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후 서울 강북삼성병원에서 성기철 순환기내과교수가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며 코로나19 백신이 혈압 및 혈관에 미치는 영향 등과 관련 이야기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심근경색증은 심장 근육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동맥경화로 좁아져 생기는 병이다. 사전 징후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 심장을 못 쓰게 만들기 때문에 ‘돌연사(突然死)’를 일으키는 대표적 심혈관 질환으로 꼽힌다. 지난 2017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홍반장’ 김주혁(45), 얼마 전 세상을 등진 ‘방랑 식객’ 임지호(65) 셰프도 심근경색을 겪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심혈관 질환은 전 세계 사망 원인 1위로 매년 세계 인구 1790만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무서운 병이다. 하지만 시작은 흔하디흔한 고혈압과 동맥경화에서 출발한다. 숨이 차서 계단 하나도 오르지 못해 병원을 찾았는데, 심부전증 진단을 받았고 알고 보니 고혈압이 원인이었다는 것은 병원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례다.

심부전은 심장 기능이 약해져서 혈액 공급이 안 되는 병이다. 심부전 진단을 받은 10명 중 3~4명은 1년 안에 사망하고, 6~7명은 5년 이내에 사망한다고 알려질 만큼 심부전은 사망률이 높다. 폐암을 제외한 나머지 암보다도 사망률이 높다. 심근경색으로 대표되는 관상동맥질환, 고혈압 명의로 통하는 서울 강북삼성병원 성기철 순환기내과 교수를 지난 1일 그의 진료실에서 만났다.

순환기내과는 심장과 심장에 연결된 혈관에 관련된 모든 질환을 진료하는 분과다. 심장이식 환자의 수술 후 관리는 물론 심혈관 질환의 원인이 되는 동맥경화, 고혈압, 고지혈증 같은 만성 질환에 대한 진단과 치료, 환자 지도 등도 순환기내과에서 한다. 왼쪽 가슴이 조이는 통증을 느껴 응급실을 찾으면, 순환기내과 의사로 구성된 응급팀이 가동된다. 성 교수는 강북삼성병원 심장센터를 이끄는 수장이다.

성 교수는 “많은 사람이 고혈압을 ‘흔한 병’이라고 무시하지만, 현실은 다르다”라며 “심각하지 않은 고혈압도 방치하면 조기에 사망할 위험이 매우 크다”고 했다. 지난 1967년 미국에서 고혈압을 약물로 치료한 그룹 73명과 치료하지 않은 70명을 1년 6개월 가량 관찰한 결과 고혈압을 관리한 그룹에서는 2명, 그렇지 않은 그룹에서는 27명이 심혈관질환을 진단받거나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의료계에선 고혈압과 동맥경화를 ‘침묵의 살인자’라고 부른다. 성 교수는 “고혈압을 관리하지 않고 방치하게 되면 대동맥 혈관 안쪽이 찢어지는 ‘대동맥 박리’가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대동맥은 심장에서 몸 전체로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다. 성 교수는 책상 위에 놓인 혈관 모형을 들어 보이며 “이렇게 혈관 일부가 찢어지면 스텐트 시술을 할 수도 있지만, 사망률이 매우 높다”며 “이런 병을 예방할 수 있는 단계가 고혈압이다”라고 했다

성 교수는 환자들에게 ‘고혈압 선생님’로 통한다. 그는 환자들이 자신의 혈압을 명확하게 알고 올바른 관리를 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최상의 심장질환 치료법이라고 보고, 환자들이 병원에 오면 정확한 혈압 측정법부터 교육한다. 심장 질환은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손을 쓸 수 없는 단계일 때가 많으니, 병이 되기 전부터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잘 알고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 교수는 “(처음 의사가 됐을 때는) 펄펄 뛰는 심장을 살린다는 생각에 순환기내과를 선택했고, 그 후에는 심근경색에 관심을 가지다가 펀더멘털(병의 근본)을 찾게 됐다”며 “그러다 보니 고혈압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국민 심장 건강을 살피기 위해서 정부가 혈압계를 경로당 등에 배포할 것을 제안했다.

가까운 곳에 혈압계를 배치해 평소 혈압을 측정할 수 있도록 하면, 고혈압을 사전에 관리할 수 있다. 성 교수는 “혈압계를 가까이 두면 ‘백의 고혈압’을 걸러낼 수 있어서, 혈압약을 먹지 않아도 되는데 복용하는 환자를 걸러 내 (건강보험) 예산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백의 고혈압은 평상시 측정 혈압은 정상인데, 병원에만 오면 혈압 수치가 높게 나오는 증상을 뜻한다.

지난 1일 오후 서울 강북삼성병원에서 성기철 순환기내과교수가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며 코로나19 백신이 혈압 및 혈관에 미치는 영향 등과 관련 이야기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올해 대한심장학회 혈관연구회 회장에 취임한 성 교수는 국내 심장 질환 연구에 대한 큰 발전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2003년부터 현재까지 총 96편의 SCI 주저자 논문을 발표했고, 올해에만 7편의 논문을 펴내며 발표 논문으로 강북삼성병원 1위를 차지했다. 그동안 대한내과학회, 대한심장학회, 대한고혈압학회, 삼성생명과학연구소 등에서 우수논문상을 다수 수상했다.

