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교수는 지난해 일본 후지필름으로부터 감사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홍 교수가 개발한 '림프부종' 수술법 덕분에 고해상도 초음파 진단장치가 엄청나게 팔린다"는 내용이었다. 후지필름은 1990년대 '필름 카메라'로 전성기를 누렸지만, 디지털카메라가 나오면서 의료⋅바이오로 업종을 다변화해 변신에 성공한 기업이다.
'림프부종'은 림프관(임파선)이 망가져 팔다리가 퉁퉁 붓는 병이다. 우리 몸에는 혈관과 림프관이 나란히 있다. 혈액이 산소를 운반한다면, 림프액은 세균과 노폐물을 옮긴다. 겨드랑이와 골반, 사타구니(서혜부)에 있는 림프절은 림프액에 실려 온 노폐물을 제거하는 '소각장' 역할을 하고, 깨끗해진 림프액을 정맥으로 내보낸다.
림프부종은 림프관이 망가져서 림프액이 몸 일부에 고여있는 병이다. 가려움, 뻐근함 등이 초기 증상인데, 방치했다가는 림프관이 딱딱하게 굳어 염증이 생기고, 최악의 경우 신체 일부를 절단해야 하거나 패혈증에 이르기도 한다. 암 수술 부작용으로 팔다리가 코끼리처럼 퉁퉁 붓는 것이 바로 이 질환이다.
홍 교수는 '림프관'을 '정맥'에 연결(吻合)시켜 림프부종을 치료하는 '림프정맥문합술'의 세계적 권위자로 통한다. 림프관을 정맥에 연결시켜 고여있던 림프액이 정맥을 통해 바깥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 주는 치료술이다.
현미경을 보고 0.2~0.6㎜ 정도로 얇은 림프관을 혈관에 연결시키는 이 수술은 초미세(超微細⋅극도로작고세밀)수술이다. 일본에서 먼저 시작된 이 수술은 초기에는 붓기가 심하지 않은 초기 환자들만 받았다. 중환자의 퉁퉁 부은 몸에서는 정맥에 연결할 림프관을 찾아낼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홍 교수는 고해상도 초음파 장치를 환부에 비춰 림프관을 찾아냈다. 산부인과에서 태아를 확인하는 용도 쓰였던 초음파를 림프 부종 수술에 접목한 것이다. 홍 교수팀은 그렇게 개발한 림프정맥문합술로 중증의 하반신 림프부종 환자 42명을 치료해 냈고, 그 결과를 논문으로 냈다. 이 논문은 올해 1월 성형외과 부문 최고 권위의 국제학술지인 '성형재건외과저널'에 실렸다.
홍 교수는 2000년대 중반 이 수술법을 일본에서 처음 배웠다. 그런데 이제 일본 의료기기 업체에서 홍 교수에게 새로운 수술법을 개발해 감사 인사를 하는 시대가 됐으니 격세지감이다. 홍 교수는 후지필름 일화를 전하면서 "의료계 혁신(이노베이션)이 산업계에 없던 수요를 개발했다는 생각에 참 흥분됐다"며 "(우리 팀이 개발한 수술법이) 전 세계에 인정받았다는 뜻도 된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2020년에는 한국 최초로 미국 성형학회가 수여하는 '말리니악 강연자'로 선정됐고, 2018년 스칸디나비아 성형외과학회 강연상, 2016년 미세수술학회의 고디나상, 2017년 캐나다 성형외과학회 알프레드 파머상 등을 수상했다. 홍 교수를 지난 15일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 연구실에서 만났다.
一 '성형재건 외과저널'에 등재된 것을 축하드린다. 해외 반응은 어떤가.
"지난 9~10월 유럽 10개국에 있는 병원을 순회했다. 강의를 해 달라는 초대를 너무 많이 받아서, 안식월을 내고 다녀왔다. 두 달 동안 '수술하고 강의하고'를 반복했다. 수술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줬더니 이른바 림프부종 수술의 대가로 분류되는 의사들도 고개를 끄덕이더라. 림프부종 수술에서 패러다임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一 '림프부종'은 왜 생기는지 설명 부탁드린다.
"림프부종을 이해하려면 '림프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림프계는 크게 림프절(림프샘), 림프관, 림프액으로 이뤄진다. 림프액은 백혈구와 같은 면역세포가 포함된 액체로, 우리 몸 전체에 퍼져있는 림프관을 통해 순환하며 면역반응을 돕는다. (림프의 어원은 프랑스어 'Lymphe'로 이는 '물'을 뜻한다.)
림프액이 온몸의 림프관을 돌면서 세균, 바이러스 등을 림프절로 운반해오면 림프절은 림프구(백혈구의 한 종류)로 이것들을 청소한다. 림프액이 먼지 섞인 공기라면 림프절은 공기청정기인 셈이다.
