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건수가 하루 10만건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하루 1200명을 넘어서고 있지만 백신 접종 속도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4차 대유행의 고비를 넘기려면 방역 강화는 물론 백신 접종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9일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8일 0시 기준 국내 코로나19 백신 접종 건수가 1, 2차를 포함해 9만6370건으로 집계됐다. 이달 들어 하루 코로나19 접종 건수는 6일(10만436건)과 1일(12만1928건)을 제외하고는 10만건을 넘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 얀센 백신 100만회분이 들어온 지난달 중순에는 하루 접종 건수가 100만건을 넘었다. 불과 2주 전인 지난달 셋째주까지도 하루 접종 건수가 50만건을 웃돌았던 것이 지난달 넷째주부터 갑자기 쪼그라들었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의료 인프라가 잘 발달돼 있어, 백신이 공급만 되면 큰 시차 없이 곧바로 접종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6월 말 들어 접종 건수가 급감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방역 당국이 방역은 물론, 백신 수급 조절에도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7월부터 방역 완화를 한다고 홍보하면서 정작 이달 백신 접종 속도가 둔화되는 것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50대 접종 시작하는 7월 말까지 수급 일정 '빠듯'
방역 당국은 7월 접종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달 안에 백신 1000만회분이 도입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의 7월 백신 접종 세부 계획을 보면 백신 수급은 빠듯해 보인다. 7일 0시 기준 코로나19 백신 잔량은 아스트라제네카 28만회, 화이자 114만회분을 포함해 총 149만회분이다. 지난 5일부터 접종을 시작한 상반기 초과 예약자 등 30만명과 이달 안에 2차 접종을 마쳐야 하는 대상자 107만3000명만 합쳐도 140만명이다. 남아있는 백신을 몽땅 쏟아 넣어야 한다.
7일 오전 이스라엘에서 들여온 화이자 70만회분 가운데 절반은 방역 상황이 급한 서울⋅경기 긴급 접종에 쓰인다. 나머지(36만회)는 오는 28일로 예정했던 어린이집, 유치원 및 초·중학교 교직원 등(112.6만명) 접종을 앞당기는데 사용하기로 했다.
여기에 19일부터는 대입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학생과 교직원 64만명에 대한 접종이 시작된다. 매주 50만~60만회분씩 순차적으로 들어오는 화이자 백신은 이렇게 예정된 물량에 쓰인다.
8일 오후 4시쯤 모더나 백신 35만4000회분이 인천공항에 도착했지만, 이는 오는 26일 시작되는 55~59세(352만명) 접종에 쓰이는 물량이다. 매주 비슷한 분량의 모더나 백신이 공항으로 들어온다고 해도 이달 중 50대 접종 물량을 채우기도 힘들어 보인다.
◇ "백신 교환 추가 협정으로 보릿고개 빨리 끝내야"
연령별 인구 분포를 보면 50대 약 853만명, 40대 820만명, 30대 682만명, 20대 677만명 등(통계청 2020년 12월 주민등록 거주자 인구 기준)으로 구성된다. 1차 접종을 마친 55세 이상 연령을 제외하더라도 약 2400만명이 추가로 접종해야 한다.
방역 당국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조명희 의원실에 제출한 '2021년 백신 도입 현황 및 계획'을 보면 8월과 9월 두 달 동안 백신 7000만회분이 들어온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8월 들여올 물량도 장담하기 어렵다는 얘기도 나온다. 당국은 3분기 접종 물량으로 명시한 아스트라제네카 83만5000회분, 얀센 10만1000회분에 대해서도 "3분기 안에만 들어온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감염력이 센 델타 변이 확산을 막으려면 이스라엘과 맺은 백신 교환 협정처럼 추가 협정을 맺어 '백신 보릿고개'를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한다. 대유행을 끝내려면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동시에 백신 접종 속도를 높여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백신 공급이 원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 확진자가 1200명을 넘어선 당장 2~3주가 고비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백신을 최대한 빨리 확보할 수 있도록 백신 교환 협정을 추가로 체결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변이가 확산된 싱가포르는 백신 접종에 속도를 내는 동시에 '식당 내 식사 금지'와 같은 초고강도 거리두기를 통해 약 4주 만에 대유행을 잠재웠다.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소속 박진 의원(국민의힘)과 함께 이스라엘에 백신 교환을 제안했던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백신 접종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린 국가에서 유통기한이 임박해 백신을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최대한 적극적으로 백신 교환 확보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질병청 관계자는 "정부는 올해 화이자, 모더나, 노바백스, 아스트라제네카, 얀센 등 5개 종류 코로나19 백신 총 1억9300만회(1억명)분을 확보했다"며 "올해 초 밝힌 접종 계획대로 순차적으로 접종을 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백신 접종 속도가 둔화된 것에 대해선 "2차 접종 등에 필요한 백신 종류와 물량 사이에 일시적인 불일치(미스매치)가 일어난 데 따른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