 정말 환자가 서명했다고 인정해 줄 수 있는지, 그리고 이 서명을 환자가 직접 서명했다고 보증이 가능한지’ 다양한 질문들이 생긴다. 그래서 어떠한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사실 활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사용이 어렵다.”

一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5~6년 전만 해도 ‘종이에 쓰면 필체 확인이 가능한데 앱을 통해서 전자 서명을 진행하면 본인 서명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지’를 물어왔다. 또 하나는 환자 진료 기록이 매우 민감한 개인정보라는 점이다. 그래서 지난해 분산형 임상시험(DCT) 협의체라고 하는 식약처와 국내 제약사, 글로벌 제약사가 직접 모여서 어떤 식으로 해결할지, 그리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나눈 적이 있고 현재도 지금 계속해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앞으로도 비대면 진료와 원격 진료 등의 활용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