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인포마이닝 대표는 올해 초 서울 소재 모 상급종합병원으로부터 흥미로운 통계치 하나를 전달받았다. 해당 병원에서 인포마이닝의 스마트 의료 솔루션인 ‘하티하티’를 계속 사용한다고 가정했을 때, 간호사들 야근수당만 연간 400억원 이상 절약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 것이다. 이 대표는 “스마트 의료라는 새로운 현상을 못미더워 하던 현장 의료진들도 업무 효율성이 어마어마하다며 칭찬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라고 말했다.
하티하티는 인포마이닝에서 개발 중인 스마트 의료 솔루션이다. 하드웨어에 해당하는 스마트밴드 ‘메디워치’가 맥박, 심전도, 산소포화도, 체온 등 활력징후(바이탈사인)를 측정하면, 소프트웨어가 이를 의료진에게 전달해 환자를 진단·치료하는 데 도움을 주는 식으로 작동한다.
하티하티만의 특징은 그 과정에 심층학습 인공지능(딥러닝 AI)이 두 번에 걸쳐 개입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로 스마트밴드가 측정한 환자의 바이탈사인을 실제 숫자로 환산해주는 과정에 AI가 개입한다. 두 번째로 그렇게 계산해낸 수치를 조합한 뒤 기존에 축적한 데이터와 비교해 해당 환자가 어떤 질병을 갖고 있을 확률이 제일 높은지, 어떤 치료법이 가장 효과가 좋았는지 등의 정보를 AI가 의료진에게 제공한다. 이렇게 의사들의 임상 결정을 지원해주는 인공지능을 임상의사결정지원시스템(Clinical Decision Support System·CDSS)이라고 한다.
인포마이닝은 국내 상급종합병원을 대상으로 선행 연구(파일럿 테스트)를 진행하며 입원 환자 실시간 관리에도 하티하티가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단순히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일대일로 이뤄지는 진단과 치료를 넘어, 병원이란 환경 안에서 적은 의료인력이 많은 환자를 보다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돌볼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환자에게 스마트밴드를 채워 실시간으로 측정되는 바이탈사인을 병실 밖 간호 스테이션에서 의료진들이 화면으로 확인한다. 환자의 바이탈사인이 급격하게 오르내리는 등 이상신호가 발생하면 이런 상황이 화면에 곧바로 표시된다. 의료진 휴대전화로 알림이 전송되기도 한다.
이러면 의료진이 시간마다 환자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움직일 필요가 없어진다. 응급상황을 대비해 밤새 병동에 남아있어야 하는 의료진 숫자도 줄어들게 된다. 야근하는 의료진이 적어지면서 의료인력과 인건비를 동시에 아낄 수 있다. 환자도 의료진이 자기 상태를 병실 밖에서 실시간 확인 중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안심할 수 있다.
이 대표는 지난 2019년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실시한 창업 지원 프로그램인 예비창업패키지에 하티하티의 전신에 해당하는 소프트웨어를 출품해 지원 대상에 선정됐다. 그렇게 받은 정부 지원금으로 인포마이닝을 창립했을 당시 그의 나이가 30살이었다.
이 대표는 지난해 정부와 함께 ‘자가진단 앱(APP)’을 개발해 출시했다. 그 과정에서 여권 사진을 찍으면 여권 및 비행기 정보를 자동으로 서버에 입력해주는 프로그램인 ‘OCR 인공지능’을 개발했다. 또 해외 입국자들의 코로나19 발병 여부를 관리·관찰할 수 있는 일종의 통합관제센터 격 프로그램을 만들어 정부와 공동 특허를 등록했다. 또 심전도 데이터로 환자 질병을 예측하는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개발했으며 이에 대한 논문을 세계 최고 인공지능 학회인 신경정보처리시스템학회(NeurIPS·닙스)에 제출하기 위해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와 편집 작업을 거치고 있다. 이 대표를 지난 24일 서울 영등포구 도림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一올해 1월 고대구로병원에서 AI와 사물인터넷(IoT)을 접목한 실시간의료진단시스템을 주제로 강연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시대에는 바이탈사인을 체크하기 위해 의료진이 환자를 만나는 모든 순간이 위험하다. 이 때문에 기술을 이용해서 원내 감염을 줄여나간다면 그것 자체로 방역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의료진이 이런 시스템이 있다는 걸 알고 바이탈사인은 어떤 식으로 측정이 되는 건지, 그 내용을 알려주는 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 건지 등등 많은 것들을 물어봤다.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一국내 상급종합병원 대상으로 진행 중인 파일럿테스트 반응은 어땠나.
