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만난 송교석 메디픽셀 대표. /최정석 기자

송교석 메디픽셀 대표는 얼마 전 자사 의료 AI 소프트웨어인 ‘메디픽셀XA(엑스에이)’를 직접 사용해 본 심장내과 시술의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시술실에서 메디픽셀XA를 써보니, 20년전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처음 접했던 순간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송 대표는 “심혈관 엑스(X)레이 영상을 한 프레임씩 눈으로 뜯어보며 손으로 혈관 선을 그리고 보정까지 하면서 병변(병이 나타난 부위)을 찾아내거나, 시간이 촉박하면 빠르게 눈으로만 진단한 뒤 시술에 들어가던 게 심혈관조영술을 활용한 시술의 기존 방법론이다”라며 “그런데 메디픽셀XA가 그 모든 작업을 자동으로 해주니, 마치 지도를 펼쳐 눈과 손으로 길을 찾다가 내비게이션을 마주한 느낌이었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메디픽셀XA는 메디픽셀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심혈관중재시술용 실시간 병변 정량화 솔루션이다. X레이 촬영장비가 환자의 심혈관 영상을 촬영하면 메디픽셀XA가 해당 영상에서 심혈관이 가장 선명하게 나온 프레임을 자동으로 찾는다. 이어 곧바로 해당 프레임을 분석해 심장 속 주혈관을 하나하나 구분한 다음, 병변을 찾아내 표시한다.

메디픽셀XA 능력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병변이 발견된 심혈관은 얼마나 좁아졌는지, 어느 부위 혈관에 문제가 생겼는지, 병변을 고치기 위한 최적의 스탠트(stent)는 무엇인지를 모두 정량화된 수치로 제공한다. 병변을 찾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술을 위해 의사가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지도 인공지능(AI)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의사들의 임상 결정을 지원해주는 이런 AI를 임상의사결정지원시스템(CDSS·Clinical Decision Support System)이라고 부른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다. 1~2초면 이 모든 과정이 끝난다. 메디픽셀XA의 기술적 근간이 되는 합성곱신경망(CNN·Convolutional neural network) 덕분이다. 딥러닝 AI 모델로 프로그램 코딩 형태가 인간의 신경망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영상을 인식하고, 분류하며, 분석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때문에 의료영상 분야에서 분석용 AI로 각광받고 있다.

메디픽셀은 지난 2019년부터 서울 소재 모 종합상급병원과 협력해 심혈관질환 환자들의 병변 데이터를 자체 개발 CNN에 계속 학습시켰다. 2년 간의 개발 기간을 거친 뒤 지난 1월 식품의약품안전처 인증을 받은 메디픽셀XA를 시장에 내놨다. 이후 심장 속 주혈관뿐만 아니라 분지혈관까지 전부 구분하는 ‘메디픽셀XA2000′을 완성했고, 지난 10월 식약처가 이 제품에 대한 인증을 내렸다.

올해 메디픽셀은 글로벌 4위권인 거대 의료기기 기업으로부터 35억원 규모의 전략적 투자도 받았다. 미래에셋 등 국내 기관투자자로부터도 65억원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정부는 메디픽셀에 16억원을 지원해 심혈관중재시술을 위한 의료 AI 플랫폼 개발 범부처 프로젝트를 가동 중에 있다. 이 프로젝트에는 서울 아산병원과 서울대학교 등이 함께한다. 송교석 메디픽셀 대표를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一올해 유치를 목표로 했던 투자금 100억원을 일찌감치 모았는데.

“의료 관련 내용은 여러모로 민감한 부분이 많다 보니 업계 자체가 보수적인 성격이 좀 강하다. 투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정말 많은 데이터와 자료들을 요구한다. 메디픽셀XA의 효용성을 이해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였다. 다행히 투자금이 많이 모여 밖에서는 고생을 안 했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는데, 초기에는 엄청 힘들었다. 결과적으로는 투자자도 우리 제품이 왜 필요한지를 납득하게 됐고, 이후부턴 진행이 잘 돼서 투자 유치를 조기에 종료할 수 있었다. 자금을 투입할지 여부를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투자 모집이 끝나버렸다며 아쉬움을 표하는 투자자들도 있었다. 65억원은 미래에셋캐피탈, 미래에셋벤처투자, 파트너스인베스트먼트 등 국내 기관투자자에서, 35억원은 글로벌 톱4 의료기기 기업에서 들어온 전략적 투자다.”

