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스 분트라 영국 옥스퍼드의대 교수가 지난 8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헬릭스미스 본사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명지 기자

코로나19 신규 확진자와 위중증 환자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방역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25일 0시 코로나 누적 확진자 수는 300만명에 육박하고, 위중증 환자는 612명으로, 올해 들어 처음으로 600명 대를 넘어섰다. 전 국민의 90%가 코로나 백신을 2차까지 접종받고, 절반 이상이 부스터샷을 맞았는데도 코로나 확산세가 더 심해지자 백신 효과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인류가 코로나19와 전쟁에서 승기를 잡았다는 말이 나왔다. 미국의 화이자-바이오엔텍과 모더나, 영국의 옥스퍼드대-아스트라제네카(AZ), 존슨앤드존슨(J&J) 등이 개발해 낸 백신이 전 세계에서 접종되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다양한 변이를 만들어 그 의미가 퇴색됐지만, 제약⋅바이오업계에서는 전통적인 백신 강자인 사노피와 머크가 백신 개발에 성공하지 못하면서 승자와 패자가 극명하게 나뉘었다. 그중에서도 영국 정부와 옥스퍼드대학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개발된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은 크게 주목을 받았다.

화이자⋅모더나의 메신저리보핵산(mRNA) 방식이 아닌 전통적인 방식으로 이렇게 빠른 속도로 코로나19 백신을 만들어 낸 것은 이례적이었다. AZ백신은 가격까지 저렴해서 코백스(COVAX)를 통해 전 세계에 공급되면서 영국은 미국에 버금가는 제약·바이오 강국의 자리를 지켰다.

차스 분트라 영국 옥스퍼드대 의대 교수는 영국 제약·바이오 산업의 경쟁력에 대해 "대규모 환자 진료 정보를 모아서 정리 분석한 UK데이터 뱅크와 영국 특유의 도전 정신에 있다"고 말했다. 'UK바이오 뱅크'는 영국 옥스퍼드 의대에서 운영하는 환자 정보 시스템이다. 신약 연구에서 임상이 중요한데, 이렇게 환자 정보를 모아둔 것이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분트라 교수는 글로벌 생명과학 분야 최고 베테랑으로 통한다. 1980년대 글락소스비스클라인(GSK)의 전신인 글락소에 입사해 부사장까지 지냈고, 이후 2008년 옥스퍼드 의대로 돌아왔다. GSK가 개발한 세계 첫 과민성대장증후군 치료제인 알로세트론이 분트라 교수가 개발한 신약이다. 분트라 교수는 현재 헬스케어 업계와 학계를 연결하는 SGC(Structural Genomics Consortium)를 구성해 신약 물질 발견에 집중하고 있다.

분트라 교수는 "코로나19를 통해 제약 바이오의 중요성과 가능성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알게 됐다"며 "글로벌 제약·바이오 산업에도 애플, MS, 아마존 같은 수조달러 규모의 가치를 가진 기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판 '모더나'도 충분히 가능하다"라며 "한국 사회가 신약에 도전하는 의사과학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신약 개발에 있어서 가장 유망한 분야에 대해 묻자 "세포 유전자(Cell and Gene) 치료제 분야가 유망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숫자가 급증하기 시작했던 2월 초 회의 참석을 위해 서울에 온 분트라 교수를 만났다. 분트라 교수는 한국 바이오벤처인 헬릭스미스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一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연구팀에서는 요즘 어떤 것에 집중하고 있나.

"코로나19와 같은 호흡기 계열 감염병을 예방할 수 있는 유니버설 백신 등을 연구하는 것으로 안다. 워낙 다양한 변이가 나오다 보니 생기는 문제라고 본다. 아직은 연구 단계인 것으로 알지만 매우 바쁘게 움직이는 것으로 안다."

一 영국이 AZ백신을 개발하면서 바이오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영국의 저력은 무엇인가.

"일단 우리 옥스퍼드 의대 자체가 세계 최강이다. 학생들에게는 태양계 최강이라고 한다.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과 함께 도전하는 혁신의 문화가 있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옥스퍼드는 의대 안에서 꽤 많은 신약을 시도한다. 영국 내 환자 정보를 모두 갖고 있는 국립보건원(NIH)도 큰 자산이다. NIH가 공개하는 코로나19 관련 시각화 플랫폼은 한번 참고할 만 하다. 신약 연구에서 환자 정보는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영국 옥스퍼드 의대에서 이른바 'UK바이오 뱅크'를 관리한다. 환자 진료 기록을 개인정보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정리 분석하고 있다. 1억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안다."

一 투자 환경은 어떤가. 영국에도 벤처 펀드 환경이 잘 조성돼 있나.

"벤처 펀딩도 미국보다 적지만 유럽 치원에서 보면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안다. 6년 전에 옥스퍼드대 안에서 오롯이 옥스퍼드대 학생과 교수진이 만든 바이오벤처에 투자하는 펀드를 조성한 적이 있었다. 옥스퍼드 사이언스 이노베이션이라는 펀드인데, 이 펀드 규모만 6억파운드(약 9690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옥스퍼드 안에만 300만개의 랩이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투자자금이 모두 미국으로 자꾸 빠져나가서 걱정이 크다. 옥스퍼드대학으로 많은 벤처 투자가들이 와 주기를 기대한다."

