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박스터(Baxter)에서 이번에 증설한 전자동화 설비를 보더니 '자기들보다 낫다'며 엄지를 들어 올렸다니까요."
지난달 21일 충청남도 당진시 JW생명과학(234080) 수액 생산단지에서 만난 한현석 JW생명과학 제품 플랜트장(부사장)은 이 공장 설비를 자랑해 달라고 하자 이렇게 답했다. 미국 박스터는 글로벌 최대 수액 전문 제약사로 지난 2013년 JW생명과학이 개발한 종합영양수액에 대한 10년 독점 계약을 하면서 국내에 알려졌다. JW생명과학은 수액 시장 세계 순위로는 현재 5위, 아시아권에서는 1위 기업이다.
이날 4층(24m) 높이의 아파트형 공장 1층에는 입원환자의 '생명수'라고 불리는 기초수액이 한창 생산되고 있었다. JW그룹이 지난 2006년 1600억원을 들여 건설한 이 공장의 전체 면적은 5만3000㎡(약 1만6000여평)로 수액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로 알려졌다. 유리 칸막이로 둘러싸인 길쭉하고 거대한 기계는 굉음을 내면서 쉴 새 없이 수액봉지(백)를 쏟아냈다.
흰색 흡착 손가락을 가진 검은색 로봇팔이 앞뒤로 움직일 때마다 어른 손바닥만한 수액백 4개가 컨베이어 벨트에 실렸다. 컨베이어에 실린 수액은 흰색 작업복의 검수원 앞에 도착해 육안 검사를 받고, 이 검사를 통과한 수액은 다른 벨트로 옮겨진 후 비닐백으로 포장(오버랩)된 후 멸균실로 향했다.
한현석 부사장은 "수액은 인체 혈관에 직접 투입되기 때문에 아주 작은 이물질도 용납되지 않는다"며 "수액 제조, 충전, 멸균까지 모든 공정을 자동화한 첨단 공장이지만, 사람 눈으로 두 차례 점검하는 작업은 아직도 하고 있다"고 했다.
한 부사장의 말처럼 컨베이어 벨트가 쉼 없이 돌아가는 넓은 작업장에 있는 사람은 10여명에 불과했다. 수액백이 멸균실앞에 도착하면 2m 남짓의 로봇팔이 들어올려 멸균실에 밀어 넣고, 고온으로 멸균된 수액백을 포장 단계로 옮기는 것도 운반 로봇이 알아서 했다. 12개의 모니터가 놓인 현장 상황실도 한 두 사람만 왔다 갔다 했다.
◇ 연간 1억4000만개 생산.…수액백에도 혁신 담겨
기초수액을 포함해 모든 수액은 13단계의 제조 공정을 거친다. '수액 제조에 사용되는 물 수급→원료칭량(秤量⋅원료 측정)→약조제→용기제작→충전→이물검사→포장(오버랩)→멸균→2차 이물검사→포장→운반→최종품질확인→출고' 순이다.
이런 공정을 거쳐 기초수액제, 영양수액제, 투석액, 생리식염수 등 수액제제 120여종이 생산된다. 연간 생산량은 1억4000만개. 이 가운데 기초수액만 1억개를 생산한다. 국내에 유통되는 수액이 약 2억5000만개로 추산되는데, 그 수액 10개 중 4개는 당진 공장에서 생산되는 셈이다.
수액은 내용물도 중요하지만 수액을 담는 소재 연구가 필수다. 수액백에도 혁신이 들어있다는 뜻이다. 1950년대 6·25 전쟁 때 링거병이 없어 사이다병에 소금물을 담아 응급치료에 사용했다고 한다. JW그룹도 처음엔 유리병에 수액을 담아 공급했다. 하지만 멸균과 운반 과정에서 20~30%가 파손됐다.
유리병을 구하기 힘들던 옛날에는 미군이 사용하던 콜라병을 모래, 수세미로 닦아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90년대 초반 폴리염화비닐(PVC)백이 도입됐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PVC의 환경 호르몬 문제가 부각됐다. 환경 호르몬이 없는 Non-PVC 수액백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JW그룹은 1997년 국내 처음으로 관련 기반 설비를 도입했다.
