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기 디앤디파마텍 대표가 지난 1월 28일 경기도 판교 본사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명지 기자

지난달 28일 경기 판교의 디앤디파마텍 본사 회의실에 곱슬기 있는 머리에 검정색 운동화를 신은 40대 남성이 들어왔다. 2014년 바이오벤처를 창업해 치매⋅알츠하이머 등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 신약을 개발하는 이슬기(45) 디앤디파마텍 대표다. 그는 창업 8년 만에 2000억원이 넘는 투자를 이끌어 냈다.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부교수인 이 대표는 생명공학 분야에서 '전설(레전드)'로 통한다. SCI급 국제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이 130여편이 넘고, 만 33세이던 2010년에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그 해 과학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되는 젊은 과학자에게 수여하는 '인디펜던스 어워드'를 수상했다.

성균관대 학부에서 고분자공학을 전공한 그는 광주과학기술원 석박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거쳐 30대 초반인 2008년 박사후 과정으로 늦깎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미국 유학 4년 만인 2012년 30대 중반에 존스홉킨스 의대 교수로 부임했다. 2017년에는 미국 정보분석기업 클래리베이트(옛 톰슨로이터) 한국인 상위 1%의 연구자 명단(HCR)에 최연소로 이름을 올렸다.

세계적으로 촉망받는 과학자였던 그가 2014년 바이오벤처를 창업했다. 배경을 물었더니 "인생은 참 모르는 일"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공동 연구자인 테드(Ted M. Dawson) 교수가 '이 연구는 논문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된 것 같다"고 했다.

테드 도슨 존스홉킨스의대 교수는 퇴행성 뇌질환 분야 세계적 석학으로 꼽힌다. 그런 그가 2013년 이 대표가 개발하는 신약 후보물질을 보고 "내가 본 신약 중에서 성공 가능성이 제일 크다"며 "제약사에 넘길 시간에 우리가 개발해서 빨리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자"고 말했다고 한다.

도슨 교수가 지목한 후보물질은 디앤디파마텍이 퇴행성뇌질환 치료제로 개발 중인 'NLY01′이다. 알츠하이머와 파킨슨 같은 퇴행성 뇌질환은 뇌 특정부위에 도파민(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는 신경세포가 서서히 소실되면서 독성 단백질 찌꺼기가 쌓여서 생기는 병이다.

지금까지 치료제라고 하면 도파민을 보충해 주거나 혹은 증상을 완화시키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런데 NLY01은 뇌 신경 염증 반응을 억제해 퇴행성 뇌질환을 치료하는 전혀 새로운 기전을 바탕으로 한다. 이 대표는 뇌 신경에서 '청소부' 역할을 하는 미세(微細) 아교세포가 활성화되면서 염증을 만들고, 이렇게 생긴 염증이 뇌질환을 일으킨다는 것을 입증해 냈다.

디앤디파마텍은 상장도 하기 전에 받은 투자금이 2190억원에 달한다.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이 설립한 옥타브라이프사이언스는 신약 후보물질의 가능성만 보고 이 회사에 570억원을 투자했다. 미 국립보건원도 주요 투자자 중 하나로 꼽힌다. 이 대표를 지난달 28일 경기 판교 디앤디파마텍 본사에서 만났다.

ㅡ NLY01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로 연구를 시작했나.

"NLY01의 첫 목표는 당뇨약이었다. 한국에서 박사를 마치고 2008년 미국 스탠퍼드 의대로 유학을 갔다. 이미 그때부터 신약 연구를 하고 있었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당뇨약으로 혼자 개발하기 너무 어려웠다. 그렇게 2012년 존스홉킨스의대에 합류했는데, 동료로부터 '이 물질을 전혀 다른 질환에 적용할 수 있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ㅡ 존스홉킨스의대 연구팀에서 먼저 '퇴행성 뇌질환에 적용해 보자'고 제안했다는 건가.

