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치과병원 2층 바이오급속교정센터 치료실 앞에는 ‘순기자연(順基自然)’이라는 사자성어가 적힌 액자가 걸려있다.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자연에 맡긴다’는 뜻인데, 비뚤어진 치아를 보철 교정기로 바로잡는 치료를 하는 곳에서 이런 좌우명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김성훈 경희대치과병원 교수는 “치아 위아래 맞물림 상태가 우수한 치아는 그대로 남겨 두면서, 문제가 되는 치아만 교정하는 게 ‘바이오급속교정’의 핵심”이라며 이런 사자성어를 쓴 유래를 설명했다. 통상 ‘교정치료’라고 하면 32개의 치아 전체에 보철을 해서 치열을 한꺼번에 움직이는 것을 연상하는데, 김성훈 교수의 교정 치료법은 이를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순기자연’은 바이오급속교정의 중국식 명칭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중국 대도시의 치과대학을 중심으로 강연을 나갔는데, 영어 명칭은 얘기해도 잘 와 닿지 않는다고 해서 만들어 냈다”고 했다. 중국은 코카콜라는 ‘가구가락(可口可乐)’, 맥도날드는 ‘마이땅라오(麦当劳)’라고 중국식으로 부른다.
바이오급속교정은 1979년 경희대치과병원 정규림 교수가 개발한 교정 법이다. 김성훈 교수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진단·치료 원칙을 세우고 과학적으로 입증해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교수가 지금까지 이와 관련해 써 낸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은 백여편에 이른다.
김 교수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17년 치아 교정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에드워드 앵글리서치’상을 수상했고, 전 세계 의료기관 순위를 평가하는 미국 웹사이트 ‘엑스퍼트스케이프(Expertscape)’에서 ‘교정용 고정원’ 분야 최고 권위자로 선정됐다. 김성훈 교수를 지난 2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치과병원 2층 바이오급속교정센터에서 인터뷰했다.
김 교수의 진료실 창가에는 선홍색 인체 치아 모형 수십개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김 교수가 짬 날 때마다 손수 제작한 모형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원래는 (이런 모형이) 창가 전체를 다 채웠는데, 제자들과 지인에게 하나씩 선물 하다 보니 지금은 이것밖에 안 남았다”고 했다.
一 엑스퍼트스케이프 ‘교정용 고정원’ 분야에서 세계 1위로 선정되신 것 축하드린다.
“웹 사이트 쪽에서 먼저 이메일로 연락이 왔다. 의료계 전문가들이 지난 10년 동안 작성한 논문을 모두 리뷰해서 평가한 것 같더라. 내가 그동안 해 온 결과물이 해외에서 인정받게 된 것이라서 의미가 컸다.”
一 한국 의료가 치과 교정 분야에서도 세계적 수준에 오른 배경이 있나.
“치아 교정뿐만 아니라, 임플란트를 포함해 국내 치과 진료의 전반적인 수준이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보다 훨씬 높다. 한국 치과 의료진에는 세계적인 스타급 교수가 많다.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는 이른바 ‘비보험 진료’가 오히려 의료의 질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의료 수가가 보장되는 분야에 훌륭한 인재들이 지원하니 그런 것 아니겠나 싶다.”
一 미국은 의료 자체가 사보험 아닌가. 미국과 한국의 치과 대학 교육 시스템이 차이가 있나.
“미국은 치과대학 전공의 진료 체계가 교육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 대학병원에서 교정과 전공의 수련 평가를 위한 목적으로 교정 치료비를 매우 낮춰서 환자를 받는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일반 개원의 시장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민간 병원의 치료비가 대학병원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여기에 대학병원에서는 일반 개원가에서 다루지 못하는 고난이도의 환자가 주로 찾는다. (대학병원 치료비) 가격이 민간보다 비싸서, 환자들의 눈높이도 매우 높다.”
一 치료가 어려운 고난이도의 환자를 접하면서 교육받다 보니 저절로 실력이 쌓이게 됐다는 건가.
