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국무총리가 지난달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김 총리는 이날 회의에서 오는 5일까지 모더나 코로나19 백신 701만회분이 국내 도입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8월 중에 공급 물량 850만회분이 제때 도입되도록 협의가 마무리됐습니다."

지난 7월 30일 김부겸 국무총리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 공급 지연 문제를 해결했다며 발표하면서 한 말이다. 모더나는 지난 7월 28일 생산 차질을 이유로 7월 중 공급하기로 약속한 물량 대부분을 보내지 않았다.

김 총리는 "문제가 해결했다"고 발표했지만 그 발표는 일주일여만에 뒤집혔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9일 기자회견을 열고 "(모더나가) 8월 물량인 850만회분의 절반 이하를 공급하겠다고 알려왔다"고 했다.

그러자 정부는 대표단을 미국 모더나 본사에 보내 공급을 약속받겠다고 했다. 우리 대표단이 귀국한 지 사흘여 후인 지난달 22일 김부겸 총리는 "모더나가 향후 2주간 총 700만회분의 백신을 한국에 공급하겠다고 정부에 알려왔다"고 했다.

◇ 이번 주 온다던 모더나 600만회분 아직도 "협의 중"

하지만 1일 기준으로 정부가 밝힌 모더나 백신 701만회분 중 101만회분만 들어왔을 뿐 이번 주까지 들어오기로 한 나머지 600만회분은 여전히 '일정 협의 중'이다. 이기일 중대본 제1통제관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모더나 도입) 세부 일정을 협의 중에 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확정된 게 없단 뜻이다.

원래 정부가 발표한 8월 모더나 백신 도입 물량은 850만회분으로, 7월에 들어오지 않았던 196만회분까지 합하면 1046만회분이었다. 그러나 8월에 들어온 모더나 백신은 232만1000회분. 7월에 들어오기로 했던 물량을 제외하면 8월에는 공급 예정분의 4.2%만 들어온 것이다.

질병관리청 제공

정부는 모더나 백신 600만 회분이 들어오지 않으면 추석 연휴(9.19∼22) 전까지 전 국민 70% 1차 접종 목표 달성은 어렵다고 본다. 홍정익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 접종관리팀장은 이날 관련 질의에 "모더나 600만회분이 없으면 접종 시행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접종 계획이 또 한 차례 수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그런데 이 와중에 보건당국인 질병관리청은 전날(8월 31일) "내년에 예산 2조6000억원을 들여 내년에 코로나19 백신 9000만회분을 추가 구매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당장 이번 주에 들여오기로 발표한 모더나 백신 600만회분도 약속하지 못하면서 '내년 9000만회분'을 발표한 것이다.

◇ "文정부 백신 수급 대책은 민심 억제용 립서비스"

마상혁 경남의사회 감염대책위원장은 "지금 당장 맞을 백신도 없는데, 내년도 백신 9000만회분을 추가 도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말"이라고 했다.

정부가 백신 수급 실패로 악화된 민심을 달래려고 숫자를 들이대며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남발한다는 것이다. 마 위원장은 "현 정부의 백신 수급 대책은 민심 억제에만 집중된 것 같다"고도 했다.

그의 주장처럼 정부는 국내 백신 수급 곤란으로 민심이 악화될 때마다 '백신 추가 계약' 발표를 쏟아냈다.

당장 지난달 13일 정부는 내년에 사용할 화이자 백신 3000만회분을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내년에 사용할 물량은 현재 백신 수급 문제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정부가 지난 4월 24일에 발표한 '연내 화이자 4000만회분 추가 계약' 발표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올해 3월까지 화이자와 맺은 백신 도입 계약은 2600만 회분이 전부였다. 정부는 모더나가 약속 도입 차질을 빚기 시작한 올해 4월에서야 화이자와 백신 계약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날 현재까지 국내에 도입된 화이자 백신은 2100만회분. 정부가 뒤늦게 체결한 4000만회분 물량은 이날까지 들어오지 않은 셈이다.