"테드 도슨 교수 아래 있는 퇴행성 뇌질환 연구팀에서 내 연구 내용을 살펴본 후 '이 물질은 파킨슨 쪽으로 적용해서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네이처에 실린 논문이 바로 그 내용이다. 이후에 파킨슨에 이어 알츠하이머에도 치료 효과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게 2013년 얘기다."

ㅡ 그리고 곧장 2014년 디앤디파마텍을 창업했다.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었나.

"시작은 미미했다. 2014년 12월 아버지가 계신 성균관대 약대 연구실 하나를 빌려 창업했다. (그의 아버지는 이강춘 성균관대 약대 석좌교수다.) 그 연구실에서 연구를 거듭하며 물질에 대한 확신이 생겼고, 이후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교수진과 공동 연구와 공동 창업에 나섰다. 그렇게 관계사인 뉴랄리와 세랄리를 창업했다."

이슬기 디앤디파마텍 대표가 지난 1월 28일 경기도 판교 본사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명지 기자

ㅡ 신약 개발에 원래부터 관심이 있었나.

"존스홉킨스에 합류하기 전 미국 보건연구원(NIH)에서 3~4년 정도 근무했다. NIH은 예산이 많아서 연구비 걱정 없이 연구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연구를 하다 보니, 논문을 쓰는 것도 좋지만 환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약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ㅡ NIH에서 논문을 너무 많이 쓴 것이 신약 개발의 계기가 됐다는 건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우연히 존스홉킨스에서 교수로 오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런데 NLY01은 한국에서 아버지와 함께 만들어 낸 물질이다. 그곳에서 테드 도슨 교수에게 NLY01을 소개했는데, '슬기야. 이건 논문을 내고 끝낼 일이 아닌 거 같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도슨 교수가 '제약사에 넘기지 말고, 우리가 빨리 개발해서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자'고 말했다. 그는 '내가 실패하는 약을 참 많이 봤는데, (네가 개발한 약은) 내가 본 약 중에서 성공 가능성이 크다'라고도 했다."

ㅡ 테드 도슨 교수와 공동 창업도 한 것으로 안다. 세계적 석학에게 인정받은 비결이라도 있나.

"그러니 인생은 참 모르는 것이다. 인생을 5년 계획, 10년 계획을 세우고 살아온 게 아니다. 그저 연구에 매진하고 실험실에서 일하는 연구자였는데, 내가 개발하는 물질에 관심 가져주는 사람이 존스홉킨스에 많았다. 그 분야에서 전 세계 최고 전문가들이 모여있는 바로 그곳에서 말이다. 그러니 내가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ㅡ 하지만 성공이 '운'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들이 나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그곳에선 내가 의사인지 하버드대 출신인지 그런 건 상관없이 연구 자체만 봐 줬다. 동양인 신출내기 부교수는 말도 못 섞을 거물들이 내 연구를 보자마자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데, 무엇을 도와줄까'라고 물어봐 줬다. 10~15년 걸려야 나올 수 있는 연구가 그분들의 도움으로 세상에 나온 것이다."

ㅡ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나.

"존스홉킨스의대는 전임상과 실제 임상을 연결하는 중개연구(Translation research)가 잘 돼 있다. 신약 후보물질의 경우 동물실험과 전임상을 통해서 확신을 갖고 있다고 해도,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에서 성공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그 전에 생체 조직을 구해서 먼저 시험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개발한다고 하면 그 질환에 걸린 환자의 뇌 조직을 연구한다. 하지만 그런 생체 샘플은 웬만한 병원에서 구하기 어렵다. 그런데 존스홉킨스의대는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스스로 병원에 찾아와서, 신약 연구를 하라고 자신의 뇌조직을 기증한다. 희귀질환 환자들도 직접 찾아온다. 병을 앓고 있는 생체 조직을 직접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은 남들은 갖지 못할 정말 흔치 않은 기회였다."

