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암 환자 수술을 집도하고 있는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갑상선내분비외과 장항석 교수. /강남세브란스병원 제공

‘갑상선암’은 국내에서 10명 중 2명이 발병하는 비교적 흔한 암으로 알려져 있다. 갑상선암의 5년 상대생존율은 100%를 넘는다. 여기서 5년 상대생존율이란 일반인과 비교해 암환자가 5년간 생존할 확률을 의미한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4~2018년) 진단받은 암 환자의 5년 상대 생존율은 70.3%를 기록했다. 갑상선암은 다른 암에 비해 진행이 느리고 예후도 좋아 ‘거북이 암’ 혹은 ‘착한 암’이라고도 불린다. 이러한 갑상선암이 결코 착한 암만은 아니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갑상선내분비외과 장항석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19일 만난 장항석 강남세브란스병원 갑상선내분비외과 교수(대한갑상선학회 이사장)는 “갑상선암이 비교적 착한암이라고 인식되는 것은 초기에 잘 치료하면 그 예후가 좋다는 의미이지, 나중에 종양이 악화되고 전이가 일어난 경우에도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라면서 “처음에는 모든 암이 작고 치료하기 손쉬운 상태지만, 크게 자랄수록 돌이킬 수 없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갑상선은 목 앞쪽에 있는 나비 모양의 인체 가장 큰 내분비기관이다. 갑상선에서는 우리 몸에 영양소를 에너지로 바꾸고 인체의 대사 작용을 조절하는 갑상선 호르몬이 나온다. 이 갑상선에 생기는 암을 갑상선암이라고 한다.

갑상선암으로 진단받는 사람이 최근에 많이 늘어났다. 이러한 이유는 암 자체의 발생률 증가라기보다 암을 진단하는 방법이 발전한 것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일까. 지난 몇년간 갑상선암 발생률이 과잉 검진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논란이 됐다.

일각에서는 갑상선암 초기에 수술을 급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같은 갑상선암이라고 해도 암 종류와 병의 진행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장항석 교수는 “초기 암이라면 급하게 서둘러 수술할 게 아니라 조금 시간을 갖고 지켜보다 수술하자는 취지의 의견들도 많이 있다”면서 “하지만 모든 환자가 다 이런 방법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여러 위험인자를 분석하고 정기적으로 철저하게 검사해 조금이라도 암이 자라면 수술로 바로 전환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구비돼야 한다”고 말했다.

장항석 강남세브란스병원 갑상선내분비외과 교수. /강남세브란스병원 제공

장 교수는 암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암은 한 번 발생하면 빠르게 증식하고 커지면서 우리의 몸을 갉아 먹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면서 “갑상선암도 같은 형식으로 변해간다”고 말했다. 다만 초반에 낮은 성장곡선을 보이는 구간이 다른 암들보다 조금 더 긴 특성이 있어서 마치 갑상선암이 자라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효과가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암 내부에서는 세포분열이 멈추거나 느려지지 않고 꾸준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미분화암은 가장 무서운 암이다. 이는 비교적 예후가 좋은 분화 갑상선암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분화도가 나빠져 발생하는 암이다. 현재까지 어떠한 치료에도 효과가 없고 수술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 생존기간이 3~6개월에 불과하다. 갑상선 수질암도 진단 시 이미 50% 정도 환자에서 림프절 전이가 나타나고 5~10%는 다른 장기에 전이가 발견돼 생존율이 낮다. 장 교수는 “처음에는 아주 작고 천천히 자라는 치료가 용이한 암이었다가 방치되고 세월이 흐르면 지독한 암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거의 매일 중환자실에서 치료가 필요한 갑상선암 환자를 1명 이상 본다고 했다. 장 교수는 “조기 검진을 기피하거나, 암 수술을 바로 하지 않는 추세가 지속되면서 증상이 악화된 환자들이 병원에 오는 경우가 늘고 있다”면서 “요즘엔 환자들을 일주일에 적어도 4~5명 정도 수술하고 있다”고 말했다. 갑상선암은 다른 암과 비교해서 치료가 잘 되고 예후도 좋은 편이지만, 재발이나 전이의 가능성이 높아 정기적 추적관찰이 중요하다. 주로 5~10년 사이에 재발이 많다. 누적재발률은 10년마다 10%씩 증가한다. 이 기간에는 주기적 초음파 검사와 함께 혈액검사를 통해 갑상선암 수치 등에 대한 추적이 필요하다.

