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을 이유로 중동 핵심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폐쇄하겠다고 밝히면서 미국과 이란 간 종전 협상이 위기를 맞았다. 레바논에서의 충돌 여파로 스위스에서 열리는 양측 회담도 차질을 빚고 있다.

21일(현지 시각) 레바논 남부 나바티예에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건물이 붕괴된 현장에서 굴착기가 잔해를 치우고 있다. / AFP=연합

21일(현지 시각) 오후 미국과 이란 대표단은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스위스 뷔르겐슈토크에서 마주 앉았다. 전날 이란군 산하 하탐 알안비야 중앙군사본부는 호르무즈 해협 통항을 차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군사작전이 미·이란 종전 양해각서(MOU) 제1조를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해당 조항에는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전선에서 군사작전을 즉각적이고 영구적으로 종료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레바논 전선은 이번 협상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미국과 이란은 모든 전선에서 군사작전을 중단하기로 합의했지만, 정작 레바논 전선의 당사자인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합의 서명 당사자가 아니다. 지난 19일 양측이 극적으로 휴전에 합의한 이후에도 산발적인 공격이 이어지며 긴장이 고조됐다. 이날 스위스 회담에서도 레바논 문제가 핵심 의제로 다뤄졌다.

문제는 레바논 전선이 단순한 국지전이 아니라는 점이다. 레바논 위기의 뿌리는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는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준군사조직 가운데 하나다. 1980년대 레바논에서 세력을 키운 이후 이스라엘과 오랜 기간 충돌해 왔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이란의 지원 아래 로켓과 미사일, 드론 등을 대거 확보해 왔다. 레바논 전선은 사실상 이란과 이스라엘 간 대리전 성격을 띤다.

이스라엘 역시 헤즈볼라를 겨냥한 군사작전을 반복해 왔다. 2006년에는 헤즈볼라의 국경 습격과 이스라엘 군인 2명 납치 사건을 계기로 한 달 넘게 대규모 공중·지상전을 벌였다. 전쟁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701호 채택으로 일단락됐지만 양측 간 충돌은 이후에도 20년 가까이 이어졌다. 2024년 11월에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60일간 교전을 중단하고 레바논 남부에서 병력을 철수하는 내용의 휴전안에 합의했지만, 합의는 사실상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결국 레바논 전선은 올해 이스라엘·이란 전쟁 국면에서 다시 폭발했다. 3월 초 헤즈볼라는 이란에 대한 공격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이스라엘 북부를 향한 로켓 공격을 퍼부었다. 레바논 보건부에 따르면 이후 교전이 격화하면서 3월 2일 이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레바논에서 4057명이 사망했다.

이란은 중동에서 가장 중요한 동맹인 헤즈볼라에 대한 공격 중단을 종전 협상의 핵심 요구사항으로 내세워 왔다. 결국 이란은 MOU 제1조에 "미국과 이란 및 현 전쟁의 동맹국들은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전선에서 군사작전을 즉각적이고 영구적으로 종식하고, 앞으로 서로에 대한 어떠한 전쟁이나 군사작전도 개시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포함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MOU의 당사자가 아닌 이스라엘은 레바논 군사작전을 계속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MOU 내용이 공개된 뒤 "우리는 이스라엘 북부의 안보를 회복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레바논 남부의 안보 구역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레바논에서 철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결국 레바논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선택에 달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편으로는 네타냐후 총리를 압박하며 레바논 공세 중단을 요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란에도 헤즈볼라 통제를 촉구하고 있다. 그는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SNS) 트루스소셜에 "이란은 레바논의 대리세력인 헤즈볼라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즉시 중단시켜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지난주처럼 이란을 다시 매우 강하게 타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스라엘 군사정보국 이란 담당 부서장을 지낸 대니 시트리노위츠는 CNN에 "이란과의 보다 폭넓은 합의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여전히 레바논"이라며 "핵심은 미국이 양측이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휴전을 실제로 얼마나 강하게 강제할 의지가 있느냐"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