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만난 이만찬 스마트사운드 대표. /최정석 기자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이후 사람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고립과 단절을 택할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다른 사람, 다른 공간 등 외부와 접촉하는 모든 행위가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이는 바이러스의 대척점에서 인간의 생명을 지켜내야 할 ‘의료 행위’에 있어 매우 치명적인 환경이다. 몸 안에 들어온 바이러스가 일으킨 병을 치료하려면 그 병이 무엇인지를 진단해야 하고,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반드시 의료진과 환자가 감염 위협을 무릅쓰고 접촉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코로나 바이러스가 의료진과 환자 사이를 가로막은 결과, 제때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한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만찬 스마트사운드 대표는 이러한 위기 속에서 기회를 봤다. 그가 지난 2011년부터 줄곧 개발해온 스마트 무선 청진기 ‘스키퍼’가 있으면 의료진이 방호복을 입은 채로도 환자의 심·폐음을 듣고 진단과 치료, 처방 등을 할 수 있다. 중간에 방호복을 벗을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에 의료진과 환자 사이에 바이러스가 오가며 감염이 확산할 가능성도 사라진다.

스키퍼가 작동하는 방식은 이렇다. 기기 아래쪽 마이크를 통해 여러 소리가 들어오면, ‘휴먼 사운드 캡처링(HSC)’ 시스템이 진단에 필요한 심·폐음 이외의 각종 소음을 모두 제거한다. 일상적인 주변 소음, 기기와 사람이 닿으면서 생기는 마찰 소음, 소리 자체에 남아있는 백색 소음 등이 이 과정에서 모두 삭제된다. 이처럼 깨끗하게 걸러진 심·폐음을 컴퓨터 파일 형태로 바꿔 음질 손실 없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에 전송하는 것도 HSC 시스템의 역할이다.

의사는 이렇게 스마트폰 앱에 들어온 청진 데이터를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환자 심·폐음을 주기적으로 측정해 모은 데이터를 순서대로 들어보며 병의 진행 경과를 확인할 수 있다. 기존 청진기와 달리 스키퍼로 측정한 심·폐음은 한 번에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기 때문에 2명 이상의 의료진이 협진을 보는 데도 유용하다. 또 환자 질병에 따른 심·폐음 차이를 연구하거나 가르치기 위해 여러 환자의 심·폐음 데이터를 함께 들어보며 비교, 분석할 수도 있다. 의료 현장을 넘어 연구와 교육 목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스키퍼는 그 기능과 가능성을 전 세계에서 인정받은 제품이기도 하다. 지난 2018년 싱가포르에서 개최한 아시아 사물인터넷(IoT) 전시회에서 대상, 2020년 두바이에서 열린 GITEX2020에서 4500여개 기업이 참가한 가운데 초신성(supernova)상을 수상했다. 최근에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선정한 25개 글로벌 혁신기업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스마트사운드는 현재 스키퍼로 수집한 청진 데이터를 분석해 환자가 어떤 질병을 앓고 있을 확률이 높은지 계산해주는 심층학습 인공지능(딥러닝 AI) 엔진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 1년 6개월간 고려대 의대, 가톨릭대 의대 등과 협업으로 진행한 임상 끝에 AI 엔진의 신뢰도를 91%까지 올려놓은 상태다. 현재는 서울대 의대,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등과 두 번째 임상을 위한 협업을 준비 중이다. 이 대표를 지난 13일 서울 양재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난 13일 이만찬 스마트사운드 대표가 자사 스마트 무선 청진기인 '스키퍼'의 해외 수상 기록을 소개하고 있다. /최정석 기자

一 창업 계기가 궁금하다.

“2011년 창업 당시에는 ‘5년 정도 더 있으면 비대면 진료와 같은 스마트 의료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마트폰이 시장에 본격적으로 출시되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패러다임 변화가 진행되던 때였다. 통신과 디지털 기술이 큰 폭으로 발전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한 소셜미디어(SNS), 전자상거래(이커머스) 등이 주목받고, 이러한 기능을 스마트폰이 한곳에 묶어놨으니 다음은 대면 방식에 매몰돼있던 의료 쪽에서 변화가 있을 거라 내다봤다. 그래서 비대면 원격 진료 시대에 걸맞은 기기를 만드는 쪽으로 창업 방향을 잡았다.”

