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유창훈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가 담도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유창훈(40)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가 지난 2016년 담도암 환자 첫 진료를 시작했을 때 동료 교수들은 “우울증 조심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담도암은 초기 증상이 거의 없고, 장기가 몸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 조기 발견이 어렵고, 발견한다고 해도 수술이 어려워서 진료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편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담도암은 다른 암에 비해 발병률이 낮지만, ‘침묵의 살인자’라고 불리는 췌장암과 함께 예후가 가장 좋지 않은 암으로 통한다. 담도암의 5년 생존율은 췌장암보다 조금 나은 20% 수준이다. 10명 중 8명은 5년 안에 사망할 가능성이 크단 뜻이다.

담도(膽道)는 쓸개(담낭⋅膽囊)에 붙은 작은 관으로, 간에서 만든 담즙(쓸개즙)을 쓸개와 소장으로 내려보내는 길을 뜻한다. 담도암은 바로 이 작은 관에 악성 종양이 생긴 병이다. 담즙은 소화액의 일종으로, 식사 전엔 쓸개에 저장돼 있다가, 음식을 씹기 시작하면 담도를 통해 십이지장과 소장으로 분비된다.

그런데 쓸개즙을 흘려보내야 하는 관에 악성 종양(담도암)이 생기면 관이 막힌다. 쓸개즙이 담도에 고여 염증이 생기고, 담즙이 역류해 간까지 망가진다. 담도에 염증이 생긴 병인 담도염의 치명률이 30~40%에 이른다고 한다. 40~50㎖ 크기의 길쭉한 주머니 모양 쓸개는 간의 중앙에 파묻혀 있어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니 조기 진단도 치료도 쉽지 않다.

담도암 환자 가운데 수술로 완치될 수 있는 경우는 10명 중 3명 정도다. 나머지 7명은 암세포가 이미 몸 곳곳에 퍼진 ‘진행성 담도암’ 상태다. 이 때문에 유 교수는 “환자는 6개월 이내에 사망할 가능성이 절반 이상이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

유 교수는 최근 담도암 환자에게 여러 종류의 항암제를 섞어 쓰는 병용요법으로 담도암 말기 환자의 기대수명을 연장시켜 주목을 받았다. 암 치료는 종양이 더 커지지 않은 상태로 환자가 살아있는 기간(무진행 생존기간)으로 효과성을 평가한다. 유 교수의 병용요법을 썼더니 기대여명이 한 달 보름에 불과했던 담도암 말기 환자의 수명이 7개월까지 늘어났다고 한다.

유 교수의 치료법은 지난해 국제 학술지 ‘란셋 온콜로지’에 게재됐다. 과학 분야의 논문 점수는 얼마나 학계에서 많이 인용됐는지 지수화한 인용지수(IF)’로 평가하는데, 이 논문의 인용지수는 41.316를 기록했다. 의학 분야에서는 인용지수가 30점만 넘어도 권위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 교수팀이 고안한 담도암 항암제 병용요법은 담도암 2차 항암제 치료 국제 가이드라인 지정을 앞두고 있다. 유 교수를 지난 21일 서울아산병원에서 만났다. 유 교수는 지난해 담도암을 비롯해 각종 희귀암에 대한 신약 연구 및 임상 적용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14회 아산의학상을 수상했다. 유 교수는 “담도암 환자를 치료하면서, 의사와 환자가 함께 좌절하는 상황을 바꿔야지 내가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一 담도암은 왜 생기는 건가.

“예전에는 민물고기를 삶지 않고 먹었을 때, 민물고기 속에 살던 간디스토마(간흡충)라는 기생충이 몸 안에 들어와 염증을 일으키면 그게 담도암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식으로 발생한 담도암은 수술로 제거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민물고기를 생으로 먹었다가 걸리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에 주로 동남아 쪽에서나 많이 발견되는 병이라는 인식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민물고기를 생으로 잘 먹지 않을 뿐 더러, 기생충 약이 잘 마련돼있음에도 담도암 환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동남아뿐 아니라 서양 쪽에서도 환자 사례가 증가 추세에 있다. 요새 들어 환자가 많아진 데 대해서는 명확한 발병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一 조기 발견이 어렵다고 들었다. 이유가 있나.