一 학계에 있으면서 신약 분야 산학협력에 집중하는 것으로 안다. 산업계와 학계를 연결하는 데 투신한 계기가 있나.

"환자들이 나에게 무엇을 기대할까를 생각했다. 그리고 현대 사회가 나한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라고 생각했다. 나는 글로벌 제약 산업에서 꽤 오랜 기간 몸담은 헬스케어 전문가다. 환자들은 자신에게 효과 있는 더 좋은 신약이 나오길 바란다. 그런데 단순히 신약을 개발한다고 다 끝나는 게 아니다. 많은 사람이 쓸 수 있게 약의 가격을 낮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협력과 연결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一 하지만 협력한다고 무작정 가격을 낮출 수 있나. 신약이 비싼 것은 이유가 있지 않나.

"그건 사실이다. 신약이 비싸고 출시도 잘 되지 않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걸려서다. 실패할 확률이 높으니 리스크도 크다. 현재 출시된 신약의 개발 비용을 보면 어림잡아 20억~40억달러(2조4000억~4조8000억원)로 추산한다. 엄청난 돈이 든다는 얘기다. 개발 기간도 10~12년이 걸린다. 기업의 연구소에서 6~7년을 들여서 연구한 내용이 임상 1상에 실패할 확률이 70~80%에 달한다. 신약 개발 실패율이 95%에 달한다는 연구도 본 적이 있다. 지구 상 어디에도 이런 산업은 없다."

차스 분트라 영국 옥스퍼드의대 교수가 지난 8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헬릭스미스 본사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명지 기자

一 혹시 예를 좀 들어줄 수 있나. 10개 중 9개가 실패하는 산업에 누가 투자하겠나.

"그런 의미에서 바이오 벤처에 투자하는 분들을 보면 감사하다. 실패율이 90%에 이르는 산업에 투자를 하는 것은 보통 쉬운 일이 아니지 않나. 예를 들면 지난해 10월 화이자와 릴리가 골관절염, 암, 허리 등의 통증 치료제로 개발하는 신약 후보물질을 임상 3상을 마치고 포기했다. 두 회사는 1만8000명의 환자들이 참여한 약 41번의 임상을 했다. 무려 10년에 걸친 프로젝트였는데, 안전성 문제로 포기했다. 치료제인 NGF 길항제가 실제로는 관절을 더 빠르게 손상시켰다고 한다. 그만큼 신약 개발은 위험한 산업이다."

一 그렇다면 어떻게 신약의 가격을 낮출 수 있나.

"다양한 방식의 코로나19 백신이 1년여 만에 개발됐다. 여기서 교훈을 얻었다. 세상을 바꾸는 사람은 문제를 찾아내서, 관련 전문가를 찾아내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사람이다. 바로 여기에 협업 키워드가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힘을 합쳐야 한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과 AZ가 손잡고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이 가장 대표적인 혁신 사례라고 생각한다."

一 AZ백신이 나온 것은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위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 아닌가. 경쟁 없이 혁신이 나오기 어렵다.

"경쟁이 촉매가 된다는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무의미하게 같은 연구에 매달리는 수고는 덜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산학계를 연결하면 그런 수고스러움을 덜 수 있다. 똑같은 성분으로 똑같은 치료제를 개발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一 그렇다면 협업이라는 느슨한 협력 구조 정도로 이해해야 하나.

"단위를 쪼개서 생각해 보면 좋겠다. 미국 서부에는 기업가치가 1조달러(약 1200조원) 이상인 기업이 다섯개나 있다. 애플이 2.8조달러, 마이크로소프트가 2.3조달러, 알파벳 구글이 2조달러, 아마존이 1.6조달러, 테슬라가 1조달러다. 이 기업들에는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베조스, 일론 머스크와 같은 리더가 있었다. 큰 비전을 갖고, 리스크를 감수하는 리더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전문가들을 동원해서 새로운 플랫폼과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냈다. 이 기업들은 수십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했고, 수많은 백만장자를 만들어 냈다."

一 하지만 그런 기업 중에서 헬스케어 기업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 헬스케어에서 수조달러 가치의 기업을 누군가가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19 대유행을 통해서 헬스케어만큼 중요한 산업이 없다는 중요한 교훈을 깨달았다. 지난해 8월 모더나 기업 가치는 시가총액 기준 2000억달러(약 240조원)로 평가됐다. 이것은 mRNA방식의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해 낸 덕분이었다. 물론 그 후에 기업가치가 떨어진 것도 코로나19 때문이기도 하다. (2월 현재 모더나 시가총액은 700억 달러 수준이다.) "

一 한국의 바이오벤처 중에서도 '모더나' 같은 기업이 나올 수 있을까.