“미국 대학에서는 수련의들이 쉬운 환자부터 접하게 되는데, 한국 치과대학에서는 그럴 수 없다. 대신 이런 어려운 환자들만 다루다 보니, 단기간에 실력을 키우게 된다. 요즘 수련의들은 수련 초반에 오전 3~4시까지 스스로 공부한다. 새벽에 불 켜진 진료실과 의국을 보면 교수로서 미안한 마음도 든다. 그렇게 교육을 받고 나가야 개원을 하든 나가서 경험을 할 수 있다. 한국 교정 치과 수준은 강제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一 어려운 난이도의 환자라면 어떤 환자를 뜻하나. 대개 교정 치료라고 하면 미용 목적을 생각한다.
“순수한 미용 목적의 환자는 주로 대학병원에 오지 않는다. 개원 치과에서 교정 치료를 받았는데,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부작용이 생긴 경우 이를 다시 되돌리는 것을 회복 교정이라고 하는데, ‘바이오급속교정’은 회복 교정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일부 한의원이나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의료기관에서 교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비대칭 치료라는 것을 받은 후 자신의 턱을 어디에 둘 지 모른 상태까지 악화된 환자도 있다. 교정은 외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기본 교정이 잘못된 경우, 환자의 심적 고통이 크다. 간혹 자신이 겪은 심적 고통을 분노로 표현하는 환자가 있어서 정신적으로 힘들 때도 있다.”
一 회복 교정의 경우 치료는 어떻게 이뤄지나.
“우선 환자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다. 사람이 밥을 먹고 살려면 턱관절과 치아를 계속 움직인다. 교합이 무너진 환자는 일시적으로 자신이 편한 위치로 턱을 바꾼다. 이러면 상태가 계속 되면 턱 관절 상태가 악화된다. 구강내과에 의뢰해서 턱 관절 염증을 잡고, 뒤틀린 유형을 평가하고, 근육 교합에서 어떤 부분을 교정할지 판단하게 된다. 비인가 의료기관에서는 이러한 치열과 뼈, 그리고 교합의 유형과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一 어려운 난이도의 환자를 주로 진료하게 된 계기가 있나.
“‘잘한다’고 칭찬하면 잘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지 않나. 여기에 사명감과 객기(客氣)가 있었던 것 같다. 대학 병원 의사는 진료하고 싶은 환자를 고를 수도 없다. 지금은 이 길을 접기에 너무 늦은 것 같다. (웃음) 잘못 엮인 건가.”
一 코로나19 사태 전에는 치과 기술을 배우려고 한국으로 오는 외국인도 많다고 들었다.
“중국 치과 교정계에서 ‘김성훈’이 제일 유명하다고 하더라. (웃음) 중국 포레스타텐트 유통업체 관계자와 관계를 맺고, 적극적으로 강의를 많이 했다. (내가 유명하지 않았던 10여년 전에) 이분을 만났고, 중국 30개 대도시 최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김 교수는 이 인연을 통해 지난 2013년부터 수 많은 중국 대학에 강의를 다녔다고 한다. 2년 동안 주말을 껴서 북경대, 쓰촨대, 대련대를 넘어 청도, 신장 위구르까지 중국 전 지역을 돌아다녔다. ‘순기자연’이라는 명칭도 이런 강의 과정에서 나왔다. 중국 청중들에게 바이오급속교정을 영어로 설명했더니 선뜻 이해를 하지 못했해서 고안해 낸 명칭이라고 한다.
一 중국 유통업체 대표에게 대학 강의를 주선해 달라고 부탁한 배경도 궁금하다.
“바이오급속교정은 미국 학문도 일본 학문도 아니다. 교정을 원하는 환자들은 대부분 돌출입을 해결해 달라고 온다. 이 경우 앞니만 뒤로 당기면 돌출이 해결되는데, 기존 치료법으로는 전체 보철을 해서 어금니까지 뒤로 밀어버린다. 이 경우 건강한 어금니 교합까지 뒤틀어버리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치료를 해도 ‘과학적 근거도 없는 학문’이라는 뒷말이 들렸다. 그래서 세계 1위 교정 전문가가 되어서, 과학적 근거로 데이터로 입증하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미국 교정학회지는 한국의 경희대, 연세대, 서울대, 고려대 등 학벌에 신경 쓰지 않는다. 국내에선 통하지 않는다고 하면, 세계 학계에서 인정받겠다는 그런 목표였다. ”
一 그렇다면 해외 강의는 자비로 다닌 건가.