림프관이 망가지면서 림프액이 한 곳에 고여서 부어오르는 게 림프부종이다. 림프관은 암세포가 이동하는 통로로도 쓰인다. 이 때문에 암세포 전이를 막기 위해 암이 발생한 부위 주변 림프절을 수술로 제거하기도 하는데, 이로 인해 림프부종이 생기기도 한다."
一 그렇다면 림프정맥문합술은 어떻게 림프부종을 치료하게 되나.
"림프관을 정맥에 연결(吻合)시켜 고여있는 림프액을 빼 주는 수술이다. 이 수술법이 개발되기 전에는 림프부종을 치료할 때 인위적으로 림프액을 짜냈다. 림프액은 주로 지방층에 고였는데, 아예 지방층을 잘라내 버렸다. 하지만 지방을 없앤다고 해도 흘러넘치는 림프액이 어디 가는 게 아니다. 남아있는 지방에 쌓여서 계속 부종을 일으켰다. 그러다 보니 피부, 지방, 근막, 근육까지 제거하는 수준이 됐다.
그렇다면 이런 '물리적 수술 말고 생리적 방법의 수술은 없을까' 해서 고안된 것이 바로 이 수술법이다. 림프관은 어차피 돌고 돌아서 림프절을 거쳐 정맥과 합쳐진다. 림프절로 가는 고속도로가 막혔으면 국도를 뚫어주자고 생각했다. 그 국도를 뚫는 수술이 림프정맥문합술이다. 압력이 높은 림프관을 (압력이 낮은) 정맥에 연결하면 림프액이 저절로 흘러들어가고, 자연스럽게 배수가 되는 원리다. 원래는 일본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다."
一 일본에서 먼저 수술한 것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번 논문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동안 림프부종 2기 후반, 3기 환자는 이 수술을 하기 힘들다는 컨센서스가 있었다. 실패율이 높은 게 아니라 정맥과 연결할 림프관을 찾지 못해서였다. 그동안 이 수술에 사용해 온 적외선 카메라는 투과율이 1.5㎝밖에 안 된다. 부종이 심한 사람은 이 카메라로는 림프관을 못 찾는다.
그동안 다른 의료진들은 '중증 환자는 림프관이 퇴화돼서 못 찾는 것'이라고 체념하고 수술을 포기했다. 우리 팀은 '그래도 살아있는 림프관을 찾아보자'고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다. 처음엔 MRI(자기공명영상법)로 찾아봤는데, 잘 안됐다.
그 후에 산부인과에서 쓰는 고해상도 초음파를 써보자고 했고, 사용했는데, 림프관이 보였다. 이 아이디어를 보편화한 것이 우리 팀이다. 2기 후반 3기 중증 환자에게도 림프정맥문합술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가장 먼저 발표했다."
一이 수술은 어떤 환자에게 꼭 필요한가.
"림프 부종 초기 환자의 80%는 재활만 해도 다시 돌아온다. 이 수술은 재활로도 몸이 돌아오지 않는 '20%' 환자와 어떤 이유로든 시기를 놓쳐 중증으로 진행된 환자를 위한 것이다.
또 암 수술이나 외상으로 림프관이 끊어진 환자의 경우에는 수술이 효과가 있다. 하지만 림프관이 선천적으로 망가졌거나, 림프관 퇴화가 많이 된 환자는 어렵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런 환자는 전체 환자의 10% 정도뿐이다. 림프 부종으로 내원하는 초기 환자에게는 무조건 재활부터 받으라고 한다. "
一 림프정맥문합술을 시도할 수 없는 환자도 있다는 뜻인가.
"림프부종의 가장 기본이 되는 치료는 압박요법이다. 압박해서 림프액을 짜내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고, 림프액이 몸에 오래 고여 있게 되면 썩게 되고, 이것이 계속되면 림프관이 딱딱해지고, 살이 딱딱해진다. 한번 딱딱해진 부위는 다시 되돌릴 수 없다. 그 이후엔 비가역(돌이킬 수 없음)이라고 한다. 수술이든 뭐든 해도 되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一 그렇다면 수술 받은 환자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나.
"수술해도 압박이나 재활은 반드시 해야 한다. 커다란 튜브에 물이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해 보자. 바늘구멍을 뚫으면 물이 밖으로 나오긴 하겠지만, 많이 빨리 나오게 하려면 짜내야 한다. 압박을 하고 재활을 해야 순환이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많은 환자가 이걸 간과한다. 어떤 수술이든 다 그렇겠지만, 수술은 반이고 환자 역할이 반이다. 재활은 환자의 의지에 달린 것이다. 귀찮다고 재활을 소홀히 하면 회복이 안 된다."