“환자들은 자고 있을 때도 손목에 스마트밴드를 착용하고 있어야 해 불편함을 호소했다. 다만 그 덕분에 실시간으로 바이탈사인이 체크되는 점 때문에 안심하는 건 있었다. 반응은 의료진 쪽에서 더 크게 나왔다. 특히 업무 효율성 측면에서 많은 부분이 개선됐고 환자만큼 의료진도 안심이 되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 다만 스마트밴드가 바이탈사인을 좀 더 정확하게 측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정식 의료기기에 비하면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특히 혈압 측정의 정확도가 많이 떨어진다는 말이 많았다.”
一스마트밴드로 혈압도 잴 수 있나.
“기계 바닥 부분에 녹색 빛이 발광하는 부분이 있다. 이 녹색 빛을 ‘광용적맥파(Photoplethysmography·PPG)’라고 한다. 빛을 활용해 맥파를 측정하는 광혈류측정이란 의학 기술에 사용된다. 이게 빛을 쏘면 혈관에 갔다가 튕겨져 나오면서 수광부(빛을 받는 부분)로 다시 들어온다. 이쪽으로 반사된 값을 AI가 측정해서 일종의 그래프를 만들면 그래프상에서 AI가 혈압 값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다만 현시점에선 더 많은 데이터를 쌓아서 AI에 학습을 시키는 방법으로 측정 정확도를 끌어올려야 한다. 현재 임상 진행 중인 기능이다.”
一지난해 정부와 합작으로 자가진단 애플리케이션을 만든 것으로 안다. 그때가 회사를 세운 지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시점인데.
“당시 치매 환자인 노인을 대상으로 행동반경을 측정하는 AI 프로그램을 만들다가 정부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치매 환자들이 가끔 길을 잃고 실종되는데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 그들의 평소 이동경로를 추적하고 그에 대한 데이터를 쌓아서 행동반경을 만든다. 그리고 여기서 어느 정도 이상 벗어나면 보호자에게 연락이 가는 프로그램이다. 이걸 코로나19 확진자 이동경로를 파악해 역학조사에 활용하는 쪽으로 개발이 추진됐다.”
一우여곡절은 없었나.
“많았다. 일단 우리가 신생 회사였던 탓에 정부 관계자들이 쉽게 믿지 못했다. 진짜 할 수 있는 거냐는 질문을 얼마나 받았는지 모른다. 예산도 당시엔 3000만원 정도로 매우 적었다. 그때가 2월 초였는데 개발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추가할 기능이 계속 생겼다. 그 중 하나가 광학 문자 인식(Optimal Character Recognition·OCR) 인공지능 기술이었다. 당시 해외에서 국내로 입국하는 이들의 신원을 확보하고 그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됐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여권 사진을 찍으면 AI가 여권에 적힌 내용을 자동으로 텍스트화해 서버에 저장하는 기술을 만들었다.
계약이 기능 단위로 이뤄지다 보니 3000만원으로 시작했던 예산이 나중에는 8억원까지 뛰더라. 그 와중에 처음 만들기로 했던 행동반경 측정 기능은 개인정보 침해 소지가 있다며 아예 백지화되는 등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一정부와 공동으로 특허를 딴 게 있던데 그건 어떤 건가.
해외에서 입국한 내·외국인들을 감염병 차원에서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통합관제센터 시스템을 만들었다. 입국, 시설 격리, 귀가 혹은 숙소 체류, 관광객에 한해선 출국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이들의 건강 상태 등을 AI가 수시로 체크하며 코로나19 발병 여부를 자동으로 관리·관찰하는 식이다. 이러한 체계 전반을 정부와 함께 만들어 특허를 냈다.”
一의대에 합격한 후 의사가 되길 포기한 뒤 결국 개발자가 됐다. 진로가 크게 꺾인 계기가 있는가.
