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경기장에서 자국 서포터(응원단)가 쓰레기를 줍는 일본의 오랜 '미담'을 두고 일본 안에서 냉소가 번지고 있다. 해외 칭찬을 '세계가 감탄한 일본'으로 소비하던 과거 흐름과 달리,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서는 "당연한 일로 칭찬받고 싶을 뿐 아니냐"는 반문과 냉소가 일고 있다.

일본 서포터는 야구나 축구 같은 큰 국제대회 경기가 끝나면 '일본의 자존심(Japan Pride)'라고 적힌 파란 비닐봉지를 들고 관중석을 돌며 페트병과 종이컵을 줍는다. 1998년 일본이 처음 출전한 프랑스 월드컵에서 알려진 뒤 올림픽이나 월드컵,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반복된 장면이다.

지난 12일 네덜란드전이 2-2로 끝난 뒤에도 일본 팬들은 관중석 쓰레기를 모았다. 국제축구연맹(FIFA) 공식 X(옛 트위터) 계정은 일본 팬이 매 경기 뒤 경기장을 청소하는 이유를 소개하며 "존중을 표한다"는 글을 올렸다. 미국 폭스(FOX) 스포츠는 일본 대표팀 라커룸이 정리된 모습을 함께 전했다. 17일에는 포르투갈 팬들이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콩고민주공화국전 뒤 일본을 본따 관중석 청소에 나섰다.

14일 미국 댈러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년 월드컵 F조 축구 조별리그 네덜란드와 일본의 경기 무승부 후 일본 선수들이 서포터들과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16일(현지시각) 닛칸스포츠는 FIFA의 청소 영상을 소개하면서 해외 칭찬과 일본 내부 비난에 나란히 주목했다. 닛칸스포츠는 "해외에서 보란듯이 주변 쓰레기까지 주워 '일본인 대단하다'고 어필할 필요는 없다는 반응도 있다"며 "모두에게 '옳은 행동'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일본 사회를 안에서부터 해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고 했다.

이들은 관중석을 깨끗이 하고 떠나는 행동 자체는 좋은 일이라는 전제를 깔았다. 그러나 자기 쓰레기를 치우는 예절을 매번 '세계가 놀란 일본인의 시민의식'으로 포장하고, FIFA·외신이 칭찬하면 일본 언론이 '세계가 감탄했다'고 받아쓰고 대중이 그 칭찬을 다시 소비하는 행위에 반감을 표했다. 국제대회에서는 남의 쓰레기까지 줍지만 국내 축제나 가정에서도 같은 윤리가 작동하느냐는 반문도 나왔다.

17일 인터넷 매체 시라베는 부정적인 일본 내 여론을 더 구체적으로 정리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일본 내에선 청소 문화를 과시하는 자국 스포츠 문화에 "해외에서 일본인을 보는 시선 때문에 하는 것 아니냐, 겉보기에 좋을 뿐",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동조하라는 압력이 적지 않게 작용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일본 국내 행사에서는 왜 적극적으로 쓰레기를 줍지 않느냐'는 반문도 나왔다. 일부 사용자들은 "J리그(일본 프로축구리그) 경기 뒤에도 같은 일을 하느냐", "열심히 쓰레기를 줍는 남성은 집에서 아내 가사를 돕느냐"는 반응을 소개했다.

주간 여성프라임은 일본 팬 청소 문화가 애초에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미국 스포츠 매체 ESPN가 처음 보도하면서 일본이 출전하는 주요 대회마다 보이는 장면이 됐다는 점을 꼬집었다. 주간지 SPA!의 칼럼니스트 이시구로 다카유키는 "이번에도 미국 방송사 CBS가 청소 장면을 소개했고, FIFA 공식 SNS에서 칭찬이 퍼졌다"고 전한 뒤 "(이런 행동이) 예의 바른 일본인으로서 칭찬 받고 싶을 뿐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 매체는 "해외에서 보이는 행동과 일본 국내에서 보이는 무질서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세계적으로 봐도 가정에서 가사·육아 참여가 적은 일본 남성이 월드컵 무대에서만 열심히 쓰레기를 줍는다고 비꼰 글이 큰 반향을 불렀다"고 했다.

이런 문제의식은 이번 대회에서 처음 나오지 않았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때 일본 팬의 쓰레기 줍기와 대표팀 라커룸 정리 미담이 크게 보도되자 일본 내부에서 반론이 나왔다. 논픽션 작가 구보타 마사키는 주간지 다이아몬드에 "'일본인의 쓰레기 줍기는 세계 제일'이라는 보도를 보며 일본의 쇠퇴를 느낀다"고 했다. 그는 "기술·경제·국제적 존재감에서 과거 같은 자신감을 잃은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예의 바른 국민'이라는 칭찬으로 자존감을 보충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