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 해외 입국자들이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10%를 넘어가면서, 정부가 싱가포르 등 코로나19 방역이 우수한 국가와 양자 협정을 맺고, 이 국가에서 백신 접종을 마친 사람은 방문 목적과 상관없이 입국할 때 자가 격리를 면제하는 방안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정부는 이 국가가 발행한 백신 접종 증명서의 진위는 정부 지정 여행사 등 민간에 위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부는 백신 접종이 본궤도에 오른 데 따라 이런 양자 협정을 점차 확대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해외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사람이 한국에 입국할 때 자가격리를 면제받는 길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31일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등에 따르면 방역당국은 정부가 싱가포르 등 일부 국가와 추진하는 ‘트래블 버블(Travel Bubble·특정 국가 간 자유로운 여행을 허용하는 여행객 보호)’ 협정 문구에, 이 국가에서 발행한 백신 접종 증명서를 제출한 사람이 유전자증폭(PCR)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으면 14일 자가격리를 면제하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하기로 논의 중이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는 “해외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사람의 국내 입국 형평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각도로 고민 중이다”라며 이런 내용을 전했다. 트래블 버블은 방역 우수국끼리 일종의 보호막을 형성해 방문 목적과 상관없이 입국 금지나 자가격리를 면제하고 자유로운 여행을 허용하는 것을 뜻한다. 현재 우리 정부와 협정 체결이 가장 임박한 국가로는 싱가포르가 꼽힌다. 이 밖에 체결 가능성이 높은 국가로는 미국령인 괌, 뉴질랜드, 대만 등이 꼽힌다.

정부는 ‘방역 우수국(인구 10만명당 신규 확진자가 25명 이하)’ 가운데 ‘공신력 있는 국가’를 대상으로 협정을 추진 중이다. 한국 정부가 당장 싱가포르와 트래블 협정을 맺게 되면, 싱가포르에서 모더나와 화이자 등 국내 승인 백신을 접종한 사람은 14일의 자가 격리 없이 국내에 들어올 수 있게 된다.

정부는 그동안 ‘트래블 버블’ 협정과 ‘백신여권’ 정책을 따로 준비해왔다. 트래블 버블은 국토교통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어려움에 부닥친 여행·항공업계 지원 차원에서 준비했고, 백신여권은 방역 당국과 외교부에서 국내외 코로나19 백신 접종자의 자유로운 왕래를 위해 고민해 왔다.

그러나 PCR 음성 판정만으로 국내 입국을 허용하는 ‘트래블 버블’에 대해선 방역당국이 난색을 표했고, 전 세계 각국의 다자협상이 필요한 ‘백신 여권’은 현실성이 떨어졌다. 그러자 정부는 두 정책을 병합하는 방식으로 선회한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트래블 버블 백신 협정을) 다른 나라로 점차 확대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정부는 또 협정을 맺은 국가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증명서의 진위 판독은 민간에 위탁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정부가 공개 입찰을 통해 모두투어나 하나투어 등 대형 여행사에 ‘트래블 버블’ 관광업 라이선스를 부여하면, 이 여행사가 백신 접종자 대상 여행상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하되, 이 여행 상품을 구매하는 사람의 백신 접종 증명서는 여행사가 보증(개런티)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추후 문제가 생겼을 경우 문체부가 여행사의 관광업 라이선스 자체를 박탈하는 방식의 제재가 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이런 백신 접종 증명서 여행사 보증 방안을 두고 부처 간 의견이 엇갈린다. 방역당국에서는 “여행사를 제재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없어서 고민”이라며 “만약에 해외 여행객을 통해 변이 바이러스 등이 퍼질 경우 그 비난은 정부가 다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여행사에 위탁한 후 방역이 뚫리면) 정부가 방역의 의무를 민간에 떠넘긴다는 오해도 부를 수 있다”고 했다.

국토부는 지난 3월부터 트래블 버블 협정 체결을 본격 추진한다고 발표했으나 2개월 가량 결과를 도출하지 못한 채 협상이 지지부진했다. 방역당국은 올해 들어 국내 코로나19 하루 확진자 숫자가 500명대를 유지하자, 해외 여행객을 받을 경우 방역에 구멍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내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본격화하면서 기류가 달라졌다. 방역당국은 이달 초 국내 승인 코로나19 백신과 함께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긴급 사용 승인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사람은 입국 후 자가격리를 면제할 것을 검토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