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모더나사(社)가 개발한 mRNA(메신저리보핵산) 방식의 코로나19 백신이 전 세계적으로 공급된 올해 상반기에만 해도 모더나는 ‘바이오 벤처’의 성공모델로 통했다. 글로벌 제약사인 화이자와 손잡고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성공한 독일 바이오엔텍과 달리 모더나는 미국 정부의 백신 개발 프로젝트(Operation Warp Speed)의 지원으로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
미국 정부는 이 프로젝트에만 약 3조원(24억8000만달러)을 쏟아부었다. 국산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지원하는 정부도 ‘모더나 모델’을 눈여겨봤다. 상대적으로 뒤처진 국내 바이오 기업을 독려하려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백신 공급이 본격화된 하반기 들어 모더나의 백신 공급이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모더나는 지난 7월과 8월에 국내 백신 공급 약속을 어기더니, 9월 첫째 주까지 공급하기로 했던 물량 701만회분도 제때 주지 못했다. 모더나는 유럽 현지 위탁생산(CMO) 공장 문제로 일본에서 ‘백신 이물질’ 논란을 빚기도 했다.
국산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나선 바이오벤처에 ‘모더나 모델’은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 묵현상 국가신약개발사업단장을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묵 단장은 “국내 바이오벤처 업계에서 ‘모더나처럼 해 보겠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며 “하지만 국내에서 이 모델이 과연 맞을지는 의문이다”라고 했다.
국가신약개발사업단은 국산 신약 후보물질 발굴부터 비임상, 임상 1·2상을 거쳐 사업화까지 신약 개발 전 주기를 지원하는 기관이다.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이 전신인 이 단체는 올해 초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3개 부처 공동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신약개발사업단은 최근 mRNA 방식의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미국 모더나와 독일 바이오엔텍, 독일 큐어백 등에 대한 사례 연구를 진행했다고 한다. 개발단에 따르면 모더나는 지난해 임상 2상에서 정부 지원을 받아 개발에 성공했고, 독일은 임상 1상 이후 정부 지원을 받았다. 바이오엔텍은 전임상 이력으로만 화이자와 손을 잡고 개발에 성공했다.
묵 단장은 “결과적으로 화이자와 손 잡은 바이오엔텍이 가장 우수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며 “경영 실적을 봐도 백신을 자체 개발해 공급까지 하는 모더나와 백신을 공동 개발한 바이오엔텍이 가져오는 수익에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모더나의 상반기 매출은 60억달러(약 7조원),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매출은 약 104억달러(약 12조원)다. 바이오엔텍이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매출을 50대50으로 나누는 것을 고려하면 모더나와 바이오엔텍의 매출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묵 단장은 “모더나가 전 세계 공급망과 생산 시설을 갖추느라 우왕좌왕하는 것과 달리 바이오엔텍은 mRNA 백신 개발 이후의 스텝을 차근차근 밟고 있다”고 말했다. 묵 단장의 말대로 바이오엔텍은 mRNA을 활용한 다른 감염병 백신 등 연구에 돌입한 상태다.
당장 미국 정부는 코로나19 백신 부스터샷(추가접종)에 모더나를 제외한 화이자만 승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화이자가 미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코로나19 백신으로 정식 승인을 받고, 부스터샷 긴급사용 승인을 위한 데이터를 제출한 반면, 모더나의 관련 서류 제출은 계속 늦어지고 있다.
묵 단장은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현실을 제대로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연매출이 2000억원을 넘는 국내 제약사는 18곳뿐이다. 국내 대형 제약사라고 해도 글로벌 빅 파마와 비교하면 중소기업과 다름없다. 묵 단장은 “모더나가 mRNA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것만 15년이 넘는다”며 “이제 갓 연구를 시작한 국내 바이오벤처가 ‘모더나 모델’로 성공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내 바이오벤처들은 혼자서 해 보겠다는 의지보다 회사가 가진 장점을 다른 기업과 어떻게 협력으로 이끌어 낼 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SK바이오사이언스 등 대기업이 바이오산업에 뛰어들면서 기대감이 커졌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묵 단장은 국내 제약산업의 글로벌 확장 모델로 일본 다케다제약을 모델로 제시했다.
다케다제약은 1993년 자사가 보유한 신약 기술 판매권을 50대50으로 나눠 갖는 조건으로 미국 제약사인 에보트와 1대1 합병사인 TAP을 만들었다. 1980년대 초 미국 등 선진국 대형 제약사의 원료 의약품을 팔던 작은 제약사에 불과했던 다케다제약은 TAP를 계기로 해외 시장 개척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묵 단장은 이 사례를 언급하며 “글로벌 제약사와 국내 바이오벤처가 신약 판매권을 반반씩 갖는 조건으로 공동개발을 추진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그동안 국내 업체들이 미 FDA 허가를 위해 해외 제약사 기술 수출에만 주력해 왔다면, 앞으로는 공동 개발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글로벌 임상 3상을 도전하는 방법을 고민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묵 단장은 “이 밖에 국내 대형 제약사가 국내 바이오벤처에 지분을 50% 투자해서 신약 개발 역량을 갖춘 바이오기업으로 재탄생할 수도 있지 않겠나”라고도 했다.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묵 단장은 증권업계를 거쳐 바이오벤처인 메디프론을 설립해 대표이사까지 역임했다. 현재 코로나19 치료제·백신 신약개발사업단 사업단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한국바이오협회 이사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