이후에는 원격으로 수집했을 때 가장 활용가치가 높은 인체 신호가 무엇인지 고민했다. 체온, 혈압, 혈당은 기존에 나와 있던 제품도 많았을뿐더러 그냥 숫자 높낮이 문제일 뿐 별다른 분석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찾은 게 결국 ‘소리’였다. 심장 소리, 호흡 소리, 기관지 소리, 관절 소리 등등. 동네 병·의원에 가면 감기에 걸리든 배가 아프든 일단 몸에 청진기부터 대고 본다. 청진기가 가장 유용하면서 기본적인 진찰 도구다. 이 때문에 소리 데이터야말로 질병을 분석하는 데 있어 가장 유용한 정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스마트 사운드라는 회사를 세우고 스마트 무선 청진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一 코로나19로 인한 의료 산업 쪽 변화를 실감하고 있나.

“물론이다. 코로나가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그동안 한 발짝도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던 비대면 진료를 한시적으로나마 허용해주지 않았나. 비대면 진료를 체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체험해본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그 정도로 편리하다는 걸 사람들이 직접 피부로 느끼면서 이에 대한 인식도 문화도 변하는 추세다. 과거에는 굳이 스마트 의료가 필요한지 모르겠다는 인식이 컸다면, 지금은 오히려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거대한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비대면 진료 플랫폼, 각종 스마트 의료기기 회사들이 전부 박차를 가하고 있다.”

一 그런 상황에서 스키퍼는 지금 판매가 이뤄지고 있나.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서 의료기기 인증도 받았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도 받은 상태다. 당연히 일반 소비자도 구매할 수 있다. 다만 처음에는 B2C(기업과 소비자 거래) 형태로 시장 마케팅을 노렸다가 지금은 B2G(기업과 정부 거래), B2B(기업 간 거래) 쪽으로 노선을 바꿨다. B2G는 지자체에서 하는 각종 돌봄 서비스, B2B는 비대면 진료 플랫폼에 우리 기기를 공급하는 쪽이다.”

“비대면 진료와 같은 거대한 변화는 결국 정부와 기업이 주도한다고 판단했다. 그 흐름에 동참해서 협력 체계를 미리 구축해놓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같은 소규모 벤처 회사가 B2C 접근으로 시장 변화를 주도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위에서부터의 변화를 도모하기 시작했다고 보면 된다.”

一 FDA 승인을 받은 과정이 궁금하다.

“사실 FDA 승인은 특별히 이야기할 게 없다. 우리가 신약이 아니라 의료기기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이쪽은 신체 신호를 측정하는 데 있어 어느 정도 정확도만 갖추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영역이라 본다. 식약처 승인보다도 FDA 승인이 먼저였다. 국내는 원격 의료와 같은 시장 환경이 이제 태동기다 보니 해외 쪽을 먼저 공략했다. 지금은 일본, 중국, 동남아, 유럽 등에서도 승인을 받기 위해 준비 중이다.”

一 스키퍼가 작동하는 데 있어 HSC가 굉장히 핵심적인 기술 같은데.

“휴먼 사운드 캡처링 기술. 줄여서 HSC다. 기기가 감지한 전체 소리에서 잡음을 전부 제거하고 정말 필요한 소리만 끄집어내는 기술이다. 주변 소음, 마찰 소음, 백색 소음을 단계별로 하나씩 지워내서 필요한 소리만 남게 한다. 또 소리 데이터의 신뢰성을 보장하기 위해 데이터 전달 과정에 음질 손실이 없게 하는 것도 HSC의 주요한 역할이다.”

지난 13일 이만찬 스마트사운드 대표가 자사 스마트 무선 청진기인 '스키퍼'를 시연 중이다. /최정석 기자

一 정부 차원의 방역 정책 등에 스키퍼가 공식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건 없나.

“아직 없지만 차근차근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업무 형태를 정형화하는 차원에서 지자체나 전담병원들과 협의를 하고 있다. 재택 치료 쪽에 활용하는 방안도 협의 중이다. 조만간 수도권에서 시범 사업을 실시할 예정이다. 다만 이후 곧바로 실제 현장에 투입되는 건 아니다. 일단 우리 제품이 얼마나 유용한지, 어떤 식으로 쓸 수 있을지 검증하는 단계다.”