ㅡ 그러고 보니 한국인으로 존스홉킨스의대 교수로 부임한 것도 남다른 스토리다.

"미국에서 나 같은 사람은 코리안-코리안(Korean-Korean)이라고 부른다. 완전 토종 한국인이라는 뜻이다. 거기다 존스홉킨스의대에는 전 세계 내로라하는 의사들만 있다. 그런 곳에서 내가 과연 연구를 할 수 있을까. 존스홉킨스에 부임하기 전에는 이런 두려움이 컸다. 그런데 막상 가 보니 다 똑같았다. 어느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 힘들지 그 지점에 도달하면 다 똑같은 연구자더라."

ㅡ 약학대 교수인 아버지 영향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인생에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아버지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 스탠퍼드대 박사후 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까요'라고 물었을 때 아버지가 '인생에서 2~3년은 중요한 게 아니다. 미국에서 더 다양한 경험을 쌓으라'고 말했다. 존스홉킨스에서 제안이 왔을 때도 다른 사람은 주립대로 가서 편하게 연구하라고 조언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존스홉킨스를 가는 것이 절대적으로 맞다. 최고의 석학들 사이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잡으라'고 했다. 지금도 아버지는 그때 얘기를 하면서 '내 말을 안 들었으면 네가 지금 도슨 교수 같은 사람이랑 말이나 섞어 봤겠니'라고 농담을 하신다."

이슬기 디앤디파마텍 대표가 지난 1월 28일 경기도 판교 본사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명지 기자

ㅡ 디앤디파마텍을 두고 '거물급 신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연구 과정을 보니 업력이 꽤 길다.

"2018년 시리즈A에 성공하고 2019년 시리즈B로 1400억을 투자 받았다. 2019년 시리즈C까지 성공하면서, 국내에서는 우리 회사가 3~4년 만에 빠르게 성장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투자 성공 전에 12년가량 연구하고 닦아온 길이 있다. 지금에서야 말 할 수 있지만, 사업 초기 엔젤투자 유치는 정말 어려웠다. 10만달러(약 1억원)의 특허 비용을 마련하려고 몇 시간을 운전해서 투자자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ㅡ 우여곡절이 많았나.

"디앤디파마텍에는 최고과학책임자(CSO)인 빅터 로슈케 박사가 있다. 로슈케 박사는 휴먼 지놈사이언스, 테바 파마슈티컬즈와 같은 글로벌 빅파마 출신으로 신약 개발에 경험이 많은 분이다. 로슈케 박사가 받은 미 식품의약국(FDA) 임상승인계획(IND) 승인은 30개가 넘고 FDA 허가 받은 약도 2개나 된다. 창업 초기에 아무 조건 없이 회사에 합류한 분이다. 그런데 이런 분에게 창업하고 4년 동안 월급을 못 드렸다.

초기 투자금이 들어오면 무조건 연구 개발에 집어넣었다. 없는 살림에 임상 1상까지 들어갔다. 특허도 300개 넘게 신청했다. (디앤디파마텍은 현재 227개의 특허를 등록 및 심사 중이다.) 지금에야 이 특허들이 회사의 훌륭한 자산이지만, 특허 비용 때문에 변호사들한테 전화 많이 받았다. '돈 언제 입금되느냐'는 독촉 전화였다. 오죽하면 아내 몰래 미국에 있는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까 생각도 했었다."

ㅡ 지금은 여유가 좀 생겼나.

"미국 사무실도 단칸방으로 시작했다. 그런 시절을 거쳐서 지금 미국 사무실은 건물 3층 전체를 쓴다. 1층에 노바백스가 있다. 그렇게 힘든 시절이 있었으니 지금이 있는 것 아니겠나. 물론 지금도 가시밭길이다.하하."

ㅡ 그런 와중에도 네이처와 같은 국제 학술지에 뇌질환 관련 논문만 135편 넘게 발표했다고 들었다.