"물론이다. 미국 애브비는 지난 2011~2020년 동안 류마티스 관절염 약인 '휴미라'만으로 1500억달러(약 180조5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관절염 신약 하나만으로 애브비는 세계 4~5위 제약사가 됐다."

一 애브비는 미국 회사이고, 미국은 바이오 최강국으로 꼽힌다. 직접 비교는 힘들지 않나.

"내가 앞서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가 세상을 바꿨다고 했다. 미국에 있는 5인이 세상을 바꾸는데, 왜 한국은 못 바꾸나. 내가 알기로 삼성전자의 기업가치는 4400억달러(약 530조원)다. 꿈을 크게 가져야 한다. 내가 봤을 때 전 세계 과학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꿈을 크게 갖지 않는 것이다. 아마존도 제프 베조스가 1999년 처음 설립 당시에는 우편함을 통해 책을 배달했다. 베조스도 아마존이 1조달러 가치의 기업으로 성장하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나."

一 지난 2012년 영국 헬스케어산업 최고의 혁신가로 꼽혔다. 앞으로 신약 개발에서 유망한 분야가 있을까.

"내가 영국 사람이니 영국을 예로 들겠다. 앞으로 12년 동안 영국에서 3050만명이 암 진단을 받을 것이란 연구가 있다. 그만큼 암 극복 문제가 대두될 것이란 얘기다. 알츠하이머 파킨슨 치매 등 퇴행성 뇌질환 역시 반드시 극복해야 할 문제다. 이미 알다시피 치매 환자 관리에만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든다. 이는 연금 재정에도 상당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새로운 세대를 위한 새로운 항생제도 개발해야 한다.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은 현재 있는 항생제가 효과가 없을 것이란 전망이 있다. 정신 건강도 마찬가지이고, 연장선상에서 거식증도 커다란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一 그렇다면 어떤 방식의 치료제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세포 유전자 치료제 분야가 유망하다고 본다. 인류는 지난 80여년 동안 소분자와 항체치료제를 개발해 왔다. 천천히 고비용으로 그렇게 개발해 왔다. 사람들은 세포치료제는 새로운 플랫폼이기 때문에 리스크가 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노바티스가 이미 3년 전에 유전자 치료제 신약 졸겐스마로 큰 성공을 거뒀다. 척수성근위축증에 쓰이는 졸겐스마는 현존하는 치료제 가운데 가장 비싼 약이다. 주사 한 대에 200만달러(약 24억원)가 넘는다."

一 한국의 바이오벤처(헬릭스미스)에 사외이사로 합류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

"약 4년 전쯤에 미국 학회에서 헬릭스미스의 김선영 대표를 만나서 연구에 대한 심도 깊은 대화를 했고, 감동을 받았다. 연구에도 흥미를 가지게 됐다."

一 하지만 헬릭스미스가 개발하는 후보물질 엔젠시스는 지난 2019년 미 FDA 임상 3-1상에서 실패했다. 국내에서 약물 자체의 효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큰 상황이다.

"앞서 화이자와 릴리가 골관절염 치료제로 개발하던 NGF 길항제가 실제로는 관절을 더 빠르게 손상시켜서 개발을 중도 포기했다고 말했다. 관절을 손상시켰단 것은 이 물질의 안전성에 문제가 있단 것이다. 그런데 엔젠시스는 새로운 유전자를 여러 환자들에게 투여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당뇨성 말초신경병증에 대해서도 2상까지 진행했다. 이건 매우 고무적인 결과다."

一 그래도 성공가능성이 낮은 것 아닌가. 신약은 실패율이 높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GSK에 재직할 때 수많은 임상을 진행했다. 통증 치료에서 대다수의 프로젝트는 임상 1상에서도 성공하지 못했다. 어쩔 땐 증상을 더 악화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엔젠시스는 2상 3-1-b상 등에서 효능을 확인했다. 임상에 참여한 환자가 약을 투여한 후 수개월이 지나서, 기존에 쓰던 무통 치료제를 쓰지 않는데도 통증이 없는 효능을 유지한 것으로 안다. 이는 질병 완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단 뜻이다. 정말 대단한 결과다."

一 엔젠시스의 두번째 3상 시험이 올해 연말로 예정돼 있다. 어떻게 보시나

"매우 낙관하고 있다. 여기서 성공하면 미 FDA에서 신약 패스트트랙 신청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여기서 성공하면 화학요법으로 인한 신경병증, 후시신경 신경병증 등 다른 대부분의 신경병증에도 시도를 할 수 있다. 손목터널 증후군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신경병증에 시장을 점점 더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골관절염 또는 류마티스 관절염과 관련된 염증성 통증에도 적용할 수 있다."

一 한국 정부가 K-바이오 육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조언을 한다면.

"한국 사회가 바이오벤처에 도전하는 의사과학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줬으면 좋겠다. 거대한 리스크를 감수하고도 계속 도전해 나가는 사람이 포기하지 않고 또 도전할 수 있게 해 줘야 혁신이 나온단 뜻이다."

차스 분트라 영국 옥스퍼드의대 교수가 지난 8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헬릭스미스 본사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명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