“초반에는 나를 알려야 하기 때문에 돈을 내면서 강의를 했다. 의료기기 업체 후원을 받고 학회나 강의를 가게 되면, 아무래도 업체 쪽에 우호적인 얘기를 하게 된다. 그 얘기를 했더니 아내가 자신의 급여로 항공료와 학회비를 내줬다. 자존심 굽히지 말라고. (김 교수의 아내도 치과의사다.)
그런데 내가 돈 개념이 좀 없다. 한창 해외 강의를 다닐 때 항공료와 호텔비를 일시불로 결제했다가 그다음 달 신용카드에 1300만원이 찍혔다. 지금은 추억이 됐지만. 그 당시에는 난리가 났다. 이제 좀 유명해지니 돈을 받고 강의를 갈 수 있게 됐다.”
一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중국 시장 진출은 쉽지 않아 보인다.
“물론 그런 요인도 있다. 하지만 일단 중국 내 치과 교정 수요가 아주 크다. 중국 치과 의사 중에서 교정치료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인비절라인’을 비롯한 ‘투명교정’이 보편화되고 있다. 제작해서 끼우기만 하는 구조라서 숙련되지 않은 치과의사도 쉽게 시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중국 시장에서 숙련되지 않은 교정 치료를 받은 환자들 사이에 부작용으로 재교정, 회복교정을 해야 할 수요가 엄청나게 커질 것이라고 본다. (이런 수요를 생각해서인지) 중국 대련대에서 석사를 받은 치과의사가 경희대치과병원 박사 과정에 있다. 다음 학기 또 한 명의 중국 치대생이 박사 과정으로 들어온다.”
一경희대치과병원팀이 고안한 종합교정치료 시스템 ‘트위맥 프리스크립션’이 독일계 의료기기 업체인 포레스타덴트와 협력해 제품화된다고 들었다. 간단한 설명 부탁드린다.
“독일 포레스타덴트는 글로벌 시장에서 3~4위 정도 하는 업체다. 프리스크립션이라는 것은 일종의 설계도라고 보면 된다. 아무리 하드웨어가 좋아도 브라켓의 철사가 끼어들어가는 각도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교정은 치료 결과가 달라진다.”
김 교수에 따르면 치과 교정 기기 시장은 현재 미국의 로스 치료법, MBT 치료법, 데이먼 치료법으로 3분할 돼 글로벌 시장을 평정하고 있다. 그런 시장에서 자신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새로운 치료법을 만들어 낸 것이다.
김 교수는 자신을 ‘꿈을 현실로 만들려는 현실적 몽상가’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인터뷰 도중 책상 왼쪽 벽에 걸려 있는 액자를 꺼내 들었다. 커피 등 음료를 담아가는 종이 캐리어에는 치열을 형상화한 그림에 숫자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특허를 받으려면) 기존 처방(로스 MBT 데이먼)을 능가하는 한 방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어 고심하던 차에, 협업했던 같은 과 동료 교수인 안효원 교수와 함께 아래쪽 어금니에 대한 최종 조합 정리를 해냈다. 그게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커피를 마시다가 ‘유레카’라면서 그 조합을 적어달라고 했다. 이 조합을 지난 3년 동안 역으로 검증을 해냈다.”
一 브라켓의 각도 조합을 찾아내는 데 굉장한 노력이 필요한가.
“오죽하면 그 자리에 있던 커피 캐리어에 숫자를 써서 액자까지 만들었겠나.기존의 치료법은 짧게는 10여년, 길게는 30여년 전에 고안된 것이고, 그 당시 상황에 머물러 있는 치료법이다. 하지만 지난 10여년 동안 기술이 너무나 발달했다. 그렇다면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고, 또 흩어져 있던 여러 치료법의 강점을 조합해 새로운 교정치료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논리적 방점을 찍은 것이 바로 (커피 캐리어에 숫자를 적었던) 2018년 7월 25일이다.”
