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휩쓴 지 2년이 지났다. 우리는 아직도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지만, 지난 2년 동안 각국의 과학자들이 개발한 백신으로 ‘희망’도 봤다.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방식의 백신부터 pDNA(플라스미드 DNA) 방식의 백신까지 새로운 바이오 기술이 등장했다. 그런데 한국은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국내 의료진의 진료 및 임상 수준이 전 세계 최고 수준인데도, 신약과 백신은 한참 뒤처졌다. 의료계와 학계에서는 국내 바이오산업을 육성하려면 우수한 의사 인재 활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조선비즈는 2022년 신년 기획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의사를 만나 이들이 꿈꾸는 K바이오의 미래는 무엇인지 듣는다. [편집자주]
미국 화이자와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방식의 코로나19 백신을 함께 개발한 독일 바이오엔텍의 창업주 우우르 샤힌 대표 부부는 대표적인 의사 출신 기업가다. 그런 샤힌 대표 부부와 손잡고 백신을 만들어 낸 화이자의 연구개발 총책임자 미카엘 돌스텐 최고의학과학책임자(CSO) 사장도 의사 출신 기업인이다.
스웨덴 룬드대 의대를 졸업한 돌스텐 사장은 모교 의대 교수로 경력을 시작했지만, 이후 글로벌 제약사 ‘파마시아’ 연구소장으로 이적하면서 신약 개발의 길에 들어섰다. 독일 베링거링겔하임 등을 거친 그는 2009년 화이자에 합류했고, 인수합병(M&A) 및 연구개발(R&D) 신약 후보물질(파이프라인) 재구성을 맡았다. 그는 글로벌 1위 화이자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한국 과학계는 치료제와 백신은커녕 변변한 코로나 연구 논문도 발표하지 못했다. 국내 의료진의 진료 및 임상 수준이 전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힌다. 경제 규모(GDP)와 비교하면 R&D 투자 규모도 세계 1~2위를 다툰다. 특히 의대에는 내로라하는 수재들이 몰린다. 그런데 의학 연구나 신약 및 의료기기 개발에 뛰어든 의사 출신 기업가는 손에 꼽는다. 고부가가치 의료기기 분야도 마찬가지다.
의료기기업체 ㈜오스힐 과 ㈜ 메디아이오티 대표이사인 송해룡 고려대 구로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열악한 의사 기업가 생태계’를 한국 바이오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원인으로 꼽았다. 송 교수는 “국내 의대를 졸업한 인재들이 병원에 남아 환자를 진료하는 ‘익숙한’ 환경에 안주한다”며 “의사들이 안락함 대신 바이오산업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데, 한국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미국의 경우 각 대학병원이 의사 기업가를 인큐베이팅(육성)하는 프로그램을 갖고 있고, 벤처 캐피털(VC) 생태계가 잘 조성돼 있어서, (신약) 기술만 갖고 있어도 수익을 낼 수 있다. 화이자와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독일 바이오엔텍도 mRNA 관련 기술을 연구하는 의사 과학자들이 모여서 미국에서 투자를 끌어냈다.
송 교수는 2000년대 초반 왜소증 환자의 키를 늘리고, 사지 기형을 교정하는 명의로 이름을 날린 인물이다. 지난 2000년 KBS 다큐멘터리 ‘인간극장’ 작은 거인 4형제 편에 등장해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바로 송 교수다. 그는 이후 ‘한국작은키연합회’를 설립해 왜소증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그런 송 교수는 첫번째 벤처 창업에서 실패한 후 의료기기업체인 오스힐로 2번째, 디지털 웰리스 및 치료제회사인 메디아이오티로 3번째 도전을 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의사기업가협회(Doctorprenuer.com)와 같은 ‘의사창업연구회’ 설립에 나섰다.
고려대 구로병원 개방형실험실 단장이기도 한 송 교수는 “미국과 비교하면 기업가를 꿈꾸는 의사에게 한국의 생태계는 허허벌판이다”라며 의사창업연구회의 취지를 설명했다. 송 교수를 지난해 12월 17일과 20일 두 차례 고대 구로병원 개방형실험실에서 만났다. 자신을 ‘흙수저’라고 소개한 송 교수는 “흙수저 의사도 도전할 수 있게 정부가 지원을 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一2000년대 왜소증 환자의 ‘키 늘려주는’ 명의로 유명했다. 그런 유명세를 뒤로 하고 의사 기업가 육성에 나섰다. 계기가 있나.