一세계 4위권의 회사에서 메디픽셀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

“대기업들이 세계 각지에 거점을 두고 인근에서 유망한 업체를 발굴해 투자하는 건 일반적인 일이다. 메디픽셀에는 작년 4월 투자 기업의 인도 법인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 제품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5월에는 유럽 본사와 만나 제품 테스트가 진행됐다. 당시 개발 단계에 있던 메디픽셀XA에 내려진 결론은 진입장벽이 높은 심장 AI에서 기대 이상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후로는 빠르게 일이 진행됐다.”

一전략적 투자다. 요구 조건이 있었을 텐데.

“3가지를 요구했다. 첫 번째는 임상이다. 미국 6개 병원, 유럽 4개 병원에서 함께 임상을 진행해 우리 제품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는 건데, 내년 7~8월 쯤에는 FDA 2등급 승인을 받는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두 번째는 글로벌 판매망이다. FDA 승인을 기반으로 우리 제품을 전 세계에 판매하는 것이다. 여기서 상품성이 확인되면 마지막으로 그 기업이 판매하는 촬영기기에 메디픽셀XA를 소프트웨어로 얹기로 했다.”

지난 8일 송교석 메디픽셀 대표가 자사 의료용 AI 제품 '메디픽셀XA'를 직접 시연하고 있다. /최정석 기자

一의료계는 왜 메디픽셀XA에 주목하나.

“심장내과의는 심혈관조영술을 필연적으로 쓸 수밖에 없다. 문제는 심장 엑스레이 영상을 한 프레임씩 보고 선을 그으며 혈관을 구분하고 병변을 찾고 협착 정도를 분석하는 방식이 너무 아날로그적이라는 점이다. 차가운 시술대에 환자를 눕혀놓고 일일이 확인하다보니, 시간이 오래 걸린다. 때문에 심혈관조영술을 통해 나온 영상을 세밀하게 분석하는 건 대개 시술실 밖 연구 과정에서나 이뤄져 왔다. 메디픽셀XA는 이런 문제를 단박에 해결해 냈다. AI가 심혈관 조영영상을 분석해 병변을 찾고, 혈관이 막힌 정도를 수치로 정량화해 제시한 뒤, 해당 부위에 가장 적합한 스텐트를 추천한다. 모든 과정은 2초 만에 끝난다. 진단과 시술 사이에 존재하던 물리적인 간격을 아예 없애 버렸다고 해도 무방하다. 심혈관조영술이 AI와 만나 연구실에서 시술실로 들어오게 한 것이 메디픽셀XA의 가장 큰 성과라고 본다.”

一메디픽셀XA의 실제 반응은 어떤가.

“굉장히 뜨겁다. 어떤 의사는 우리 제품이 내비게이션 같다고 한다. 요즘 내비게이션 없이 운전할 수 없는 사람이 대다수인데, 곧 메디픽셀XA을 쓰는 의사들도 그렇게 말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사실 의사들은 새로운 기술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데, 익숙지 않은 것을 썼다가 환자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메디픽셀XA는 초기 반응이 꽤 괜찮다. 계속 쓰고 싶다는 거다. 클라우드 서버로 메디픽셀XA 데모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걸 쓰는 의사들도 꽤 많다. 임상을 진행 중인 서울 소재 병원 의사들과는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주고 받고 있다.”

一그럼 구매도 몰리고 있나?

“모순적이지만 구매 문의는 적다. 보험 문제가 원인이다. 메디픽셀XA는 의료보험 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다. 때문에 병원이 사서 들여놓으려면 부담이 크다. 병원 행정팀을 찾아가 직접 설득해야 하는데 잘 안 된다. 보험 수가 제도에 편입이 돼야 판매도 더 수월하게 이뤄질 텐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보니까 ‘좋지, 살래?’ 하면 부담스러워 한다. 그래도 얼마 전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관계자들을 만나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심평원에서는 문제를 인식하고 고민해 보겠다고 했다. 정말 해 볼지는 모르겠다(웃음). 물론 심평원뿐만 아니라 의료 AI 업계도 함께 힘을 합쳐 풀어갈 문제라고 생각한다.

一막상 전공은 프로그램 개발 쪽이 아닌 걸로 아는데 창업 계기가 따로 있나.