“원래 꿈은 개발자, 연구자와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내 또래 친구 중 많은 이들이 그랬듯, 드라마 허준을 보고 꿈을 의사로 바꿔버렸다. 하하. 그런데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폐암에 걸리셨다. 그리고 가천대 의대에 입학했던 스무살 때 결국 돌아가셨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의대에 들어갔는데 집에 일을 할 사람이 없어 가정형편이 크게 기울었다. 심지어 당시 살아계셨던 어머니도 그땐 암으로 투병 중이었다. 도저히 정상적으로 학업을 이어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결국 의대를 졸업하지 못하고 중간에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후 군대를 다녀왔는데 전역 이후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 하지 않겠니”라는 어머니 말씀을 듣고 당시 살던 집 주변에 있던 모 대학에 진학했다. 전공은 컴퓨터공학과.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걸 너무 좋아했다. 코딩 경험도 있었고 무엇보다 누나가 컴퓨터공학과였던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결국 꿈은 의사였고 코딩 및 개발은 취미였는데,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의사가 되는 꿈을 접으면서 기존에 취미활동으로 좋아했던 컴퓨터공학을 제대로 배워보자고 결심한 끝에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一스마트 의료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은 이유가 있나.
“어머니가 암에 걸려 통원치료를 하고 있을 당시 병원에 가는 게 너무 싫었다. 오전 9시에 진료를 예약했어도 각종 검사를 받고 결과가 나와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오전 9시 예약임에도 항상 오전 6시부터 병원에 가서 미리 각종 검사를 받았다. 두어시간 기다려서 겨우겨우 시작된 진료는 보통 10분도 채 안 돼서 끝났다. 3시간 동안 기다린 진료가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고 약봉투를 받아 집에 돌아갈 때면 항상 허탈하고 너무 피곤했다. 그런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 못다이룬 의사라는 꿈, 거기에 대학에서 쌓은 개발 기술과 경험 등등 이런 것들이 겹치면서 스마트 의료 사업이란 목표가 만들어진 것 같다.”
一그렇다면 현재 하티하티와 같은 스마트 의료 솔루션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미비점은 없는가.
“의료기기 승인 문제가 가장 크다. 현재 바이탈사인 측정에 사용되는 메디워치는 국내에서 의료기기로 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다. 이렇게 말하면 하드웨어 쪽 문제인 것 같지만 사실 소프트웨어 문제다. 딥러닝 AI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바이탈사인을 더 정확히 측정하려면 더 많은 데이터, 더 오랜 임상 기간이 필요하다. 한국의 경우 의료기기 승인이 굉장히 까다롭다. 메디워치가 측정하는 바이탈사인이 여러 가지인데 국내에서 의료기기 승인을 받으려면 모든 바이탈사인 측정값의 정확도가 실제 의료기기 수준으로 매우 높아야만 한다. 한국 의료기기 승인을 받지 못한 제품으로 바이탈사인을 측정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불법이다. 이 때문에 당연히 현재로선 일반인에게 판매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一미국 식품의약국(FDA) 1등급 승인 문서가 보인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선 메디워치 등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건가.
“그렇다. FDA 1등급 승인이 있으면 개인에게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 메디워치를 통해 측정한 바이탈사인을 보조지표 수준에서만 활용한다면 병원 등 의료시설도 구매 가능하다. 덕분에 FDA 1등급 승인을 받은 뒤로 미국 전체 6위 병원인 시더스 사이나이 병원, LA에 소재한 라번 병원 등에서 구매를 적극적으로 희망한다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
一삼성, 애플 등도 센서를 통해 바이탈사인을 측정할 수 있는 스마트워치를 출시하고 있다. 이러한 경쟁업체에 비해 인포마이닝의 제품·서비스가 갖는 장점은 무엇인가.
“삼성, 애플처럼 개별 디바이스에 집중하는 회사가 우리 경쟁업체라곤 생각 안 한다. 그쪽은 측정 가능한 바이탈사인이 굉장히 단편적이고 그 기능 자체가 의료보단 소비자들의 일상생활에 맞춰져 있다. 반면 우리 회사의 솔루션은 첫째로 측정되는 바이탈사인이 삼성, 애플의 스마트워치보다 많고, 둘째론 여기서 나오는 데이터를 AI가 분석하고 의료진 등과 공유할 수 있게 해준다.”
一인포마이닝의 최종 목표나 비전을 말해달라.
“여러 가지 있는데 일단 첫 번째는 나스닥에 상장하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인포마이닝의 이름을 달고 제대로 된 스마트 병원을 짓는 것이다. 의사도 환자도 편하게 진료하고 치료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부모님 두 분을 모두 병으로 떠나보냈기 때문에 그 모든 진단과 치료 과정이 현 시스템상에서 얼마나 서로에게 불편한지 뼈저리게 알고 있다. 스마트 의료의 핵심 키워드는 결국 ‘편안함’이다. 그런 스마트 의료의 대중화, 스마트 병원의 대중화가 완전히 이뤄진 사회가 내가 그리는 이상적인 미래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