“미국 메릴랜드 의대로 연수를 갔을 때부터 생각했던 일이다. 국내 대학병원 의사들이 하루에 수십 수백명씩 진료를 보고, 임상연구만 하는데, 미국 대학병원은 의사의 ‘연구개발’에 방점을 뒀다. 한국 대학병원도 그런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제 그런 시점이 왔다.”
一그런 시점이라는 건 어떤 뜻인가.
“지금이 한국 바이오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첫 단계라고 본다. 산업이 성장하려면 자본 시장이 이해해서 투자가 이뤄지고, 연구자가 이해하고, 산업 정책을 입안하는 당국이 이해하는 것이 맞물려야 하는데, 지금이 그 시점이라고 본다. 바이오산업에서도 네이버나 쿠팡 같은 회사가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一하지만 국내 대학병원은 진료와 임상을 주로 하는 것으로 안다.
“그렇기 때문에 더 경쟁력이 있다. 의사가 아닌 생명공학을 전공한 사람은 바이오벤처를 창업하면, 신약 임상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중간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임상을 진행해 본 의사는 다르다. 임상 과정에서 바이오산업에 대한 이해도도 쌓여 있다.”
一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첫 단계라고 했는데, 그런 움직임이 실제로 있나.
“의사들의 도전 DNA를 끌어내려고 의사창업연구회라는 것을 시작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다. 요즘 국내 대학 병원에서도 새로운 도전을 하려는 의사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니 이들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환경 조성에 나설 때라고 보는 것이다.”
서울시 홍릉강소특구가 지난해 12월 의사와 의대생을 대상으로 의사창업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송 교수는 첫번째 강연자로 나서기도 했다.
一그렇지만 대부분의 주요 대학병원은 ‘연구’보다 진료와 임상을 많이 하는 의사를 선호한다.
“그 좋은 머리를 갖고, 창조적인 활동이 아닌 환자 진료에만 매달리는 것은 너무나 아깝지 않나. 의사 창업은 대학병원 교수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요즘 개원의 중에서 환자 진료를 보지 않고 쉬는 시간에 주식 투자와 선물 옵션을 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미국은 의사들이 자체적으로 투자자 조합을 만들어서 (바이오벤처) 투자를 한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은 인재들이 의대를 졸업하면 대부분 개원하거나 봉직의가 돼 시대 흐름을 놓치게 된다.”
一국내 대학병원 의사들이 도전을 하지 않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한국은 의사 기업가 생태계가 형성돼 있지 않다. 의사가 연구 성과를 내면 환자 진료를 보는 것보다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사회적 컨센서스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미국의 경우는 의사 기업가 육성 프로그램도 많고, 벤처캐피털도 활성화돼 있어서 창업을 하지 않고 연구를 하고 특허 기술만 확보해도 충분히 투자 유치 및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고 한다.”
一미국과 비교하면 한국은 어떤가.
“한국은 반대로 기술이 있어도 창업을 해서 실패하면 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 정부가 말로만 바이오산업을 육성한다고 하지만, 일례로 국산 MRI(자기공명영상)와 CT(컴퓨터단층촬영)를 개발해도, 웬만한 국립병원조차 국산 제품은 구입하지 않는다. 그러니 누가 도전을 하려고 하겠나.”
一의료기기 업체를 창업해서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3번째 사업이다. 앞에 2번은 성공하지 못했는데, 3번째는 성공하지 않겠나. 10여년 전 첫 바이오벤처 때 서방형 골재생 주사제를 개발했는데, 약효 효과만 믿고 무턱대고 뛰어들었다가 시장성을 보지 못하고 실패했다. 그때 약효가 좋으면 다 되는 줄 알았지 ‘시장’에 대해선 이해가 부족했다. 그 당시 제약·바이오기업과 협업했다면 더 좋은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한다.”