◇ "모더나 2000만회분 올해 초 들여온다더니…"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8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스테판 반셀 모더나 최고경영자(CEO)와 화상 통화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정부의 '민심 달래기용 발표'로 꼽히는 가장 대표적 사례는 작년 연말 '모더나 4000만회분 계약' 건이다. 코로나19 3차 대유행으로 하루 확진자 숫자가 치솟던 지난해 12월 31일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이 모더나 스테판 방셀 최고경영자(CEO)와 화상통화를 통해 4000만회분 백신을 얻어냈다고 발표했다.

질병청은 이 소식을 전하면서 "(문 대통령의 화상통화로) 구매계약 물량은 두 배로 늘었고, 공급 시작 시기는 내년 3분기에서 2분기로 앞당겨졌다"고 했다. 질병청은 "모더나 2000만회분은 올해 초 도입될 예정이다"라고도 했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 들여온 모더나 백신은 약 5만회분, 3분기인 현재까지 국내에 들어온 물량도 347만회분에 그친다. 이는 문 대통령이 약속한 물량(4000만회분)의 8.6%다. 모더나 백신 국내 도입은 올해 네 차례 차질을 빚었다.

모더나만 도입 실적이 부진한 게 아니다. 정부가 올해 들여온다고 밝힌 코로나19 백신 물량은 1억9340만회분이이다. 지난달 26일 현재 국내에 도입된 물량은 모두 4635만회분. 올해의 3분의 2가 지났는데, 지금까지 들여온 백신 물량은 고작 23.9%에 불과하다.

2020년 12월 20일 당시 코로나19 백신 국내 도입 현황/질병관리청 제공

정부는 그동안 올해 3분기(9월 30일)까지 백신 1억회분이 국내에 도입될 예정이라고 밝혀왔다. 오는 5일까지 약 1090만회분(아스트라제네카+화이자 490만, 모더나 600만)이 들어온다고 해도 9월 한 달 동안 4000만회분이 넘는 백신이 더 들어와야 한다.

◇ 백신 수급 문제로 방역 정책까지 뒤틀려

백신 수급 문제를 풀지 못하니 정책은 뒤틀렸다. 백신 부족으로 50대 이하 화이자 백신 접종 간격은 3주에서 4주, 이제 6주로 늦춰졌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권고한 화이자 백신 접종 간격은 3주, 모더나는 4주다.

희귀 혈전증을 이유로 50대 이하에는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접종을 제한했던 질병청은 백신이 부족해지자 30~49세 연령층에게 잔여 백신으로 아스트라제네카를 맞을 수 있도록 연령 기준을 다시 조정했다.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올리면서 '짧고 굵게'를 약속했지만, 오후 6시 이후 2인 초과 모임을 제한하는 방역 지침은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고위험군에 대한 부스터샷(추가접종)'을 꺼내 들었다. 같은 날 질병청은 이르면 10월부터 12~17세 청소년과 임신부에 대한 접종을 검토한다고 발표했다. 감염병 전문가들이 요구한 정부 정책의 체계화에 대한 답변은 없었다.

마 위원장은 "백신이 부족해 화이자 백신의 1⋅2차 접종기간을 3주에서 6주로 늘린 상황에서 갑자기 임신부와 청소년에 대한 접종 계획과 고위험군에 대한 '부스터샷'을 발표했다"며 "돌파감염이 어떤 경로로 어떤 연령대로 나타나는지 분석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접종 계획을 밝히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마 위원장은 그러면서 "이것이 여론 환기용 카드가 아니면 무엇인가"라고 했다.

정부가 모더나 백신 공급 차질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미국 모더나 본사를 방문한 것도 그런 목적에 따른 것이란 주장도 있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전 세계가 백신 수급에 곤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항의 방문을 했다고 백신을 추가로 공급하게 되면 다른 나라들도 모두 몰려들 것"이라며 "모더나는 체면치레를 한 것이고 한국 정부는 국민을 상대로 거짓 쇼를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