一 수술에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1㎜ 미만의 실로 하는 수술을 초미세수술이라고 한다. 림프정맥문합술은 큰 현미경 밑에서 수술을 한다. 수술할 때 현미경을 보고 한단 뜻이다. 복강경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정밀한 수술이다. 이런 수술이 가능해진 것은 의료진과 의료기기 업계랑 함께 연구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혈관을 꿰매는 초미세 특수 수술실(絲)을 개발하고, 림프관에 주입하는 특수형광물질을 개발했다. 이런 특수실과 특수 물질은 보험 적용이 안 된다. 이 수술을 하려면 8만원짜리 11번실 대여섯개를 써야 하는데, 보험이 안 되니 쓰질 못 한다. 의학계는 발전하는데, 제도가 따라오지 못 하는 형국이다. 그래서 이 수술은 하면 할수록 병원은 손해다. 좀 우울한 얘기다. "
一 그런데 림프정맥문합술에 집중하게 된 계기가 있나.
"내 수술 철학은 쉽고 빠른 방법을 찾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이 수술이 맞다고 생각했다. 림프관이 끊어져서 기능을 못하면, 그걸 이어주면 되지 않나."
一 초미세수술을 시도한 결정적 계기도 있는지 궁금하다.
"처음 관심을 뒀던 미세수술은 당뇨발 재건이었다. 당뇨병으로 문드러진 발을 다시 살리는 일이다. 당뇨발 재건은 내가 레지던트였던 20여년 전에는 금기였다. 그 당시에는 당뇨발은 절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당뇨발을 절단했더니 환자의 5년 생존율이 50%였다. 대장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이 50%다.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서 당뇨발과 관련한 연구를 시작했다. (10년 가까이) 당뇨발 재건을 해 왔더니 이 환자들의 5년 생존율이 86%까지 올라갔다. 그렇게 소외된 분야를 연구한 것이 림프부종까지 온 것 같다."
(홍 교수를 필두로 한 아산병원 성형외과팀은 2002년부터 2011년까지 121건(113명)의 상처 난 당뇨발을 허벅지 등에서 떼어낸 피부, 살, 혈관을 통째로 붙여 미세재건술로 복원해냈다. 홍 교수 팀은 이 수술 결과를 토대로 괴사된 당뇨환자의 발을 절단하지 않고 복원하면 환자의 5년 생존율이 2배 이상 높아진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一 성형외과를 지원한 계기가 궁금하다.
"내가 성격이 급하다. 학생 때는 사람에 대한 관심 때문에 신경 정신과에 관심을 뒀는데, 환자의 진단까지 최소 6개월은 걸리더라. 그래서 수술 효과를 가장 빠르게 볼 수 있는 과를 찾다 보니 성형외과를 선택하게 됐다. 적성에 맞는다. 하하."
一 외국 의사들이 수술을 배우려고 오는 경우도 많을 것 같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엔 매년 80명 정도가 우리 팀을 찾아왔다. 우리 팀이 배출한 제자 중에 남미 초미세수술 아버지가 된 경우도 있고, 중동에서 '하지재건'의 대모가 된 의사도 있다. 선진국인 미국에서 대학교수가 된 의사도 있다. 난 자유교육 신봉자다. 누구든 배워서 전 인류가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페이스북과 유튜브에 누구나 와서 볼 수 있게 수술 장면과 수술 기법을 공유한다."
一 영어로 된 성형외과 교과서가 보인다. 저자로 참여한 것으로 아는데, 교과서를 집필한 것도 그런 맥락인가.
"하하. 교과서 편집도 참 돈 안 되는 일이긴 하다. 하지재건과 관련해 뉴 넬리간(New Neligan) 성형외과 교과서 3, 4개정판에 기여했다. 조만간 책 전체 에디터로 참여한 5번째 개정판이 나온다."
홍 교수는 2017년 같은 병원 고경석·최종우 교수와 함께 '뉴 넬리간 성형외과 교과서' 4번째 개정판 안면미용성형 분야와 하지재건 분야를 집필했다. 세 교수는 2012년 3번째 개정판에서 '아시아인의 안면미용성형'과 '하지재건' 파트를 썼다. 인터넷 판(E-book)으로도 공개된 이 교과서에서, 세 교수가 쓴 파트는 다른 분야를 제치고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홍 교수는 인터뷰 과정에서 동료 교수들의 성과를 소개하면서 '팀'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런 홍 교수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상처로 생긴 피부 감염을 방치했다가 얼굴이 괴사된 상태로 살아가는 아프리카 상황을 언급하며 "(이들이 얼굴을 재건할 수 있게) 아프리카에 의사들을 육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혈관을 이어 붙이고 목숨이 오가는 병원 수술실 내부에 '방범용 CCTV'를 설치하는 법안이 통과된 불신의 현실에서, 홍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의사는 자기 할 일을 하는 겁니다. 나는 젊은 나이에 분수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어요. 그래서 이 사랑을 어떻게 돌려줄 수 있을까 늘 고민합니다. 한번 사는 세상인데, 사랑을 돌려주면서 재능을 나누면서 그렇게 살면 좋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