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30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 류마티스병원에서 김태환 병원장이 척추 뼈 모형으로 강직성 척추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류마티스 질환 중 하나인 강직성 척추염은 활동이 왕성한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남성에 주로 발병해 ‘젊은 남성의 허리병’으로 통한다. 이 병을 이해하려면 ‘류마티스’부터 이해해야 한다. 류마티스 질환은 내 몸을 지켜야 할 면역 세포가 나를 도리어 공격해서 생기는 병이다.

면역 세포가 관절을 공격하면 류마티스 관절염, 척추를 공격해 척추에 염증이 생기면 강직성 척추염, 피부, 혈액, 신장 등 각 기관을 공격하면 루푸스가 된다. 류마티스의 ‘류마(Rheuma)’는 그리스어로 ‘흐름’이라는 뜻이다.

강직성 척추염은 염증이 생긴 척추 마디가 막으로 둘러싸여 대나무처럼 뻣뻣하게 굳어 버리는 것이 특징이다. 조기 진단으로 적절한 치료를 하면 일상생활이 가능하지만, 병을 방치해서 한번 굳어진 뼈마디는 되돌릴 수 없어 ‘난치성 질환’으로 분류된다. 치료를 해서 증상이 나아진다고 해도 무리를 하면 염증이 악화돼 척추가 다시 굳어질 수 있다. 군 생활 중 척추질환으로 의가사 제대를 하는 환자 대부분이 질환에 걸린 것이라고 한다.

강직성 척추염 대가(大家)인 한양대 류마티스병원 김태환 원장을 만났다. 1988년 한양대 의대를 졸업한 김 원장은 캐나다 토론토대에서 강직성 척추염으로 연수를 받고, 지금까지 이 분야를 연구해 왔다. 1986년 한양대병원에 류마티스내과가 개설된 지 올해 35년째. 포털사이트에 ‘류마티스 질환’을 검색하면 바로 ‘한양대병원’이 연관검색어로 뜬다.

김 원장은 올해 초 약 18년 동안 수집한 1200여명의 강직성 척추염 환자 임상 데이터를 토대로 작성한 연구 논문은 해당 질환 연구에 큰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직성 척추염은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장기간 추적 데이터가 필요한데, 그동안 이 정도 대규모 환자를 긴 시간에 걸쳐 분석한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손에 꼽는다.

올해 한양대 류마티스병원장으로 취임한 김 원장은 지금도 진료 당번인 날에는 하루에 60~100명의 환자를 본다고 했다. 김 원장을 만나기 위해 지난달 30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병원 류마티스병원을 찾았다. 평일 점심시간인데도 1층 대기실 앞은 외래 환자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김 원장은 현재 류마티스질환 국내 최대학회인 대한류마티스학회 이사장도 맡고 있다.

一류마티스 중에서도 강직성 척추염 질환을 연구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1200명이 넘는 환자의 추적 데이터를 장기간 모으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먼저 한양대 류마티스병원의 역사를 좀 설명해야 한다. 1986년 국내 첫 류마티스 내과가 한양대 병원에 개설됐다. 류마티스에 대해서 국내에선 아는 사람이 거의 없던 때였다. 1대 류마티스 병원장을 지낸 이성윤 교수님이 개척자였다.

1988년 한양대병원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가게 됐다. 류마티스 질환을 연구하고 싶은데, 워낙 쟁쟁한 선배들이 많았다. 루푸스는 전임 류마티스병원장을 지낸 배상철 교수, 건염은 유대현 교수, 경피증은 전재범 교수가 전문으로 이미 하고 있었다.

경쟁을 피하려면 어떤 분야를 해야 하나 찾아봤고, 찾게 된 것이 강직성 척추염이었다. 그 길로 지도교수를 찾아가서 ‘강직성 척추염 연구를 하고 싶다’고 얘기했고, 그렇게 78명의 환자 임상 데이터로 연구 논문을 쓴 것이 시작이었다. ”

一강직성 척추염을 허리 디스크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그 이유는 무엇이고, 환자들이 증상을 느끼고 실제 치료를 받기까지 평균 얼마나 시간이 걸리나.

“허리 디스크 질환은 활동을 멈추고 쉬면 증상이 나아진다. 반대로 강직성 척추염은 한 자세로 오래 있으면 척추가 뻣뻣하게 굳으면서 등 통증이 나타난다. 저녁에는 편하게 잠이 들었다가 새벽에 극심한 통증으로 잠을 깨는 것이 대표적 증상이다. 일어나서 움직이면 통증이 사라져서, 단순 피로라고 생각해 방치하기가 쉬운 것이 문제다.”

강직성 척추염(왼쪽)은 정상 척추(오른쪽)와 비교하면 관절이 없이 대나무처럼 하나의 긴 뼈처럼 이어진 모습을 보인다. 척추 뼈가 뻣뻣하게 휘어지면서 새우 등처럼 굽기도 한다. /인천성모병원 제공

一디스크와 강직성 척추염은 어떻게 구분해야 하나. 피 검사나, 엑스레이, 통증의 위치 등으로 초기에도 파악할 수 있나.

“환자가 설명하는 증상만으로도 충분히 구분할 수 있다. 강직성 척추염 환자에게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부위는 척추허리도 있지만 갈비뼈, 목뼈 같은 부위에도 부분적으로 뼈마디에 염증이 생겨 아플 수 있다. "

一강직성 척추염은 척추의 아랫단에서 시작해 위쪽으로 퍼진다는 것이 정설이라고 들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의미인가.

