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세가 거센 가운데 예방백신을 맞지 못하는 0~9세 확진자가 급증하자 정부가 5~11세 어린이용 화이자 백신을 허가했다. 전문가들은 개학을 앞두고 어린이 백신을 접종하면 최근의 확산세를 어느정도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이들 연령층은 코로나에 감염돼도 중증으로 갈 위험이 낮은 만큼, 비만 등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에만 접종을 적극 권고하는 수준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날 백신 허가와 별도로 이들 연령대의 접종 여부와 시기는 방역당국이 전문가 자문단과 논의를 거쳐 결정하게 된다.
◇ 5~11세도 코로나 백신 접종 가능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23일 미국 화이자가 5~11세 소아의 코로나19 예방 목적으로 별도 개발·생산한 백신을 품목 허가했다고 발표했다. 식약처 허가에 따라 질병관리청은 백신의 국내 도입 일정 등을 고려해 다음달 중 접종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식약처가 이날 오전 허가를 결정한 것은 최근 11세 이하 소아 확진자 수가 급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이날 0시 기준 코로나19 확진자 17만1452명 중 14.45%(2만4779명)가 0~9세였다. 2월 셋째 주 기준 0~9세 코로나19 확진자 발생률은 인구 10만명당 282.8명으로 전체 연령대 중 가장 높다.
정부는 오미크론 확산세가 오는 2월 말에서 3월 중 정점에 도달해, 하루 확진자가 많게는 27만명까지 나올 수 있다고 봤다. 확진자 수가 이렇게 늘어나면 어린이 감염 사례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김상봉 식약처 바이오생약국장은 이날 백브리핑에서 "소아용 백신을 허가한 것은 이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되거나 증상이 중증으로 악화되지 않도록 막을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 "일부 기저질환자에게만 접종 권고해야"
전문가들은 정부가 5~11세 소아용 백신을 허가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접종을 강제하거나 적극 권고를 하는 것에 대해선 우려를 표했다. 이들 연령대는 아직 면역 체계가 형성이 덜 된 만큼 장기적으로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알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5~11세 연령대에도 선천성 심장질환, 폐기능 이상, 천식 등 기저질환을 앓는 경우 코로나 감염이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백신 접종 승인은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다만 기저질환이 없는 건강한 아이들은 면역체계가 완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백신을 맞았을 때 장기적으로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부모들이 자율적으로 아이 백신 접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남중 서울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도 "5~11세들은 중증화·치명률이 매우 낮고 기저질환 없이 사망하는 사례도 거의 없다"며 "스테로이드를 투여해야 하거나 항암 치료를 진행하는 등 극소수 기저질환자 이외에는 백신 접종을 굳이 적극 권장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가 5~11세 저연령층에도 방역패스를 적용할 가능성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김정기 고려대 약학대학 교수는 "만약 정부가 5~11세 아이들에게도 방역패스를 적용해 백신 접종을 사실상 강제한다면 이는 매우 부적절한 조치다"라며 "화이자의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은 전 연령대에 걸쳐 작든 크든 안전성 이슈가 확실히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접종 효과 떨어진다는 우려도
오미크론으로 코로나19가 이미 확산된 상황이라 5~11세 백신 접종의 유행 억제 효과가 낮을 거란 분석도 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당장 내일부터 5~11세 백신 1차 접종을 시작한다 해도 2차 접종까지는 3주에서 4주 정도 시간 간격이 있다"며 "그 때는 오미크론 확산세가 정점을 찍고 내려갈 타이밍이기 때문에, 자칫 현재 유행 억제와 전혀 무관한 접종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3월 중으로 5~11세 백신 접종을 시작할 계획이다. 권근용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 접종관리팀장은 이날 오후 질병관리청 온라인 백브리핑에서 "전문가 자문, 예방접종전문심의위원회 등을 실시할 예정"이라며 "국내에 소아용 백신이 들어오는 시기와 백신 접종 일정을 맞춰야 하므로 세부 계획은 3월 중으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