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국무총리가 24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수도권만 놓고 보면 언제라도 비상계획 발동을 검토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라고 밝힌 것은 그만큼 수도권 확산세가 위태롭기 때문이다.
단계적 일상회복(위드코로나)을 시작한 지 3주만인 지난 23일 밤 11시 전국 코로나19 확진자 숫자가 3700명에 육박하면서 하루 확진자 숫자로 역대 최대(3292명) 기록을 넘어섰다. 24일 0시 기준으로 하루 확진자는 사상 처음 4000명을 돌파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코로나19 위중증 환자 수는 500명대 중반까지 올라섰고, 수도권 중환자 병상 가동률은 83%까지 치솟았다. 수도권에선 응급실에서 병상을 기다리다가 사망한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병상 대기 중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3차 대유행이 발생한 지난해 12월 이후 1년 만이다.
정부는 병상 확충과 고위험군 추가접종(부스터샷)에 집중한다고 밝혔지만, 내부적으로 비상계획 발동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수도권에서라도 위드코로나를 잠시 멈춰야 하는 기로에 섰다고 입을 모았다.
◇ 위중증 환자 549명인데 신규 확진자 4000명 추가
각 지방자치단체에 따르면 전날(23일) 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부산을 제외한 전국 16개 시도에서 공개한 신규확진자 숫자는 3628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미 하루 확진자 최다 기록인 3292명을 넘어선 것이다.
서울은 1619명, 경기 1049명, 인천 221명으로 수도권에만 2889명의 확진자가 발생했고, 여기에 종교시설 집단감염이 발생한 충남(286명)을 더하면 수도권과 충남에서만 3175명이 확진됐다. 단계적 일상회복 3주차였던 지난주까지만 해도 하루 확진자 숫자는 3000명 안팎에서 움직였는데, 4주차에 접어든 이날 단숨에 4000명 턱 끝까지 차올랐다.
확진자가 누적되면서 위중증 환자 숫자도 급증하고 있다. 이날 코로나19로 입원 중인 위중증 환자가 23일 549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 19일 499명으로 감소했던 위중증 환자 수는 20일 508명을 기록한 뒤 나흘 연속 500명대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중환자 병상 가동률은 수도권 84.3%, 전국 69.3%로 한계에 달했다.
병상 부족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응급실에서 사망하는 환자도 나오고 있다. 방역당국에 따르면 전날 하루에만 코로나19로 사망한 환자가 30명에 달했다. 11월 3주차(10월 31일~11월 20일)까지 병상을 기다리다 사망한 확진자는 6명이 나왔다. 지난 한 주 동안에만 3명이 입원 대기 중에 숨졌다.
주간 사망자 숫자는 10월 마지막주 85명에서 126명→127명→161명으로 늘었다. 이런 추세라면 이번주 사망자 숫자는 200명을 넘어설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 정부, 수도권 병상 확충 추가접종 ‘투트랙’ 전략
중증환자와 사망자 숫자가 동시에 증가한 것은 최근 코로나19 확산세가 기본접종 후 면역력이 떨어진 고령층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돌파감염된 고령층 확진자의 경우 폐렴으로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70대 이상 확진자는 코로나19에 확진돼 폐렴에 걸리면 대부분이 패혈증으로 사망한다”고 말했다.
박향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방역총괄반장도 “어르신들을 중심으로 위중증 환자가 급격하게 늘어나 병상 대응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방대본에 따르면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 10명 중 8명이 60세 이상 고령층이다. 11월 셋째주 전체 사망자 161명 중 60세 이상은 94.4%(152명)로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정부가 현장의 비명에도 ‘비상계획’에 대한 언급은 자제하고,기존 정책을 고수하는 것도 현재 방역 위험이 고령층과 취약시설에만 한정돼 있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지금 당장 중환자 치료는 기존 병원에 요청해 추가 병상을 확보해서 받아내고, 집단 감염의 고리가 되는 ‘고위험 시설’은 고령층 부스터샷으로 예방력을 높여 해결하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수도권 상급종합병원 22곳 병원장을 두 차례 불러 병상확보 행정명령을 내렸고, 추가접종 간격도 종전 6개월에서 5개월로 단축했다. 정부는 오는 26일까지 요양병원 등 감염취약시설 추가접종을 마무리하고, 60대 이상 고령층은 12월 둘째주까지 추가접종을 하기로 했다.
일상회복위원회 위원인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사회적 거리 두기(사적모임·행사·영업시간 제한) 상향 조정을 제외한 요양병원·시설 방역 강화, 방역패스 적용범위 확대 검토, 추가접종 확대 등은 이미 시작했다”며 “이 조치들이 어느 정도 효과를 내는지 좀 더 봐야 한다”고 말했다.
◇ “부스터샷, 이미 늦었다” 비상계획 발동 불가피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의 병상확충과 부스터샷 대응은 ‘단계적 일상회복’ 시행 전에 미리 준비했어야 할 일이며, 이런 대응으로는 현재 상황을 막아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행정명령에도 병상 확충 속도는 더디다. 이날 현재까지 중증 병상 7개, 준중증 병상 48개, 중등증 병상 238개가 늘어나는 데 그쳤다.
추가접종 속도도 지지부진하다. 지난 22일 60세 이상 추가접종률은 지난주 7.5%로 직전주 (4.2%)보다 소폭 늘었다. 50대 추가접종자는 23일 0시까지 총 5095명으로 50대 인구(857만76명)의 0.05%다. 천은미 교수는 “현재 위중증 환자 확산세는 ‘위드코로나’에 따른 것이 아니라 백신 면역력 약화 때문”이라며 “정부가 부스터샷 접종을 단계적 일상회복 이 전에 시작했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정부가 재택치료 체계를 정비하고 감염병전담병원을 지정하는 등 병상 확보에 전력을 기울일 것을 당부했다. 천 교수는 “체육관 같이 넓은 공간에 병상 대기 환자를 모아서 한꺼번에 관리하는 식의 특단의 대책도 필요하다”고 했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결국 거리두기를 다시 조이는 것 말고는 위기에 대응할 방법이 없다”며 “이번 주가 고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재갑 한림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아직 병상 확보를 하지 못한 병원에 행정명령을 내리는 식으로 기존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도 다시 거리 두기를 강화하는 ‘비상계획’ 발동에는 선을 그었지만, 상황이 계속 악화되면 수도권만이라도 방역 강화 조치는 불가피하다. 손영래 중수본 사회전략반장은 “당장 비상계획을 조치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면서도 “엄중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어느 정도 방역조치를 강화시키는 부분 혹은 비상계획까지도 염두에 두고 내부적으로 검토를 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