“(올해 발표한 논문에 이어서) 후속 연구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강직성 척추염이 엉치뼈에서 시작해 신체의 다른 부위로 퍼지는 것으로 생각한 게 맞지만, 최근 환자 동향을 보니 그렇지 않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一그렇다면 치료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환자 개인의 병증에 따라 증상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일단 강직성 척추염으로 진단을 받으면 염증과 통증 완화가 치료의 1차 목표가 된다. 소염진통제를 복용하면서 생활 습관을 개선하고 운동을 하면 10명 중 8명은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증상이 나아진다.

문제는 이런 치료가 듣지 않는 10명 중 2명이다. 이들은 척추 변형을 막는 주사 치료를 병행하게 된다. 과거엔 이들을 치료할 방법이 없었지만, 지금은 다양한 치료방법이 개발돼 제때 치료만 시작하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상생활의 범주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기대치가 다를 수 있다.”

一‘정상생활의 범주’라는 의미가 궁금하다. 강직성 척추염을 방치하면 뼈가 완전히 굳어버려서 평생 후유증을 안고 살아야 한다고 들었는데, 그런 의미인가.

“강직성 척추염의 가장 큰 문제는 척추 변형이다. 염증으로 척추 마디가 관절 없이 하나로 보이는 것을 척추가 변형됐다고 한다. 흰 막이 뼈마디를 둘러 싸기 때문에 이렇게 뻣뻣해진 뼈마디는 수술로도 고칠 수 없다.

최악의 경우 목(경추)부터 허리까지 새우등처럼 굽어 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걷기, 목욕 등과 같은 일상생활이 어려워진다.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치료를 한다고 해도, 사회생활은 어려울 수 있다. 예를 들어 목뼈가 굳어진 사람은 시선을 돌리거나 인사하는 것이 부자연스럽지 않겠나.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에게 오해도 받는다. 이 때문에 강직성 척추염 환자 중에 우울증 등 심리적인 문제를 호소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9월 30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병원에서 김태환 병원장이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一강직성 척추염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운동’을 꼽는데, 어떤 운동을 해야 하나.

“자세 교정과 스트레칭이다. 수영도 좋다. 근육을 유연하게 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一증상 완화 요법 외에 면역체계를 회복시키는 신약으로 기대되는 약물이나 연구가 있나. 자가면역질환 환자들은 약값 부담이 크다고 들었다.

“강직성 척추염은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되기 때문에 사정이 나은 편이다. 희귀질환으로 특례 적용을 받으면 한번 내원할 때 환자가 부담하는 비용은 2만~3만원 정도다. 주사 치료까지 하면 한 달에 10만원 내외의 비용이 든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비용도 부담스러워서 병원에 못 온다는 젊은 환자도 있다.”

一젊은 층이 많아서 최신 치료 정보에도 민감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환자에게는 어떻게 설명하는지 궁금하다.

“환자를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진료실에 들어오는 환자에게 ‘인터넷에서 검색해 본 내용은 싹 다 잊으라’고 한다. 인터넷에 좋은 정보도 많지만 잘못된 정보도 많기 때문이다. 류마티스병원 1층 대기실에 설치된 TV모니터에는 우리 병원 전문의가 류마티스 질환에 대해 설명하는 동영상을 24시간 틀어 놓는다. ”

한양대 류마티스병원 전문의들이 류마티스관절염 환자의 수(手)부 엑스레이 사진을 놓고 토론하고 있다. /한양대 류마티스병원 제공

一한양대 류마티스병원 병원장으로 취임했다. 그 포부가 궁금하다.

“류마티스 질환이 처음 알려졌던 1980년대부터 1990년까지 우리 병원이 독점을 하는 시대였다면, 2000년대는 ‘류마티스는 한양대병원’이란 평판이 형성되는 시기였다. 그리고 2010년 이후에 이런 평판은 명성이 됐다. 하지만 이런 명성을 유지하려면 그만큼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인재가 한양대병원을 찾아올 수 있게 하는 방안을 늘 고민하고 있다.”

一훌륭한 인재들에게 자랑할 만한 병원의 장점이 있나.

“단체 운동을 좋아한다. 이기면 기쁨이 두 배가 되고, 져도 위로가 두 배가 된다. 우리 병원은 원내에서 의사들이 자신들의 권위를 내려놓고 토론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환자 치료를 놓고 교수들끼리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얼굴을 보고 열띤 토론을 한다. 선후배 상관없이 격의 없이 날카롭게 의견을 나눈다. 그건 정말 자랑할 수 있다.”

一요즘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 이 질문을 마지막으로 드리려고 한다. 류마티스 질환 환자들도 부스터샷을 맞아야 할까. 류마티스약이 고용량 스테로이드와 면역 억제제가 들어있어 백신의 예방 효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가 있다.

“류마티스 질환 환자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하는 게 이득이 큰 것이 맞는다. 면역 억제제를 쓰는 환자들은 코로나19에 걸렸을 때 위험이 백신 부작용보다 훨씬 크다. 다만 부스터샷(추가접종)은 별개의 문제다. 이미 권고한 만큼 백신을 맞아서 항체가 형성된 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류마티스 학회 안에서도 부스터샷을 두고는 좀 더 안정적으로 접근하자는 얘기가 나온다. 연령별, 환자 상태별로 연구가 좀 더 진행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