성 교수는 “약 1200만명으로 추정되는 고혈압 환자가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교육을 하는 것이 의료계와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그는 “환자의 삶과 죽음에서 의사 자체가 기여하는 것은 크지 않더라”라며 “길고 지루한 고혈압 치료 과정에서 환자들의 친절한 동반자가 되는 것에 만족한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심장혈관질환 환자가 많이 늘어나는 추세다.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당뇨병 등은 이런 혈관질환의 대표적인 원인으로 꼽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위협적인 것은 무엇인가.

“세 가지 모두 중요하다. 고혈압환자의 61%가 당뇨 또는 이상지질혈증을 가지고 있어 구분의 의미가 별로 없다. 학문적으로 답한다면 심뇌혈관 질환을 유발하는데 이 세 질환 중 고혈압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 최근 국내에서 20~30대 인구의 10%가 고혈압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고혈압이 생기는 원인은 어떤 것이 있나.

“국내 20~30대 인구의 약 10%가 고혈압인 것은 맞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들 가운데 단 17%만 자신이 고혈압인 것을 알고, 또 14% 정도만 혈압을 조절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연령대와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에서 고혈압 인지율은 67%이고, 조절하는 비율은 47%다. 고혈압의 90%는 본태성 고혈압이다. 뚜렷한 원인을 지적할 수 없고 발생 원인을 잘 모르는 고혈압이 대부분이란 뜻이다. 유전, 나이 등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 외 나머지 10%가 2차성 고혈압이라서 원인을 교정하면 혈압이 좋아지는 경우가 있다.”

─고혈압 등 만성질환 발병 연령대가 어려지면 어떤 문제가 있나. 고혈압은 흔하다 보니 위험한 질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혈압이 높으면, 혈관이 압력을 받게 된다. 어린 나이에 고혈압이 시작되면, 그 사람의 혈관은 그렇지 않은 경우와 비교해 더 오랜 기간 손상되는 것이다. 우리 연구에서도 혈압 조절이 잘 된 군과 잘 안 된 군의 상대 위험비 즉 사망 심근경색 등의 발생 비율 차이가 젊은 층에서 더 높게 나온다.”

─진료한 환자 중에서 고혈압을 장기간 방치했다가 합병증 등으로 심장 계통 수술에 이른 경우도 많은가.

“너무 많다. 심지어 응급실에 심부전, 뇌경색, 대동맥박리, 심근경색 등으로 내원했는데 원인을 알아보면 고혈압을 방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혈관질환은 완치도 어렵고 진단도 쉽지 않다. 그래서 질환의 원인이 되는 것을 관리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

─심부전증은 치료할 수 있나.

“고혈압으로 심장 기능이 다 망가진 것을 심부전이라고 한다. 영어로 ‘heart failure’라고 한다. 과거에는 약물 치료만 했는데, 최근에는 심장 박동을 도와주는 인공 심장 등이 나와서 치료가 가능해졌다. 새로운 기술도 최근 10년 사이에 많이 개발되고 있다. 그러니 심부전 치료도 과거처럼 포기할 필요가 없다. 다만 심부전이 생긴 이후에도 혈압 조절은 반드시 해야 한다.”

─고혈압 의심 증상이 있나. 일례로 뒷목이 당기면 고혈압을 의심해야 하나.

“뒷목 당김은 혈압이 낮아도 나타난다. 대부분의 고혈압은 증상이 없어서 측정을 해 봐야 한다. 반대로 뒷목이 당기거나 두통이 생겨서 혈압이 오르기도 한다.”

─결국 혈압계로 측정하는 수밖에 없다는 건가.

“심혈관질환 관리는 혈압을 올바르게 측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노인정 등에 혈압계를 더 많이 비치하고, 관리가 필요한 가정에 혈압계를 대량 보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약물 치료가 시급하지 않은 백의 고혈압 등에 투여되는 약제비 등을 고려할 때 전 가정에 혈압계를 비치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초중고등학교에서 만성 질환에 대한 교육도 일부했으면 좋겠다.”

─백의 고혈압이 무엇인가.

“가정혈압과 24시간 활동중 혈압은 정상인데 병원에서만 혈압이 높은 경우를 백의 고혈압이라고하며 고혈압으로 발전할수도 있지만 당장 약물 치료는 필요하지 않은 상태를 ‘백의 고혈압’ 이라고 한다. 혈압은 자주 변한다. 최근에는 진료실뿐 아니라 가정에서 또는 온종일 혈압계를 차고 다니며 측정한 혈압의 평균을 그 사람의 혈압 값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다. 혈압을 측정하기 전 5분 이상 안정하고 심지어 측정 전에는 커피도 마시면 안 된다. 혈압이 변하는 것도 있지만 혈압을 측정하는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 못하는 것이 더 문제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저혈압을 호소하기도 한다.

“저혈압은 올바른 용어는 아니다. 국내 인구 전체로 보면 여성이 압도적으로 혈압 관리를 잘한다. 그런데 70대가 넘어가면 여성의 혈압이 남성보다 나빠진다. 남성이 여성에 비해 젊을 때 혈압이 높은 것은 젠더(사회)의 영향이고, 여성이 나이 들어 혈압이 오르는 것은 여성 호르몬이 줄어드는 데 따른 생물학적 영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