“초기 증상이 없다는 게 가장 문제다. 갑자기 황달이 생겨서 검사를 했더니 담도에 암이 생긴 경우를 발견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는 정말 운이 좋은 경우다. 대부분은 황달이나 염증이 발견된 시점에 이미 담도에서 시작된 암이 몸 곳곳에 퍼져있다. 전체 환자들 중 70% 이상이 그렇다.”

一 대부분의 직장인은 2년마다 건강검진을 한다. 검진으로도 잡을 수 없나.

“기술적 한계도 있다. 쓸개가 간 아래 파묻혀 있고, 담도라는 장기 자체가 매우 작다. 전산화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이 몸속 모든 것을 전부 찾아주지는 않는다. 이런 기계도 감지할 수 없는 범위가 있다. 그리고 암이라는 게 처음 생길 때부터 크기가 1㎝씩 하는 게 아니다. 처음엔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가 점점 커지면서 기계에 잡힌다.”

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조기 발견할 수 있나.

“자기 몸 상태를 민감하게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다. 담도에 악성종양이 생기면 1차적으로 담즙의 흐름을 막는다. 담즙 흐름이 막히면 가장 초기 증상으로 소화 불량이 온다. 근데 소화 불량이 오면 위장을 먼저 검사하지 담도를 먼저 검사하는 경우는 없다. 위장에 문제가 없으면 담도를 검사한다. 그래도 종양의 크기가 작아 제대로 찾지 못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초기 발견 이전에 초기 의심부터가 어렵다.”

一 그래서 발견해도 완치가 어려운 건가. 의료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담도암은 동남아시아에 주로 발생해 왔다. 그러다 보니 미국, 유럽 등 의료 선진국에서 담도암 치료를 위한 기술 개발 시도가 매우 적었다. 유방암, 췌장암, 대장암, 위암과 같은 ‘메이저’ 암과는 연구 성과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 다만 최근 5~6년 사이에는 담도암에 대한 관심도가 국제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一 그래서 한 번 걸리면 ‘완치’는 불가능하다고 봐야 하나.

“불가능은 아니지만 상당히 어렵다. 초기에 물리적 수술로 암 덩어리를 잘라내도 ‘미세 전이’를 잡아내지 못해 재발할 수 있다. 사실 모든 암이 그렇다. 암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주변 혈관을 끌어들여 피를 통해 암 씨앗을 퍼뜨린다. 그 씨앗이 일부는 죽을 수도 있고 일부는 몸 속 어딘가에 붙어서 살아남을 수도 있다. 암 수술이라는 게 모든 신체기관을 전부 밖으로 꺼내서 현미경으로 암세포를 하나하나 찾아내는 게 아니다. 그러다 보니 씨앗이 어디에 얼마나, 어떤 크기로 자리 잡았는지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다. 그래서 특히 종양 내과에서는 ‘완치’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유창훈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가 환자를 진찰 중이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一 이런 어려운 분야를 어떻게 연구하게 됐나.

“간암과 췌장암은 장기에 기반한 암이기 때문에 열심히 연구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담도암에 몰입해서 치료법 등을 연구·개발한다는 사람은 적었다. 그래서 담도암 환자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담도암 치료법 하나는 만들어 보자고 결심했다. 그게 6년 전 일이다. 당시 주변에 그런 이야길 하니까 다들 진심으로 걱정을 했다. 담도암은 환자 수 자체가 많지 않으니 열심히 해도 알아줄 사람이 없을 거라던가, 예후가 워낙 안 좋은 병이다 보니 노력한 만큼 치료 성적이 향상되지 않을 거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으니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一 항암제 병용요법은 어떻게 고안했나.

“아이디어 자체는 모든 교수들이 갖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교수들 사이에선 비교적 젊은 편이었고, 덕분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시도했을 뿐이다. 가장 근간이 된 아이디어는 ‘표적항암제 활용’이었다. 표적항암제는 암세포를 이루는 특정 단백질만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약물이다. 기존에 위암, 폐암 등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표적항암제가 공격하도록 설정된 단백질을 담도암이 갖고 있으면, 이를 담도암 치료에도 활용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나.