一 독일 포레스타덴트와는 어떻게 연결이 됐나
“내원 환자를 통해 트위맥 치료법을 검증(임상)하는 과정에서, 회사 쪽에서 먼저 (트위맥을 써 보고 싶다는) 제안이 왔다. 그동안 발표한 해외 논문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내 영향력이 커지는 상황과, 향후 10년 교정 치료 기기 미래를 이끌 혁신적인 파트너(치과 의사)가 필요했던 포레스타덴트의 상황이 맞아 떨어졌던 것 같다.”
一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록과 유럽연합 통합규격인증(CE)을 동시 진행 중이라고 들었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유럽 CE 인증은 지난 11월에 받았다. 가장 기본형 금속 브라켓인 ‘미니 스프린터’란 제품이다. 미 FDA는 접수 단계로 알고 있다.”
一 기존 치과 교정 시장에 존재하는 글로벌 카르텔에 도전장을 낸 것이라고 봐도 되나.
“그러니 더 알리고 더 싸워야 한다. 물론 이러다가 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확신을 갖고 있다.“
一 독일 기업에 일종의 기술 이전을 한 것인데, 성공할 경우 경제적인 이득은 없나.
“그런 거 없다. 돈 안 받고 하는 일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쓸 수 있도록 정보를 개방했다. 그것을 포레스타덴트가 선택해 선도하는 것이다. 트위맥을 도입한 포레스타덴트 패키지가 전 세계적으로 쓰이게 되면, 아마 다들 이 특허를 활용한 제품을 만들게 될 거다. 이를 통해서 내가 얻을 경제적 이득을 굳이 찾는다고 하면, 지금보다 더 유명해져서 해외 강의를 좀 더 편하게 돈 더 받고 다닐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하하.”
一 중국 하얼빈2병원 치과진료플랫폼 기술 이전 사업도 진행하는 것으로 안다.
“중국 하얼빈 메디컬 타운의 1호 병원이 경희대치과병원이다. 처음에 이 사업을 추진할 때 우리가 가진 의료 노하우를 중국에 빼앗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난 생각이 달랐다. 바이오급속 교정을 세계 시장으로 꺼내서 알리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했다.”
一교정치료와 의료기기 산업 발전을 위해 정부에 부탁하고 싶은 말은 없나.
“경희대치과병원을 중국 하얼빈 1호 병원으로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시정부 차원에서 움직이는데, 경희대의료원이 일대일로 대응하는 것만으로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 보건복지부와 보건산업진흥원에서 적극적으로 우릴 도와줬다. 그 때 국가가 힘을 실어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 지를 느꼈다.”
一정부가 좀 더 도와줬으면 하는 부분은 없나.
“국가 진료 연구 개발 과제 지원이 좀 더 간소화됐으면 좋겠다. 나 같은 사람은 지원도 못한다. 보고서와 서류 작업이 너무 많다. 병원 진료에 자체 연구 개발에 해외 강의까지 해야 하는데, 서류에 치인다.”
一 치과 의료 산업 발전을 위해 보건산업진흥원에는 제안하고 싶은 말은 없나.
“트위맥 프리스크립션은 한국이 개발한 기술이다. (이 치료법이 퍼지면) 기존의 글로벌 교정 의료 시장의 고정관념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치처럼 한국을 알릴 수 있는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독일 회사가 제품화에 나서고 있지만, 한국 기업도 충분히 활용해서 세계 시장에 알려나갈 수 있다. 진흥원이 이런 부분을 활용해 줬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동남아시아의 저소득 국가에 공적개발원조(ODA)를 많이 하는데, 트위맥 프리스크립션을 적용한 의료기기를 구입해서 지원하면 한국도 알리고, 글로벌 회사의 바이오급속교정에 대한 관심도 커질 수 있다.”
김 교수는 인터뷰 내내 자신이 ‘부족해서’ 더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가진 것을 베풀었더니, 베푼 것의 수십배가 자신에게 되돌아왔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것’에 집착하고, 조금의 손해도 보지 않으려고 계산한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강조했다. “비우면 비울수록 더 맑고 깨끗한 물이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순기자연’ 이 뭐냐구요? 스스로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진단치료법이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