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서울대병원 한호성 외과 교수가 지난 26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연구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올해 안에는 복강경 간암(肝癌) 수술을 참관할 수 있을까요?"

분당서울대병원 한호성 교수는 요즘 외국 의사들로부터 이런 이메일을 여럿 받았다. 한 교수로부터 '복강경' 의술(醫術)을 배우려는 일본⋅이집트⋅벨기에 의사가 보낸 메일이다. 복강경 수술은 배에 작은 구멍 3~4개만 뚫어, 몸 밖에서 기구를 조작하는 방식이다. 출혈이 적어 후유증이 작고 회복이 빨라 환자에게 좋지만, 수술에 난이도가 있다.

이 중에서도 간암 수술은 대학 병원에서 하기 때문에 한 교수의 수술을 참관하려는 의사들은 국가 장학금을 받는 교수일 가능성이 크다. 장학금은 보통 '언제까지 수료한다'는 기한이 있기 마련인데, 코로나19 사태로 의료인 교류가 2년째 막히면서 장학금을 도로 내놓게 생긴 의사도 생겼다.

장학금을 생각하면 애가 탈 텐데, 이들은 다른 나라, 다른 교수를 찾기는커녕 '도대체 한 교수를 언제 뵐 수 있느냐'고 무작정 기다린다고 한다. 복강경 간암 수술 분야 세계 최고 권위자인 한호성 교수를 지난 26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만났다.

◇ 아무도 도전하지 않던 분야 먼저 뛰어들어

외국인 제자가 많은 한 교수에게 해외 유학 경험을 묻자 "외과 과장 시절 두 달 미국 연수가 전부"라고 했다. 한 교수는 세계 최고가 된 비결을 묻자 "한국 의사가 젓가락질 잘해서 수술 잘한다는 말이 제일 싫다"고 했다.

일본도 젓가락질을 하지만, 지금까지 한 교수의 수술을 참관한 일본 의사만 80명이 훨씬 넘는다. 일본의 복강경 간수술 학회는 코로나19 사태 직전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한 교수를 초청해 특강을 맡겼다.

한 교수는 "수술을 잘하는 것은 (남다른) 아이디어와 실행 덕분이다"라고 했다. 남들이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해, 시도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혁신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지금은 복강경이 보편화됐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대부분의 암(癌)은 배를 여는 개복(開腹) 수술을 했다.

한 교수는 "10여년 전만 해도 복강경으로 암수술을 한다고 하면 다들 '미쳤다'고 했다"고 말했다. 직접 눈으로 보면서 수술을 해도 암세포를 절제하기 어려운데, 복강경으로 무슨 수술을 하느냐는 비난이 이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없다.

한 교수는 국내 간담췌분야 복강경 수술 개척자로 통한다. 2000년 국내 최초로 복강경으로 췌장 절제술에 성공했고, 췌장 혈관을 살리는 방법을 세계 최초로 보고했다. 2006년에는 세계 최초로 간우후구역에 있는 간암세포를 절제하는 수술을 복강경으로 성공했다.

소아 간 절제술, 중앙2구역 간절제술 등을 세계 최초로 복강경 했고, 2010년 복강경 수술로 간 이식 공여자의 우간절제술에 성공했다. 올해 전 세계 의료기관 순위를 평가하는 미국 웹사이트 '엑스퍼트스케이프(Expertscape)'에서 간절제술 분야 최고 전문가로 선정됐다.

◇ "환자 힘들게 하지 않는 복강경에 큰 매력 느껴"

한 교수에게 외과 인턴 시절 세부 전공을 '간담췌야'로 선택한 이유를 묻자 "복강경을 하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개복 수술이 기본이던 1990년대에는 환자의 배를 과감히 자르는 외과의사가 명의라는 말이 있었다. 어설프게 메스를 댔다가는 수술이 실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메스를 크게 대면 댈수록 환자의 후유증이 커진다. 특히 간(肝)은 갈비뼈(늑골) 안쪽 깊숙이 있기 때문에 개복(開腹) 수술로 간암세포를 떼어내려면 뼈까지 잘라내야 한다. 한 교수는 "환자를 힘들지 않게, 병든 부분만 최소로 잘라내는 복강경 기법에 너무나 큰 매력을 느꼈다"고 답했다.

하지만 복강경으로 간 절제 수술을 하게 되면 5시간 넘게 모니터를 바라봐야 한다. 배 안으로 집어넣은 내시경 카메라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에 온 신경을 집중해 집도해야 한다.한 교수는 "수술실에 들어가면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진다"며 "마치고 나올 때 무릎이 시큰거려서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렀구나' 생각한다"고 했다.

그런 한 교수는 "그래도 요즘에는 화질이 좋은 HD카메라가 나와서 편해졌다"라며, 2000년대 초반에는 간조직과 혈관을 색깔로 구별하지도 못해서 감으로 수술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간 조직을 서울시 지도에 비유해 수술 과정을 설명했다. '성북구'를 자를 때와 '종로구'를 자를 때 접근하는 방식을 달라야 한다는 식이다.

분당서울대병원 한호성 외과 교수가 지난 26일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 메르스 의심 환자 간이식 수술 "환자는 무조건 받아야"

분당서울대병원 암센터장, 암·뇌신경진료부원장 등을 역임한 그는 지난 7월 국군수도병원장 임기를 마치고 분당서울대병원으로 돌아왔다. 한 교수의 책장에 국방부가 수여한 훈장과 배지가 빽빽이 놓여 있었다. 국군수도병원 외상센터 설립을 주장해 관철시킨 것이 한 교수였다고 한다.

한 교수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유행했던 2015년 다른 병원에서 거부했던 메르스 의심증 간경화 환자를 받아들여 간이식 수술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보통 사람은 30분도 입고 있기 힘든 방호복을 7시간 동안 착용해야 하는 고된 수술을 해냈다.

한 교수에게 그때 상황을 묻자 메르스 당시 의료계 현장을 담은 책 한 권을 꺼냈다. 그는 "그때는 무조건 환자를 받아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도 배고프면 밥먹고, 슬프면 우는 보통 사람이지만, 환자가 나타났을 때는 피할 수 없다는 게 다르다"며 "다른 의사들도 다 우리와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