"공동 연구 논문이 대다수다. 열심히 연구하고 논문으로 공유하고 그런 것들이 연구의 목적 중 하나라서 열심히 썼을 뿐이다. 운 좋게도 훌륭한 분들을 많이 만났다."

ㅡ NLY01의 경쟁자는 없나. 일라이릴리와 로슈에서 알츠하이머 신약 개발에 들어갔다고 들었다.

"퇴행성 뇌질환은 현재 이렇다 할 치료제가 없다. 파킨슨과 알츠하이머는 메커니즘이 너무나 복잡해서 아직도 대부분의 연구가 '현재 진행형'이다. 단 하나의 타깃으로 치료가 될 수가 없기 때문에 다양한 기전의 다양한 약물이 임상 시도되고 있고, 그것이 맞는 방향이다. 로슈에서 파킨슨 치료제를 개발한다고 경쟁자라고 보는 게 아니라, 큰 틀의 협력자라고 본다는 뜻이다."

ㅡ 경쟁자가 아니라 협력자가 될 것이란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앞으로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가 '항암제'처럼 쓰일 것이라고 본다. 지금 암 치료를 할 때 여러 항암제를 섞어서 쓰는 '병용요법'이 대다수다. 지금은 미 FDA에서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는 신약 허가도 잘 나오지 않는 단계지만, 앞으로 신약이 여럿 나오면 시장을 함께 키워나가는 동료가 될 것이라고 본다."

ㅡ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 시장을 키워 나간다고 이해하면 되나.

"전 세계 70세 고령층 4명 중 1명은 파킨슨, 초기 알츠하이머, 치매를 앓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렇게 보면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 시장은 엄청나게 크다. 그런데 현재 집계되는 시장 규모는 매우 작다. 이는 시장에 나와있는 약으로 규모를 가늠해서 그렇다. 지금 나와 있는 파킨슨 증세를 완화하는 약은 저렴하다. 하지만 미국 FDA에 알츠하이머 신약으로 첫 허가를 받은 아두헬름(성분명 아두카누맙)의 첫 출시 가격은 1인당 6000만원이었다. (지금 가격은 3000만원 정도로 떨어졌다.) 그 약 하나 덕분에 연간 7조원이었던 파킨슨 치료제 시장이 20조원이 됐다. 앞으로 로슈와 릴리에서 신약들이 쏟아져 나오면 수백조 시장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 FDA는 지난해 6월 알츠하이머 신약 '아두헬름'을 조건부로 허가했다. 미국 바이오젠과 일본 에자이가 합작해 개발한 이 약은 FDA가 최초 승인한 알츠하이머의 근본적 치료제로 '게임체인저'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부작용 대비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약 자체 실적은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FDA 승인 이후 의약계에서는 난공불락이었던 알츠하이머, 파킨슨 등 퇴행성 뇌질환을 완치시킬 수 있는 신약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아두헬름이 조건부 허가를 받은 것은 미 FDA가 치매로 대표되는 퇴행성 뇌질환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사례란 것이다. 이 대표는 미 FDA가 허들(규제)를 낮춰 많은 제약사들에게 도전하라는 신호를 줬다고 설명했다.

NLY01은 미국에서 초기 파킨슨병과 알츠하이머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1상을 마무리하고, 지금은 약 240명 정도의 환자 규모로 임상 2상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JP모건헬스케어에서 주요 투자자들과 글로벌 빅파마로의 기술이전 시기를 논의했다"며 "어차피 기술이전을 계획하는 빅 파마는 정해져 있으니 이제는 우리 기술을 받은 회사가 얼마나 책임감을 갖고 빨리 신약을 개발해 낼 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가) 살아서 NLY01이 사람에게 투여 되는 것을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벌써 수백 명의 사람에게 임상 중입니다. 요즘은 아버지에게 '허가되는 것까지 보셔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말해요. 저희 투자자 중에 알츠하이머 환자도 있습니다. 그 분이 떨리는 손으로 투자 서명을 하시는 모습을 계속 기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