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경기 분당구 삼평동 에이비엘바이오 사무실에서 만난 이상훈 대표. /최정석 기자

지난 1월 글로벌 제약·바이오업계 최대 행사로 꼽히는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국내 제약사 에이비엘바이오가 프랑스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와 1조3000억원에 달하는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올해로 창립한 지 6년밖에 되지 않은 한국 제약사가 연초부터 조(兆) 단위 ‘잭팟’을 터뜨렸다는 이야기에 국내는 물론 해외 유명 제약사들의 시선 또한 달라졌다.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이사는 “올해 JP모건 행사 전후로 우리 회사를 향한 관심도가 확실히 달라졌다는 걸 매일 체감한다”고 말했다.

이번 기술이전 계약 대상은 에이비엘바이오가 파킨슨병 치료를 위해 개발 중인 신약 후보 물질 ‘ABL301′이다. 파킨슨병은 뇌 속 단백질인 ‘알파-시뉴클린’이 비정상적으로 응집해 뇌세포를 죽이면서 발병, 진행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ABL301은 혈액-뇌 장벽(Blood Brain Barrier·BBB)을 뚫고 뇌 안으로 들어가 ‘알파-시뉴클린’으로 불리는 응집된 단백질을 분해시키는 식으로 파킨슨병을 치료한다는 게 에이비엘바이오 측 설명이다.

에이비엘바이오는 회사가 탄생한 지난 2016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200억~300억원가량의 자금을 신약 후보 물질 연구개발(R&D)에 아낌없이 쏟아붓고 있다. 이런 행보 탓에 한 때는 ‘대한민국에서 돈은 최고로 많이 쓰지만, 수준은 낮은 회사’라는 비아냥도 수없이 들었다. 그러나 이상훈 대표는 업계의 냉랭한 시선에도 자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신약 개발’이라는 회사의 비전을 이뤄내려면 연구개발 이외엔 방법이 없다는 생각으로 손해를 감수해왔다. 그 결과 이번 사노피와의 계약을 기점으로 에이비엘바이오는 창립 6년 만에 흑자 전환을 앞두고 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이달 중 사노피로부터 기술이전 계약금 900억원을 받고, 임상 1상이 올해 안에 시작되면 단기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 540억원을 추가로 받게 된다. 에이비엘바이오는 ABL301에 적용된 이중항체 플랫폼 기술인 ‘그랩바디-B’의 기술이전 논의를 현재 글로벌 제약사 두 곳과 진행 중이다. 올해 안에 기술이전이 성사돼 계약금이 들어올 경우 회사는 3000억원이 넘는 현금을 보유할 수 있게 된다. 이상훈 대표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흔들림 없이 연구개발에 몰두해온 보답을 이제서야 받고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이 대표를 지난 10일 경기 분당구 삼평동 본사에서 만났다.

지난 10일 경기 분당구 삼평동 에이비엘바이오 사무실에서 이상훈 대표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최정석 기자

一 올해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기술이전 계약을 맺었다. 협상이 어떤 식으로 진행됐나.

“JP모건뿐만 아니라 바이오USA, 바이오유럽 등 다양한 행사에서 글로벌 빅파마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보니 이곳저곳에 우리 기술을 소개했다. 대부분 “괜찮은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그중 하나가 사노피였다. 사노피와 기술이전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 건 지난해 JP모건 행사 때였다. JP모건으로 시작해서 JP모건으로 끝난 셈이다.”

一 협상을 1년 동안 했다는 건가.

“그렇다. 기술이전 논의부터 실제 계약서에 사인이 이뤄지기까지 1년이 걸렸다. 여러모로 진이 빠지는 과정이었다.”

一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 같은데.

“ABL301을 개발하면서 많은 데이터를 쌓았다. 그래서 사노피와 기술이전 논의를 시작한 지난해 JP모건 행사에 나갈 당시엔 자신감이 있었다. 이 정도 데이터면 글로벌 빅파마의 진지한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사노피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들과도 기술이전 논의를 시작하는 등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이후다.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모든 과정이 느리게 진행됐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 당시 우리와 이야기를 나눴던 JP모건 담당자가 다음 협상 때는 다른 회사에 가 있거나 부서를 바꾸는 일이 잦았다. 우리 파이프라인(신약 후보 물질)에 대한 이해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사람을 앉혀 놓고 다시 이것저것 설명하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一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일이 있나.