一최근 의사가 창업해서 성공한 사례가 있나.
“요즘 성과가 서서히 나오고 있다. 창업 4년 차에 180억원의 투자를 받은 세닉스도 의사가 창업한 바이오벤처다.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조재형 교수는 GC녹십자와 손잡고 최근 총 133억원의 투자를 받은 것으로 안다. 경희대 의대 교수가 창업한 바이오벤처 중에서도 상장(IPO)을 준비하는 곳이 있다.”
一그렇게 성공한 의사 창업 바이오벤처의 비결은 어떤 것이 있나.
“단순히 연구개발에만 머무르지 않고, 기술 사업화를 시킨 것이 차별화되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연구개발은 의사가 하고, 경영은 전문경영인을 영입해서 성공하는 것이다. 신약이나 의료기기 모두 그런 케이스가 성공했다. 그나저나 의사 출신은 아니지만 밑바닥에서 셀트리온을 글로벌 기업으로 이끈 서정진 회장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一그렇다면 어떻게 좀 개선을 해야 할까.
“의대 교수들이 바이오벤처를 차렸다가 3~5년 정도 시도를 해 보고 실패하더라도 대학교로 다시 돌아와서 연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안전핀을 마련해주는 식의 노력이 필요하다. 산학 협력도 필요하다. 대웅제약의 경우 의사가 바이오벤처 ‘공동창업’을 하면 약 1억5000만원을 지원하는 최근에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의사들도 자존심을 내려놔야 한다. 조금만 자세를 낮추고 제약사와 같은 민간기업과 협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길이 분명히 열려 있다.”
一의사창업연구회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창업을 몇 번 해 보니 어떤 분야든 정보를 교류하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세상일이 자기 혼자 해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협동조합 등을 만들어 정보를 교류하도록 하고, 제약사 등 민간에 프로그램을 제안해 이끌어 가도록 할 수 있다. 이렇게 전문가 집단이 하나의 영역으로 자리 잡으면 자생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다. 또 이렇게 교류하게 되면 창업에 도전하는 의사들의 시행 착오도 줄일 수 있지 않겠나.”
一연구회가 가장 먼저 추진하시는 사업이 있나.
“의사창업백서를 만들어보려고 한다. 의사 기업가 육성, 의사 과학자 육성이라고 정부 지원사업이 있지만, 그동안 성과나 실적에 대해서 정리한 책은 단 한권도 없다. 의사 창업에 대해서 분석한 데이터가 없다는 것이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긴 안목으로 정부에서 지원해야 하는데, 그런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一성공한 의사 기업가, 이른바 ‘스타’가 나오는 것도 필요하지 않나.
“성공한 사람 얘기도 좋지만, 나는 오히려 실패 케이스 스터디가 유용할 것으로 본다. 논문도 마찬가지다. 임상에서 성공한 것만 나열한 논문으로는 추후 발전이 없다. 고난과 역경을 겪은 사람의 스토리를 통해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지 않겠나. 경험적으로 (벤처 기업가 가운데) 5%는 성공하고 95%는 실패한다.”
一바이오벤처에 도전하는 의사 후배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솔직하게 말하면, 한국 상황으로 의료에 정보통신(IT)을 접목하거나, 병원 네트워크를 활용한 빅데이터 정보를 활용한다거나, 디지털 치료제 쪽에 집중하는 게 성공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물론 신약 연구는 장기적으로 계속 육성해야 한다.”
☞송해룡
㈜오스힐 및 메디아이오티㈜ 설립 및 공동대표, 의사창업연구회 회장. 부산 동아고를 졸업해 고려대 의대를 나와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정형외과 교수로 있다. 고대구로병원에서 레지던트를 했고, 경상대병원에서 근무후 2004년 모교인 고려대 의대로 돌아왔다. 1980년대 희귀난치성 질환인 왜소증 치료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골형성촉진 서방형 주사제를 연구하면서 벤처 기업을 창업했으나 2차례 도전에서 실패하고 3번째 도전 중이다. 현재 고려대 구로병원 개방형실험실 단장으로 의사창업연구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