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언스 김태우 대표. /레이언스 제공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태 이후 일상 속 피폭(被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방사선은 자연에도 있고 살균용으로도, 암치료용으로도 쓰인다. 하지만 의료 분야나 산업용에서 많이 쓰이는 엑스레이 사진을 찍을 때 한 번에 0.1~0.3mSv(밀리시버트) 정도 ‘피폭’ 된다. 시버트는 방사선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을 단위화한 것이다. 연간 1mSv까지는 안전하다고 하지만, 그 횟수가 잦아지면 유전자가 손상돼 나중에 암이 생길 위험이 커진다고 한다.

이론적으로 엑스레이에 노출되는 양이 많을수록 영상은 더 선명해진다. 이 과정에서 환자나 의료진이 방사선에 노출되는데, 국내외 엑스레이 업체들은 ‘선명한 영상’에 집중한 나머지 그동안 ‘노출량’에는 무신경했다.

그런데 방사선 노출을 절반 정도로 줄인 엑스레이(X-ray) 감지 장치를 상용화한 국내 기업이 있다. 엑스레이 영상장비의 핵심 부품인 디텍터를 만드는 소재 전문기업 레이언스다. 레이언스는 선량을 줄이면서도 감도를 높이는 기술 개발에 주력했고, 방사선 노출량을 기성 제품 대비 40% 낮춰도 선명한 영상을 구현하는 그린온(GreenON)이라는 제품을 만들었다. 김태우 레이언스 대표를 최근 경기도 화성시 본사 대표실에서 만났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 국민 한 명의 연간 의료 피폭량은 유럽과 미국 평균보다 2.5배 높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 대표는 “한국과 달리 북미와 유럽 국가는 국민의 연간 피폭 누적량을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나 유럽에는 100㎏ 이상 과체중 환자가 많다”며 “과체중 환자에 대한 엑스레이 촬영을 하려면 방사선이 상대적으로 많이 조사(照射)될 수밖에 없는데, 환자의 안전을 중요시하는 미국이나 유럽은 방사선 노출을 줄이면서 고화질 영상을 보장하는 엑스레이가 차별성을 가질 것으로 생각했다”고 했다. 레이언스가 개발한 그린온이 체중이 많이 나가는 환자가 많은 미국시장, 방사선 노출선량에 대한 기준이 까다로운 유럽 등에서 통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최근 국내에도 방사선 노출을 줄이면서 선명한 영상을 보장하는 저선량 CT(컴퓨터 단층촬영)가 인기를 끌었다”며 “올해는 ‘저선량(저방사선 양이 적음) 의료진단’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라고 했다. 저선량 디텍터가 방사선 피폭에 민감한 미국, 유럽에서 주목받을 것으로 기대된다는 것이다.

디텍터는 디지털 엑스레이 의료장비에서 영상 품질을 좌우하는 부품이다. 필름 엑스레이를 디지털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시장이 커졌다. 2017년 세계 의료기기 시장 중 엑스레이가 속한 영상진단 의료기기는 858억달러(약 96조3200억원)로 24.1%의 비율을 차지했다. 그중 엑스레이 장비 시장은 2020년에는 약 54.5억달러(6조1000억원)로 전망된다.

레이언스는 자체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디텍터를 전 세계에 수출하고 있다. 레이언스는 계열사인 바텍을 지원하기 위해 디텍터를 처음 개발했다. 바텍 연구소장이었던 김태우 대표는 “디텍터는 삼성 갤럭시나 아이폰 등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센서 역할에 비유할 수 있다”면서 “당시 우리나라는 고가 디텍터를 일본 부품회사 등으로부터 수입해서 썼는데, 사내에서는 자체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고 했다.

회사는 국내 디텍터 제조사 중 유일하게 티에프티(TFT, 박막트랜지스터) 디텍터와 씨모스(CMOS, 상보형 금속산화반도체) 기술을 모두 보유하게 됐다. 또 신틸레이터(CsI) 증착과 같이 고도의 제조 기술이 필요한 분야 제조공정을 포함, 연구 및 제조 전 공정을 내재화했다.