JW그룹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2006년 당진공장을 준공하면서 자체 Non-PVC계 필름과 용기를 개발했다. 그런데 Non-PVC는 재질에 힘이 없어 수액백이 자꾸 쓰러졌다. 한현석 부사장은 "연질의 백을 정확히 일으켜 세워서 옮기는 작업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라며 그동안 자동화 설비 개선 과정을 설명했다.
◇ 동물성 지방 첨가한 종합영양수액 수익 견인
이렇게 깐깐한 공정을 거치는 기초수액의 가격은 편의점 생수와 비슷한 1000원 수준이다. 수액사업은 막대한 설비투자와 물류시스템이 필요해 투자에 비해 수익이 많이 남지 않는 사업이다. 한현석 부사장은 "'환자에게 필요한 약을 공급한다'는 생명존중의 사명감이 없으면 만들지 못한다"며 "JW그룹에 수액사업은 수익창출 목적뿐 아니라 사회적 책임까지 고려한 것"이라고 했다.
기초수액의 낮은 수익성에도 JW생명과학의 실적은 견고하다. 이 회사의 지난해 4분기 매출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 부사장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등 3대 필수영양소를 모두 공급하는 종합영양수액 제품군인 '위너프'의 매출이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위너프는 JW생명과학이 지난 2013년 개발한 종합 영양 수액으로, 수액에 동물성 지방을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예전에는 수액에 쓰는 지방성분은 정제대두유를 많이 썼다. 하지만 '오메가3′ 지방산이 환자의 회복을 돕는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수액에 동물성 지방을 담는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동물성 지방을 몸에 직접 흡수시킬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 동물성 지방은 탄수화물 등과 결합하면 쉽게 손상됐다. JW생명과학은 하나의 백 안에 지질·아미노산·포도당이 섞이지 않도록 나눠서 보관하다가, 환자에게 투여하기 직전에 격막을 찢어서 섞은 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수액백을 개발했다.
이런 방식의 수액을 3챔버(chamber⋅실) 종합영양수액이라고 부른다. 안쪽 격막이 쉽게 찢어지면, 운반 과정에서 수액이 못쓰게 되고, 그렇다고 너무 견고하게 만들면 환자에게 투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를 얼마나 적절히 구현해 내느냐가 3챔버 수액의 성패를 가른다.
◇ 亞에서 수액으로 사상 첫 유럽 시장 진출
JW생명과학이 3챔버 수액백 개발에 성공하자 글로벌 수액 제조사인 미국 박스터가 수액사업에 대한 협력을 제안했다. 두 회사는 지난 2013년 10년 단위 장기 계약을 체결했고, JW생명과학은 박스터와의 계약 체결 후 충남 당진에 영양수액 생산라인을 증설했다.
미국 박스터는 지난 2019년에는 유럽에서 위너프를 '피노멜'이란 상품명으로 허가받고 현지 판매에 나섰다. 일본은 물론 아시아권 제약사 중에서 유럽에 수액을 수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미국 박스터는 작년 JW생명과학과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새로운 영양수액제에 대한 제품 개발 및 공급 계약도 체결했다.
한현석 부사장은 "미국 박스터와 코로나19로 전화와 영상회의를 주로 하는데, 요즘에는 동등한 관계에서 협상이 된다"며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서울대 약대 출신의 한 부사장은 제약 플랜트 사업 부문에서만 25년 이상 한 우물을 팠다.
작년 10월에는 지주회사 JW홀딩스가 중국 뤄신제약의 자회사 산둥뤄신제약그룹과 '위너프' 기술수출 및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JW생명과학은 오는 2024년부터 당진공장 여유부지에 추가적인 공장 증설도 계획하고 있다. 위너프가 인정받아 전 세계에 공급되는 기반을 준비하는 차원이다.
한 부사장은 "3챔버 종합영양수액제 전 세계 시장규모가 지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연평균 9.1% 성장했고, 중국 시장은 연평균 25.5%로 급성장한 것으로 안다"며 "2030년 JW생명과학이 글로벌 수액 시장에서 3위에 오를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