“고려대학교 지구환경과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LG전자, 안랩 등에 머물다 미국 카네기멜론 대학교 정보기술학 석사 과정을 밟으며 e커머스(전자상거래) 공부를 했다. 이후 안랩에 돌아와 사내 창업으로 노리타운스튜디오라는 소셜 게임 업체를 세웠다. 초기엔 사업이 괜찮게 흘러갔고 안랩에서 분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렌드 변화를 쫓아가기 버겁다고 느껴졌고 결국 창업한 지 8년쯤 지난 2014년에 대표직을 내려놨다. 변화를 느낀 건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경기였다. 그 대국을 보며 AI에 미래가 있겠거니 생각이 들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다 서울 아산병원에서 연 의료 AI 경진대회에 참가했다. 폐암의 악성종양과 양성종양을 AI로 구분하는 프로그램을 출품했는데 결국 수상까지 했다. 이후 모 의사 분께서 의료 AI 쪽으로 함께 연구를 해보자 권유했고, 당연히 수락했다. 다만 연구가 진행될수록 소규모의 한계를 느꼈고, 더 큰 일을 해보자는 심정으로 메디픽셀을 창업했다. 2017년의 일이다.”

송교석 메디픽셀 대표가 지난 8일 조선비즈와 인터뷰 중, 화이트보드 앞에서 회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정석 기자

一심혈관중재시술엔 심혈관조영술 이외에 다른 시술법도 있는 걸로 안다. 진출할 계획은 없나.

“심혈관중재시술에 있어 전통적 표준은 심혈관조영술이 맞다. 하지만 차세대 표준 방법론은 심근분획혈류 예비력(FFR·Fractional Flow Reserve)이라는 시술법이다. 압력을 측정하는 센서가 달린 미세 와이어를 심혈관 안에 집어넣는다. 정확하게는 심혈관 협착증이 일어난 병변 사이에 와이어를 넣는다. 센서는 혈액이 병변을 통과하기 전과 후의 혈압 차이를 계산해 협착이 일어난 정도를 숫자로 내놓는다. 영상과 사진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심혈관조영술이 ‘형태적 진단’이라면 FFR은 수치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기능적 진단’이다. FFR이 수학적으로 더 정확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一FFR 개발을 진행하고 있나.

“그렇다. 기존 FFR은 와이어를 심혈관에 집어넣어야 하는데, 환자에겐 좋지 않을 수 있다. 일단 심장 병변 부위를 계속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심장 내 조영제 투입과 엑스레이 촬영이 지속된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환자는 물론 의료진도 많은 방사선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또 심혈관 움직임을 명확히 확인하려면 아데노신이란 물질을 환자 심장에 주사해 인위적으로 심장이 더 강하게 뛰게 해야 한다. 이것도 환자 건강에 좋지 않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개발 중인 기술은 심혈관조영술과 FFR을 연결하는 방법이다. 쉽게 말해 2차원(2D)으로 촬영한 심혈관 영상을 딥러닝 AI로 3차원(3D)화하는 기술이다. 와이어를 직접 넣어 압력을 계산하는 방법은 10분 정도 걸리는데, 의사들이 느끼기에 엄청 오랜 시간이다. 때문에 FFR도 시술실에선 거의 안쓴다. 현재 개발 중인 FFR은 3D 영상화에 5분 정도다. 아직 의사들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1분까지 시간을 줄여보려고 한다. 현재 이를 실현하기 위한 기반기술들을 개발 중이다.”

一5년 단위 범부처 사업으로 의료 AI 플랫폼을 개발 중이라고.

“심혈관중재시술용 통합 진단 플랫폼이다. 여기에 메디픽셀XA의 기능은 물론 FFR, 그리고 차후에 개발 예정인 혈관내초음파(IVUS·Intravascular Ultrasound) 기법 등 다양한 진단 방법론에 AI를 접목한 소프트웨어를 하나의 플랫폼 안에 전부 탑재할 계획이다. 그만큼 많은 시간이 필요한 연구고, 정부도 16억원을 지원했다. 시술실에 메디픽셀 통합 플랫폼 하나만 있으면 모든 심혈관질환을 빠르고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게끔 되는 게 우리의 목표다.”

一메디픽셀이 그리는 미래상이 궁금하다.

“단기적으로는 메디픽셀 통합 플랫폼을 완성해 심혈관중재시술 관련 AI 업계에서 확실한 게임 체인저가 되고 싶다. 장기적으로는 플랫폼의 적응증을 심혈관질환 이외 것으로 넓히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말초혈관이나 뇌혈관 등 신경계 쪽으로 저변을 꾸준히 넓혀가고 싶다. 최종 목표는 환자는 물론 의사까지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기술을 제공하면 일단 의사들이 행복해질 것이고, 환자도 나은 치료를 받게 될 테니 환자들도 행복해지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