“우리 데이터를 그쪽에서 검증하기 위해 실사를 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던 탓에 기억에 많이 남는다. 상대 회사에서 우리 제품에 대한 데이터를 요구하면, 그 데이터를 뽑아내기 위한 실험을 설계하고 진행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데이터를 제공하면 보통은 이를 검증하기 위해 회사에서 직접 한국에 사람을 보내 실사를 한다. 근데 팬데믹 때문에 입국이 어려워지면서 비대면 실사를 진행하게 됐다.

비대면 실사를 위해 우리가 물질 레시피를 상대 회사 공장 쪽에 전달해야 했다. 그런데 막상 그쪽에서 우리 레시피를 따라 만든 신약 물질로 실험을 했더니, 우리가 실험했을 때랑 결과가 다르게 나왔다. 이러면 책임소재를 파악하는 데만도 시간이 엄청나게 걸린다. 우리가 실험을 잘못한 건지, 상대가 실험을 잘못한 건지, 아예 레시피 자체가 잘못된 건지, 상대가 레시피를 제대로 따르지 않은 건지 알기가 어렵다.

다행히 상대 회사 쪽에서 레시피를 제대로 따르지 않아 실험 결과가 다르게 나온 걸로 확인되면서 마무리됐다. 사노피가 본사는 프랑스에 있는데 공장은 독일에 있는 등 소통 과정이 워낙 복잡하다 보니 실수가 나온 모양이다. 지금이야 해프닝 정도로 치부할 수 있지만 당시엔 공든 탑이 무너질까 봐 정말 심장이 철렁했다.”

一 파킨슨병 치료제를 에이비엘바이오만 개발하는 건 아니다. 사노피가 다른 회사들 치료제와 ABL301을 비교하는 과정도 거쳤을 것 같은데.

“물론이다. 실사를 포함해서 우리 물질을 다양한 방향으로 검증하는데 그중 하나가 다른 회사의 신약 물질과 비교하는 거다. 우리가 이사할 때 집 하나, 동네 한 곳만 보지 않는 것과 똑같다. 혈액-뇌 장벽을 뚫고 뇌로 들어가는 전달체인 ‘BBB셔틀’을 개발하는 회사는 굉장히 많다. 로슈, 제넨텍, 디날리 테라퓨틱스, 아스트라제네카 등 규모 면에서 우리와 비교도 안 되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BBB셔틀을 만들고 있다. 심지어 우리 기술을 사간 사노피조차 회사 내부에 BBB셔틀을 개발하는 팀이 따로 있을 정도다. 그런 다양한 회사들의 치료제와 우리 치료제를 효능, 안전성 등 다양한 측면에서 비교한 데이터를 사노피 측에 제시했고 실사도 거쳤다. 결과적으로 사노피가 에이비엘바이오의 치료제가 가장 좋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에 계약이 이뤄진 것이다.”

지난 10일 경기 분당구 삼평동 에이비엘바이오 사무실에서 이상훈 대표가 자사 이중항체 플랫폼 '그랩바디-B'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정석 기자

一 에이비엘바이오의 BBB셔틀이 ‘그랩바디-B’인 건가

“그렇다. 소위 ‘이중항체 플랫폼’이라 불리는 기술로 ABL301을 만들었다. 파킨슨병과 같은 중추신경계 치료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혈액-뇌 장벽은 가장 큰 장애물이다. 항체물질을 만들어도 그 물질이 혈액-뇌 장벽을 뚫고 뇌 속까지 전달될 확률은 0.1% 수준이다. 그런데 우리 그랩바디-B 기술을 적용한 ABL301은 전달체 없이 항체물질만 투여하는 경우에 비해 혈액-뇌 장벽을 뚫을 확률이 13배나 높게 나왔다. 그 13배라는 데이터가 다른 글로벌 제약사에 비해 독보적인 수치였기 때문에 우리가 사노피와의 계약을 따낸 거라고 보면 된다. 현재 그랩바디-B 또한 글로벌 제약사 두 곳과 기술이전을 논의 중이다.”

一 기술이전 논의가 중간에 틀어진 경우도 있었나.

“많다. 사인하겠다고 말해 놓고 나중에 가서 사인 안 한다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엔 무슨 문제를 제기할 수도 없다. 사인을 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쪽에 주어지는 페널티도 없다. 다만 그런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이번 사노피 계약이 더 대단한 거라고 본다. 1년이라는 협상 과정을 밟는 게 물론 힘들었지만, 덕분에 양사 간에 신뢰가 깊게 생겼다. 사노피는 우리 기술에 대해서 ‘이 정도면 사인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1년 동안 쌓았다. 당연히 우리도 이번 계약을 통해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단순히 계약서에 사인하는 걸 넘어 두 회사가 ABL301의 기술에 대해 깊은 신뢰관계를 쌓아 올렸다고 생각한다.”