김 대표는 “유수 디텍터 경쟁사들조차도 일부 공정을 자사에 위탁하고 있다”고 했다. 회사는 연세대학교와 ‘레이언스 차세대 센서 연구센터(CARI)’를 공동 운영한다. 이를 통해 씨모스 기술을 한층 더 발전시켰고, 다양한 국책 과제를 진행하고 있다. 회사는 한국을 시작으로 북미, 유럽, 아시아까지 내달렸다. 미국에도 연구소를 설립했다. 김 대표는 “디텍터 시장에서 수많은 후발주자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후발주자들과는 적어도 2~3년 이상의 기술 격차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레이언스의 경쟁력으로 ‘낮은 원가’와 ‘고해상도 기술’이 꼽힌다.

회사는 2015년 이후 연평균 12.7%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김 대표는 “국내는 기술력과 매출 규모 면에서 비교할 곳이 없다”면서 “수량으로 보면 전 세계 디텍터 1위 기업과 견줄 규모로 엄청난 양산 규모와 경험을 축적해왔다”고 말했다.

회사는 계열사 바텍을 통해 치과용 디텍터 분야로 안정적인 물량 공급을 이뤄내는 동시에 의료용, 산업용, 동물용으로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가 확산됨에 따라, 폐렴 진단용 영상처리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국내 최초 식품의약품안전처 인증을 받았다. 지난해 4월부터는 휴대가 가능한 포터블 엑스레이와 패키징을 통해, 인터넷 연결이 어렵거나 전원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코로나19 검진 환경에 맞춤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흉부 단순 방사선 영상으로도 저렴한 비용으로 신속한 선별진단을 가능케 했다.

최근에는 산업용 엑스레이 시장의 성과가 돋보인다. 2차전지, 파이프, 항공부품 등 미세한 검사가 필요한 산업용 검사장비 시장에서 유수의 기업들을 고객으로 맞이했다. 시스템 장비를 제조하는 고객사와 오랜 기간 협업하며 최적화해야 하는 시장이다. 올해 들어 레이언스는 글로벌 산업용 검사장비 AXI 기업을 잇달아 고객사로 수주했다.

출하를 하는 디텍터를 확인하는 연구원의 모습. /레이언스 제공

그는 의료기기 영역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는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다만 여전히 더딘 인허가 절차, 연구인력 부족 등은 과제로 꼽힌다. 김 대표는 “우리는 (디텍터 분야 등) 특정 헬스케어 영역에서는 이미 선도기술을 보유한 ‘퍼스트 무버’로 나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선진국을 따라가는 팔로워 위치였다면, 이제는 앞서갈 수 있는 국가로서 경쟁력을 갖췄다”며 “글로벌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신기술에 대한 신기술 인허가 활성화, 빠른 인·허가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관련 (허가 당국) 전문 인력 확대도 필수”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K바이오, K메디컬의 성장에는 곧 ‘사람(인재)’이 핵심 요소”라며 “정부가 산학과 힘을 합쳐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갖고 있는 의료기기, 바이오 등 분야에 대한 인재 양성에도 힘써주길 바란다”고 했다.

올해 창립 10년을 맞이한 레이언스는 2011년 5월 법인 설립 후 2012년 씨모스(CMOS, 상보형 금속산화반도체) 기술을 갖춘 휴먼레이를 합쳐 하나의 회사로 출범했다. 레이언스라는 기업명은 ‘엑스레이 사이언스’에서 따왔다. 김 대표는 “품질, 원칙, 빠른 서비스와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만나 디텍터 분야의 강자가 될 수 있었다”며 “속자생존(速者生存)’ 시대, 저선량 ‘프리미엄 엑스레이(X-ray) 디텍터’로 세계 1위 시장 점유율을 달성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