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7월 독일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이 국내 바이오 스타트업의 특발성 폐섬유증 신약 후보물질을 최대 1조5680억원(11억 4500만 유로)규모로 기술이전(수입)했다.
전 직원이 20명도 되지 않는 창업 4년차 스타트업이 600억원대 투자금으로 개발한 신약 물질이 조(兆) 단위 수출에 성공하자, 국내 전 언론이 주목했다. 코스닥 상장에 두 번 실패한 회사의 성공을 두고 ‘코스닥 삼수생의 업(業)생 역전’이라는 말도 나왔다. 코스닥 상장도 성공했다. 회사는 상장예비심사 신청 후 단 33일(영업일 기준)만에 승인을 받았다. 사상 최단 기록이었다.
하지만 1년여 만인 지난해 11월 베링거가 ‘잠재적 독성’을 이유로 기술을 반환했다. 주당 2만1200원이던 주가는 8100원까지 떨어졌다. 시장에 비관론이 가득했지만, 회사는 도리어 자체 분석에 들어갔다. 같은 물질로 직접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허가를 도전하기로 했다.
이 회사를 이끄는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이하 브릿지바이오) 대표를 지난 15일 경기도 판교 본사에서 만났다. 서울대 화학과 87학번인 이 대표는 LG화학 연구기획⋅사업개발부에 입사한 후 이 분야 한 우물을 팠다. 그는 지난 1999년 LG화학이 국내 최초 미국 FDA에 신약 승인 신청에 성공했던 ‘팩티브(Factive)’ 프로젝트 책임자이기도 했다.
지난해 8100원까지 빠졌던 브릿지바이오의 주가는 10월 현재 1만1000~1만3000원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 대표는 주가 얘기가 나오자 “파트너사와 견해 차이로 (폐섬유증 신약) 권리를 반환받아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고 했다. 이 대표는 “(같은 물질로) 내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임상 2상 승인을 받아 안전성과 효력을 입증받겠다”며 “그러면 글로벌 대형사에 기술이전 등도 자연스레 뒤따를 것”이라고 했다.
브릿지바이오는 ‘개발 전문 바이오벤처’로 시작했다. 자체 신약 연구 대신, 대학이나 다른 바이오 벤처에서 연구하는 물질을 발굴해 개발한 후 대형 제약사에 되파는 전략이다. 지금은 신약 발굴도 직접 나서고 있다. 2019년 기업공개(IPO) 당시 17명이었던 직원은 현재 36명으로 늘었다. 전 직원 가운데 4명이 의사(MD) 출신이고, 자체 발굴과 임상 개발 관련 전문 연구 개발진만 25명에 이른다.
一 독일 베링거인겔하임에 기술이전됐던 폐섬유증 신약 후보물질(BBT-877)이 최종 반환된 지 곧 1년이다. 자체 실험으로 미국 FDA에 면담을 신청했다고 들었는데 회신이 어떻게 왔는지 궁금하다.
“우리 자체 실험은 물론 제3의 기관에 의뢰한 분석 결과 (베링거 측이 주장한) 잠재적 독성은 DNA 손상이 아니라 임상 과정에서 약물을 고농도로 처리한 데 따른 이상 현상이라고 판단했다. 미 FDA에 이런 데이터를 바탕으로 임상 2상 면담(C타입 미팅)을 요청했고, 얼마 전 이메일로 ‘추가 실험을 통해 임상 2상 설계를 보완하라’는 답을 받았다.”
一 ‘추가 실험을 하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임상 2상을 하라는 건가.
“보완을 요구하는 것은 ‘임상 2상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미 FDA에서는 우리 후보 물질이 특발성 폐섬유증에 치료에 쓰이는 표준 의약품과 충돌하지 않는지 등을 더 확인해보라고 했다.”
一 표준 의약품과 ‘충돌한다’는 게 어떤 뜻인가.
“기존의 의약품과 함께 복용했을 때 부작용 우려를 확인하라는 뜻이다. 폐섬유증은 폐가 딱딱해져서 폐 기능을 잃는 병이다. 현재 이 병의 진행을 늦추는 의약품은 있지만 근본적 치료제가 없는 상태다.
우리가 개발하는 신약 후보물질은 폐섬유증 등을 일으키는 단백질(오토택신)만 골라내서 못 움직이게 막아내는 근본적 치료제에 해당한다. 이 병을 앓는 사람은 이미 나온 표준 의약품을 쓰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 약과 함께 복용했을 때 부작용이 생기지는 않을지 사전에 확인을 해야 한다.