“호미로 막을 것은 호미로 막자.” 그는 “갑상선암은 천천히 자라서 좋은 점도 있지만, 생존기간이 길기 때문에 재발율에서는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면서 “10~20년이 지나더라도 방심하고 관리에 소홀하면 언제든 암이 재발할 수 있어 가능하면 수술로 제거하고 추가 치료를 동원하는 것이 최선이다”라고 말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에는 난치성 갑상선암으로 고통받는 환자가 많이 온다. 그는 곳곳에 혈관을 잘라내고 떼어내야 하는 난치성 갑상선암 수술의 대가이기도 하다.

갑상선암 수술을 해야 하는 기준은 초음파 검사에서 암이 2㎜ 이상의 크기로 커지는 상황일 때다. 장 교수는 “암이 자라는 증거가 있거나, 전이가 발생하면 즉시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원발암이 1㎝ 미만이었다고 하면 약 2㎜ 정도만 자라도 종양 부피는 상당히 큰 차이가 생긴 것”이라면서 “초음파로 볼 때는 그리 큰 차이로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실제 암의 부피는 대략 2배 이상으로 커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갑상선암 정복을 위한 연구에 끊임없이 몰두하는 의사다. 그가 있는 강남세브란스병원 난치성 갑상선암 연구소에서는 현재까지 거의 밝혀진 바 없는 난치성 갑상선암의 새로운 맞춤형 치료법을 개발하고, 갑상선암 악화 원인을 밝히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그는 난치성 갑상선암 치료법과 관련한 5개 특허를 획득했고, 현재 2개의 특허 출원을 한 상태다.

그가 갑상선암 분야의 외과의사가 된 계기는 무엇일까. 장 교수는 한국 슈바이처라 불리는 고(故) 장기려 선생과 그의 제자였던 아버지 영향을 받아 외과의사가 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의사는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라”라는 아버지 장임수 박사의 조언에 따라, 그는 외과의사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그의 스승은 갑상선암 치료 분야의 권위자인 박정수(현 일산차병원) 교수다. 장 교수는 “비교적 이른 시간에 학위과정에 들어갔는데, 당시 지도교수였던 박정수 교수 영향을 많이 받았다”면서 “그레이비스병과 관련한 논문을 쓰면서 공부를 해보니 이 분야가 참 논리적이고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계속 공부해보고 싶은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동생인 장호진 교수도 강남세브란스에서 갑상선 전문의로 일하고 있다.

그는 인류 문명에 영향을 끼친 질병의 역사를 다룬 ‘판데믹 히스토리’의 저자이기도 하다. 책에는 생명의 탄생에서부터 선사시대, 고대, 중세, 르네상스,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남아 번성해온 세균과 바이러스를 추적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는 “질병이야말로 인류 문명의 숨은 지배자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고 말한다. 코로나19와 같은 바이러스로 인해 발생한 감염병 역시 사회에 막강한 영향을 휘두르고 있다. 장 교수는 “역사적으로 볼 때 과거 인구의 3분의 1 정도 사망하는 역병이 발생하면 그 사회는 결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면서 “코로나19가 그 정도로 높은 사망률을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모든 일상을 바꾸어 놓은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수많은 역경을 극복해 왔다”면서 “코로나19 팬데믹도 잘 이겨낼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암 환자에게 용기를 잃지 말라고 말했다. 그는 “암환자는 암으로 죽지 않는다, 희망을 잃기 때문에 사망한다는 말이 있다”면서 “이 말을 진정으로 믿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