“예를 들어 A, B, C 단백질로 이뤄진 폐암과 C, D, E 단백질로 이뤄진 담도암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여기서 폐암용 표적항암제가 C 단백질을 공격하도록 개발됐다면, 이를 담도암 치료에도 쓸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一 담도암은 어떤 단백질로 구성돼있나.

“그게 환자마다 조금씩 다르다. 어떤 환자의 담도암에서 발견되는 단백질이 다른 환자에게선 발견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 병원 종양내과 교수팀에서 지난 2019년에 담도암 환자 124명의 DNA 서열을 분석해 유전자 정보를 검사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암세포를 가지고 일종의 인구 분포도를 조사한 거라 이해하면 된다. 124명 중 104명에게서 유전자 변형이 관찰됐고, 그 중 기존 표적항암제의 공격 대상과 겹치는 유전자 단백질을 갖고 있는 환자가 58명이었다.”

一 유전자 분석 결과를 기반으로 표적항암제 치료를 시도한 건가.

“그렇다. 란셋 온콜로지에 실린 논문이 그 내용이다. 두 가지 약물을 같이 썼는데, 하나는 소화기암에 널리 사용되던 ‘플루오로우라실’이고, 다른 하나는 췌장암 항암제로 자주 쓰이는 ‘리포좀이리노테칸’이다. 플루오로우라실은 기존에 담도암 2차 항암 치료제로 쓰여왔으나 예후가 매우 좋지 않았다. 그래서 단독으로 썼을 때 담도암 치료 효과가 괜찮았던 리포좀이리노테칸을 함께 써보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 병용요법 쪽이 효과가 훨씬 좋았다. 플루오로우라실만 썼을 때보다 환자들의 암 무진행 생존기간이 6개월 정도 길어졌다.”

一 란셋 온콜로지에 실린 논문 인용 점수가 굉장히 높다.

“높은 건 사실이다. 인용 점수가 30~40점을 넘어간다는 건 일종의 보증수표라고 보면 된다. 미국 의사들이 하는 말 중에 ‘프랙티스 체인징(practice changing)’이라는 게 있다. 논문에 나온 내용을 기반으로 해서 내가 직접 돌보는 환자에 대한 진료법이나 처방을 바꿔도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그만큼 동료 의사들 검증도 상당수 받고 있다. 여기저기서 검증된 논문이라는 증거를 계속해서 만들어주는 상황이다. 그만큼 가치 있고 중요한 연구라는 걸 모두가 인정해주는 것 같아 뿌듯하다.”

一 그러면 이 논문을 계기로 담도암 치료의 국제 가이드라인이 바뀌는 건가.

“국내 가이드라인으로는 병용요법이 조만간 추가가 된다고 들었다. 한국에서 만든 치료법이 서구 중심의 국제 가이드라인에 들어오는 상황 자체는 익숙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국제 가이드라인 편입 논의 선상까지 올라갔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앞으로 남은 인생에 있어 이 정도로 ‘히트’ 칠 일이 또 있을까 싶다. 하하.”

一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치료하는 만큼 환자 상태가 더 좋아져야 의사 입장에서도 진료하는 보람이 느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전까지는 매번 환자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라는 식의 이야기밖에 하지 못했다. 그때 거기서 오는 의사로서의 좌절감이 엄청났다. 의사가 좌절하면 환자도 좌절할 수밖에 없는데 상황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一 올해 40세가 됐다. 아직 젊은 나이인데,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

“인생 목표 중 1단계는 이뤘다고 생각한다. 내가 낸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임상 연구를 해서 환자에게 직접 쓸 수 있는 치료제, 혹은 치료 방법을 만들겠다는 게 1단계 목표였다. 이보다 더 궁극적인 목표는 정말 새로운 약. 좀 더 효과가 좋은 약. 그래서 이 약을 쓰면 완치가 가능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약을 만들어서 환자에게 쓸 수 있는 날이 오는 게 진짜 인생 목표다.”

一 그럼 바이오벤처로 투신하게 되는 건가.

“하하하. 그쪽으로 갈 생각은 없다. 나는 환자를 돌보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