사실 이런 절차는 아주 기초적인 내용이라 ‘작은 바이오벤처라고 무시하는 건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FDA의 이런 권고는 우리와 같은 계열의 선두 물질(GLPG1690)을 개발하던 갈라파고스가 올해 2월 임상 3상을 중단한 것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一 갈라파고스가 임상 3상에 실패한 것과 미 FDA의 임상 설계 보완 요청이 무슨 상관이 있나.
“미 FDA의 회신이 갈라파고스가 임상 3상을 중단한 것을 감안해, 우리 물질이 표준 의약품과 충돌하지 않게 임상 설계를 신중히 하라고 조언을 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는 뜻이다.”
一 그래서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나.
“FDA가 추가로 권고한 시험을 수행하기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연말쯤 데이터가 나오면 FDA에 다시 면담을 신청해 임상 2상 설계를 구체화하고, 임상시험계획(CTA)을 신청할 계획이다. 절차대로만 된다면 이르면 내년 상반기 임상 2상을 하게 된다. 임상으로 안전성 및 효력을 입증하면, 글로벌 대형사에 기술 이전 등도 자연스레 뒤따를 것이다. 이 전 (베링거인겔하임 과) 기술이전 계약 규모(약 1조 5000억원)와 비슷하거나, 더 큰 수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갈라파고스가 임상을 중단하면서 뒤처져 있던 우리가 선두(First-in-class) 후보물질로 올라선 것도 긍정적인 부분이다.”
一 미 FDA와 신약 개발 관련해 면담(C타입 미팅)을 여러 차례 했다고 들었는데, 그 면담 방식이 궁금하다.
“미국 FDA는 신약을 개발하는 업체를 대상으로 공식적인 개별 면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걸 미팅(Meeting)이라고 한다. FDA에 면담 요청을 접수하면 60일 안에 회신을 준다. 회신을 받아 요구하는 문서 등을 이메일 등으로 제출하면, FDA가 검토한 후 대면, 유선 또는 서면으로 진행 여부를 알려준다. 우리는 서면(이메일)으로 면담을 했다.”
一 미국 FDA라고 하면 접근이 어려울 거 같은데, 설명을 들으면 간단해 보인다. 미 FDA는 면담에 따로 비용을 받지는 않나.
“미국 FDA는 신약 후보 물질에 대한 개발 면담에 별도의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그 대신 정식 허가 심사 수수료가 34억원에 이른다.”
一 식약처의 허가 심사 수수료는 몇백만원 수준이라고 들었는데, 34억원은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식약처 허가 수수료는 약 887만원이다. 오히려 이 금액이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내 신약 허가 심사 수수료가 너무 저렴하다 보니, 신약을 개발하는 회사들이 일단 신청부터 내고 보는 경우도 많다. 허가에 실패하더라도 일단 신청해놓고 보완하는 것이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식약처대로 밀려드는 신청에 업무 과부하에 시달린다. 식약처에서 심사할 심사역이 부족하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식약처가 허가 심사 수수료를 적정 수준으로 인상하고, 거기에 맞춘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했으면 좋겠다. 심사 인력을 더 뽑으면, 심사 기간도 단축되고, 더 꼼꼼히 봐주지 않겠나. 이런 문제를 업계가 같이 고민했으면 좋겠다.”
─ 비소세포폐암 신약 후보물질인 BBT-176에 대한 소개도 부탁드린다. 타그리소, 렉라자 등 3세대 폐암 치료제에 내성이 생긴 암환자를 타깃으로 한 4세대 치료제로 알고 있다.
“BBT-176은 비소세포폐암의 3세대 치료제인 타그리소를 투여한 후 나타나는 돌연변이에 대응하는 치료제다. 전임상을 통해 돌연변이에 대한 억제 효능을 확인하고 현재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 1/2상을 진행 중에 있다. 확정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임상 1/2상 첫 단계인 용량상승시험을 내년 상반기 마무리하고 2상 용량을 확정해 용량 확장 코호트(동일집단)에 진입하는 것이 목표다.”
─ BBT-176의 경쟁 약물인 블루프린트 메디슨의 ‘BLU-945′이 국내 임상시험승인을 받았다고 들었다. 동향 파악을 하고 있나.
“블루프린트가 적극적으로 임상 추진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쟁사가 한국에서 임상을 먼저 하는 건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전이라고 본다. 우리 물질은 하루 1회, 블루프린트는 하루 2회 복용하는 약이니, 좀 더 수월하게 임상이 진행될 것으로 본다. 곧 빠르게 최적 용량을 찾아 미국에서도 임상을 시작할 계획이다.”
