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역 인근에 있는 한 식당에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적용으로 일주일간 영업 중지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이 장기화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 등 기존 방역 정책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대응 방식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행정 규제에만 의존하는 기존 방역 체계에서 벗어나 ‘국민참여형 방역’ 정책으로 변환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3일 전문가들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와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국회 국제보건의료포럼 등이 주최한 ‘지속 가능한 K방역 2.0 준비를 위한 간담회’를 통해 한 목소리로 현 방역 체계의 변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날 간담회는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비대면 영상회의로 진행됐다. 간담회에는 학계, 시민사회, 정부 등 각 분야의 패널들이 참여했다.

방역 전문가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하는 정부의 현행 방역 체계가 코로나 4차 대유행 국면에서는 크게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지난해 1차 유행 초기 사회적 거리두기가 효과를 보였고, 2차 유행 초반에도 확진자 감소 효과가 일부 나타났다. 하지만 3차, 4차 대유행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가 코로나 감염 확산 감소에 효과를 보인다는 객관적 지표가 부족하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실제 코로나 1차 유행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첫 시작된 지난해 3월 2일쯤에는 쇼핑센터·놀이시설이나 소점포 등을 찾는 이동량이 이전과 비교해 33%까지 크게 줄었다. 2차 유행 중인 지난해 9월 7일에도 이동량은 29.7%까지 떨어졌다. 반면 이번 4차 대유행(7월 27일 이후)쯤엔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오후 6시 이후 2인까지만 만나게 하는 거리두기 초강수 대책이 나왔지만, 이동량은 0.57% 감소하는 데 그쳤다.

오주환 서울대 의대 교수는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엔 확진자가 전날보다 증가하면 그만큼 소상업지역 이동량이 감소했다”면서 “코로나19 팬데믹 2년 차인 올해는 확진자가 전날보다 많아져도 상업지역으로의 이동량이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정부가 방역을 강화하면서 ‘무엇이든 자꾸 안 된다’는 규제 중심의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문제다”라면서 “이제는 국민에 ‘함께 해보자’는 참여형 방역으로의 정책 변환이 필요하다”라고 제안했다.

홍윤철 한국역학회 및 대한예방의학회 코로나 대응 TF 위원장은 “기존 방역체계를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대응방식으로는 국민적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면서 “행정 규제에만 의존하는 기존 방역체계는 사회적 약자의 피해를 누적하는 부작용을 키웠으며, 시민 사회의 자율적 참여마저 약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홍 위원장은 “가게 문을 닫고, 생업을 중단하고, 결혼을 연기해 가며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해 온 국민들은 더 나은 안전사회가 아닌 극심한 피로감과 생계의 한계로 내몰리고 있다”면서 “이에 시민이 참여하는 새로운 방역체계를 논의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코로나19와의 공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 차원에서 체계적인 확진자 디지털 추적검사 시스템을 보완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오주환 교수는 “코로나19의 4차 대확산이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에도 좀처럼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추적 시스템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면서 “확진자와 접촉자의 동선이 모두 디지털암호화 기술로 파악될 수 있는 환경으로 진화한다면 추적 관리에 있어 편의성이 높아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도 위드 코로나 모델을 적용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으로 국내 코로나19 치명률이 독감 수준까지 내려간 것이 근거다. 김윤 교수는 “코로나19 평균 치명률이 0.98%인데 지난달 0.18까지 감소했다”며 “델타 변이로 집단면역 형성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확진자 수에 방역 초점을 맞추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위드 코로나 위원회를 설치해 방역 거버넌스 개편이 필요하다”면서 “이는 국민 참여를 통한 사회적 합의 기반으로 방역을 실시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민 패널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보건계의 애로사항을 전달하며 정부와 국회가 정책 차원의 현실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 정부를 대표해 패널로 참석한 강영석 전북도 복지여성보건국장은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국민 참여 방역으로의 전환은 선제적으로 시행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송하진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전라북도지사) 회장은 “코로나19의 방역은 지속 가능한 K방역으로의 전환을 고려할 때다”라며 “현재의 추적·검사·역학조사 등으로 이루어진 K방역 시스템의 전환에 공감하며 앞으로 어떠한 시스템으로 전환시킬 것인가에 대한 심도 있는 준비를 이어가자”라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