一 실제 의료 현장에서 어떤 식으로 사용되고 있나.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서 코로나19 중증 환자를 비대면 진료하는 데 사용 중이다. 앞으로 재택치료 대상자들 중에서 중증 질환자를 찾아내는 데 사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코로나19라는 게 사실 폐렴이다. 폐를 측정하는 것만큼 빠르고 직접적인 방법이 없다. 중증화 위험도가 높은 60세 이상 고령자, 기저질환자 등에게 지급되면 위급 상황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 골든타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데 있어 스키퍼가 역할을 할 수 있다.”

一 중앙대 병원에 스키퍼를 기부했던데.

“중앙대병원 병원장이 고대병원에서 먼저 스키퍼를 쓰던 걸 유심히 보다가 본인들도 쓰고 싶다고 먼저 연락을 줬다. 그래서 팔지 않고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앞으로도 코로나19 중증 환자들을 관리하는 대학 병원에 기부를 진행할 예정이다. 대학병원 10곳 이상에 기부할 계획을 세워놨는데, 이미 여섯 개 대학병원에서 자기들도 쓰고 싶다고 요청을 보내온 상태다. 초기 시장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一 현장 의료진이나 환자들 반응은 어떤가.

“소리가 휘발되지 않고 데이터로 남는다는 점을 굉장히 좋아한다. 예를 들어 폐에서 나는 소리가 정상적이지 않다고 판단되면 일반 청진기는 정확한 진단을 위해 환자에게 깊은 심호흡을 계속해서 요구해야 한다. 한 번 폐에서 난 소리가 곧바로 사라지기 때문에 같은 소리를 여러 번 들으려면 환자가 심호흡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그것 때문에 어지럼증이나 과호흡을 호소하는 환자가 정말 많다. 그런데 스키퍼를 쓰면 한두 번만 심호흡을 시켜 소리 파일을 추출한 뒤 그걸 반복 재생해서 들으면 된다. 환자는 심호흡을 반복해서 할 필요가 없으니 편하고, 의사는 불편한 일을 계속 시킬 필요가 없으니 편하다.”

“가장 뜨거운 반응이 나오는 건 단연 코로나19 진료 쪽이다. 방호복을 입은 상태에서도 코로나19 환자를 청진할 수 있다는 건 의료진 입장에서는 엄청난 혁신이다. 또 스키퍼 하나에 스마트폰 여러 대를 연동시키면 2명 이상 의료진이 동시에 환자 심·폐음을 듣고 협진을 통해 더욱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다. 괜히 대학병원에서 요청들을 보내는 게 아니다(웃음).”

一 단순히 심·폐음을 측정해 데이터화 하는 것을 넘어 진단 AI도 개발 중인 걸로 안다.

“그것이야말로 스마트시대에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다루는 가장 정석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기존 청진기가 잡아낸 모든 소리들은 휘발성으로 한 번 들으면 날아가 없어져 버리는 반면 스마트 청진기는 그것을 데이터화해 저장하고 전달하고 분석한다. 몸 안에서 각종 장기들이 내는 소리 데이터를 AI가 분석해 의사들이 진단 과정에 보조 자료로 쓰거나, 개인이 자기 건강을 모니터링하는 데 쓸 수 있다면 삶의 질이 얼마나 풍족해지겠나.”

“진단 AI는 지금 1차 개발이 끝낸 상태다. 가톨릭 의대, 고대 의대랑 1년 6개월 동안 협업한 결과 AI 진단의 신뢰도를 91%까지 끌어올렸다. 2차 개발은 고대 의대, 서울대 의대, 연대 세브란스 병원 등과 협업하기 위해 여러 과정을 밟고 있다. 임상 데이터를 계속 학습시켜서 신뢰도가 어느 정도 이상까지 올라오면 출시할 예정이다.”

一 진단 AI 이후에는 스키퍼를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킬 건지.

“웨어러블 기기 쪽으로 확장시켜 심·폐음과 함께 산소포화도, 심전도 등까지 측정할 수 있게 하고 싶다. 이런 식으로 측정 범위를 넓혀가면서 아예 원격 의료용 올인원 디바이스를 만드는 걸 장기적인 과업으로 삼고 있다.”

一 회사의 최종 목표는.

“앞으로 원격 의료 플랫폼이 완전히 대중화됐을 때 우리 제품인 스키퍼와 진단 AI가 청진 기능 분야에서 국제적인 스탠다드로 자리 잡는 게 목표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동남아 등 전 세계 원격 의료 플랫폼 사업자와 협력해 우리 제품을 전 세계로 공급하고 싶다. 원격 청진 분야에서만큼은 ‘넘버 원’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