─ 미국에서 신속 허가 신청을 하려면 얼마나 자금이 필요한가. 국내 제약사와 협업은 고려하지 않나.
“BBT-176은 치료제가 없는 분야이기 때문에 소규모 임상 시험으로도 우선 허가를 받을 수 있고, 이후 임상 시험도 가능하다. 이 경우 수백억 내외로 개발도 가능해서 우리 같은 작은 기업도 도전해 볼만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다른 기업과 협업은 할 수 있지만, 국내 제약사보다는 글로벌 기업과의 협업에 무게를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비소세포폐암에서 KRAS 억제제로 신속 승인받은 Amgen의 소로타십은 124명의 임상 시험 결과로 가속 승인을 받았는데, 이 경우도 수백억 원 규모의 개발비로 허가를 받은 사례로 알려져 있다.)
─ 브릿지바이오만의 장점이 무엇인가. 회사 규모나 업력에 비해 대형사들과 큰 규모의 기술 이전을 꽤 많이 추진했다.
“회사 규모는 작지만, 연구∙개발진(R&D)의 임상 운영 및 개발 관련 업계 경력이 탄탄하다. 바이오 기업에서 인재 확보는 기업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우리 회사는 창립 초기 합류한 연구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직원들이 자리를 잘 잡았다.
전 직원이 36명인데, 의사(MD) 출신만 4명이다. 여기에 다국가 연구 및 개발이 가능한 연구개발진 총 25명(올해 9월 말 기준)이 있다. 우리는 임상 설계에 특장점이 있다. 글로벌 임상은 임상시험수탁기관(CRO)이 맡지만, 그 과정에서 변수가 많기 때문에 회사 자체적으로 임상 설계 관리 능력을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한다.
환자 모집부터 임상 단계의 세부적으로 꼼꼼하게 살피고 대응하지 않으면 해석이 불가능한 임상이 되거나 최악의 경우 임상 중단까지 이를 수 있다. 업계에서 우리 회사가 ‘신속한 글로벌 임상 개발’으로 정평이 나면서, 아예 임상을 공동 제안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이럴 경우, 공동 개발 또는 독점권을 가지고 계약하는 등의 형태로 진행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 이 대표 역시 바이오 사업개발과 연구기획 분야 전문가로 통한다. 자신의 강점은 무엇인가.
“LG화학에 입사해서 25년 동안 연구-기획-개발-사업 분야에 있었다. LG화학에 입사했을 때 외부 자문역으로 있었던 한국계 미국인 변호사에게 많이 배웠다. 그 변호사와 함께 LG화학이 개발한 신약 물질 ‘팩티브(Factive)’ 기술 수출, 미 FDA 신청 과정을 다 겪었다.
1990년대 한국은 ‘바이오’라고 할 게 없었는데도, 우리 물질이 좋으니 외국계 제약사들이 공항으로 마중을 나오고, 초특급 호텔을 잡아 줬다. 그때 깨달았다. ‘영어가 문제가 아니다. 좋은 물질만 개발해내면, 미국 그 어떤 회사도 우리에게 손을 내민다.’
글로벌 제약사 및 선진국 학계와의 협업 네트워크, 고객사(빅파마 등 글로벌 기업) 니즈를 파악하는 방법도 배웠다. 세계 각국의 CRO(임상시험수탁기관), CMO(의약품위탁생산기관), 자문단 등 전문 네트워크는 국경에 구애받지도 않는다.”
─ 앞으로 석 달이면 올해가 지나고 2022년이 된다. 브릿지바이오는 2025년까지를 회사의 ‘성장기’로 잡았다. 구체적인 청사진이 궁금하다.
“사업 초기에는 개발 후보물질의 원천을 도입해서 신속한 글로벌 개발에 중점을 맞춰왔으나 창립 후 5년이 지나 성장기 첫해에 접어든 올해에는 내부에서 후보물질을 자체 발굴하는 개발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을 본격 확충하고 있다. 또 미국에 자체적인 영업 조직을 갖춰 직접 판매까지 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올해부터 향후 5년을 브릿지바이오의 ‘성장기’로 잡았다. 핵심 목표는 2025년까지 직접 첫 미 FDA 품목 허가를 받는 것이다. 또 회사 자체 발굴 엔진인 미국의 보스턴 디스커버리 센터의 기능과 규모를 더욱 키워 본격적인 자체 발굴의 전초기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