一 그 험난한 과정을 뚫고 사노피의 선택을 받은 건가.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사노피를 선택한 면도 있다. 지난해 JP모건 때부터 시작해서 사노피와 동시에 우리 기술에 관심을 가진 회사가 여럿 있었고, 데이터 검토와 실사 등 모든 과정을 마쳤을 때는 사노피를 포함해 2개 회사가 남았다. 우리가 그중에서 사노피를 자신 있게 선택했다. 사노피가 제시한 계약 조건이 더 좋았고, 일하는 과정에서 소통하는 과정이 더 잘 맞았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사노피한테 간택 받은 건 아니다.”

一 계약 규모가 총 1조3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안다. 이걸 어떻게 나눠서 받는 건가.

“초기 계약금이 7500만달러(약 900억원)다. 여기에 올해 안에 임상 1상 첫 투여를 계획 중인데, 여기서부터는 단계별로 540억원씩을 더 받는다. 임상 1상 통과를 위해 한국과 미국 등에 제출할 IND(임상시험계획서)를 준비하고 있다. 올해 임상이 계획대로 진행되면 사노피 쪽에서 1440억원을 받게 되는 셈이다. 1조3000억원이라는 숫자도 의미가 상당히 크다. 2021년에 국내 제약·바이오 회사가 총 28건의 기술이전을 성사시켰는데, 계약 규모가 전부 다 해서 11조4041억원이다. 지난해 국내 제약·바이오 전체 기술이전 계약 규모의 10%를 에이비엘바이오가 연초부터 달성한 거다.”

一 치료제를 시중에 판매하는 단계까지 가면 로열티도 받나.

“로열티가 들어오는 것으로 계약이 돼 있다. 얼마를 받는지는 정확히 공개하기 힘들다. 다만 계약 내용을 보면 로열티 액수가 우리 입장에서 굉장히 좋은 조건이라는 말만 하겠다. 사실 기술이전으로 넘긴 신약 후보 물질이 임상을 모두 통과해 글로벌 판매까지 이뤄지는 건 대한민국 역사상 그 어떤 제약·바이오 회사도 경험해보지 못한 단계다. 단순히 비싼 값에 기술이전을 성사시킨 수준을 넘어 한국에서 누구도 해본 적 없는 일을 에이비엘바이오가 해내겠다는 각오로 임상 등을 준비 중이다.”

一 시장 출시가 목표라는 것 같은데 그 시점은 언제로 보고 있나.

“임상 1상에서 3상까지 전부 완료되는 데 보통 6~7년 정도 걸린다. 여기에 여러 규제당국의 허가를 받는 것까지 고려하면 7~8년가량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인류가 지금껏 정복하지 못한 파킨슨병을 치료하는 약물이다. 실제 사람 머릿속에 투여해서 파킨슨병이 완화되는 것까지 보려면 시간과 돈이 많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一 연구개발에 상당한 비용을 쓰는 걸로 알고 있다.

“매년 200억~300억원 사이의 돈을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많이 쓰는 편이다. 덕분에 이번 사노피 계약처럼 눈에 띄는 성과가 없을 땐 비아냥도 많이 들었다. 대한민국 최고로 돈을 많이 쓰지만 수준은 낮은 회사라나. 솔직히 말해 지금껏 벌어들이는 돈에 비해 연구개발 투자가 너무 많이 된 건 사실이다. 하하. 하지만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R&D를 열심히 해서 신약을 만들고 기술을 팔아야 우리 같은 새내기 제약·바이오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모두 그렇다.”

一 에이비엘바이오의 향후 목표가 있다면.

“단기적으로는 현재 진행 중인 기술이전을 성공적으로 매듭짓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당장 임상 3상에 돌입해 곧바로 내년에 치료제를 출시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앞으로 재정적인 안정을 위해서는 기술이전에 몰두해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이중항체 플랫폼 기술들을 지속적으로 계량해나갈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기술이전, 재정안정, 연구개발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계속 키워내 명실상부한 글로벌 제약사로 발돋움하고 싶다. 조 단위 매출과 1만명대 직원들을 거느린 거대 기업이 되고 싶다. 미국 글로벌 제약사인 엑셀레시스, 제넨텍 등을 보면 모두 하나같이 기술이전으로 큰돈을 벌어 몸집을 키우고 안정화 기간을 거치면서 지금의 자리에 올라섰다. 그런 식으로 에이비엘바이오를 한국 제약·바이오 회사의 모범답안 같은 존재로 키워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