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정보기술(IT) 집약체인 삼성 스마트폰 '갤럭시'와 애플 '아이폰'이 일상 속 모바일 시대를 연 것처럼, 씨젠도 다양한 바이러스에 대한 검사가 보편화 될 수 있도록 '분자진단 생활화'를 목표로 사업을 확대하겠습니다."
국내 최대 진단업체 씨젠에서 연구개발을 총괄하는 최고기술책임자(CTO) 이민철 부사장을 최근 서울 송파구 씨젠 본사에서 만났다. 이 부사장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감염병뿐 아니라 각종 질병 진단 수요가 주목받고 있다"면서 "분자진단 영역을 중소병원 및 의원과 가정집까지 확대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씨젠은 자체 개발한 동시다중(同時多重) 분자진단 기술 등으로 주목받는 글로벌 분자진단 전문기업이다. 분자진단이란 인체에서 채취한 혈액, 소변, 조직 등으로 유전자 정보를 담고 있는 DNA(유전자)와 RNA(리보핵산)를 분석, 질병의 원인을 찾아내는 체외진단 검사법이다. 씨젠이 개발한 분자진단 제품은 IT 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신종플루(독감) 등 호흡기 질환, 성매개 감염, 결핵, 자궁경부암과 같은 감염성 질환 유발 바이러스를 비롯해 항생제 내성균이나 갑상선 암, 백혈병, 유전질환을 불러일으키는 돌연변이 등 다양한 종류의 진단을 할 수 있다.
이민철 부사장은 "분자진단은 여러 병원체를 한번 검사로 빠르게 진단할 수 있어 정확도뿐 아니라 효율성 측면에서도 우수한 평가를 받는 혁신의 결과물"이라면서 "만약 일상 생활을 하다가 고열, 기침 등의 증상을 보일 때 독감에 의한 것인지, 코로나19로 인한 것인지 등을 빠르게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씨젠은 단 2주 만에 진단키트를 완성, 지난해 2월 유럽체외진단시약 인증과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 긴급 사용까지 받았다. 그 제품이 세계에서 주목받는 'Allplex 2019-nCoV Assay'이다. 이 제품은 전 세계에 K-방역 위상을 드높이며, 진단키트 분야 '메이드 인 코리아'의 힘을 보여줬다. 혁신 분자진단 제품 개발로 씨젠은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지난해 매출액은 1조1252억원으로 전년 대비 822.7% 증가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연결 기준 6762억원으로 전년보다 2915.6%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2019년과 비교하면 씨젠 매출액은 1년 만에 약 9배, 영업 이익은 약 30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씨젠 해외법인은 미주, 중동, 유럽 등 총 7개국에 있다. 이러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전 세계 60여개국에 씨젠의 분자진단 제품이 공급되고 있다.
씨젠은 이런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경험하며 보완점을 찾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 부사장은 "일례로 코로나19를 통해 원자재 및 기기의 조달이 약점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회사 연구인력과 인프라를 크게 확장·개선, 사업 영역 확대를 통한 분자진단의 대중화에 한 걸음 다가섰다"고 말했다. 회사는 핵산 추출, 증폭 효소, 진단 장비, 개발 자동화, 의료 빅데이터, 검체 채취 기구 등 개발을 위해 현재 연구소를 기존 3개에서 9개로 증설했다. 동시에 수많은 전문인력을 채용했고, 연구실과 생산공장을 만들고 있다.
씨젠은 올해 1분기까지 최대 생산능력을 5조원 수준으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지난해 상반기 전년도 대비 생산능력을 10배 이상 증가시킨 가운데 현재 약 2조원 수준인 최대 생산능력을 2배 이상으로 더 늘리는 셈이다. 현재 서울 송파구에 있는 생산 시설과 더불어 내년 1분기에는 하남 지역에 5개의 새로운 생산 시설을 구축해 총 생산능력을 5조원까지 늘릴 예정이다. 앞으로 생산능력이 2~3배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에 대비하기 위해 지난 8월 경기 하남시 풍산동 소재 1만752㎡(약 3047평)의 부지를 매입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어느덧 1년이 훌쩍 지났다.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등 글로벌 제약사가 개발한 백신 접종 개시로 바이러스 종식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하지만 변이 바이러스가 또 다른 위험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씨젠은 이러한 위험에 대비하고자 어떤 종류의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 판별하는 신개념 진단키트 개발에 성공했다. 'Allplex SARS-CoV-2 Variants Ⅰ Assay'는 채취된 검체에서 기존 코로나19 바이러스, 영국발 변이, 남아공발 변이, 기타 국가발 변이(일본·브라질 등)뿐 아니라 신종 변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형의 바이러스 유전자를 2시간 안에 신속히 구분해낼 수 있다. 이 부사장은 "기존 검사 시 변이 여부를 밝혀내는 데만 하루 이상 소요되는 것을 고려하면 씨젠의 진단키트 도입이 시간과 정확도 면에서 효과적인 방역에 상당한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씨젠은 인공지능(AI) 기반 개발 자동화 시스템인 'SGDDS'를 활용한 제품 개발도 하고 있다. SGDDS(Seegene Digitalized development system)는 씨젠이 20년간 집약한 빅데이터와 개발 기술 노하우를 기반으로 개발 중인 분자진단 시약 자동 개발 시스템이다. 제품 아이디어를 가지고 개발을 준비하는 단계부터 제품이 완성될 때까지 최소 1년 이상이 소요된다. 이 부사장은 "SGDDS를 이용하면 개발자가 시약 사양 아이디어만 가지고 이를 입력하면 AI가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시약 디자인부터 시약 최적화, 임상 샘플 평가까지 별도의 노하우 없이도 규격화된 제품을 개발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씨젠은 개발자의 제품 개발을 위해 필요한 약 800개에 달하는 알고리즘을 시스템에 프로그래밍했고, 이 과정에서 AI 기술을 적용해 시스템을 개선하는 중이다. SGDDS가 상용화되면 감염성질환, 약제내성, 암 진단, 유전질환 검사 등에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유전자증폭(PCR) 검사시약 제품을 누구나, 어디에서나 만들 수 있게 된다.
이 부사장은 코로나19 사태에서 빠른 허가 절차를 밟은 것이 'K방역'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계기라고 했다. 이민철 부사장은 "통상 특정 제품의 긴급 사용 승인은 회사가 완제품을 만든 뒤 국내 식약처나 미국 FDA에서 심사를 진행한다"면서 "이번엔 처음부터 정부가 시약 생산 능력이 되는 회사를 소집해, 가이드라인을 제공한 뒤 이를 기준으로 개발된 제품을 승인하도록 해 다른 나라에 비해 더 빠른 긴급 승인이 이뤄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감염병 대유행 등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기업과 유기적이고 유연하게, 제도적 지원을 해준다면 한국이 다시 한번 바이오 강국으로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바이오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 부사장은 "제약바이오, 의료기기 등 바이오헬스 분야에서 핵심은 결국 '기초연구 인력'"이라면서 "우수 인재 양성을 위한 정부, 학계, 산업계 노력이 필요하다. 세계적 수준의 의료기술을 가진 의사도 다양한 연구개발 과정에 참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바이오 기업에 대한 지원 의지를 갖고 각종 정책적 지원, level 3의 실험실, 바이러스나 세균 등 병원성 미생물에 대한 검체 은행, 의료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 임상시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